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닝구
1. 민소매런닝의 일본식 발음이 변형된 것
Running Shirts → Running → Ranningu → Nanninggu. 이 이름으로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도 있다.
2. 대한민국 정치계 비하어
민주당계 정당의 동교동계 및 여타 호남기반 비노계와 호남계 정치인들을 비하하는 멸칭. 이들의 공통적 코드는 노무현, 열린우리당에 대한 반대였다. 단체로써는 남프라이즈, 민주연합청년동지회등을 칭할 수 있고, 지역의 경우는 평화민주당 시절부터 김대중계 정치인들의 자금을 조달했던 사람들을 말한다. 이 사람들 중의 일부는 전국구 공천을 받아서 국회의원이 되기도 한다.
이 단어가 탄생한 데는 복잡한 사연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극적인 승리로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새천년민주당은 2003년 9월 4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이른바 친노를 중심으로 당을 해체시킨 뒤 당원이 모든 공직선거 후보를 뽑는 상향식 공천제, 진보주의를 강령으로 하는 신당 창당안, 즉 열린우리당의 창당에 대해서 표결하기로 했다. 간단히 말해 민주당 사수파와 신당창당파로 나뉜 것인데 여기서 민주당 사수를 지지하는 기존 김대중계 성향의 한 당원 이 모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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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번째 사진이다.'''[1]
'''민소매런닝''' 차림으로 당사에 난입해 '''"이 개XX. 니들이 뭔데 우리를 무시하고 지X이야"'''라고 하면서 친 노무현 성향 최고위원을 폭행하는 장면이 뉴스에 보도되었고, 이 일로 한에 맺힌 구 민주당 계열이 노무현 탄핵을 위해서 한나라당과 일시적인 동맹관계도 서슴지도 않았던[2] 것이다. 여튼 이 일 이후로 민주당의 호남 지역주의에 비판적이었던 인터넷 사이트 서프라이즈에서 호남계 반노 인사들을 '난닝구'라고 비꼬면서 민주당 분당에 반대했던 호남인들에 대한 멸칭이 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시점에서는 대부분의 김대중 대통령 직계 가신에 해당하는 정치인들, 이른바 동교동계라고 불리는 정치인들은 고령 등을 이유로 현역에서 물러난 상태고, 김대중 대통령 시대부터 활동한 정치인들 중 박지원 국민의당 최고위원을 제외하면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은 전무하다. 2010년대까지 활동하던 DJ 정권시절 비서실장인 한광옥 전 의원이 공천 관련으로 민주통합당에 반발해서 정통민주당을 창당,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재기를 노려봤지만 민주통합당과 팀킬[3] 까지 발생하는 결과를 낳으며 정당지지율 0.2%의 참혹한 성적으로 해산과정을 밟았다.[4]
동교동계의 주요 인사중 한광옥과 김경재는 아예 한술 더떠 새누리당으로 이적했다.[5][6] 이에 대해서는 "파벌 논쟁에 빠져서 자신의 정체성마저 바꿔버린 격이다"라는 견해가 많다.[7] 진보계열 내부에서 더 많이 쓰이며, 이후 거의 구시대의 용어가 되었다. 반대어(?)로는 '난닝구'쪽에서 만들어낸 빽바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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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4월 29일[8] 흰색 면바지를 입고 국회에 등원한 유시민 전 의원의 모습에서 '''빽바지'''라는 멸칭이 유래됐다.[9][10]
이쪽 성향의 인터넷 게시판은 서프라이즈의 친노성향에 반대하며 호남 지역주의자들이 갈려나간 남프라이즈가 유명했지만[11] 이후 아크로 정도가 남아 유지되고 있는데 친노들이 호남의 반분열주의자들을 대놓고 적대하듯 이들도 당연히 반문성향을 유지하며,[12] 경상도의 '영남패권주의'를 대놓고 적대한다.
2.1. 해당 세력에 대한 변호
옹호 입장에서 변호하자면, 난닝구라는 표현은 호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특정 집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친노계열의 반대편을 지칭하기 위한 표현이라는 주장이다.
원래 있던 당을 깬 게 친노세력인 만큼 친노세력은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할만한 명분이 필요했고 그래서 자신들을 건전한 민주개혁세력으로 포지셔닝하는 동시에 분당반대세력을 호남 지역주의자로 몰아붙였으며 이 과정에서 동원된 게 난닝구라는 비하용어인 것이다. 민주당으로부터 열린우리당이 분당하는 것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의 문제에서 찬성 측이 반대 측을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로 그 비하의 주된 레퍼토리가 호남 지역주의자라는 조롱인 만큼, 난닝구와 호남 비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게 그들의 주장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권후보 선정 이후, 친노 계층은 끊임없이 김대중 전 대통령 계열을 몰살시키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당시의 동교동과 친노는 사이가 나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당의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경선을 통과한 후보를 후단협이란 이름으로 흔들었다는 반론이 있다.
