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

 

나일강 / النيل (앗-닐) / Nile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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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길이
3. 역사
4. 인근 국가 관계
4.1. 아스완 댐 문제
4.2.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 문제
5. 그 외


1. 소개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 등 여러 나라에 걸쳐 위치한 거대한 강.
아프리카 대륙을 반쯤 종단하고 있으며, 백나일강부룬디의 산악 지대에서 발원해 르완다탄자니아 서북부를 거쳐 빅토리아 호로 흘러들고, 우간다남수단에 이른다. 청나일강에티오피아 고원에서 발원하는데, 이 두 지류가 수단 공화국의 수도 하르툼에서 합쳐지며, 이후 사하라 사막을 지나 이집트를 지나고 최종적으로 지중해로 흘러나간다. 유역 면적은 3,400,000km².

2. 길이


일반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긴 으로 여겨지고 있다. 길이는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약 6,650km이다. 대개 어린이용 과학 서적에 나오는 내용은 1위가 나일 강, 2위가 미시시피 강, 3위가 아마존 강으로 나온다.
다만 미시시피강의 경우 본류인 미시시피강 자체는 2위는커녕 10위권 안에 드네마네 하는 수준이고, 지류인 미주리 강의 발원지인 로키 산맥의 분수령[1]에서 뉴올리언스의 삼각주까지 잰 거리이다. 그래서 요즘은 아마존 강을 세계 2위로 쳐주기도 하는 듯. 참고로 아마존 강은 여러 조사 기록의 평균이 6,296km인데, 최대 가장 긴 기록은 2008년 브라질 국가지리통계국(IBGE)의 위성사진 촬영에 의하면 나일강은 6,853km고, 아마존 강은 그보다 139km가 더 긴 6,992km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아마존 강은 정글 지대이다 보니 수원을 명확하기 짚기 어렵다는 점이 반영된 듯하다. 다만 본류의 길이에서 논란이 벌어지고는 있지만 유량이나 지류의 총길이, 유역 면적까지 포함시키면 강이 훨씬 복합적으로 형성된 아마존 강이 훨씬 거대한 강이다. 이쪽은 애초에 순상지 사이의 해협이 강이 된 것이니...
아무튼 아마존 강과 사소한 차이 때문에 서로 엎치락 뒤치락 하긴 하지만, '''아주 긴 강'''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3. 역사


