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일본시리즈
1. 개요
1981년 10월 17일부터 1981년 10월 25일까지 개최되었으며, 이 해 센트럴리그 우승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퍼시픽 리그 우승팀 닛폰햄 파이터즈[3] 가 맞붙어,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4승 2패로 1965년~1973년까지의 전설의 V9시대(9년 연속 센트럴리그 - 일본시리즈 제패) 이후 첫 우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일본시리즈 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덕아웃시리즈였다는 것.'''[4] 당시 두 팀이 같은 도쿄 연고에 고라쿠엔 구장을 홈구장으로 같이 쓰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로, 이 후 두 팀이 도쿄에 있을 적 일본시리즈에서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닛폰햄 파이터즈가 2004년 홋카이도 삿포로 돔으로 연고지 이전을 하면서 서로 다른 리그의 두 팀이 같은 홈구장을 쓰지 않는 한 두번 다시 못 볼 시리즈가 되어버렸다.[5]
2. 경기결과
상술했다시피 전 경기를 고라쿠엔 구장에서 개최한 일본시리즈 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덕아웃시리즈이므로 문단에 홈구장은 적지 않는다. 대신 경기 일정과 경기 당시 어느 팀이 후공이었는지 적는다.
고라쿠엔 구장에서만 경기를 치뤘지만 다른 일본시리즈처럼 휴식일이 있었다.
2.1. 1~2차전 : 닛폰햄 파이터즈 후공
홀수 해이기 때문에 닛폰햄 파이터즈가 홈 어드밴티지를 얻었다. 따라서 1~2차전은 닛폰햄이 후공이었다.
2.1.1. 1차전 : 10월 17일 개최
- 승리투수 : 쿠도 미키오(닛폰햄, 1승)
- 패전투수 : 스미 미츠오(요미우리, 1패)
양 팀 릴리프들이 불질을 연달아 해대면서 엄청 혼란스러운 초전이 되었다(...)
2.1.2. 2차전 : 10월 18일 개최
- 승리투수 : 니시모토 다카시(요미우리, 1승)
- 패전투수 : 마시바 시게쿠니(닛폰햄, 1패)
후반부 릴리프들의 불질로 혼란스럽던 1차전과 달리 철저한 투수전으로 흘러간 2차전이었다. 특히나 닛폰햄은 선제점을 얻고도 2안타 3사구에 그치며 결국 8회에 역전을 허용했다. 다만 요미우리도 11안타 3사구나 얻고도 고작 2득점만 거두며 쪽팔리게 되었다(...)
2.2. 3~5차전 : 요미우리 자이언츠 후공
휴식일(10월 19일) 이후 열린 3~5차전은 선/후공이 바뀌어 요미우리가 후공이 되었다.
2.2.1. 3차전 : 10월 20일 개최
- 승리투수 : 쿠도 미키오(닛폰햄, 2승)
- 패전투수 : 사다오카 쇼지(요미우리, 1패)
- 세이브 : 에나츠 유타카(닛폰햄, 1세이브)
2.2.2. 4차전 : 10월 21일 개최
- 승리투수 : 에가와 스구루(요미우리, 1승)
- 패전투수 : 나리타 후미오(닛폰햄, 1패)
6회까진 1점 차로 팽팽했으나 7회에 닛폰햄의 수비진들이 흐트러진 것이 요미우리의 2승을 결정지었다.
2.2.3. 5차전 : 10월 23일[6] 개최
- 승리투수 : 니시모토 다카시(요미우리, 2승)
- 패전투수 : 타카하시 카즈미(닛폰햄, 1패)
2.3. 6차전 : 닛폰햄 파이터즈 후공
휴식일(10월 24일) 이후 열린 6차전은 다시 선/후공이 바뀌어 닛폰햄이 후공이 되었다.
