홍록기

 



'''이름'''
홍록기
'''국적'''
대한민국 [image]
'''신체'''
180cm[1], 72kg
'''출생'''
1969년 10월 3일 (55세)
경기도 수원시
'''학력'''
동광초등학교
부산덕원중학교
유신고등학교[2]
서울예술전문대학 연극과
'''가족'''
부모님
3형제 중 차남
배우자 김아린(1980년생)
아들 홍루안(2019년 3월 26일생)[3]
'''종교'''
무종교
'''데뷔시기'''
1993년 1집 틴틴파이브
'''소속'''
생각을보여주는엔터테인먼트
1. 개요
2. 활동
3. 그 외
4.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개그맨. 1969년 10월 3일 생.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어릴 적에는 부산광역시에서 자랐다[4]. 유신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졸업했다.

2. 활동


1993년, SBS 2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고 2년 선배 신동엽[5]과 콤비를 이뤄 SBS의 여러 예능 프로그램[6]에서 맹활약하며 순식간에 빅네임급 개그맨이 되었고 기쁜 우리 토요일의 진행을 맡기도 하였다.[7] 1994년 부터는 틴틴파이브로 가수활동을 했다.
멤버 중 가장 활발히 활동하며 성공한 케이스. 가수 클론의 멤버들과 절친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본인도 굉장히 춤을 잘춘다.
그의 고백으로는 색약이라고 한다. 기묘한 패션 센스로 유명했던 것도 그 때문. 본인은 베이지 색의 옷인줄 알고 샀는데 실제로는 형광 녹색같은 식이라고... 이 때문에 미술 계열 공부를 포기해야 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병진 결혼 때 100만원 짜리 수표를 잘못 낸 적도 있다고 한다. 2012년 11월에 11살 연하의 여자결혼하였다.
과거 청기백기 게임의 열풍에 힘입어 이 게임을 변형한 2000년에 SBS에서 방영했던 로드쇼 힘나는 일요일[8]중에 출연자들이 청기백기게임을 하는 코너가 있는데 이게 변종룰이라 좀 특별한 이름이 붙여졌는데 그 이름하여 청기백기'''홍록기'''.[9] 말 그대로 청기와8 백기에 홍기, 녹기까지 추가된 것이다. 물론 홍록기 본인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지만, 그 코너에 딱 한 번 출연했다. 출연 당시 "아는 사람이 요즘 방송 잘 보고 있다고 하셔서.. "어느 방송 보셨어요?"라고 질문하니.. "있잖아 청기백기홍록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당시 해당 코너의 내레이션이 장정진이었는데 출연한 것을 보고는 "지금 출연자 중에 '''홍록기 씨가 계십니다.'''"는 애드립을 했다.
컬트 영화의 레전드인 록키 호러 픽쳐 쇼의 한국판 뮤지컬에서는 주인공 프랭크 퍼터 박사 역으로 출연해서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이름도 비슷하다고 '''록기''' 호러 픽쳐 쇼라고 불렀을 정도. 애초에 원작 자체가 이런 말장난이 어울리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싱크로율이 엄청났다. 해당 문서의 M-net 버전 영상만 봐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뮤지컬 모차르트!에서 쉬카네더 역을 맡았다.

