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론(가수)

 

클론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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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상 가수부문 대상[24]
룰라
날개 잃은 천사
(1995년)

클론
꿍따리 샤바라
(1996년)


H.O.T.
행복
(1997년)

[image]
서울가요대상 대상
룰라
<날개 잃은 천사>
(1995년)

클론
<꿍따리 샤바라>
(1996년)


H.O.T.
<We are the Future>
(1997년)


왼쪽부터
구준엽강원래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클론
CLON

그룹명
클론
CLON (영어)
장르
댄스, 일렉트로니카
활동 기간
1996년 ~ 2005년[1], 2017년~
데뷔
1996년 정규 1집 〈Are You Ready?〉
소속사
미디어라인엔터테인먼트
링크

1. 개요
2. 역사
2.1. 데뷔 전
2.2. 데뷔 후
2.3. 대만 진출
2.4. 강원래의 사고로 인한 활동중단과 해체, 그리고 재기
3. 여담
4. 수상 경력
4.1. 시상식
4.2. 가요 프로그램 1위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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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강원래구준엽으로 구성되어 1996년부터 2005년까지, 2017년부터 다시 활동한 대한민국의 댄스 듀오.
데뷔곡인 '꿍따리 샤바라'가 가요 차트에서 1위를 여러번 거머쥐고 승승장구의 길을 걸어 한 때 해외까지 진출한 듀오다. 당대 가수들 중에서 독보적으로 터프가이임을 강조한게 특징이며, 실제로 강원래와 구준엽은 키가 꽤 큰 편이다.[2]

2. 역사



2.1. 데뷔 전


경기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인 강원래와 구준엽은 당시 학교와 인근 지역에도 잘 알려진 춤꾼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서로 춤을 추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으며, 이태원의 클럽들을 돌아다니면서 당시 서울에서 잘 나가던 춤꾼들 사이에서도 명성을 날렸다고 한다. 졸업 후 댄스경연대회에서 강원래가 1위, 구준엽이 4위로 입상한 것을 계기로 이수만에게 발탁되어 1990년현진영이 주축이 된 '현진영과 와와'에서 1기 멤버로 활동했지만,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군에 입대하면서 '현진영과 와와'에서 탈퇴했다. 엄밀히 말해서 '와와'는 전속 백댄서의 개념이었기 때문에 탈퇴는 아니고 하차에 가깝지만. 이들을 대신해 후속으로 들어온 와와 2기 멤버가 이현도김성재.[3]
제대 후에 구준엽1993년이탁(본명 이광민)과 '탁2준2'로 활동했고,[4] 강원래 역시 가수들의 백댄서로 생활하다가 1995년박미경이 발표한 '이브의 경고'에 객원 랩퍼로 활동하며 가수로서의 성공 가능성을 열어갔다.[5]
이후 히트 제작자이자 작곡가인 김창환에게 발탁되어 1996년에 데뷔한다.

