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재보궐선거
1. 개요
대한민국의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2002년 8월 8일과 12월 19일에 치러진 재보궐선거다.
2. 상반기(2002년 8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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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부패정권 심판론[1] vs 민주당의 이회창 아들 병역문제 등의 "5대 의혹" 제기
한나라당의 부패정권 심판론이 먹혀 들었다. 국민의 정부 레임덕이 극에 치달아 11대 2 참패를 당하며 한나라당이 의석 과반수 확보에 성공했다.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그나마 승리한 2석도 광주, 전북이라 '''싹쓸이''' 당했다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6월의 지방선거 참패에 뒤이은 재보궐선거의 괴멸로 노무현 후보의 당내 입지는 급격히 흔들리며 '''후단협'''으로 이어지게 된다. 지방선거에 이어 재보선까지 승리한 한나라당은 '이회창 대세론'을 통한 정권 탈환을 눈 앞에 두고 있었고 다들 어대창('''어'''차피 '''대'''통령은 이회'''창''') 노래를 부르며 샴페인을 터트리기 시작했고...(...)
민선 6기 전직 부산시장인 서병수가 해운대구-기장군 갑에서 당선되어 처음 중앙 정계에 입문하였다.
국회의원직이 13석이나 걸려 있는 상당한 규모의 선거임에도 투표율은 29.6%에 머물렀는데, 그럴만도 할 것이 '''비가 국가비상사태 수준으로 왔기 때문.(...)''' 당시 뉴스데스크.
2.1. 선거결과
2.1.1. 서울 종로
2.1.2. 서울 금천
2.1.3. 서울 영등포 을
2.1.4. 부산 부산진 갑
2.1.5. 부산 해운대구·기장군 갑
2.1.6. 인천 서구·강화군 을
2.1.7. 광주 북구 갑
2.1.8. 경기 광명시
2.1.9. 경기 하남시
2.1.10. 경기 안성시
2.1.11. 전북 군산시
2.1.12. 경남 마산 합포
2.1.13. 제주 북제주군
3. 하반기(2002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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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대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치러져 투표율이 높았다.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 부의장을 지낸 정갑윤이 울산 중구에서 당선되어 처음 중앙 정계에 입문하였다. 대선이라는 빅이벤트에 가려져 언론의 관심도는 낮았다.
3.1. 선거결과
3.1.1. 국회의원
3.1.2. 기초단체장
[1] '''최규선 게이트'"로 대통령 아들이 연루되는등 상당히 이슈가 된 권력형 비리였다.[2] 종로1·2·3·4가동, 종로5·6가동, 청운효자동, 창신1동, 창신2동, 창신3동, 숭인1동, 숭인2동, 가회동, 사직동, 삼청동, 이화동, 혜화동, 무악동, 부암동, 평창동, 교남동[a]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전까지는 기초자치단체의원직에 정당공천제가 실시되지 않아 정당 소속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