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대국

 

1. 개념
2. 현실


1. 개념


强盛大國
지상락원에 이어서 북한이 밀었던 프로파간다 구호. 남한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자력갱생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한 반면 북한은 경직된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살았기에 국가를 운영할 방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경제적으로 자립해 자본주의를 도입할 필요성을 크게 못느끼다가 소련 해체 이후 망한거라고 볼수 있다. 북한은 여기에 더불어 잘못된 지도자를 두었기 때문에 이미 80년대부터 크나큰 죽을 쑤었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전두환 정부당시 이전까지 약 30여년 간 축적된 산업기반과 국가역량을 바탕으로 경제적 풍요를 이룩하겠다는 목적과, 오랜 독재에 염증을 느껴오던 국민들을 달래기 위해서 '''선진조국'''을 정부 슬로건으로 정하고 활용했다. [1]
북한의 강성대국론은 1998년 8월 22일 로동신문에서 처음 언급되었는데, 1998년 9월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에 취임한 것을 기점으로 공식적으로 고난의 행군을 종결하고 김정일 체제의 안정성을 과시하기 위해 제시되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2] 이 때문에 이것이 주체사상을 대체하는 김정일 정권의 이론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나 주체사상은 어쨌건 강성대국론의 이념적 기반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념적으로 강성대국론은 사상, 군사, 경제의 3단계 이론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북한은 1980년대의 '우리식 사회주의' 이론과 소련 및 동구권에 대한 비판에 기반하여[3] 자신들이 주체사상을 통해 사상의 강성대국을 이루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현재 북한은 군대를 모범으로 삼아 '혁명'을 향해 나아가는 단계에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선군정치''' 이론이다. 이러한 이념에 따라 북한은 2012년[4]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여 각종 선전 및 동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이론은 사실상 내부 동원력을 끌어내기 위한 것에 가까우며, 따라서 공식적으로는 북한의 외교 및 도발과는 관련이 없다(물론 현실과의 괴리는 있는데 이는 후술). 즉 '''군대고 뭐고 다 끌어다 써서 밥이나 제대로 먹자'''는 것이 강성대국론의 요점. 실제로 북한에서는 군대의 산업 동원이 늘어가는 추세이며, 죽을 때까지도 행정직으로 자리를 회복하지 못한 채 국방위원장으로 집권한 김정일 체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5] 이는 외부의 고정적인 지원이 사실상 단절된 북한 내부에서 끌어낼 수 있는 정책이 대중 동원 운동과 그나마 먹여 살리고 있는 군대뿐인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본인들도 그걸 아는지 2012년은 '강성대국의 해'도 아니고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라고 선전해 왔지만...

