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고조선의 건국 이념 · 대한민국의 교육이념




넓을 홍
더할 익
사람 인
사이 간
1. 개요
2. 상세
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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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뜻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리라"라는 뜻으로 한민족의 건국 시조인 단군의 건국 이념이다. 『삼국유사』 고조선조에서는 “고기(古記)에는 환인(桓因)의 아들인 환웅(桓雄)이 있었는데 자주 천하에 뜻을 두어 인간 세상에 가고 싶어 했다. 아버지 환인이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홍익인간할만 하거늘(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만 하거늘) 천부인 세 개를 주어 내려가 다스리게 하였다"라는 기록이 존재한다. 홍익인간은 환인에서 환웅, 그리고 단군으로 이어지는 이념이다.

2. 상세


고조선의 건국정신으로 알려진 문구이자 현 대한민국의 교육이념. 확인된 가장 오래된 출처는 고려시대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 이승휴가 편찬한 제왕운기에서도 나온다. 파나마의 국가 표어(국시)인 Pro Mundi Beneficio(세계의 이익을 위하여)와 매우 비슷한데, 강조하는 뉘앙스는 다르다.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이기도 한데 현 헌법에 명시되지는 않지만 현 대한민국이 계승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국강령 제1장'에 건국정신으로 '홍익인간'이 명시되었고, 교육기본법(법률 제86호)에는 교육이념으로서 명시되었다. 또한 낱말 자체와 뜻은 대다수 한국인이 기본으로 인지하고 있다. 애초에 공교육부터 가르치고 있으니 당연하다.
서울특별시수도라는 사실은 법에 명시되지 않아도 누구나 알며, 법에 명시되지 않다는 것이 그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1]
하지만 뜻에는 이견이 있다. 문맥과 사용된 한자를 고려하면 해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특히 왜 하필 더할 익(益)을 썼느냐에 대한 주장이 있다. 익(益)은 더하다라는 뜻이므로 홍익인간에 쓰인 더할 익 글자는 인구수나 사회 규모를 크게 한다는 뜻이 아니냐는 것.[2]
홍익인간을 '널리 사람 사는 세상을 이롭게 하라' 라고 해석했던 것은 고려 때 삼국유사가 편찬된 이후부터이므로 삼국유사를 지을 당시와 짓기 이전에 어떤 뜻으로 말했는지는 이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머릿수가 곧 사회의 힘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원래 인간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 사람(人) 사이(間), 세상을 일컫는 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람 수를 불리라는 말이라고 하는 것도 꽤나 이상하다. 널리 인간을 더하라는 말이란 주장은 세력을 불려 천하를 평정하라는 식의 말이라고 하기엔 좀 심하게 폼이 나지 않고.
아무튼 본래 뜻이 어떻든 건국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국가이념으로서 홍익인간의 뜻은 이미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혹은 하라)'로 인식되고 있으며 그 점과 건국정신으로서 지니는 독보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현재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고조선의 건국정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삼국유사 자체가 고조선이 망하고 천 년은 지난 후에 기록된 문헌이라 실제 고조선의 건국정신이었는지는 그리 미덥지 못하다.[3]
우스갯소리로 '홍'자를 붉을 홍()으로 해석하여 얼굴이 빨간 사람들을 '뻘겋게 익인간'이라고 해서 홍익인간이라 하기도 한다.

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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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초에 서울의 뜻이 수도다.[2] 재미있게도 기독교에서 저 한자를 쓴다면 어울린다. 기독교에서 "사람을 더하는 것"은 단순히 교회의 세력을 불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 교회, 즉, 에클레시아는 불려모인 자들의 무리란 뜻이다.[3] 다만 없는 이야기를 꾸몄다고 보기도 힘든 게, 당시 사가들도 나름 그 당시 과거의 기록과 전승을 보고 들어서 역사서를 편찬했다. 사마천이 편찬한 '사기'만 해도 은주시대 왕가 계보 따위 기록을 거짓으로 여겼으나, 이후 갑골문자의 발견 등으로 상당수 사실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