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1. 일반적인 의미
2. 기독교의 회개(Repentance)
2.1. 성령훼방죄(성령 모독죄)
2.2. 가톨릭에서의 회개
2.3. 잘못된 회개
3. 관련 문서


1. 일반적인 의미


'''悔改'''
잘못을 뉘우치고 고친다는 뜻.
옛날에 저지른 잘못을 뉘우친 사람이, 그 잘못을 고치고 되풀이 하지 않으려고 힘을 쓰는 것을 가리키는 말. 불교에서는 '''참회''' 등으로 표현한다. 철자 때문인지 회계와 자주 헷갈리는데, '회계'는 돈계산이라는 뜻이다.

2. 기독교의 회개(Repentance)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마태복음 3장 2절 (개역개정)

기독교에서는 '회개'를 인간의 '외적 행동 변화'가 아니라, '내적 변화'를 나타내는 것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기독교를 믿지 않던 사람이 기독교를 믿게 되는 것도 회개(또는 회심)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주요한 사상 중 하나로 회개를 통해 인간은 를 사함 받는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십자가 희생으로 자신이 죄에서 자유로워졌음을 믿고, 다시는 믿기 전의 나쁜 행실이나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하나님 앞에 결심함에 의해서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죄라는 회개의 대상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용서 받는 것이다. [1]

2.1. 성령훼방죄(성령 모독죄)


성경과 기독교 종파들에서 규정하는 특이한 죄의 경우가 있다. 성경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규정되는 '성령 훼방죄(성령 모독죄)'다.

"그러므로 잘 들어라.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짓거나 모독하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다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거슬러 모독한 죄만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또 사람의 아들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12장 31~32절(공동번역)

이 구절에 대해서는 오해가 많은데, 일단 개신교나 가톨릭이나 정교회나 '성령모독죄=아무리 회개해도 한번 지으면 용서 못받는 특정한 죄'로 규정하는 건 아니다. 애초에 하느님의 힘으로 용서할 수 없는 죄는 없다는 것이 교리기 때문.
개신교가톨릭, 정교회에서는 과거부터 성령 모독죄를 6가지 범주로 구분해왔다.
  • 자신의 구원에 대해 절망(체념)함,[2] 또는 지나치게 자만함[3]
  • 알면서도 진리(믿을 교리)를 거스르려는 태도=이단에 빠짐
  • 타인이 받은 은총에 대해서 질투하고 시기함
  • 신앙 안에서의 공로(믿음을 통한 선행, 죄의 청산) 없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
  • 죄에 대한 애착을 끊어버리기 거부하고 죄를 완고하게 고집함
  • 삶을 마칠 때, 회개 없이 죽는 것
이 6가지는 말 그대로 인간의 회개를 위해 작용하는 성령의 도움(은총)을 죄인 쪽에서 거부하고 '''훼방'''하는 태도이기 때문에 이 상태로는 구원받을 수도, 죄의 용서를 받을 수도 없는 위치에 서게 된다. 성령(하느님)께서 용서를 해주려 해도 저 6가지 상태는 인간이 용서를 받을 수가 없는 상태기 때문에 용서를 '''못'''받는 죄인 것이다.
특히 마지막 6번째, 죄인이나 불신자가 회개 없이 죽는 것을 최악의 성령 모독죄로 본다. 다른 5가지는 생략하는 경우가 가끔 있어도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6번째의 회개 없는 죽음은 성령 모독죄의 예시로 반드시 언급한다.
그런데, 이렇게 명확한 교리가 정립되지 않은 몇몇 개신교에서는 목사가 자기 뜻에 따르지 않는다고 성령을 훼방하지 말라고 남용하는 경우도 있어, 개인의 판단 하에 마구 가져다 붙이면 심히 난감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의외로 논리적인 이유로 있는 죄인데, 애초에 구원을 위한 조건에 성령이 관여하는 고로, 성령을 모독, 곧 부인하는 행위를 행함은 전제 조건자체를 파괴하는 행위이므로 용서될 수 없는 것.

2.2. 가톨릭에서의 회개


가톨릭정교회에서는 나약한 인간이 죄에 계속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회개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해야 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를 돕기 위해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자주 받기를 강력히 권고한다.
일단 가톨릭에서, 회개는 두 종류로 나뉜다. 첫번째는 회개의 동기가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 있는 완전한 회개, 즉 하느님의 사랑을 침해한 것에 대해 슬퍼하고 죄를 끊으려 하는 상등통회가 있고, 두번째로는 단순히 하느님이 두려워서, 벌받는 것이 무서워서하는 불완전한 회개, 일명 하등통회가 있다. 신자가 합당하게 이루어지는 고해성사를 보려면 최소한 하등통회의 정신은 갖추고 고해실로 들어가거나 사제를 만나야 한다. 그렇지 않고 주저리주저리 죄만 고해실에서 떠들고 뉘우치는 감정도 없이 고해성사를 한다면 그것은 모고해라고 해서 다시 참회하는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봐야하는 큰 대죄가 된다. 즉, 고해성사를 인정하는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도 진정한 마음이 아닌 입으로만 나불대는 회개는 엄격하게 죄악으로 금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자기의 죄를 절실히 뉘우치고, 거기다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모독한 것까지 슬퍼하는 회개(상등통회) 만으로도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그래서 대죄[4](중죄)를 지은 사람이 고해성사를 보고 죽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천국에 가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본다. 왜냐면 그 사람이 절실하게 완전한 회개를 했을지는 그 사람과 하느님밖에 모르기 때문.
자신의 죄악이 '''대죄'''라면 완전한 마음으로 회개한 후라도 고해성사는 나중에라도 필수적으로 보아야 한다. 자신이 모르고 지은 죄, 그리고 대죄보다는 가벼운 일상에서의 여러 잘못들인 '''소죄'''는 고해성사로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고해성사 없이 하나하나 진실로 뉘우치는 마음으로 미사에서 고백기도를 같이 바치고, 영성체를 해도 용서받긴 한다. 물론 보속은 알아서 열심히 기도와 선행으로 해야겠지만.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통회로는 그 후의 삶이 바뀌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성사를 통해 죄에서 벗어나 변화될 수 있는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2.3. 잘못된 회개


