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주교

 


黒住教
흑주교
1. 개요
2. 창교조 무네타다의 삶
3. 무네타다의 죽음 이후
4. 흑주교의 주요 축일
5. 흑주교의 신앙대상과 교리


1. 개요


쿠로즈미 무네타다(黒住宗忠, 1780-1850)가 세운 일본 신토계의 신종교. 창교조 쿠로즈미 무네타다가 1814년에 겪은 영적 체험에 의지하는, 태양숭배적인 종교이다. 교단의 주요 신격은 아마테라스와 창교조 무테타다이고, 그 외에도 신토에서 말하는 다른 신들도 같이 받든다. 일제시대에는 공인받은 교파신토 13개 종파에 속하기도 했다. 현재 교단 본부는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 키타구(北区) 신토산(神道山)에 있다.
일본에서는 창교조의 성을 그대로 따서 '쿠로즈미쿄'라고 부른다. 흑주교는 한자를 그대로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은 것. 한국인 일문학자들의 글에서는 '흑주교' 또는 '구로즈미교'라고들 쓴다.
  • 본 항목에서 날짜는 음력이라고 명시하지 않았다면 전부 양력이다.
  • 음력 날짜를 쓸 경우, 당시 일본에서 사용한 역법이 기준이다. 동시기 조선에서 사용한 시헌력 날짜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 무네타다의 나이는 세는나이로 한다.

2. 창교조 무네타다의 삶


창교조 쿠로즈미 무네타다(黒住宗忠)는 1780년[1] 12월 21일 동짓날에 (오늘날의)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 키타구(北区) 카미나카노(上中野)에서 아버지 쿠로즈미 무네시게(黒住宗繁)와 어머니 쓰타(つた) 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쿠로즈미 집안은 대대로 아마테라스를 주신으로 받드는 지역 신사 이마무라 궁(今村宮)의 신쇼쿠(神職)[2]를 세습했는데, 무네타다는 3남이었지만 형들이 일찍 요절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되었다.
무네타다는 어릴 때부터 효성스러웠다고 한다. 한편 신사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인지 신앙심이 유별나, 스무 살(1799) 무렵에는 스스로 '살아있는 신령님'(生神)이 되겠다는 뜻을 세웠다고 한다.[3]
스물네 살(1803)에 요시다(吉田) 가문으로부터 신쇼쿠 자격을 받고[4] 이세로 순례여행을 다녀왔다. 무네타다가 언제 결혼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물여덟 살(1807)에 첫 딸을 보았으므로 그 전에 혼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재앙이 닥쳐왔다. 서른세 살(1812) 되는 해에 어머니가 이상한 복통을 앓다 숨을 거두더니만, 1주일도 안 돼 아버지도 그 뒤를 따랐다. 무네타다 자신도 폐결핵에 걸려 점점 건강이 나빠지다가 서른다섯 살(1814) 음력 1월 무렵에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무네타다는 죽기를 각오하고는 매일 아침마다 (과거 부모에게 배웠던 대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경배하고 손을 모아 기도했다. 이러는 과정에서 무네타다는 과거의 잘못들을 반성하고 참회하게 되었다는데, 불과 두 달 만에 병이 나았다.
그해(1814)[5] 12월 22일 동짓날에 무네타다는 습관처럼 일출을 바라보며 기도하다가 아마테라스와 일체가 되는 특별한 영적 체험을 겪었다고 한다. 갑자기 태양이 뚝 떨어지더니 무네타다의 입 속으로 들어가 온 몸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무테타다는 아마테라스와 하나 되는 법열을 느꼈다고 한다. 흑주교에서는 이 체험을 '천명직수(天命直授)'[6]라고 부르며, 교단이 비로소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여긴다. 따라서 동짓날은 교조 무네타다의 생일이자 천명직수를 받은 날이며 또한 교단의 창설일이므로 크게 기린다.
서른일곱 살(1816)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무네타다가 이마무라 궁의 신쇼쿠였으므로, 먼저 신사를 찾아온 사람들을 상대로 가르침을 전했다. 무네타다를 따르는 사람들은 이마무라 궁에 모여 조직을 이루었다. 신사에서는 병을 낫우는 의례, 우리나라식으로 말한다면 '우환굿'을 하였으나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무네타다는 돈을 받지 않고 해주었다. 서른여덟 살(1817)에는 이마무라 궁의 책임자가 무네타다로부터 경내에서 우환굿을 할 수 있는 권리와 오마모리[7]를 나눠줄 권리를 박탈하였다. 신사의 수입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신사가 무네타다의 종교적 주장에 동조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무네타다 또한 이러한 조치에 동의하고, 1843년 장남 무네노부가 자기 자리를 물려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이마무라 궁의 신쇼쿠 자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흔세 살(1822)에 장남 쿠로즈미 무네노부(黒住宗信 1822-1856)를 얻었다. 비록 이마무라 궁에서는 포교를 할 수 없었지만, 1824년까지 무네타다는 추종자 79명을 얻었는데, 주로 지역 영주의 성에서 일하는 무사들과 그 가족들이었다.
또한 이마무라 궁과는 별개로 요시다 가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리하며 무네타다는 비록 마찰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지만 큰 충돌 없이 독자적인 종교적 가르침을 설파하고, 병을 낫우며, 추종자들을 모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죽을 때까지 활발히 활동하여 수만 명에 달하는 신자들을 끌어모았다. 특히 무네타다가 태어나고 자란 생가는 교단의 성지 겸 본부가 되어 흑주교의 중심이 되었다. 무네타다는 자기 가르침이 '신토의 근본(大元)'이라고 주장했으므로, 생가 일대를 사람들은 오모토(大元)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지역 사람들은 오카야마시 카미나카노 일대를 여전히 오모토라고 부른다고...
무네타다는 1850년[8] 4월 7일, 향년 71세(만 69세)에 유명을 달리했다. 흑주교는 무네타다의 죽음을 승천(昇天)이라고 부른다.