3. 그 외


웨딩 사진을 두 사람과 찍었다. 하나는 자신의 부인인 김아린이고 다른 하나는 후배인 양잉꼬란 모델과 찍은 것으로 웨딩 사업당시 홍보를 위해서 촬영한 것이다.
2013년부터 1990년대를 추억하고 당시의 가요 넘버(및 약간의 팝넘버)를 틀어주는 SBS 러브FM의 <헬로우 미스터 록기>의 진행자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경쟁 시간대에는 '''넘사벽두시탈출 컬투쇼가 있었고, 그것도 같은 SBS(파워FM)였다.''' 결국 2016 봄 개편에 종영되고 말았다.
틴틴파이브 '머리 치워 머리'로 활동할 때 머리가 허리까지 길어졌다고 한다. 이 시절 명동 거리를 걷다가 어떤 남자가 자신의 엉덩이를 만지고 지나갔다고...
에이핑크의 멤버 오하영의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다[10]. 이 때문에 스타 퀴즈왕에서 굴욕을 당한 적이 있다.
이미지와는 달리 을 전혀 못한다고 한다. 그것도 형제들이 죄다 유전이라고...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웨딩, 돌잔치 사업 등에 매진하고 있어 예전에 비하면 방송에 출연하는 횟수가 꽤 줄었다.
2017년 6월 25일, 복면가왕에서 한바탕 놀아보세 북청사자라는 별명으로 참가했으며 1라운드에서 울주군 온양읍 발리에서 온 발리걸과 함께 '사랑이 떠나가네'를 불렀다. 그 뒤 정체가 드러나기 전 클론의 '쿵따리 샤바라'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평가는 초반부만 하더라도 "홍록기보단 노래를 더 잘하는데?"같은 의견이 나왔으나, 중간에 댄스 개인기를 할때 특유의 웨이브로 인해 결국 들통났다. 김현철이 '''"록기야 너무 그러지 마라."'''라고 대놓고 이름을 불렀을 정도.

4. 관련 문서




[1] 178cm인 구준엽보다 크고 개그맨 김영철과 비슷하다[2] 본래는 동아고등학교를 다녔다가 고2 때 유신고로 전학을 갔다.[3] 여러 루(累)에 눈 안(眼)을 써서 사람들의 이목을 받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4] 동광초등학교(82년 졸) - 덕원중학교(85년 졸)[5] 단, 신동엽은 특채다.[6] 신동엽과 홍록기가 맡았던 코너 '사랑과 우정'은 드라마 형식의 개그코너였으며, 당시 굉장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매회 다른 이야기였지만, 기본적인 클리셰는 "동엽과 록기가 친한 친구였고, 그 두 사람 사이에 삼각관계의 대상이 되는 여성(그 회차의 여성게스트)이 있다"라는 기본 설정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며 이런저런 이유로 동엽과 록기가 다투게 되지만, 결국 둘 중에 한 사람의 희생(거의 대부분 죽음이었다)으로 다른 한 사람은 위기를 벗어나고 삼각관계였던 여성과 커플로 맺어진 후, 희생한 친구를 그리워하며 끝나는 것"이었다. 영상보기# 여기서 신동엽과 홍록기는 동명의 노래 '사랑과 우정'을 같이 부르기도 했는데, 지금 들어도 정말 괜찮은 숨은 명곡이다. 위 영상의 11분 12초부터 들을 수 있다.[7] 이때 맡은 코너 중에 특히 중, 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옥상에서 학교·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부모님, 이성교제 등과 관련된 고민을 외치는 형식으로 유명했던 `영파워 가슴을 열어라`가 있었다. 주말만 되면 이 코너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상당했으며 홍록기 본인도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를 얻었다. 참고로 이 프로로 스타가 된 학생이 판유걸.[8] 유재석이휘재가 메인 MC였으며 당시 염경환과 함께 클놈이라는 개그유닛으로 활동했던 지상렬 등이 고정 출연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도 후술할 청기백기홍록기의 판정논란 때문에 1년도 못가 종영되었다.[9] 청기백기에 홍기(빨간 깃발), 록기(초록 깃발), 흑기(검은 깃발)의 총 5가지 색깔의 깃발로 하는 청기백기게임의 변형으로 청기백기는 손으로 들며 홍기, 록기, 흑기는 발로 조종하는 식이다. 그런데 홍기, 록기, 흑기가 발로 꾹 밟아줘야 깃발이 서기 때문에 가끔 조작실수로 깃발이 저절로 내려가서 출연자들이 판정에 항의하는 사태가 많았고, 후에 발로 밟지 않아도 깃발이 서는 자동시스템으로 바뀌었지만 이 악영향을 극복하지 못하고 프로그램 종영에 큰 영향을 주었다.[10] 그런데 1978년생으로, 무려 19살에 오하영을 낳았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