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로 제후
十八路諸侯
1. 설명
후한말 190년, 역적 동탁을 토벌하고 한황실을 굳건히 받든다는 것을 대의 명분으로 하여 일어선 제후들의 연합. 일반적으로 '반동탁 연합'이란 명칭을 가장 많이 쓰며, 함곡관의 동쪽 지방인 관동에서 일어나 관동군(關東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8로 제후는 삼국지연의에서 나온 단어로 정사 삼국지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굳이 18제후인 것은, 나관중이 소열제를 과거의 한 고조와 오버랩시키는 전략의 일환으로써 진한 교체기에 존재했던 18왕과 동수(同數)를 부여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2. 연의 목록
가정본에서는 제후들마다 거창한 수식어를 추가했으나, 모종강본에서는 전부 삭제했다.
- 1군: 남양태수, 후장군 원술 - 가정본에서 추가된 수식어는 交遊豪俊,結納英雄 영웅호걸들과 사귄다.
- 2군: 기주목 한복 - 가정본에서 추가된 수식어는 貫通諸子,博覽九經. 제자백가의 경서와 9경을 통달.
- 3군: 예주자사 공주 - 가정본에서 추가된 수식어는 闊論高談,知今博古. 담론의 수준이 높고 옛날과 지금의 일들에 밝다.
- 4군: 연주자사 유대 - 가정본에서 추가된 수식어는 孝悌仁慈,屈己待士. 부모에 대한 효성과 형제애가 깊고 인자하며, 자신을 낮추어 선비를 대접한다.
- 5군: 하내태수 왕광 - 가정본에서 추가된 수식어는 仗義疏財,揮金似土. 의리를 중시하고 재물을 경시하여 돈 쓰기를 아끼지 않는다.
- 6군: 진류태수 장막 - 가정본에서 추가된 수식어는 賑窮救急,誌大心高. 가난하고 급한 사람들을 도우며 포부가 크다.
- 7군: 동군태수 교모 - 가정본에서 추가된 수식어는 恩惠及人,聰敏有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총명하며 학식이 있다.
- 8군: 산양태수 원유 - 가정본에서 추가된 수식어는 忠直元亮,秀氣文華. 충직하고 문장에 재주가 있다.
- 9군: 제북상 포신 - 가정본에서 추가된 수식어는 有謀多智,善武能文. 지혜와 꾀가 많고 문무에 능하다.
- 10군: 북해상 공융 - 가정본에서 추가된 수식어는 聖人宗派,好客禮賢. 성인의 후손으로 손님 대접이 융숭하고 어진 사람들에게 예우를 갖춘다.
- 11군: 광릉태수 장초 - 가정본에서 추가된 수식어는 武藝超群,威儀出眾. 무예가 뛰어나고 위엄이 출중하다.
- 12군: 서주자사 도겸 - 가정본에서 추가된 수식어는 仁人君子,德厚溫良. 인덕을 갖춘 군자로 성품이 온화하고 착하다.
- 13군: 서량태수 마등 - 가정본에서 추가된 수식어는 名鎮羌胡,聲聞夷夏. 이름이 강족에게 알려져 있으며 명성은 중원과 변방에 퍼졌다.
- 14군: 북평태수 공손찬 - 가정본에서 추가된 수식어는 聲如巨鐘,豐姿英偉. 목소리는 큰 종처럼 울리며 모습은 영준하고 장대하다.
- 15군: 상당태수 장양 - 가정본에서 추가된 수식어는 隨機應變,臨事勇為. 임기응변에 능하고 매사에 과단성 있다.
- 16군: 오정후 장사 태수 손견 - 가정본에서 추가된 수식어는 英雄冠世,剛勇絕倫. 영웅됨이 으뜸이요, 강직하고 용맹함이 절륜하다.
- 17군: 발해태수 원소 - 가정본에서 추가된 수식어는 四世三公,門多故吏. 4대째 삼공을 지낸 가문으로, 옛 부하들이 많다.
- 18군: 전군교위 조조 - 가정본에서 추가된 수식어는 없다. 사실 가정본이나 모종강본 모두 조조가 격문을 보내 다른 제후들을 끌어모은 거라, "제18군은 조조" 라는 식의 언급이 없이 17군 제후인 원소까지만 언급되기 때문이다.
