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무

 


2. 항목 1의 야생종
3. 명나라, 청나라 시기의 지방관직
5. 순무농장의 등장 고양이 윤순무


1. 채소


'''순무
Turnip
'''
[image]
''' ''Brassica rapa'' '''
Linnaeus, 1758
분류
'''계'''
'''식물계'''

속씨식물(Angiosperms)

진정쌍떡잎식물(Eudicots)
'''목'''
십자화목(Brassicales)
'''과'''
배추과(Brassicaceae)
'''속'''
배추속(Brassica)
'''종'''
순무(''B. rapa'')
'''품종'''
* ''B. rapa'' subsp. ''rapa'' ('''순무''')
* ''B. rapa'' subsp. ''pekinensis'' (배추)
* ''B. rapa'' var. ''glabra'' (봄동)
* ''B. rapa'' subsp. ''chinensis'' (청경채)
* ''B. rapa'' subsp. ''parachinensis'' (채심)
* ''B. rapa'' subsp. ''oleifera'' (들겨자)
* ''B. rapa'' subsp. ''perviridis'' (코마츠나)
* ''B. rapa'' var. ''ruvo'' (라피니)
* ''B. rapa'' subsp. ''narinosa'' (다채)
* ''B. rapa'' subsp. ''trilocularis'' (겨자)
'''언어별 명칭'''
한국어
순무
한문
蔓菁(만청)
중국어
芜菁 (wújīng), 蔓菁 (mánjing), 诸葛菜 (zhūgěcài)
일본어
菘(すずな), 蕪(かぶ, かぶら)
영어
Turnip
'십자화목 십자화과 배추속'에 속한 식물로, 이름과 달리 와는 속부터 다르다. 속에서 보다시피 순무는 무보다는 오히려 양배추배추 쪽과 가깝다. 사실 배추와는 가까운 수준이 아니라 품종만 다르지 같은 식물이다.[1][2] 청경채도 마찬가지.
팽이 모양의 둥근 형태이며, 색상은 자주색에 가깝다. 기르기가 매우 쉽고 까다롭지 않은 작물이다로 재배 방법은 무와 비슷하다. 비옥하지 않은 토양에도 비료없이도 잘자라고 좀 추운 기후에도 잘자라고 따로 관개로 물을 대지 않고도 재배할 수 있다. 재배 기간이 짧은 편이고 생산량도 많은지라 동서양 군대에서 식량으로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무에 비해 수분은 좀 더 적고 단맛이 난다. 같은 배추과라서 그런지 배추 뿌리를 깎아 먹으면 순무와 비슷한 맛이 난다.
서양에서는 예로부터 빵과 같이 먹는 반찬 취급이었는데, 워낙 흔해서인지 가난한 자들이 먹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꽁보리밥에 염장국'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궁민의 음식으로 통칭했던 것처럼 '통밀빵에 순무' 였고, 그게 지긋지긋하다며 가난을 한탄하는 문구도 있었다. 독일과 북유럽에서는 이 문서에 서술된 순무 외에 유채(''B. napus'')의 개량종인 루타바가도 주식으로 쓰였다.
주로 가난한 사람이나 농민들이 먹는 맛없고 값싼 음식으로 취급되었고 가뭄이나 서리 등 재해 등으로 흉작이 들거나 식량이 부족할 때 긴급하게 심어먹는 구황식으로 이용되었다. 가난한 러시아의 농민들이 먹는 음식으로도 자주 나온다. 원정 온 군인들이 현지에서 급히 키워먹는 식량이나 포위나 공성전 등으로 식량이 동나면 순무를 갈아서 빵으로 먹기도 했다. 독일 제국 말기 1차대전 말기의 독일에서 대규모 식량 부족으로 3년이나 순무를 먹은 순무의 겨울이 유명하다.
중국 역사상 순무를 가장 유효적절하게 이용한 사람이 삼국시대 촉한의 재상이었던 제갈량(諸葛亮)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제갈량은 순무를 자주 심도록 권장하였고, 전시에 부대를 지휘하다가 조금이라도 장기전으로 돌입할 기세가 보이면 바로 둔전을 실시하여 순무를 심었다. 이 때문에 순무는 제갈채(諸葛菜)라고도 불렸다.#,# 제갈량이 왜 순무를 둔전용 작물로 삼았는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 순무는 성장이 빨라서 금방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다. 현대의 순무의 재배 기간은 토질이나 기후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파종 후 2~3개월이면 수확이 가능하다.