2.2. 데뷔 후


김창환의 구원투수가 된 클론[6]은 '꿍따리 샤바라'로 데뷔했다.1996년은 당대 최고의 가수인 솔리드, R.ef, 신승훈, 김건모가 컴백해서 활동하던 시기였으며 이들 모두가 음반을 발매하자마자 한 달도 안 되어 1위 후보에 오를 만큼 정말 각축전이 심한 시기.[7] 나머지 곡들도 꽤 오랫동안 순위권에 머물 정도로 명곡들이 많았다.[8]
강원래와 구준엽은 공식 데뷔만 늦을 뿐이지 활동한지는 이미 10년이 지난 중고 신인이고 기성 가수들과 활동한 경험이 많아 능수능란하게 적응을 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제작사에서는 앨범 발매 전부터 미리 클럽 등지에 데모 테입의 형태로 꿍따리 샤바라를 배포해 두면서 크게 홍보를 한 결과 이들은 앨범을 발매한지 1달도 안 되어 각 방송사의 1위 후보에 올랐다.
이들은 이 기세를 몰아서 당대 최고의 가요프로 가요톱10에서 김건모가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던 솔리드, R.ef, 신승훈 등과의 경쟁을 뚫고 '스피드'로 4주 연속 1위를 한 다음 대망의 골든컵에 도전할 때 그 기록을 저지하고 새로운 최강자로 우뚝 서게 되었으며 그 날 이들은 가요톱10 첫 1위가 확정되자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9] 이 날 김건모는 바로 전년도까지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라인음향 소속의 클론이 1위를 할 때 축하를 했지만 속으로는 아쉬움을 참아내는 기색이 역력했다.[10]
그 뒤 이들은 그 여세를 몰아 '꿍따리 샤바라'로 다른 경쟁작인 룰라의 '3!4!'와 DJ DOC의 '여름 이야기'와의 경쟁 끝에 골든컵의 주인이 되었으며 1집의 후속곡인 <난>도 1위 후보에 오르면서 입지를 탄탄히 다졌다. 높은 인기를 증명하듯이 1996년에 개최된 SBS 스타상과 서울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11]
1집의 기세를 이어서 1997년 6월에는 2집인 여름 바캉스 곡인 <도시탈출>을 선보였을 때[12] 반응은 기획 단계부터 1집의 성공을 너무 크게 의식한 나머지 <쿵따리 샤바라>의 아류작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평가를 떠나 제작자의 앨범 홍보 방향부터가 대놓고 '쿵따리 샤바라 2'였다. 심지어 도시탈출 뮤직비디오 로고에 부제를 대놓고 '쿵따리 샤바라 2'라 칭하기도. 이와 같은 전략을 통해 안전주의적인 선택으로 적당한 인기를 얻긴 했으나, 방송 3사에서 골든컵을 비롯해 각종 1위를 쓸어남았던 전년도의 열풍에는 훨씬 못 미치는 인기였다.
그래도 슈퍼루키 시절의 인기를 통해 여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 후보에 상당수 진입한 바 있으며 후속곡인 발라드 풍의 '빙빙빙'도 10위권내를 유지하면서 선전했다. 음반판매량이 1집의 밀리언 셀러에서 수직으로 하락해 20만장 대에 그치긴 했지만, 다행히 클론이 기존에 보여준 카리스마있는 이미지와 세련된 비트, 친근한 멜로디 등등의 음악적인 이미지와 컨셉은 그대로 이어갔기 때문에 2집이 부진했던 것에 비하자면 브랜드 파워는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또한 1집의 인기가 워낙 컸기 때문에 2집이 상대적으로 부진하긴 했지만 절대적인 인기가 부족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또한 이 무렵부터 한류 열풍에 슬슬 불을 지피면서 당시에 대만 쪽으로 프로모션을 하게 되어 가수로서, 연예인으로서 새로운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약 1년 반의 공백기를 가진 후 1999년 3월 27일 3집을 발매했다. 두 멤버 모두 강렬한 랩핑과 낮은 음역대의 허스키 보이스를 가지고 있어 기존 멤버들만으로는 음악적인 변화를 꾀하는데 한계가 있었고, 그러한 이유로 파워풀한 가창력을 지닌 객원맴버 김태영과 함께 활동했다. 테크노 리듬과 펑키 리듬을 접목한 <돌아와>를 통해 2집의 부진을 어느 정도 만회했고 이를 통해 한국에서의 하락세를 반등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외에도 <Funky tonight>, Nazareno(1975)의 O.S.T인 When a child is born을 리메이크한 <사랑과 영혼> 등을 통해 앨범 활동을 이어갔으며, 두 곡 모두 이전 활동곡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린 비트와 레트로 느낌의 멜로디를 접목하여 음악적인 다양화를 기하였다.
또한 이 무렵에 대만에서의 인기가 본격적으로 터지면서 H.O.T., NRG와 함께 중화권 한류 1세대로 상징적인 인기를 누렸다. 대만 등 중화권은 1990년대 말 한류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전까지 여리여리하고 부드러운 이미지 혹은 비주얼 락계의 짙은 화장과 화려한 헤어스타일이 일반적이었던 JPOP이 대세였는데, KPOP 스타일이 이들과 크게 차별화되었기 때문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것이 곧 한류로 발전했다. 특히 클론이 내세운 강렬하고 남성적인 댄스퍼포먼스가 신선하게 다가온 점이 주효했다.
3집에서의 반등 및 한류 열풍의 시발점으로 롱런의 기반을 다진 이후, 2000년 4월 4일에 4집 앨범을 발매했다. 당시 유행하던 테크노를 적극적으로 접목시켜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비트로 승부한 <초련 Techno Mix>는 기존의 클론 이미지와 아주 잘 부합하면서 대중적으로 부담없이 다가오는 곡이었고, 결국 나이트클럽 및 레크리에이션계를 섭렵하며 2, 3집보다 훨씬 많은 인기를 끌어 완벽하게 정상의 자리로 다시 올라섰다. 참고로 <초련 Original Mix>도 같은 정규 앨범에 수록되었는데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오락실 발판형 리듬 게임펌프 잇 업에 수록된 덕분에 리듬 게임 유저층 위주로 알려지긴 했다.
KBS 뮤직뱅크에서 무려 4주 1위, MBC 음악캠프에서도 1위를 차지하면서 4년 만에 다시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후속곡인 <거짓말> 역시 10위 권에 안에 드는 등 선전했다. 색상 반전으로 인한 충격과 야광봉 퍼포먼스의 손목 돌리기가 큰 이목을 끌며 유행을 탔고, 20대 나이트 시장을 정확히 타켓팅한 것이 주요한 성공 이유 중 하나였다. 초련의 대성공으로 음반판매량 역시 3집 27만장을 훌쩍 뛰어넘는 41만장의 판매량을 올렸다.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최전성기 1집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갈 만한 위상을 찾아올 수 있었고, 해외에서의 인기를 감안하면 1집 이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만큼 절정의 인기를 끌어올려 인기 가수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2.3. 대만 진출