3. 무네타다의 죽음 이후


무네타다가 죽은 뒤 장남 무네노부가 흑주교의 2대 교주가 되어 신자들을 이끌었고, 이후로도 대대로 그 자손들이 교주직을 세습했다. 2017년에 쿠로즈미 무네미치(黒住宗道, 1962- )가 7대 교주로 취임하여 현재에 이른다.
무네타다가 죽은 지 5년이 지나 1855년, 무네타다의 생가 자리에 오모토 무네타다 신사(大元宗忠神社)가 들어섰다.
이듬해(1856)에는 고메이 천황이 '무네타다 대명신(宗忠大明神)'이라는 칭호를 내려, 일본 조정 차원에서 공식적인 신령으로 인정했다. 1862년에는 무네타다의 제자 아카키 타다하루(赤木忠春, 1816-1865)가 교토에 무네타다 신사를 세웠는데, 고메이 천황이 찾아와 기도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황족이나 공족들 중에서도 흑주교의 신자가 된 사람도 있는 등 나름대로 일본 안에서는 영향력 있는 종교로 성장했고, 이른바 '막말 3대 신종교'로 손꼽히기까지 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교세가 꺾여 과거의 영화를 가늠하긴 어렵다.
1872년 쿠로즈키 강사(黒住講社)란 이름으로 처음으로 법적인 단체를 이루었다. 1876년 신토쿠로즈미파(神道黒住派)라는 이름으로 교파신토로 공인받았는데, 1882년에 신토쿠로즈미교(神道黒住教)로 개칭했다.
생가에 들어선 무네타다 신사는 그대로 흑주교의 본부가 되어 백수십여 년간 존속했지만, 일대가 도시화가 되자 큰 문제가 생겼다. 매일 아침마다 흑주교는 일배식(日拝式)이라 하여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예배하는 의식을 치르는데, 주변이 도시화된 뒤로는 제대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생가 터에서 북동쪽으로 4.3 km 떨어진 신토산(神道山) 능선 위로 본부를 이전하기로 하여 1974년에 끝마쳤다. 그리하여 흑주교 본부는 신토산에 있지만, 카미나카노의 무네타다 신사 역시 그대로 내두어 교단의 역사를 증언하게 했다.

