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재보궐선거
1. 개요
대한민국의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2003년 4월 24일과 10월 30일에 치러진 재보궐선거다.
2. 상반기(2003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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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초기에 치러지는 선거는 정부 여당 및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으로 여당이 승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달랐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권과 연합 공천을 한 개혁국민정당 1석을 제외하면 사실상 싹쓸이 전패를 당했다.
민주당내 신 - 구 갈등이 지속되었고, 여소야대 국면에다 자기 세력까지 부족했던 노무현이 어떻게 정국을 돌파해 나갈 것인지가 문제였는데, 선거 이후 정치권과 언론의 시선은 대통령에게 집중되었다.
참여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 재야 논객 및 작가로 주목 받고 있는 유시민이 개혁국민정당 소속으로 고양시 덕양구 갑에서 당선되어 정치에 입문한 선거이며 후일 친박 중진으로 성장할 홍문종이 의정부에서 당선되어 재선에 성공한 선거다.
한편 4월 8일에는 아산시 국회의원인 자민련 원철희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했으나 잔여임기가 1년도 되지 않아 해당 지역구는 공석으로 남게 되었다.
투표율은 29.5%로 집계되었다.
여담으로 이 선거에 당선된 국회의원들의 선서가 있던 날, 유시민의 등원 복장이 화제가 되었다.[1]
2.1. 국회의원
2.1.1. 서울특별시 양천구 을
전임자인 새천년민주당의 김영배가 의원직을 사직하여[2] 공석이 되었다.
2.1.2.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갑
전임자인 새천년민주당의 곽치영이 당선무효로 의원직을 상실하여 공석이 되었다.
200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유일하게 민주당계 정당이 승리한 지역구로, 새천년민주당과 개혁국민정당 간 단일화를 통해 후보가 된 개혁국민정당 유시민 후보가 한나라당 이국헌 후보를 4.19%p로 제치고 승리해 생애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본격적인 선거 운동이 시작되기 전, 개혁당 유시민 후보가 민주당과 절대 단일화나 선거 공조를 하지 않고 단독 완주하겠다고 주장하며 비민주·반한나라 성향의 유권자들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참여정부 초반 대북송금 특검 허용 등으로 지지층이 분열되면서 위기에 처한 여당 새천년민주당이 부진한 선거 구도를 바꿔볼 겸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던 유시민 후보에 단일화를 제안했고, 유시민 후보 처음에는 제안을 거부했다가, 민주노동당과 한국사회민주당이 독자 후보를 내는 상황 속에서 결국 이를 수용했다. 이 때문에 개혁당 내에서 유시민 후보의 단일화 수용에 대한 반발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민주당 내에서도 역시 자체 후보로 지역구 출마를 노리던 안형호 후보가 반발해 독자 출마를 검토했지만 결국 뜻을 접었다.
한나라당은 2000년 총선에서 민주당 곽치영 후보에게 패했던 이국헌 후보에게 복수전 기회를 부여했다.
2.1.3. 경기도 의정부시
전임자인 새천년민주당의 '''문희상'''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됨에 따라 의원직을 사직하여 공석이 되었다.
3. 하반기(2003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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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자치단체장, 국회의원 선거가 없어 관심이 덜했다. 투표율은 34.2%
특이사항으로는 충청남도 계룡시와 충청북도 증평군이 신설되면서 계룡시장 및 증평군수와 계룡시의원 및 증평군의원 등이 이날 새로 선출되었다는 것이다. 초대 계룡시장에는 자민련의 최홍묵 후보가 당선되었다. 초대 증평군수에는 한나라당의 유명호 후보가 당선되었다 통영시장 재보궐선거에서는 무소속의 진의장 후보가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