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경

 

休耕 / Fallow
1. 개요
2. 목적
3. 역사
3.1. 서유럽
4. 휴경이 필요 없었던 지역
5. 작물에 따른 지력 소모
5.1. 영양 소모
5.2. 토양 독성
6. 매체에서


1. 개요


농사를 지을 때 지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 해 농사를 쉬는 것. 그러한 땅을 휴경지(休耕地, fallow land) 혹은 휴한지(休閑地)라고 한다.
휴경을 하면서 아예 농사를 쉬는 일은 드물고 대개는 땅을 나눠서 돌아가면서 농사를 짓는데 이를 윤작(輪作, 돌려짓기, crop rotation)이라고 한다. 윤작 가운데 제일 유명한 게 아래 4윤작법이고, '윤작'의 뜻풀이가 '돌려짓기'이다 보니 '윤작'이면 무조건 휴경지 없이 돌아가면서 경작을 하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는데 그렇지는 않고 이포제, 삼포제 등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영어 'fallow'는 'follow'(따라가다)와 철자가 비슷한 데다가 미국식 발음도 [ˈfɑːloʊ]라서 'fallow'라고 오타를 내는 경우가 많다. 영어 학습 때 'fallow' 같은 단어는 어지간해서 쓸 일이 없으니 네이버 검색에서 나오는 'fallow'는 대부분 'follow'의 오타이다.

2. 목적


휴경이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토양의 각종 영양물질의 보충속도가 소모속도를 못 따라가는 것. 특히 질소의 경우 삼중질소를 이중질소로 토양에 고정시키는 확실한 자연적 수단이 '''번개''' 밖에 없다.[1] 그 외의 경우에는 강 상류에서 각종 낙엽들이 푸-욱 발효(?)된 덩어리가 흘러내려오는 정도.
이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토양 독성 증가'''도 있다. 많은 식물이 알칼로이드 계 독성 물질등 각종 물질을 뿜어내는데, 이게 쌓이면 심은 작물이 자기 독성을 못 이겨서 죽는(...) 상황이 벌어진다. 또한 토양의 비옥도는 높으나 물이 부족하여 관개수로를 이용하는 경우, 강우 등의 자연적 기상현상으로는 토양에 쌓이는 각종 염류를 정리하지 못해 토양 독성이 급격히 증가하게되며, 나중에는 아예 소듐이 가득한 소금똥땅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질소가 부족했던 과거에는 토양 비옥도 회복을 위하여 휴경이 강제적으로 필요하였고, 지금도 염해 방지와 토양 독성 억제를 위해서 휴경, 혹은 이를 대체할 다양한 기술적 수단이 필요하다.
이러한 휴경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토양 독성이 빠지고 비옥도가 회복되는 동안 지력 소모가 덜한 류의 작물을 소량 재배하며 소소한 농사를 지으며 버티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재배하지 않고 방치해놓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간작(間作, intercropping) 이라고도 한다.
당연하지만 제아무리 콩이라고 해도 질소를 소모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이중질소 자체가 필요없는 기적의 똥땅 최적화 작물 감자 같은 것도 토양 독성화는 답이 없기 때문에,[2] 간작 보다는 농사 자체를 폐하여 땅 자체를 일정기간 푹 쉬게 해주는 휴경의 효과가 더 좋다. 어쨌든 간에 증가한 토양 독성은 강우 등으로 토양의 각종 물질들이 정리되어야 해결되기 때문이다.
또 휴경이 필요한 중요한 이유는 병충해 감소에 있다. 같은 토지에 매년 같은 작물을 연속 재배하면 그 작물에 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나 해충 등이 그 토지에 계속 월동을 해서 다음 해 농사에 큰 피해를 미치는데 휴경을 하거나 다른 종류의 작물을 심는 윤작을 하면 이런 농 병충해 피해를 감소시킬 수 있다. 농약이 없던 과거에는 이것은 매우 중요하였고 현대에도 봄에 논두렁을 태우거나 하는 것은 이런 월동하는 병원체나 해충의 구제목적이 있다. 지금도 소규모 텃밭이라도 비료와 농약을 쓰지않고 농업을 해보면 생산량을 좌우하는 건 비료가 아니라 병충해 방제이다.
비슷한 이유로 했던 것으로 농사와 농사를 번갈아 바꾸면서 하는 답전윤환(畓田輪換)도 있다. 이것도 토양 질을 최대한 보전하면서도 땅을 쓸데없이 놀게 하지는 않기 위해서 고민했던 선조들의 아이디어였다.