이름인 '나일'은 '강'이라는 뜻의 고대 셈어 나헬(nahal)에서 온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역시 히브리어로 강을 뜻하는 나할 'nachal'(히브리어 'נח"ל‎')의 어원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어로는 나일강을 이테루(jtrw)[2]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냥 '강'이라는 뜻이었다. 고대 이집트 인들에게는 나일강이 아는 강의 전부였으므로. 이후 이 단어는 크다는 뜻의 '아(ꜥꜣ)[3]'가 붙은 이테루-아(jtrw-ꜥꜣ)의 형태로도 쓰이다가 이것이 콥트어에서 이아로(ⲓⲁⲣⲟ)로 변형되었는데, 나일강의 경우에는 남성형 정관사 "프"가 붙어 피아로(ⲡⲓⲁⲣⲟ/ⲫⲓⲁⲣⲟ. "The River")라고 불렸다.[4]
나일강은 일반적인 다른 강에서는 찾기 힘든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정기적으로 범람'''한다는 것이다. 강이 가끔 범람한다는 것이야 비가 많이 오면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나일강은 '정기적'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범람의 이유는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의 계절성 폭우 때문인데, 봄철에 에티오피아에 폭우가 내리면 5월경부터 청나일강 상류에 홍수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 홍수는 6월에 수단 하르툼에 도달하고 9월 아스완, 10월 카이로에 도달한다. 11월이 되면 수위가 낮아지면서 갈수기에 접어드는데 갈수기의 수량은 홍수기의 60분의 1에 불과하다.
이런 범람은 영양소가 풍부한 부엽토, 부식토를 하류 이집트에 가득 옮겨주고, 홍수에 잠겼다가 드러난 땅은 지력이 매우 높아진다.(강바닥의 진흙은 영양이 풍부해서 조선시대엔 이를 퍼내서 밭에 뿌리기도 했다. 나일 범람은 그런 천연비료를 생으로 퍼붓는 것이나 마찬가지.)나일강의 범람시기는 인간이 확실하게 예측이 가능하므로 사람이 사는 곳은 물이 많아져도 닿지 않는 쪽에 만들고, 강물이 늘었다가 다시 줄어들면 잠겼던 땅에 농사를 지으면 작물이 쑥쑥 잘 자라게 된다. 7월에 작물을 수확하면 빈 농지에는 다시 홍수가 내려와서 지력을 보충해준다. 그리고 이런 범람은 다른 이득도 있다. 나일강 유역은 비와 같은 강수량 자체는 적어서 농사를 하려면 물을 끌어다가 쓰는 관개 농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관개 농업을 장기간 행하면 지력 소모뿐만 아니라 토지에 소금이 쌓이는 염해가 발생할 수 있다. 한 때 나일강 유역만큼이나 번성했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현대에는 사막이 된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나일강 유역은 강이 주기적으로 범람하면서 이런 소금을 씻어내는 결과가 나와서 염해를 방지할 수 있었다. 이런 농사짓기 좋은 환경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인 고대 이집트가 발달하게 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투트모세 4세가 군대를 이끌고 최초로 이집트 영역을 벗어나 메소포타미아 지역까지 원정을 했을 때, 메소포타미아에 도착한 이집트인들이 보고 가장 놀란 것은 '''거꾸로 흐르는 이테루'''였다. 남에서 북으로만 흐르는 이테루(강)만 보다보니,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은 비상식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강의 흐름 방향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세계관에서 아주 중요하다. 북쪽이 위쪽으로 표기된 지도에 익숙한 우리 시대 사람들은 상/하 이집트 개념을 북쪽이 상이집트, 남쪽이 하이집트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나일강 상류에 위치한 남쪽이 상이집트, 하류인 북쪽이 하이집트다. 즉, 나일강이 흐르는 방향은 현대의 나침반처럼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지리적 방향의 척도였던 것이다. 심지어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지리적 방향 개념은 상류 방향(남쪽)/하류 방향(북쪽)의 두 방향뿐이었다는 설도 있다. 이는 이집트의 지리적 특성상 강 유역은 농업이 가능한 비옥한 땅이지만, 강에서 조금만 멀어지면 거주가 불가능하고 통과도 극히 곤란한 사막이 시작되니, 지리적 차원에서는 동, 서 방향은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간주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이집트 역사에서는 이집트가 메소포타미아와 중동, 아나톨리아 지역까지 지중해 동부지역과 교류하거나 분쟁을 벌이는 부분이 많아서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 이집트 역사 초기의 수천년간은 실질적으로는 외부와 교류가 없었거나, 그나마의 교류도 역시 나일강 유역을 따라 있는 누비아 지역과의 교류가 많았고, 사막을 건너야 하는(그나마도 거리가 짧은 동쪽 사막이지만) 중동 지방과의 교류는 이미 이집트가 수천년의 역사를 가지게 된 후기에 주로 있었다. 그 전 수천년간은 종종 이민족이나 대상의 접근은 있더라도, 단순히 '외부인'으로만 생각하지, 동, 서쪽 지역을 생활영역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옥한 땅에 폐쇄적인 환경으로 오랜기간 안정적인 문명을 일군것 또한 오늘날까지 많은 유물과 기록을 남긴 요인중 하나라고도 볼 수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집트/역사 문서를 참고하길 바람.
정기적으로 범람하면서 많은 양의 퇴적토를 나일강 하류 연안으로 가지고 왔기에, 농업 생산력이 높아져 고대 이집트 문명을 번영시켰다. 또한 강의 주기적인 범람을 예측할 필요성이 크게 작용하여 이집트 천문학과 역학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주기 예측과 범람으로 인한 토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측량술[5]과 수학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공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나일강의 신인 하피가 인간이 수학을 하게 만들었다고도 한다.[6] 비록 이집트만큼 영향력이 크진 않았지만, 수단과 에티오피아에서도 이른 시기에 문명과 국가가 발흥한 것 역시 (이집트의 영향도 있지만) 나일강의 덕이 컸다.[7]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해 강가에 쌓이는 퇴적토는 굉장히 비옥했으며, 농부들은 범람이 끝난 후 씨앗을 대충 뿌린 후 소와 돼지를 풀어 씨를 밟아 심게 하였다. 게다가 기온마저 원체 따뜻한 지역이다보니 이렇게 대충 심기만 해도 엄청난 양의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일강의 농민들은 사실상 씨를 뿌리고 수확만 하면 되었기에 다른 지역의 농민들에 비해 굉장히 일이 쉬웠으며 수확기까지 시간적 여유가 많았다. 이러한 잉여 기간 동안 농민들은 국가의 각종 건축 사업 등에 참여하여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었으며, 덕분에 이집트는 피라미드를 비롯해 압도적인 규모의 유적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이런 나일강의 중요성은 현대에도 여전해서, 아래에 언급하듯이 이집트는 나일강의 물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여러가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여러 방법으로 농업생산력이 높아진 현대에는, 토지구획을 쓸어버리는 나일강 범람이 마냥 좋다고만은 보기 어려웠다.)현대 이집트의 인구 분포도 거의 대부분이 나일강 유역과 해안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4. 인근 국가 관계