구원파 같은 이단에서는 신도들을 자신의 입맛대로 부려먹기 위해 회개를 왜곡하여 극단적인 교리를 만들기도 하는데, 구원받은 자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죄를 지어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신약성경의 한 줄, 사도 바울(파울로스)이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논파된다.[5] 이 말은 그리스어 원문엔 현재 미완료 시제로 나와 있다. 신약성경의 핵심 인물인 사도 바울(파울로스)이 자기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사도 바울(파울로스)이 구원받지 못했다고 말할 신도는 없을 것이다.
회개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회개만 하면 모든 죄가 사해진다 생각하며 말로만 회개를 하고, 막상 실제로는 악랄하며 양심을 저버린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회개를 빌미로 양심의 가책을 모두 내려놓고 태연하게 악행을 반복하거나, 피해자를 모욕하는 짓을 저지른다.
하지만 자기 입으로 회개했으니 모든 죄가 용서받았다고 '''선언'''해 버리는 것은 일종의 정신승리이자 스스로 심판자, 즉 신의 위치에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대표적으로 고문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이근안이나, 죄는 씻을 수 있습니다 사건이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근안은 2012년에 목사안수가 취소되었으며, 죄는 씻을 수 있습니다 사건 같은 것은 교단에서 '''제대로 된 신앙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전도연송강호가 주연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영화)>에서도 이러한 방식의 잘못된 회개로 인해 초래되는 비극을 잘 묘사하고 있다.
기독교 중에서 특히 개신교에서 잘못된 회개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회개를 강조하며 주기적으로 고해성사를 하게 만드는 천주교는 신부가 고해성사를 들어주며 어떤 방식으로 회개해야할지 길잡이가 되어주지만 개신교에서는 자율적으로 개인의 양심에 따라 회개를 하며 교회에서는 신도들에게 회개보다는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구원론(+왜곡된 이신칭의 신앙관)에 집중을 하기 때문에 잘못된 회개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는 이런 입만으로 하는 회개는 죄라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회개는 다시는 이런 죄를 짓지 않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회개한 죄를 다시 저지르면 하나님과의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회개라는 한자어의 뜻부터가 뉘우칠 회, 고칠 개다. 즉,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 죄를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까지가 회개인 것이다.
당장 성경 내의 인물들의 회개하는 모습을 보면 겉옷을 찢고 흙더미에서 뒹굴거나 잿가루를 뒤집어 쓰고 몇 십일을 금식하며 눈물로 회개하는 모습이 쉴 새 없이 나온다. 그리고 진실된 회개를 한 인물들이 어떤 행동을 보였는지 보자. 세리 삭개오(자캐오)는 예수를 만나 회개한 후 세금을 부당하게 걷어서 모은 재물을 피해자들에게 4배로 변상했다. 사도 바울(파울로스)는 바리세인 출신으로 기독교인들을 탄압하는데 어느 누구보다 앞장섰던 인물이지만 이에 대해 회개하고 나서는 본인이 사형당할 때 까지 기독교인들의 편에 서서 전도했다.

3. 관련 문서



[1] 이신칭의 참조.[2] 예시로, "하느님에게 나는 절대 용서 못받을거야"라는 생각으로 낙담해서 죄에서 벗어날 생각을 안하는 사람을 들 수 있겠다.[3] 예시로는 "내가 하느님을 믿고 독실히 사니 나는 무조건 구원받을것이다. 따라서 내멋대로 살아도 되겠지" 하면서 죄를 짓는 생활을 지속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부분에 저촉되는 대표적 예가 구원파. 토마스 아퀴나스도 본인 저서에서 이를 성령모독죄의 대표적 예시들로 설명했다.[4] 보통 죄를 분명히 알고있으면서, 악한 자유의지로 지으며, 십계명을 거스르는 죄들(살인, 도둑질, 지나친 탐욕, 강도질, 간음이나 혼전성관계 및 동성애, 수음, 냉담 및 주일미사를 소홀히 하고 참여안함, 신성모독과 배교 등등.[5] 매우 의미심장한 구절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뭐라 묻거든, 죄인이라 하라는 것이다. 기독교인임을 벼슬삼지 말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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