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정제
[clearfix]
1. 개요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동위(東魏)의 유일한 황제.[1] 휘는 선견(善見).
북위의 황제 효문제의 4대손이며 조부는 원역(元懌)[2] , 아버지는 원역의 아들 원단(元亶)[3] 이다.
2. 북위의 동서 분열
황제 효무제가 장안의 우문태에게로 달아나자, 고환은 새로운 황제로 원선견을 옹립하고, 534년 수도를 업(鄴)으로 옮겼다. 이는 고환이 황제를 자기 영향권 안에 두려는 생각이었고,이로 인해서 북위는 동서로 분열하게 되었다. 역사서에는 이 두 나라들을 동위, 서위(西魏)라고 부른다.
같은 해 우문태와 효무제는 서로 사이가 나빠져 우문태는 효무제를 살해하고는 새로운 황제로 문제(文帝)를 즉위시켰다.
3. 꼭두각시 황제
효정제 자신은 시와 부를 읊고 돌사자를 들고 담장을 넘는 등 문무겸비한 황제였으나 현실은 고환의 전횡이 계속되면서 동위의 정권은 모두 고씨들의 손안에 있었고 효정제는 고씨 일족의 꼭두각시 황제에 불과했다.
그나마 고환은 효무제의 도망으로 '''협천자 영제후'''[4] 를 할 유리할 조건을 놓친 경험이 있어서 겉으로나마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아뢰고, 감히 권력을 독점하지 않았으며 연회에서는 부복을 하고 축수를 했다. 효정제가 법회를 열고 수레를 타고 향불을 피우면서 가면 고환은 향로를 받쳐들고 도보로 그의 뒤를 따르니 고환의 부하들 역시 공손하여 효정제에게 황제로서의 기본 예의를 갖추었다.
하지만 547년, 고환이 죽고 그 뒤를 이은 장남 고징은 오만무례하여 아예 대놓고 어리석은 자로 칭할 만큼 효정제를 무시했다.
효정제는 급기야 일거수일투족을 완전히 제약당하여 고징은 효정제가 효무제처럼 달아날까봐 겁이 나서 감시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걸 고징의 심복이 목격하자 심복에게 '''대장군(고징)께서 말을 타시지 말랍니다'''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고징은 연회에서 효정제에게 술을 따르는 것도 군신 간의 예의가 없었는데 이에 화가 난 효정제는 '예로부터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었는데 짐이 어찌 이렇게 삶을 도모한단 말인가!'라고 했다. 그런데 고징에게 황제로서는 당연한 호칭인 짐이라고 했더니 고징은 '''짐? 짐은 무슨 놈의 개대가리 같은 짐이야! 개나 줘버릴 짐 같으니!'''라는 치욕적인 말을 들었다.(...) 즉, '''너 따위가 무슨 황제냐?'''라고 신하인 공경대부 앞에서 엄청난 개망신을 당한 것이다. 거기에 고징이 중서 황문랑 최수서에게 주먹으로 세 차례나 '''구타'''(!)를 하도록 명하니 그대로 당했으나, 오히려 그에게 금과 비단을 내려 '''사과해야 했다.'''(...)
효정제는 시강 순제, 사부낭중 원근, 화산왕 원대기 등과 모의하여 몰래 고징을 죽이려 했지만 세력이 부족하여 결국 발각되었다. 이에 고징이 군대를 이끌고 입궁하면서 '''폐하께서 어찌하여 반역을 생각하십니까?'''라고 따졌다. 이에 효정제는 정색을 하며 ''예로부터 신하가 군주를 배반한다는 말은 있으나, 군주가 신하를 배반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자신이 반역을 꾀하면서 어찌 짐을 책망하는가?''라고 꾸짖었다. 이에 고징은 탁자에서 내려와 머리를 조아리며 대성통곡하면서 사죄 하였다. 그러나 사흘 후, 효정제는 고징에 의해 함장당에 연금되었다.
때마침 음식 나르는 노비 난경[5] 에게 고징이 암살당하며, 효정제가 드디어 황제 노릇을 해보나 싶었는데, 고환의 차남 고양이 권력을 빠르게 장악하고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효정제는 결국 고양에게 선양을 해서 목숨이라도 건지려고 했고 고양은 550년 효정제로부터 선양을 받아서 동위를 멸망시키고 북제(北齊)를 건국했다.
4. 선양 이후
선양 이후에 효정제는 중산왕(中山王)으로 책봉되었으나, 얼마가지 못하고 고양에게 짐새의 독으로 독살당했다. 그는 일단 황제의 예로 업성 북쪽에 매장되었으나, 얼마 안 되어서 고양이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장수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동위의 원씨 황족 700명도 함께 고양에게 몰살당하며, 안습한 최후를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