나일강에 대해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나라는 당연히 이집트이고, 수단 또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에티오피아, 남수단, 우간다는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며, 콩고, 르완다, 부룬디, 탄자니아, 케냐 등도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4.1. 아스완 댐 문제


이집트의 아스완 댐은 1889 ~ 1902년 영국에 의해 건설되었고, 증축공사가 1910년, 1942년 두번 더 있었다. 현대적 의미의 댐이 된 것은 1952년 가말 압델 나세르가 교묘한 양팔정책으로 미국영국의 지원을 얻어내면서였다. 하지만 1956년 중동 갈등으로 지원이 철회되고, 1960년 현대적 의미의 댐 건설이 비로소 시작됐으며 11년 뒤인 1970년 7월 21일에 공사가 완공된다. 그리고 1964년부터 수원 저장을 시작해서 1976년 수원 한계량을 채우게 되었다.
아스완 하이 댐과 아스완 로우 댐으로 나뉘는 데, 특히 아스완 하이 댐이 규모가 크다. 길이만 3,830m이며 넓이는 기본구조물로만 980m이다. 중심축의 넓이는 40m, 길이 111m 이다. 최대 11,000m3의 수원이 '''매초''' 내보내질 수 있으며[8] 추가로 5,000m3의 수원 방출구가 있다.
하지만 아스완 댐의 건설로 인해 아부심벨 대신전과 팔레 신전 등의 문화 유적이 물에 잠길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유네스코 등에서 문화재 구출 작업을 펼치기도 했다. 이를 위해 신전은 해체되어 옮긴 뒤 다른 지역에서 재조립되었다.
한편으로 아스완 하이 댐이 지어지자 수량 문제로 다른 나일강 인근 국가와 이집트 사이의 관계가 매우 나빠졌다. 심지어 이집트 대사관이 짱돌로 공격받은 일도 있었을 정도. 나일강은 하류를 관장하는 이집트뿐만 아니라, 청나일강과 백나일강을 놓고 벌어지는 수단, 남수단, 에티오피아 등의 분쟁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남수단에선 백나일강 근처 소유권을 두고 부족갈등이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이집트와 수단 공화국 사이의 국경선은 완전히 닫혀 있다.

4.2.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 문제


나일강은 2개의 큰 블루나일강(청나일)과 화이트나일강(백나일)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2개의 강은 수단 공화국의 수도 하르툼과 최대도시 옴두르만[9]에서 합쳐져서 이집트로 향한다. 나일강의 수원의 75%는 에티오피아 타나호에서 시작되는 블루나일강으로 부터 유입된다. 그런데, 에티오피아는 블루나일강 상류에 거대한 댐을 짓겠다고 발표하고, 2013년 부터 건설을 시작했다. 관련 기사
에티오피아는 이 댐에 거대한 수력발전소를 설치하여, 공업활동의 기반이 되는 전기 확보에 목을 매고자 한다. 6000MW 급의 발전 능력을 목표로 발전소를 건설할 예정이다.[10] 자국에 전기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발전된 전기를 주변국에 수출할 수도 있으니 일거양득의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국책사업이다. 에티오피아는 이 댐을 건설하기 위해서 48억달러(약 5조원)을 투입하였다.
하지만 댐이 완성되면 저수지에 물을 저장하게 위해서, 하류에 수량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 뻔하다. 그래서, 이집트는 결사 반대를 외치며 항의하고 있다. 문제는 수단인데[11], 이 댐에 대해서는 이집트 편이 아니라 에티오피아 편을 들었다. 댐이 완성되면 홍수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에티오피아로부터 전기를 저렴하게 공급받을 수도 있기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수단 외의 다른 주변국가와도 이미 협력관계를 맺어 놓은 상태이다.
여튼 이 댐에 얽힌 이해 관계를 풀기 위해서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 3국이 협의를 진행중이지만, 어찌 해결될 지는 두고볼 일이다. 관련 기사
2020년 1월이 돼서야 미국 재무부와 세계은행 총재가 중재한 3국 교섭에서 에티오피아는 댐의 저수량을 우기에 '단계적으로' 늘리고, 가뭄 때에는 물을 방류하기로 약속했다. 발표문에 따르면 3국은 7∼8월에 댐에 발전용 수량을 채우고, 심각한 가뭄이 발생한 경우에 이집트와 수단에 적절한 용수공급 대책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7월에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간 협상이 무위로 끝났다.# 10월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집트가 에티오피아의 나일강 메가 댐을 폭파해버릴 것"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 에티오피아가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2021년 1월 10일에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의 갈등을 중재한 아프리카 연합측에선 협상이 결렬됐다고 밝혔다.# 이후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고 에티오피아에 대한 원조 중단을 더 이상 연계하지 않기로 했다#