2.3.1. 6차전 : 10월 25일 개최
- 승리투수 : 에가와 스구루(요미우리, 2승)
- 패전투수 : 마시바 시게쿠니(닛폰햄, 2패)
요미우리는 2회 초 로이 화이트가 데드볼로 출루, 뒤이어 시바타 이사오가 친 플라이를 좌익수 이노우에 히로아키가 타구 판단을 잘못하여 놓치면서 안타를 허용, 그 다음 타자인 하라 타츠노리도 강습 타구로 안타를 치면서 무사 만루 상황이 되었고, 하라의 다음 타자인 시노즈카 카즈노리가 적시타를 치면서 요미우리가 선제점을 따내었고, 뒤이어 야마쿠라 카즈히로가 희생플라이를 치면서 또다시 득점을 얻은 후 에가와 스구루가 번트로 내야안타를 치면서 또다시 만루 상황이 되었다. 그 상황에서 코우노 카즈마사가 후속 타자로 나와 사구를 얻어내며 또다시 득점을 획득, 결국 닛폰햄을 연달아 실수를 저지르며 3실점이나 하고 말았다. 그 뒤 3회 초에 마시바 시게쿠니가 강판되고 일본시리즈 내내 좋은 모습을 보여준 쿠도 미키오가 등판했으나, 쿠도마저도 하라 타츠노리에게 투런 홈런을 내주면서 닛폰햄은 사실상 패배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닛폰햄은 6회 말 이노우에 히로아키가 솔로 홈런으로 1점 만회, 그러나 7회에 코우노 카즈마사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해 버렸고, 8회 말 2득점을 거뒀으나 더 이상의 득점은 내지 못하면서 6:3으로 경기 종료. 요미우리가 V9 이후 8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거뒀다.
3. 타이틀 시상
- MVP : 니시모토 다카시(요미우리 자이언츠)
- 감투상[9] : 이노우에 히로아키(닛폰햄 파이터즈)
- 우수선수상 : 히라타 카오루, 코우노 카즈마사, 에가와 스구루(요미우리 자이언츠)
[1] 두 팔을 활짝 벌리면서 마운드로 다가오는 8번 선수가 하라 다쓰노리 現 요미우리 감독, 마운드에 있는 24번 선수가 나카하타 키요시 전 요코하마 감독이다. 마운드에서 서로를 부퉁켜 안는 투수와 포수는 각각 에가와 스구루(투수), 야마쿠라 카즈히로(포수)이며 우측의 등번호 6번은 2루수 시노즈카 카즈노리이다. 하라 뒤의 선수는 유격수 코우노 카즈마사. 또 사진의 맨 앞 쪽에 이날 닛폰햄의 마지막 타자였던 이가라시 신이치가 보인다.[2] 10월 22일 개최 예정이었으나 우천취소되었다.[3] 정확히는 당시 전후기 리그 제도로 운영되던 퍼시픽 리그 체제에서 전기 4위 - 후기 우승으로 플레이오프 진출 후 전기리그 우승팀 롯데 오리온즈를 플레이오프에서 무찌르고 퍼시픽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4] 당연히 일본시리즈 역사상 가장 짧은 거리를 오가는 시리즈 기록도 이거다. 전설의 0m.[5] 여담으로 2008 시즌에 한신과 오릭스가 나란히 리그 2위를 차지하며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했고, 한신이 한신 고시엔 구장 리모델링 일정 때문에 오사카 돔에서 PS 경기를 치르기로 결정하면서 27년 만의 덕아웃 시리즈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지만, 두 팀 모두 1스테이지에서 광탈하면서 아시발꿈이 되었다(...) [6] 10월 22일 개최 예정이었으나 우천취소되었다.[7] 닛폰햄의 시리즈 1차전 선발이기도 했던 왼손투수. 1975년까지 요미우리에서 뛰면서 V9 시절 에이스 호리우치 츠네오를 뒷받침하는 2선발로 활약했지만 1975 시즌 종료 후 닛폰햄으로 이적한다.[8] 참고로 정규시즌에서도 이 기록은 1989년 8월 4일 요코하마 다이요 훼일즈의 니우라 히사오(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었던 김일융 맞다)만이 가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날 상대팀이 니우라의 고향팀이자 니시모토가 일본시리즈 역대 최다 피안타 완봉 기록을 보유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였다. 다만 니시모토는 니우라가 이 기록을 달성할 당시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한 상태였다.[9] 일본시리즈 패배팀에서 가장 잘한 선수에게 주는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