  • 채소가 부족하기 쉬운 식단에 순무만큼 영양을 공급해주는 채소가 드물다.
  • 날로 먹을 수도 있고 익혀서 먹을 수도 있다.[3]
  • 재배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 매우 저렴하여 진영을 옮기게 되어 재배한 것을 버리게 되더라도 아깝지가 않다.
물론 후대의 각색이 적절하게 섞인 이야기겠지만 삼국시대가 지나간 후 전 세계의 수많은 군대가 채소를 못 먹어서 각기병괴혈병에 걸려 지옥행 열차를 타거나 보급도 제대로 못해 아사한 것을 비교해보면 제갈량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뛰어난 혜안을 가진 인물인지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4]
이 때문인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농서인 가사협(賈思勰)의 제민요술(齊民要術)에도 순무 재배법이 수록되었고 후대에도 순무는 군량용으로 적절하다고 평가받았다. 원나라 왕정(王禎)의 농서(農書,1313년)에는 순무에 6가지 장점이 있다고 기록하였다. 첫째, 순무는 싹이 나오면 어린 싹이라도 가히 먹을 수 있다. 둘째, 자람에 따라 그 잎을 따서 삶아 무쳐 먹을 수 있다. 셋째, 오래 두면 스스로 자란다. 넷째, 군대가 이동할 때 버리고 가도 아깝지 않다. 다섯째, 돌아와서 찾기 쉬워 다시 뜯어 먹을 수 있다. 여섯째, 겨울에도 그 뿌리를 먹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서양사에서도 산업혁명의 기반이 된 매우 중요한 작물이다. 중세부터 600년간 이어진 삼포제 농법을 극복하고 4포제 윤작법을 시행할 때 경작된 작물이기 때문. 클로버, 귀리, , 순무는 땅으로부터 각기 다른 영양소를 흡수했기 때문에 연속적인 경작이 가능했고, 휴경지가 없어진 영국의 농업 생산력을 급격히 상승시킬 수 있었다.
동의보감에는 순무는 '여러 가지 채소 중 이롭기만 하고 해로운 것이 전혀 없는 가장 좋은 채소이다. 사철에 다 난다. 봄에는 싹을 먹고, 여름에는 잎을 먹으며, 가을에는 줄기를 먹고, 겨울에는 뿌리를 먹는다. 흉년 때에는 식량을 대신하여 쓴다. 오장을 좋아지게 하고 음식을 소화시키며 기를 내리고 황달을 치료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김치로 해먹으면 정말 맛있다. 강화도는 토양이 좋아 전국에서 가장 질 좋은 순무가 특산물로 유명한데[5] 이 지방에선 순무로 향토음식 순무김치를 만든다. 강화도 출신이었던 철종이 매우 좋아했던 음식이기도 하다. 자세한 건 해당 문서로.[6]
여담이지만 군부대에 술을 보급해야 하던 시절[7] 술병이 깨지는 문제가 발생하자 치킨무를 만들듯이 (사탕무와 함께) 순무를 술에 절여 은박지에 싸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었으나 술을 마시는 게 아닌 씹어먹는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기각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1차, 2차 세계대전 당시, 언제나 전쟁 말기로 갈수록 물자 부족에 허덕이던 독일은 순무를 재배해 장병들에게 순무를 먹였다. 서부전선 이상없다에도 묘사되는 이야기로, 주식인 밀이나 감자가 부족해지자 순무로 빵을 만들었으며, 어차피 맛없는 거 기분이라도 내보려 했는지 순무 커틀릿, 순무 샐러드, 순무 스프 등 순무 종합 선물세트를 만들어 내놓았다. 그런데 순무라도 먹을 수 있던 전방 공무원들과 전방 병사들은 나았던 게, 후방 민간인들과 후방 병사들은 아예 톱밥왕창 넣은 빵을 먹었다고 한다. 이런 물자 부족에 허덕이던 세 차례의 겨울을 일컫는 것이 순무의 겨울.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으로.