성공적인 1집 데뷔 후 여름을 대표하는 남성듀오로 인기를 얻으며 '난', '도시탈출', '초련', '사랑과 영혼' 등의 각종 히트곡을 쏟아낸 것은 물론(펌프 잇 업 게임 때문에 Funky Tonight도 꽤 인지도가 있는 편.) 그 인기가 국외까지 퍼져 아시아권의 원조 한류가수라고도 불린 바 있다.
대만에서는 '빙빙빙'[13]이란 노래를 히트치면서 당시 마이클 잭슨급의 인기[14]였다고 하니... 지금도 클론을 기억하는 대만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대만 활동내용들이 대만 신문 1면을 장식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구준엽의 인기는 대단해서, 몇년 연속으로 대만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1위에 선정되며, 대만 톱스타 '서희원'(대만판 꽃보다 남자의 주인공)과 사귀었다. 그야말로 98~99년 당시 대만의 구준엽은 추후 일본의 배용준보다 더한 인기를 가지고 있었던 슈퍼스타였다고 보면 된다.[15] 하지만 이듬해에 대만에서 초대형 콘서트를 준비 중에 있었으나 후술하는 강원래의 안타까운 교통사고로 인해 결국 무산되었다.

2.4. 강원래의 사고로 인한 활동중단과 해체, 그리고 재기


2000년 11월 9일 강원래가 오토바이를 타던 도중 현재의 신논현역 사거리[16]를 좌회전하는 과정에서 불법 유턴한 차량과 충돌, 하반신을 쓸 수 없는 몸이 되는 사고[17]를 당했다. 이 사고 때문에 강원래가 더 이상 춤을 추지 못하게 되면서 일차적으로 클론 활동이 전면 중단되었고, 그의 하반신이 영구 장애 판정을 받게 됨과 동시에 댄스 가수 활동 역시 불가능하게 되면서 끝내 잠정적으로 해체했다.[18] 그후 클론은 구준엽이 혼자 활동했고 특히 2002년 월드컵에 발표된 랄랄라에는 강원래는 녹음에는 참여했으나 활동은 불가능해 베이비복스와 함께 활동했다.
그 뒤 2005년 강원래가 휠체어를 이용한 안무를 만드는 투혼을 발휘해, 무명가수 원우를 객원멤버로 합류시켜 5집으로 컴백했다. 타이틀곡은 '내사랑 송이'.[19] 휠체어 댄스를 보여주며 클론의 건재함을 과시한 뒤, 강원래는 라디오 DJ로, 구준엽은 'DJ KOO'란 이름으로 솔로 가수 및 클럽 DJ로 활동하게 된다.
2017년 6월 29일, 12년 만의 새 앨범 'We Are'을 발표하면서 컴백했다. 다만 과거의 클론이 해온 스타일이 아닌 클럽풍 EDM의 곡들인지라[20] 예전의 모습을 기억하는 클론 팬들의 입장에선 아쉬워하는 듯. 수록곡 중 두곡이 하드스타일을 시도하였다.

