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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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12월 23일 - 2013년 4월 27일 (향년 80세)
1. 개요
金令培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일석(一石)이다. 종교는 가톨릭으로 세례명은 바오로이다.
1932년 충청남도 논산군에서 태어났다. 영등포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하사로 군 복무를 하다 전역하였다. 이후 연합신문에서 기자로 일하였다.
1968년 김재광 신민당 국회의원의 권유로 신민당에 입당하여 정계에 입문하였다. 그리하여 김재광계에 속하면서 당원으로 일하였다. 그러다가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병현과 신민당 복수공천을 받아 서울특별시 강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본인과 민주공화당 남재희 후보가 동반 당선되었다.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그러다가 정치규제에서 풀린 이후 제12대 국회에서부터 내리 5선(신한민주당,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제12대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선거구. 제13대부터 제16대까지는 서울특별시 양천구 을 선거구)을 하며 김대중계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제12대 국회의원이던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통한 대통령 중심제가 아닌 의원 내각제를 토대로 한 이민우 구상에 이철승 의원이 찬성하려 하자 이철승을 징계하자는 여론이 있었다. 당시 조순형 당기위원장이 이철승의 징계에 머뭇거렸다가 사퇴하였는데 김영배가 1987년 3월 후임 당기위원장이 되자 용팔이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민우 총재와 이철승 의원을 제명 처분하였다.[2] 그리하여 '''사무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해 말 계보 보스인 김재광과 결별하고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87년의 두 차례 결단 덕에 동교동 직계가 아님에도 불구, 김대중 총재의 신임을 얻어 제15대 국회 전반기에는 새정치국민회의 몫의 국회부의장을, 1999년 4월부터 7월까지는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을 역임한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새천년민주당 후보경선 당시 선거관리위원장으로[3] 경선을 총괄했다.
하지만 자신이 관리했던 경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후보가 지지율이 떨어지자, 정몽준으로의 후보교체를 주장하면서 후단협 회장으로 활동했다. 이때 '''노무현으로부터 설렁탕 국물 한방울 얻어먹지 못했다'''는 발언으로 인터넷에서 조롱거리가 되었고, 한동안 민주당과 반노무현계는 '''궁물당''' 이란 명칭으로 불렸다.
2003년 3월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16대 총선당시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형을 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법률적으론 유죄여도 내 양심상 무죄'''라며 6선 의원으로서 의원직 상실이라는 불명예대신 자진사퇴 후 정계은퇴라는 명예를 선택하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2013년 4월 담도암으로 별세하였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3. 둘러보기
[A] 영등포구일부(제9선거구)의 제9대 국회의원이다.[B] A B C D 강서구(서울 제8선거구)의 제11대 국회의원[C] 양천구 갑 선거구의 제13대 국회의원이다.[D] 강서구 갑 선거구의 제13대 국회의원이다.[E] 강서구 을 선거구의 제13대 국회의원[F] A B 강서구(제11선거구)의 제12대 국회의원이다.[1] 의원직 사퇴[2] 다만 이후 무산되었는지 이철승은 이듬해 신한민주당 후보로 13대 총선에 출마한다.[3] 이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 투표 결과가 전국에 생중계됐는데 그 장면이 거의 매주 중계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았다.[4] 강서구[5] 민주공화당 남재희 후보가 동반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