5. 그 외


지금은 관개목적과 치수사업을 위한 댐 건설로 인해 범람을 못해서 하류의 비옥한 농토가 조금씩 상황이 악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1년 2작으로 효율 1. 8은 된다. 그러나 강이 자연적으로 배출하던 광물 성분은 사라졌고 되려 소금기가 농작지와 고대 유적들로 스며들어 염해 피해를 야기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지중해 연안 어업은 댐 건설 이후 나일강의 미네랄이 줄어들며 극히 안 좋아졌다. 무엇보다 나일강 농업이 19세기 이집트 인근 면화 사업의 융성으로 주목받게 된 탓에, 댐은 환경이나 농경민의 생활의 고려가 적었던 산업적 차원에서 건설되었다. 그 결과 이집트는 댐에 대해서 별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통은 나일강을 양쯔 강이나 아마존 강처럼 강 폭이 넓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넓은 곳은 약 300m 정도이고 좁은 곳은 약 100m 정도로 매우 좁다. 이는 폭이 넓은 곳은 1km는 되는 상류[12]에서 하류로 흐를 때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비가 그나마 오는 삼각주의 알렉산드리아 지역에 비해 조금 더 상류에 있는 멤피스나 카이로 같은 지역은 비가 거의 오지 않고, 지류 또한 없으니, 강물이 유입될 요소가 없기에 그런 것이다. 따라서 좁기도 좁거니와, 상류로 갈수록 폭도 좁아진다.

[1] 미주리강 탐험대가 넘어간 그 곳 맞다.[2] 현대의 이집트어 표기 관행에 따름. 학계에선 신왕국 전까지는 야트라우/jatɾaw/, 민중이집트어 시기에는 야ㆆ르/jaʔɾ/로 발음했으리라 추정.[3] 원래 아르/ʕaʀ/였다가 민중어 시기 아ㆆ/ʕaʔ/로 발음되었으리라 추정.[4] 비슷한 경우로, 강을 지칭하는 한자 '河'는 본래 황하를 지칭하는 고유 명사였다. 그러다가 낙양 - 장안 지역의 무리한 개발로 토사가 강에 대대적으로 유입된 왕조 이래로 바뀐 강물색을 따라 '황하'로 불리게 되었다. 중국에 다른 강도 많았으므로 이후 '河'가 강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널리 쓰였지만 원조는 황하라는 이야기. 마찬가지로 '江'자도 원래는 장강(양자강)만을 의미했으나 일반적인 강을 지칭하는 말로 의미가 확장된 글자다. 즉 '하', '강' 모두 river이지만 황하를 황강, 양자강을 양자하로 부르는 경우는 없다.[5] 이 범람으로 인해 정적분의 기원이 생겨나기도 했는데, 나일강의 범람은 지력을 공급하는 고마운 존재지만 그 대가(?)로 농지를 '''엉망진창으로 뒤섞어버리기 때문에''' 지주들끼리 병림픽의 장이 되었을 정도이고,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곡선을 간단한 도형으로 근사시키는 측량법이 생겨났다.[6]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즉 나일강이 있었기에 이집트 문명이 발흥할 수 있었다는 얘기.[7] 달력의 1월 1일도 사실은 태양과 시리우스가 같이 뜨는 날로 이날부터 나일강의 범람이 시작되어서 정한 것이라 한다.[8] 서울 청계천의 '''하루''' 수량이 약 4만 세제곱미터이다.[9] 강 하나를 두고 대도시 둘이 만나는 경우는 카이로기자, 킨샤사브라자빌이 있다.[10] 대한민국의 원자력발전소 1기의 발전 능력은 대략 1000MW 급으로, 이런 발전소를 6기 짓는 것과 동등한 발전 능력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11] 수단과 에티오피아는 별로 사이가 좋진 않지만 최근 공통 원수 이집트를 견제하기 위해서 개선되기 시작했다.[12] 청나일, 백나일. 각각 아비시니아 고원과 빅토리아호에서 발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