3. 여담


  • 신승훈, 김건모, 박미경 등과 함께 라인음향 소속으로 90년대 초중반 가요계를 휩쓴 김창환 사단의 일원. 김건모가 라인음향을 떠난 뒤 기획해서 데뷔시킨 케이스로 다른 라인음향 가수들과는 달리 가창력은 부족하지만 댄서 출신이라 춤 실력은 대단히 뛰어났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보는 음악의 시대가 올 것이란 걸 예감한 김창환의 안목을 확인할 수 있었던 팀.
  • 이들의 첫 1위는 데뷔한지 74일만에 일궈낸 성과로[21], 지금도 데뷔한 지 6개월이 지나도 1위를 하기 힘든 걸 감안하면 이들의 인기는 가히 대단했다고 할 수 있겠다.
  • 2014년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에 본인들의 노래인 '쿵따리 샤바라'의 피쳐링에 참여했고, 랩 대신 내레이션을 적용했다.
  • 공부는 못하지만 재능으로 성공한 케이스. 구준엽과 강원래는 학창 시절 성적이 반에서 하위권이었는데, 이 2명보다 더 성적이 나쁜 학생은 운동부 외엔 없었다고.
  • 한국 음악사에서 댄스로 이름난 그룹이지만 강원래는 난잡한 사생활과 대인관계 때문에 나쁜 감정을 가진 동료 연예인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이하늘에게 강원래는 원수와 다름없었으며, 이하늘의 여자친구를 강제로 뺏어간 이야기를 DJ DOC 7집에 디스곡으로 발표한다. 곡명은 '부치지 못한 편지'. 이후 라디오 스타에서 강원래가 이 내용을 발언하며 이하늘과 대립각을 세우는 등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다만, 나중에 런닝맨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현재 강원래와 이하늘은 화해했으며 지금은 친하게 지낸다는 듯.
  • 과거 지상렬염경환이 개그 콤비로써 '클놈'이라는 이름으로 패러디하였다. 이에 클론 멤버들은 자신들을 놀리는 패러디라는 걸 알고 분노하여 트집잡을 거리를 찾으려고 이들을 지켜보다가 컨셉이 굉장히 재미있어서 결국 화를 풀고 오히려 자신들의 의상을 지원해주었다고 증언하였다. 이걸 계기로 남성 2명 중에 삭발한 사람이 1명 있으면 클론을 따라하는 놀이가 유행하게 되었고, 클론이 클놈과 인기가요에서 같이 공연하기도 했다.[22]
  • JTBC정치부 회의에 출연하는 이상복 부장과 같은 반이었다. 덕분에 다른 반장들이 부장님 친구라면서 방송 중에 클론을 언급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결국 2017년 7월 17일에 정치부회의에 직접 출연하였다. '강지영의 Talk 쏘는 정치' 코너에서 이상복의 학창 시절 이야기도 하고 아주 잠깐 진행도 해보았다. 이날 클론이 클로징 멘트를 담당하고 동창끼리 다정하게 사진을 찍었다.
  • 2020년 현재 MBC TV 방송 시작 전 시험방송 중 'Worldcup song'을 Audio 위상 점검용 음악으로 송출하고 있다. 이 시험방송은 수도권에서만 볼 수 있다. 이 월드컵 응원가는 1997년 MBC가 선정한 98 프랑스 월드컵 응원가였다.

4. 수상 경력



4.1. 시상식


연도
시상식
수상 부문
1996년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본상
KMTV 가요대전
인기가수상
서울가요대상
본상
서울가요대상
대상
SBS 10대 가수 가요대전
본상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1997년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본상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1999년
KMTV 가요대전
본상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서울가요대상
본상
문화부장관 표창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인기가수상
2000년
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댄스 부문
KMTV 가요대전
본상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공로상
SBS 가요대전
공로상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2001년
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공로상
2005년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
장애인먼저실천상 대상

4.2. 가요 프로그램 1위


연도
곡명
수상
비고
1996년
꿍따리 샤바라
7월 13일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1위
7월 14일 SBS TV가요20
1위
7월 17일 KBS 가요톱텐
1위[23]
7월 20일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1위
7월 21일 SBS TV가요20
1위
7월 24일 KBS 가요톱텐
1위
7월 27일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1위 (3주 연속) (BEST OF BEST)
7월 28일 SBS TV가요20
1위
7월 31일 KBS 가요톱텐
1위
8월 7일 KBS 가요톱텐
1위
8월 11일 SBS TV가요20
1위 (4주 연속)
8월 14일 KBS 가요톱텐
1위 (5주 연속) (골든컵)
2000년
초련
5월 9일 KBS 뮤직뱅크
1위
5월 16일 KBS 뮤직뱅크
1위
5월 20일 MBC 음악캠프
1위
5월 23일 KBS 뮤직뱅크
1위
5월 30일 KBS 뮤직뱅크
1위 (4주 연속)