2. 현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중공업 비중이 이미 상당히 높은 북한의 상황에서 소련으로부터 석유코크스 등의 지원이 끊긴 북한은 공업 자체를 정상적으로 돌리기 어렵다. [6] 공업뿐만 아니라, 집단농장 체제와 공장 산업을 직접 연결시켜 비료를 공급하면서 돌아간 북한의 농업 체제도 파탄이 난 지경. 특히 북한이 지금껏 집중적으로 육성해 온 옥수수 농업은 지력 소모가 매우 큰데, 석유공급이 끊기면서 화학비료 공급이 중단된 상황에서[7] 이러한 농업을 계속할 경우 생산량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지력이 쇠퇴하면서 토양 자체의 질이 나빠진다. 그 결과가 북한의 현재 민둥산과 1995년 대홍수를 비롯한 자연재해다.[8]
그리고 그나마 그 전쟁이라도 안 일으켰으면 평양원산 등에 남아 있는 공장을 어떻게든 굴려먹기라도 하겠으나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북한의 공업단지들이 죄다 미 공군에게 폭격 맞아 버려서 공업단지들이 있던 자리가 죄 허허벌판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북한의 공업기반 자체가 사라져서 북한의 산업 자체가 빈털털이 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남북한 모두 전쟁통에 일제강점기 시절 건설된 공업시설과 인프라가 수풍댐 같은 일부를 제외하곤 모조리 박살났다. 다만 북한은 남한과 달리 예전부터 공업기반이라도 갖춰져 있었기에 그런 것조차 없던 남한보다 전후복구가 빠르게 이뤄질 순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공산권국가들의 원조나 지원도 한몫한 바가 크지만...
이렇게 산업 기반 자체가 붕괴된 상황에서는 당연히 대중 동원 운동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 북한은 정권 창설 이후부터 사상의 강조와 이에 따른 대중 동원 운동을 계속해 왔지만[9] 1970년대 이후 대중 동원 운동의 효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져 가는 상태이며 이미 내부적 역량도 완전히 고갈된 상태. 이러한 상황에서 대중 동원 운동은 오히려 북한 대중들에 대한 책임 전가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상태이다.
한편으로 식량, 석유 등의 획득을 위해 외부와의 접촉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지만, 오히려 '우리식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을 계승한 강성대국론으로 인해 북한이 외부를 보는 시각은 좁아지게 되었다. 북한의 소위 '통미봉남' 정책은 1993년 1차 핵 위기 이후 위기감을 고조시켜 대화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지만, 2010년에는 천안함 피격사건연평도 포격 사태라는 극단적인 공세까지 진행되었음에도 미국의 응답은 없다. 그런데도 북한에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는 상태이니, 강성대국론이 스스로의 경직을 부르는데 일조한 셈이다. 중국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강화하고 러시아를 방문하는 등 나름대로의 노력은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장기적인 대책이 되려면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대남 도발은 극단적일 정도로 나아갔음에도 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으니...
2011년에 평양에서 3개군과 1개 구역이 황해북도로 편입되어, 사실상 평양 시민에 대한 복지를 축소했다. 한편으로 한참 동안 방치되어 있던 류경호텔의 건설작업을 재개하고 평양에 아파트 10만호를 짓는 사업을 벌이는 등 체제 과시를 위한 건설 사업도 재개했지만, 이걸 위해서 김일성종합대학의 신입생 모집까지 중단돼 버리는 앞뒤가 바뀐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10] 기술력도 중장비도 없는 북한은 엄청난 인력을 동원해서 아파트 10만호 건설을 서둘렀지만 결국 자금부족으로 사실상 실패. 남은 것은 졸지에 아파트 짓는다고 쫓겨나서 집을 잃은 주민들과 부실공사로 언제 무너질지 모르고[11][12] 편의시설도 없이 껍데기만 올라간 콘크리트 덩어리 아파트들뿐이다. 결국 아파트 10만호 사업은 2012년 신년사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2011년이 가기 전에 김정일이 사망.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겠다고 했던 김정은은 눈물을 쏙 빼게 돼버리고 말았다. 김정일이 자기 나름대로 무던히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실권 계승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지는 불분명한 상황이다.
특히 김정일의 사후 권력 계승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북한 내부에서 군대가 발호할 위험성이 크다. 선군정치는 분명히 직접적으로 군권을 키우겠다는 이론은 아니며 다만 군대를 '혁명'의 도구로 삼겠다는 이론이고, 이에 따라 2000년대까지는 비록 군의 권력이 높아지기는 했어도 김정일 체제의 북한은 군이 당 아래에 장악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아무 기반도 없는 김정은이 이를 장악할 수 있을지는 매우 불분명한 상태.[13] 결과적으로 북한은 강성대국은커녕 본인들이 제시한 목표 하나하나를 다 이루기 어려워 보인다. 아니, 김정은 계승부터가 제대로 이루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나라가 이렇게 총체적으로 부실하기도 어려울 텐데. 지금의 북한 수준으로 자칭 강성대국이라는, 남한 수준의 경제대국을 만드느니 차라리 '''멸망시키고 재건국하는게 훨씬 쉬워''' 보인다.(...) 사실 정말로 그런게, 북한 경제발전의 필수요소에 세 가지가 있다.
  • 쓸데없이 비대한 북한군의 규모를 합리적인 수준까지 줄여서 국방비 지출을 대폭 줄이고 청년층의 사회활동 참여율을 높인다.
  • 대대적인 문호 개방[14]을 하고 자본주의를 공식적으로 도입한다. 정치적으로까지는 힘들더라도 최소한 중국 정도의 경제적인 개방 정도는 이루어져야 한다.
  • 대남 도발을 완전히 중단한다.
이 정도만 해도 북한 경제는 상당히 발전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도자의 폭주를 막을 견제세력이 충실히 갖춰진 민주체제, 그게 안 된다면 최소한 일인독재가 아니라 중국집단지도체제, 즉 과두제가 필요하다. 북한군, 주체사상, 대남 도발 자체가 현 김씨왕조 유지를 위해서 자행되고 있는 것들이므로 이는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2011년 말 공식적인 표현에서 강성대국은 사라지고 강성국가로 대체되었다. 강성대국이라는 표현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신년사설 등 공적인 표현물에서는 강성국가(또는 강성부흥)를 주로 쓰기 시작했으며 사용횟수 또한 현저히 줄어들었다.[15] 어휘표현 하나하나를 심각하게 따지는 북한의 특성상 이런 변화는 단순한 실수일 리 없고, 김정은 체제의 부담을 덜기 위해 무리한 목표를 스케일다운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화여대 조동호 교수에 의하면 강성대국으로 가는 전 단계로서 강성국가를 추가한 것이라고 한다.
뇌물 혐의로 적발된 장마당 관리 간부가 재판에서 "강성대국이 2012년까지 될 리가 없다!"는 발언을 하여, 김정일이 어디 한번 보자면서 의도적으로 2012년까지 처형을 늦추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결과적으로 김정일이 내기에서 졌지만 간부는 처형되었다고.(...)#