3. 역사


퇴비나 화학비료가 대중화되기 전까지 휴경은 농사에 있어서 필수였다.[3]
휴경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고대에 농업이 처음 시작된 이래, 농부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경험적으로 한 땅에 계속해서 농사를 지으면 지력이 쇠하여 작물이 점점 잘 자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를 막기 위해 여러가지로 노력한 결과 땅을 쉬게 하거나(휴경), 아니면 다른 작물을 키워 지력을 복구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휴경은 땅 자체를 말 그대로 놀리는 것이기에 쉬는 동안에는 아예 작물수확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렇게 휴경지가 필요한 농사법은 장원제의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휴경지를 줄이려는 노력이 지속되어왔다.
오늘날에도 비료만으로는 회복할 수 없는 지력도 있다거나, 땅이 거칠어진다거나 하여 휴경의 필요성이 언급되기도 한다. 보통 이럴 땐 땅을 갈아엎어 그 위에 다른 흙을 깐다.

3.1. 서유럽


중세시대 초기 유럽에서는 1/2씩 휴경을 하다가 , 샤를마뉴 시대인 9세기부터 1/3으로 나눠서 한쪽에는 봄에 농사를 짓고(춘경지) 한쪽에는 가을에 농사를 짓는(추경지) 2모작을 하여 휴경지를 1/3로 줄였다. 이를 삼포제(三圃制, three-field system), 혹은 삼포식 농업이라고 한다.
이후 16세기에 초에 플랑드르 지방에서 개발된 4윤작법(four-field crop rotation)은 보리와 클로버, 밀, 순무를 순서대로 돌려지어 휴경지를 없애는 데 성공하였다.# 이 혁신은 농노제에서 지주-소작의 방식으로 유럽 농업의 체제를 바꾸는 데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이후 썩은 식물이나 발효된 배설물로 만든 거름과 녹색식물의 잎과 줄기를 그대로 땅에 묻는 녹비가 등장하였고, 산업혁명 시대에 화학 기술이 발달하면서부터는 아예 땅에 이로운 성분을 모아 만든 화학비료를 땅에 주는 방식이 대중화되어 근현대에 들면서 식량생산량이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4. 휴경이 필요 없었던 지역


고대 이집트나일강이 주기적으로 범람하여 경작지의 토양독소를 씻어주는 동시에 소모된 유기질을 보충하여 주었으므로 휴경없는 밀농사가 가능했다. 다만 이집트도 나일강의 수위가 크게 범람할 정도로 오르지 않으면 흉년을 피할 수 없었는데, 로마인들이 몰려와서 자기들의 종특인 토목기술을 써서 수도/관개시설을 사방에 지어대면서 나일강의 수위가 낮아도 물을 퍼내어서 지력을 보충할 수 있게 되어 고대 지중해 세계 전체의 곡물 수요를 충당하는 세계구급 곡창지대로 거듭나게 된다. 뭐 아스완 댐이 생긴 지금은 옛 이야기지만. 정확히 말하면 2번째 댐을 세운 이후로. 이때부터 모기를 비롯한 해충들도 번성하면서 망했어요가 돼버렸다.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등 몬순 지대에도 휴경이란 개념 자체가 드물다. 기온이 높고 연간 강우량이 많기 때문에 토양독소가 쌓일 틈이 없어서 이기작조차도 가능하니까. 다만 밭농사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고, 비 때문에 토양 내 영양소도 많이 씻겨 내려가기 때문에 논농사의 효율도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애초에 이기작을 하는 이유 자체가 1사이클 당 생산성이 낮아서 그렇다.
한국의 경우 이앙법 보급 이후 휴경지가 거의 없어졌다. 지금은 농사 이외의 목적이 없는 이상 휴경지인 경우는 거의 없다. 땅 투기 목적임에도 농사 지으려 한다며 세금을 회피하려는 자들이 있어서 부동산 관련 법에 종종 언급된다.
페르시아 만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도 장기간에 걸쳐 퇴적된 흙의 영양소 덕분에 휴경 없이도 풍족한 농사가 가능했지만 사람들이 계속 농사를 지으면서 결국 지력이 쇠해버렸다.