5. 관련 문서



[1] 불의의 사고는 2000년 11월에 일어났지만, 2002 월드컵 시즌송 ‘발로차’, 2005년 정규 5집 ‘내사랑 송이’까지 활동이 이어졌다.[2] 강원래가 183cm, 구준엽은 178cm.[3] 이현도와 김성재도 '현진영과 와와' 활동을 접은 후 듀스를 결성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4] 하지만 탁2준2는 이탁이 필로폰을 투약한 사건으로 인해 와해되었으며 이후 이탁은 현진영과 함께 'I.W.B.H.'라는 팀으로 활동했으나 이마저도 와해되면서 현재는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5] 여담으로 강원래는 프리스타일이라는 팀명으로 박미경, 박진영과 함께 활동하려고 했지만 무산되었다.[6] 그룹 이름 '클론'은 유전학 용어로 유전자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복제인간이라는 뜻이다. 멤버 두 사람이 한 몸처럼 춤과 댄스를 구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7] 단 Re.f는 대부분 표절곡(...)이다. 작곡가 홍재선은 SEASON이라는 명의로 룰라에게 크게 터뜨렸다.[8] 1996년 상반기 가요계는 1995년 9~12월에 쏟아진 명곡들이 1위 곡을 비롯한 10위권을 점령했으며 1995년 10월에 나온 음악이 1996년 6월에도 10위권 안에 있던 걸 감안하면 이 당시는 크게 롱런한 곡이 많았다는 뜻. 1996년 1월 3일부터 5월 1일까지 1위를 차지했던 곡은 모두 1995년에 발표한 곡.[9] 김건모가 4주 연속 1위를 했을 때에는 9표차 접전을 펼칠 정도였다.[10] 만약 김건모의 '스피드'가 골든컵 수상에 성공했다면 조용필에 이어서 4년 연속 골든컵, 정규앨범 4장 연속 골든컵 수상곡 배출로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도 달성하지 못한 대기록을 수립했을 상황이라 김건모는 친한 후배인 클론의 1위를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11] 특히 이 해에는 치열한 대접전으로 인해 가요톱텐에서 <쿵따리 샤바라>와 같이 골든컵을 수상한 곡은 김정민의 <슬픈 언약식>이 유일하며 1996년에 발매된 곡으로는 쿨의 <운명>이 유일하다.[12] 가요톱10에서 이 곡을 처음 선보였을 때 강원래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3부 반바지를 입고 나왔다.[13] 홍콩의 가수 겸 배우인 두더웨이(杜德偉)도 번안해서 부르기도 했다.[14] 당시 마이클 잭슨이 대만에 방문했을 때 공연료가 당시 클론과 같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단지 안타깝게도 당시 수익배분체계가 잘못되어 있던 것 때문에 공연을 중개하던 연예 기획사들이 중간에 많이 가로챈 영향으로 클론 멤버 두 사람은 배분을 별로 못 받아서 큰 돈을 벌지 못했다.[15] 물론 일본보다 대만의 연예시장 자체가 작았던 영향도 있었을 것이지만 어찌되었건 각국 단기간 연예계 서열에서 정점은 분명 구준엽이 위였다. 구준엽과 강원래가 게이커플이라는 식의 찌라시성 루머까지 돌 정도로 당시 대만에서의 인기는 대단했다.[16] 교보타워가 자리잡고 있는 그 사거리 맞다. 이 당시에는 서울 지하철 9호선이 개통되기 이전이었다.[17] 이 이야기는 스펀지에서 380회에서 소개되었으며 사고 당시, 사고를 목격한 행인이 도로 한 가운데에 쓰러져 있는 강원래를 추후 있을지 모를 사고를 대비하여 인도로 옮겼다고 한다. 이로 인해 부러진 뼈가 중추신경을 누르는 바람에 그대로 하반신 마비로 이어진것. 만일 행인들이 그를 옮기지 않고 놔두었다면 하반신 마비를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척추나 경추 다친 사람을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고, 길 복판에 내버려 두었다면 2차 사고로 사망했을지도 모르니 어쩔 수 없던 상황으로 볼 수 있다.[18] 시기상으로는 업타운이 대마초 사건으로 와해된 지 7개월, 젝스키스가 해체된 지 6개월, NRG의 멤버 김환성이 사망한 지 5개월이 지난 후였다.[19] 강원래 부인의 이름이 '김송'으로, 불구가 된 남편을 정성껏 간호하고 뒷바라지해준 부인에게 바치는 노래이다. 강원래는 사고 이후에도 종종 부인 김송과의 사연으로 예능 등에 출연하여 애틋한 사연을 선보이곤 했다.[20] 각자 라디오 DJ와 클럽 DJ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음악 성향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세월이 워낙 흐른것도 있고.[21] 7월 13일에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 최초 1위를 차지했다.[22] 참고로 싸이더스 소속 연예인 중 한 팀이었다.[23] 김건모의 정규앨범 4장 연속, 4년 연속 골든컵 수상을 저지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