[1] 전두환 정부 시절 경제가 발달한 것은 거의 대부분 박정희 때 박정희가 추진해놓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다.[2] 고난의 행군은 1994년 제 3차 7개년 계획의 실패 선언과 김일성의 사망 이후 김정일의 유훈 통치 기간에 제시되며 출발했으나, 공식적인 종결 선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이와 완전히 대비되는 강성대국론이 제창되면서 사실상의 종결이 이루어졌다고 보는 상태이며, 그 종결 시점에 대해서도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다양한 견해가 있다.[3] 북한은 사회주의권의 붕괴 속에서 이러한 사태가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대국(주로 소련에 대한 비판)에 의존하고 자본주의 국가의 침투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현실과는 거리가 있지만, 어쨌건 북한은 이를 주체사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도구로 삼아 자신들이 '낡은 사상'인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넘어서 '주체적인' 사회주의 국가의 건립에 성공한 '사회주의의 중심'이라고 주장했다. [4] 왜 하필 2012년이냐면, '''바로 김일성이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연호도 주체 100년.[5] 생각해보자. 공산국가의 대표적인 철권독재자 스탈린마오쩌둥도 군사에 관련된 직함이 붙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제1직함은 각각 소련 공산당 서기장,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등 행정적 수반의 형태를 띠고 있다. 아무리 '국가'이전에 '공산당'을 우선시하는 공산국가일지라도 행정적 직함이 우선시되는데 반해 김정일은 대외적 제1직함조차 국방위원장에 불과했다. 이는 선군정치라는 괴악한 군국주의에 국가(북한)자체가 먹힌 증거이자, 군대가 가지는 무력과 위압감 없이는 국가는 커녕 당조차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는 김정일의 한심한 지도력을 반증한다. [6] 북한이 달성했다고 주장하던 소위 민족자립경제는 실제로는 소련이 국제시세의 절반 이하인 우호가격으로 공급하던 석유와 원자재에 기반한 것이었다. 구소련이 1980년대 말 개혁개방에 나서면서 북에 대한 지원을 줄이자, 북한경제는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남북경협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7] 실제 북미협상이나 남북경협 때마다 북이 항상 요구한게 1순위-석유, 2순위-화학비료였다.[8] 이 때문에 북한은 감자옥수수 대신 보급하려 애쓰고 있다고 한다.[9] 1946년 11월부터는 건국정신총동원운동이, 1950년대에는 천리마 운동이, 1960년대에는 청산리 운동과 대안 사업 체계 보급이, 1970년대에는 3대혁명소조운동 등이 있었다. 이는 사회주의 사상의 교육 및 당원의 확대와 함께 이루어져 북한은 사회주의권에서도 독특할 정도로 당원의 비율이 높았고 나름대로 소위 '노멘클라투라' 계층의 전횡은 막을 수 있었다. 다만 그 결과물이 우상화될 정도로 수령의 비중이 높아진 유일 사상 체계라는 점은...[10] 여기에 북한이 막대한 군인과 대학생을 동원하는 건 덤. 물론 북한은 3대혁명소조운동 등에서 대학생을 대대적으로 동원한 바도 있었고, 앞서 말했듯 군인 동원은 이미 이념적으로 뒷받침될 정도라는 점은 주지해둔다. 애초에 김정일도 대학 시절부터 학생 동원 운동을 주도하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11] 멀리서 찍은 사진을 봐도 아예 위층과 아래층의 기둥 위치(…)와 굵기(…)가 다를 정도다.[12] 애시당초 자재가 부족하다고 철근 대신 '''각목'''을 넣어서 만들기도 많이 한 아파트들이다. 콘크리트에 각목을 넣다니, 단층집을 만들어도 위험할 판에 수 층짜리 아파트를 만들었으니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건 전혀 없다.[13] 그나마 김정은에게 다행인 점이라면, '''북한이 극단적인 독재 체제인 탓에 김정은을 몰아내는 것 자체가 대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 따라서 김정은이 무력화되더라도, 소위 '백두혈통'의 상징성 때문에 북한 권력층이 김정은을 몰아내는 것은 60여 년 동안 이미 김씨 가계로 구성된 북한 체제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지워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김정은이 갖는 이 상징성 탓에 어찌되었건 3대 세습이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만, 이게 불행인지 다행인지...[14] 다만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만 보더라도 혼란을 진정시키기 전까지는 누가 총대를 매던지 간에 어느 정도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더 갈 데가 없을 정도의 과통제 상태이다.[15] 인민들이 아무리 배를 곯고 있어도 매년 신년사설에서 강성대국을 열겠다고 외쳤던 것과는 상이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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