5. 작물에 따른 지력 소모



5.1. 영양 소모


밀 농사를 주로 짓는 서안 해양성 기후지중해성 기후대는 온도가 높은 여름에 건기가 되는 특성상 땅이 빨리 메마르고 동시에 염류나 독성이 쌓이기 매우 쉬웠다. 게다가 밀 자체가 지력을 엄청나게 소모했기 때문에 땅을 놀리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 문제를 극복하고자 휴경 대신 순무토끼풀로 지력 고갈을 해결하는 노포크(Norfolk)식 4윤작법이 개발되기도 했으나 여전히 지력 고갈을 막는데는 역부족이었다. 서양에서 지력 고갈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프리츠 하버 덕이라 봐도 무방하다.
반대로 물을 대는 무은 휴경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 벼라는 작물이 호수저수지에서 퍼온 물에 녹아있는 영양물질을 정말 잘 뽑아 쓰기 때문이다. 덕분에, 인공 질소비료까지 있는 현대 벼 농사에서 지력 부족으로 문제가 생길 일은 없다시피하며, 따라서 벼농사는 비옥도와 상관없이 토양이 물을 잘 가두면서, 한국/일본의 장마철 처럼 주기적으로 독성이 제거되기만 한다면 휴경이 아예 필요하지 않다.[4] 이 때문에 고려인들이 똥땅의 대표격인 스텝 지역에서 벼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과거 논에 윤작으로 콩이나 자운영을 심곤 했으나, 이것은 놀리는 땅 없이 땅을 고루고루 사용하기 위함이었으며, 콩은 조금이라도 수익을 더 뽑기 위해, 자운영의 경우 주요 밀원 식물이기에 양봉을 위해 같이 심었던 것으로, 요즘은 논두렁에 심심해서 콩 조금 심는게 전부다.
영양을 소모하는 작물 중 대표적인 것은 옥수수가 있다. 이것은 옥수수가 C4 식물이기 때문에 생존력이 좋고 면적 대비 열량도 많이 뽑아주는 대신, 토양의 각종 영양물질도 있는대로 끌어다 쓰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땅콩의 경우에는 뿌리 혹 박테리아가 있는 콩과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질소를 있는대로 쭙쭙 빨아먹어서 토양 황폐화에 큰 기여를 하며, 물만 잘 묶는 토양이면 잘 자라는 벼와 달리, 물도 양분도 있는대로 퍼먹는 토란도 지력 퍼먹는 괴물이다.
댐 건축의 남발과, 단순히 홍수 억제에만 집중한 강변 정비로 인해 범람을 통한 영양물질 공급이 줄어들어 토양이 황폐화되기 시작한 나일강 주변 농업지대가 대표적인 영양 부족으로 인한 지력 감소의 예시. 하구쪽은 염해까지 발생하고 있다.[5]

5.2. 토양 독성


작물 중에 인삼담배는 지력 파괴자로 악명 높으며, 오죽하면 한번 인삼을 심은 땅은 다시는 인삼을 못 심는다거나, 휴경 기간이 3년을 넘어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인대[6], 실제로 9년삼 인삼 한번 재배하면 다음 20년간은 그 땅에서 재배한 인삼의 품질을 보장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산양삼은 애초에 지력 끝판왕인 부엽토에서 재배하는 것이고.
담배 역시 지력을 많이 소비하기로 유명하다. 미국 초창기 이주인들이 점점 원주민들의 영역을 침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지속된 담배 농사로 인해 토양이 황폐화되었기 때문이었다.[7] 그래서 인삼은 오늘날에도 흙갈이도 해가면서 삼포제로 지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인삼과 담배는 질소를 쭙쭙 빨아먹는 형태의 지력 파괴 작물이 아니라, '''토양 독성'''을 엄청나게 증가시키는 독성작물(!)이기 때문에 지력소모가 심한 것으로, 엄밀히는 지력 자체가 빨려나가는게 아니라 지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놓는 류의 작물이다. 인삼 자체가 약용 식물이라는 점을 역으로 돌려보면 독성식물(?)이니 인삼을 4년만 키워도 그 땅은 초토화가 되어버리고, 6년을 넘기려하면 인삼이 독성을 못 견디고 썩어버리는 것이다. 하물며 9년을 버틸 수 있을리가 없다. 한편, 담배의 경우는 아예 대놓고 맹독초(!) 이기 때문에 한국/일본 처럼 장마철에 폭우로 독성물질이 쓸려 내려가도 감당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토양 독성의 예시로 커피가 있다. 낙엽에서 카페인이 용출되어 카페인 독성으로 토양이 오염되어 커피 나무가 사실상 자살(...)하게 되기 때문이다. 좀더 친숙한 예시로는 고추냉이 (진짜 와사비와 와사비가 아닌 고추냉이 모두)가 있다. 고추냉이가 너무 크게 자라면 다닥다닥 붙어있는 커다란 고추냉이들이 뿜어내는 독성을 자기가 못 견디고 죽어버린다.
이런 토양 독성 문제는 토질보다도 중요한 문제거리로, 과거 비옥한 초승달로 유명했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토양 독성 증가와 염해를 견디지 못하고 초토화되었으며[8], 북아프리카의 경우 고대 로마 시절에는 숲까지 있던 지역이었으나, 지속적인 관개수로에 의존한 농업으로 인해 토양 독성이 증가하고 염해가 발생하여 사막이 되어버렸다. (로마 붕괴 이후 토지 관리 기술이 저하된 것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
CAM 식물의 경우는 워낙 황폐한 환경에 최적화 되어있다보니, 비옥한 토양이 CAM 식물에겐 되려 독성 토양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이래서 선인장은 비료도 물도 찔끔 찔끔 줘가며 키워야한다.)