2. 항목 1의 야생종


배추, 봄동, 청경채, 채심, 순무, 코마츠나(소송채) 등의 원종이 되는 식물. 이 품종들은 이 식물을 몇 천년간 품종개량해 만들어낸 결과다. 그래서 시골 등에서는 야생에서 자라는 이 식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편. 자연적으로 씨앗이 떨어진 것이 몇 번씩이나 세대를 거듭하다 보니 본래의 식물로 돌아간 것이다.

3. 명나라, 청나라 시기의 지방관직


명·청 시기에 지방을 순시하며 군정(軍政)과 민정(民政)을 감찰하던 대신으로서 '무대(撫臺)', '도독(都督)', '독군(督軍)'라고도 부른다. 순무는 "천하를 순행하고 군민을 위로하고 다스린다(巡行天下, 撫治軍民)"는 의미이다. 조선시대로 치자면 관찰사고 현대로 치면 도지사, 주지사.
명나라는 처음에 도지휘사(都指揮使)·포정사(布政使)·안찰사(按察使) 등을 두어 각각 지방의 군사·행정·감찰 업무를 분담 관할하게 하였다. 그러나 중기부터는 새로이 순무가 설치되어 포정사 등의 위에서 지방장관의 실권을 차지하였다. 이 관직은 명나라 초기인 1391년에는 임시로 설치된 것이었지만, 1421년부터는 정식 관직이 되었다. 명대 말기에는 1(省) 혹은 그 일부를 관할하는 지방관이었다. 명나라 시기에는 순무의 총괄 범위가 1개 성을 넘어서거나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명나라의 순무는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로, 본질적으로 중앙관리이다. 목적은 문신으로 무신을 견제하여 각 성과 각 군진 및 성 내 삼사 사이의 관계를 조화시키고 직권을 통일시켜서 서로 예속하지 못하도록 하고 수평관계의 삼사 사이에 운영이 원할하지 못한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청나라에서는 명나라의 제도를 답습하였으나 몇가지 차이가 있다. 먼저 명나라 시기와는 달리 청나라의 순무는 중앙관리가 아니라 지방장관직이 되었다. 순무는 포정사, 안찰사, 도지휘사사의 상위 관직이 되었으며 대부분 1개 (省)에 해당하는 지역을 총괄하게 되었다. 청나라 때는 순무가 1개 성(省)을 지배하게 되어 1∼3개 성을 관할하는 총독과 함께 황제에 직속되어 독무(督撫)라 불리며 중앙정부의 지휘를 받지 않았으며, 상주권(上奏權)·성례제정권(省例制定權)·문무관 임면권(任免權)·군대절제권(軍隊節制權)·지방 재정감독권·지방 최고재판권 등 그야말로 중세 부중백과 같은 봉건제후와 같은 권한을 가졌다. 이것의 상위호환이 총독(總督).
중화민국 때는 군정과 민정을 갈라 민정을 성장(省長), 군정은 도독, 후에 독군이라고 갈았다.

4. 포켓몬스터 소드 실드의 등장 인물


순무(포켓몬스터) 항목으로.

5. 순무농장의 등장 고양이 윤순무



[1] 교배가 된다는 말이다. 이해가 잘 안 된다면 순무의 둥근 부분을 자르고 길다란 뿌리와 잎을 붙여 보자. 뿌리째 뽑은 배추와 놀랍도록 유사하다.[2] 배추 뿌리를 먹어보면 순무와 맛이 아주 비슷하다. 시골 장터에는 배추 뿌리중 큰것을 모아 파는 사람이 있기도 하며 이걸로 물김치를 담그기도 한다.[3] 소금에 절여서 장기간 보관할 수 있고, 짭짤한 반찬용으로 제격이다.[4] 다만 고대, 중세에는 전선이 비교적 오래 유지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때는 농사를 해도 될 정도의 장기전이 꽤 일어나서 아예 전시에서도 식량조달을 위해 농사를 짓는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근세만 가도 전투의 양상이 작물을 재배할 시간이 주어질 정도로 한곳에 오랫동안 죽치고 싸우는 경우는 드물었고,(극단적인 참호전으로 거의 연단위로 전선을 유지한 1차 세계대전을 뺀다면) 현대에는 주로 기동전 위주의 전투양상을 띄므로 무언가를 재배할 시간이 전혀, 혹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5] 특히 노지 재배한 것이 맛이 좋다고 한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면 그 맛이 안 난다고 한다.[6] 참고로 강화순무의 경우 사실 현재 팔리는건 토종이 아니라 문호가 개방되고 온 서양인들이 강화도에 머물면서 재배하던 루타바가, 터닙 등이랑 교잡되어서 종이 개량된 것이라고 한다. 루타바가 문서로.[7] 과자나 음료수 같은 대체품이 많은 현대에는 실감이 안 나지만, 2차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군대가 술을 사기 진작을 위한 중요 보급품으로 취급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