3. 정사 목록
정사에서도 반동탁 연합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연의의 명단과는 좀 차이가 있다. 또 전군이 연합해서 싸운 것도 아니고 정작 직접적으로 싸웠다는 기록이 있는 건 왕광, 포신, 손견, 조조 4명뿐이다. 대다수 군벌들은 하진의 중앙군을 그대로 흡수한 동탁군과의 싸움을 두려워해 서로 눈치만 보았고 원소는 한복이 군량 공급을 끊어버리는 바람에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 없었다.
또한 동탁뿐만 아니라 동탁이 멋대로 옹립한 황제인 헌제를 인정하느냐에 대해서도 입장이 갈렸다. 대표적으로 원소가 부정파, 원술이 긍정파였다.
<실제 정사에서 참전한 군벌>
- 원술, 한복, 공주, 유대, 왕광, 원소, 장막, 교모, 원유, 포신, 조조 - 후한서 원소열전[1] , 무제기에 참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 장초 - 장홍전과 후한서 원소열전에 형 장막과 함께 참여한 기록이 있다.
- 손견 - 실제로는 독립 군벌로서가 아닌 원술의 수하로 싸웠지만 연의에서는 동등한 위치로 격을 높였다.
- 유비 - 선주전 주석 영웅기에 조조와 함께 참가했다는 기록이 있다. 연의에서는 공손찬 휘하 객장으로 참가하지만 정사에서 공손찬은 연합에 참가하지 않았다. 적에게 격파된 후 공손찬에게로 도주한다.
- 왕예 - 손견의 핍박으로 자살했다. 연의에선 미등장.
- 장자 - 손견에게 살해당했다. 역시 연의에선 미등장.
- 장홍 - 반동탁 연합군 중 산조에서 모인 관리들인 유대, 공주, 장막 형제, 교모 등을 대표해 이 지역의 맹주가 되었다. 역시 연의에선 미등장.
- 유표 - 유표전에 따르면 유표는 정사에서 반동탁 연합에 참가했지만 연의에서는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변경되었다.
- 공융, 도겸 - 직접 참가하진 않았지만 장안 천도 후 낙양에 남아 연합군과 내응한 주준을 맹주로 받들며 지원했다.
- 공손찬 - 원소가 유우를 황제로 추대하려 하자 즉각 이를 반대하고 공격했다.
- 마등 - 동탁에게 반란죄를 사면받고 한수(삼국지)와 함께 동탁군에 합류하려고 했으나 도착 전에 동탁이 암살당해서 무산되었다. 뿐만 아니라 서량태수라는 관직은 있지도 않았고, 있을 수도 없는 관직이었다. 서량은 양주(凉州)의 별칭[2] 이기에 양주자사라는 직함이 붙여져야 한다.
- 장양 - 처음엔 원소에게 협력했지만 얼마 안 가 배반했다.
4. 행적
[1] 다만 후한서 원소열전에는 이 중에서 조조만 참전했다는 기록이 없다. 아마도 조조는 '기타 쩌리' 라인에 포함되어 있었던 듯. 자사나 태수도 아니고 잡호장군인 분무장군 대행에 다른 사람들은 각각 수만씩 이끌고 오는데 몇천의 의병만 데려왔으니 당연할지도, 무제기에서는 조조가 움직이지 않는걸 질책하는걸 무슨 맹주 원소까지 질책하는 것 마냥 대단한 것처럼 묘사하는데 실제로는 산조에 있던 아무도 조조말 안 들어주니 조조 혼자 피꺼솟해서 무작정 나가다가(그나마 친구라고 장막이 병력을 보태주긴 했다) 동탁의 부하장수인 서영에게 된통깨진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기껏 자기가 모은 병력, 조인이 모은 병력, 유비랑 같이 모았던 병력, 장막이 보내준 병력 거의 다 날려먹고 간신히 살아남아 산조에 돌아와서 거창한 계획을 제시하지만, 절친 장막조차 쓰지 못했을 정도로 거창하기만 한 계획이라서 또 다시 아오안, 결정적으로 산조 지역의 맹주를 뽑을때 다른 자사나 태수들이 다들 총대매긴 싫어서 모두 일개 공조인 장홍을 맹주로 지지하는 마당에 명색이 중앙에선 서원팔교위의 일원이었고 효기교위까지 했었던 조조를 지지했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러다보니 조조와 행동을 같이했을 유비가 이 꼴을 보고 그냥 그길로 동문인 공손찬에게 도주한것이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을정도.[2] 한국으로 치자면 전라도를 호남으로, 경상도를 영남으로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