6. 매체에서


늑대와 향신료에서도 이와 비슷한게 언급된다. 현랑 호로는 지력의 유지를 위해 흉년을 들게 할 필요가 있었는데도 마을 사람들이 호로 탓만 했고, 농업기술이 발달하면서 자신이 필요 없어졌다 생각해 마을을 떠났다. 하지만 그 농법은 가끔씩 대기근을 불러들일 수 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늑대와 향신료/고증 항목 참조.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9]라이즈 오브 네이션즈에서는 농경 관련 건물에서 '윤작' 연구를 하면 식량 생산력이 늘어난다. 게임 시스템상으로 휴경을 표현하는 건 아니고 연구 이름으로 역사를 표현한 사례. 게임상 업그레이드라서 역사와는 달리 어업 생산량이 늘어나기도 한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수확하고서 빈 땅이 되는데 그 상태로 휴경(?)할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오래 휴경하면 농장 자체가 사라져버린다. 참고로 동남아 문명[10]은 모두 윤작 연구가 지원되고 반대로 동아시아 문명[11]은 모두 윤작 연구를 할 수 없다.
배틀렐름에서는 벼를 한참 채취하면 벼가 고갈돼서 다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물을 부으면 더 빨리 자라는 식. 물을 부으면 되는 거라서 휴경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아무튼 어느 정도 쉬어줘야 한다는 점이 비슷하다.

[1] 그래서 번개의 신은 농업의 신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토르가 대표적.[2] 감자의 솔라닌도 알칼로이드 물질이다.[3] 지금도 작물에 따라서는 휴경이 필요하다. 인삼이 대표적.[4] 여름에 폭우가 내리면서 토양의 염류라는 염류는 싸그리 씻겨 내려가기 때문에 토양이 매우 산성임과 함께 황폐하나, 대신 모조리 싹 씻겨 내려가다보니 토양 독성도 안 쌓인다. 예외는 바닷물 역류로 염해가 생기는 바다와 인접한 강 하구쪽 지역 정도?[5] 그래도 워낙 비옥했던 땅이어서인지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여전히 농사가 잘 되긴 한다. 강가라서 역류로 인한 염해만 아니면 염분 정리도 그나마 잘 되는 편이다.[6] 실제로는 10년 이상 휴경하기도 한다.[7] 한편으로는 그래서인지 타탕카 이요탕카는 "얼굴 흰 사람들은 땅이 힘을 잃었는데도 계속해서 약을 뿌리며 생산을 강요한다. '''이 얼마나 벌 받아 마땅한 행위인가'''" 라고 비판했다.[8] 이 때문에 최근 비가 많이 내리면서 토양 독성이 완화된 이라크의 경우 갑자기 사막이었던 땅에서 잡초가 무성하게 번창하기 시작하고 있다고.[9] 말 목장비 > 큰 쟁기 > 윤작 순.[10] 버마, 크메르, 베트남, 말레이[11] 한국, 몽골, 중국,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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