4. 흑주교의 주요 축일


태양을 숭배하는 종교인 만큼 춘추분과 하동지가 중요한 종교적 기념일이다. 특히 교조의 생일 겸 천명직수의 날인 동짓날이 매우 중요하다. 춘분과 추분이 일본에서는 공휴일이기 때문에 크게 행사를 열기 좋다는 점도 있다.
(날짜는 전부 양력)
  • 1월 1일, 세단제(歳旦祭)
  • 2월 절분제
  • 3월 춘분 , 춘계조령제(祖霊祭)[9]
  • 4월 교조대제
  • 7월 오하라이(大祓)[10]
  • 9월 추분 추계조령제
  • 12월 동지대제
기념일은 흑주교 본부와 지방 신사/교회들이 꽤 다르다. 심지어 흑주교에서는 가장 중요한 축일인 동지대제도 원래는 12월 22일에 해야겠지만, 많은 신사들이 12월 중의 적당한 날로 바꾸어 거행한다. 심지어 서로 날짜도 통일되지 않고 각 신사마다 서로 다른 판.
무네타다가 전통 있는 신토 신쇼쿠 집안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흑주교의 의례 또한 진하게 신토색을 띈다.

5. 흑주교의 신앙대상과 교리


흑주교의 가장 기본적인 신앙대상은 태양신 아마테라스와 교조 무네타다이다. 또한 신토에서 말하는 8백만 제신(諸神)들도 신앙대상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흑주교에서 말하는 아마테라스는 신화에 등장하는 아마테라스보다 좀더 초월적이다. 무네타다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아마테라스의 영혼이 갈라져 생긴 생명체들이다. 따라서 아마테라스는 곧 인간들의 근원이 된다. 그리하여 흑주교에서는 매일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예배함이 가장 가본적인 의례이다.
또한 신체가 아마테라스의 영혼과 잘 조화를 이루면 자연스럽게 건강해지지만,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당연히 병에 걸린다. 따라서 신앙심을 키우고 덕을 쌓아 조화를 이루어야 참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 만물이 아마테라스 때문에 존재할 수 있으므로 기쁘게 생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흑주교는 교조 무네타다가 단편적으로 쓴 노래나 편지 모음을 경전으로 삼는데, 무네타다가 생전에 신자들 앞에서 설교할 적에도 그 자리에서 생각나는 대로 말했기 때문에 체계적인 교리를 잡지는 못했다.
전통적인 신토와 다르게 해석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결국 주신이 아마테라스이고 교조 무네타다 역시 천황으로부터 '대명신'이란 칭호를 받았기 때문에, 일본의 전통을 옹호하고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우파적인 성향을 띈다. 흑주교의 6대 교주였던 쿠로즈미 무네하루(黒住宗晴)[11]일본회의의 대표임원이기도 하다.
[1] 조선에서는 정조 4년, 일본에서는 안에이(安永) 9년으로, 고모모조노 천황이 즉위하고 쇼군 도쿠가와 이에하루가 재임하는 때였다.[2] 일본 신토의 성직자를 통칭하는 말.[3] 막부 말기 일본에서는 신통력이 있는 사람이 '살아있는 신령님'으로 추앙받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일본어에서는 이러한 사람을 '이키가미(生き神)'라고 부른다. 천리교오모토의 교조도 이렇게 '이키가미'로 대우받았다.[4] 요시다 신토의 종주로서 요시다 가문은 17세기부터 일본 신토계를 통괄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아, 메이지 유신 이후 1868년에 메이지 정부가 거두어갈 때까지 지속되었다.[5] 조선에서는 순조 14년, 일본에서는 분카(文化) 11년으로, 고카쿠 천황이 즉위하고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가 재임하는 때였다.[6] 하늘의 명을 직접 받았다는 뜻. 일본어식 발음은 '텐메이지키주(てんめいじきじゅ)'이다.[7] 신토의 부적 같은 것[8] 조선에서는 철종 1년, 일본에서는 카에이(嘉永) 3년으로 고메이 천황이 즉위하고 쇼군 도쿠가와 이에요시가 재임하는 때였다.[9] 조상의 영혼을 위로하는 의례이다.[10] 부정을 쫓는 일본 신토의 의례, 행사.[11] 2017년에 아들 쿠로즈미 무네미치(黒住宗道)에게 교주 자리를 넘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