노무현의 극적인 경선 통과 과정 역시 그 어떤 동교동계의 지원 없이 순전히 노무현의 개인기로 이루어진 일이다. 이러한 원인을 보지 않고 내부의 갈등을 단지 친노의 권력욕으로 매도하는건 온당치 않다. 예를 들면 집권 직후 노무현 대통령이 행한 일은 한나라당이 아닌 김대중 계열에 대한 공격인 '''대북송금 특검'''이었다.
전여옥조차 요구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할 줄은 몰랐다는 대북특검을 김대중 계열을 포함하여 비노 계열을 공격하기 위해 수용했다고 평가된다. 왜냐하면 대북특검의 근거가 대북교류 협력법인데, 이 법은 남북 대치의 특수 상황에서 북한으로 자금 이동을 막기 위한 정치적 법으로, 이 법대로 하자면 이후락을 포함한 수많은 정치인들이 협약을 위해 북한에 들어간 것도 위법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권 차원에서 행해진 위법은 눈감아주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국내의 리버럴 계열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조차도 실제로 대북특검을 수용할 줄은 몰랐다고 반응한 것이다.#
그야말로 노무현이 스스로 말했던 정체성#마저 내다버린 법이었다. 또 당시가 한나라당에 정책 양보도 하면서 상생정치, 소통정치를 하려고 그래도 노력했던 임기 초반[13] 이었기도 하고.
2.2. 해당 세력에 대한 비판
난닝구라는 표현자체가 비하적 용법이고 이는 자제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난닝구라 불리는 과거 동교동계 성향의 인물들과 구 새천년민주당계 인사들의 성향을 보면 옹호될 수 없는 여지가 많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난닝구로 대표되는 세력에게는 정권이 아니라 국회의원이나 지자체 선거의 공천이 더 큰 관심사이기 때문에 이러한 시각을 비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권교체'라는 단어도 이들에게 별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난닝구의 다수를 이루는 사람들은 김대중 대통령과 그 가신들을 따라오거나, 김대중 대통령의 지지기반이었던 호남의 지역토호들이나 지지세력을 이끌던 일반인들로 평화민주당이나 이후 새정치국민회의에서 공천을 받아 금뱃지를 달긴 했지만 동교동계 의원들같은 정치감각이나 정치적 단결력같은 것은 전무했고, 김대중 대통령의 퇴임 이후 정치적 구심점을 잃게 되자 이런 돌발적이고 정치와는 거리가 먼 감정적인 행동을 해버린 것이다.
그나마 정치력을 갖춘 동교동계 인사중 김경재나 한광옥은 아예 당적을 새누리당으로 바꿔 자신의 정체성마저 부정했으며, 이들의 성향은 지역을 떠나 정치성향으로 보더라도 개혁적인 면모보다 퇴보적인 면모가 많고, 최소한의 정당 내부 개혁에도 부정적이며, 호남 지역구에서 출마할때 공천 잡음이 일어나기 일쑤인데다가 제대로 된 정책 공약보다는 안일한 지역주의에만 기대어 당선되기만을 바라는 문제점 등[14] 비판받을 구석이 많은것은 부정 할 수 없다.
게다가 새정치민주연합 분당으로 난닝구들이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국민의당으로 지역당째로 이적하고 호남 의석을 대부분 석권하면서 더더욱 전국정당화에는 관심도 없이 호남의 고립화를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그리고 이것의 끝판왕이 바른미래당 합당 당시 호남계가 집단 탈당하여 결성한 민주평화당과 여기서 다시 갈라진 대안신당. 결국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다시 민생당으로 뭉치긴 했지만, 더불어민주당과의 호남 대결에서 참패[15] 하면서 난닝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국민의당의 분당 이후 19대 대선, 7대 지선, 21대 총선 세번의 총선동안 민주당이 과거 겪었던 큰 계파갈등이나 분열 없이 유기적인 모습으로 무난히 3연승한데다, 분당된 국민의당 세력이 적은 세력에서도 계파갈등과 분열을 거듭하고 연전연패를 거듭하면서,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는 사실상 그들이 말하는 '난닝구' 세력이 계파갈등과 분열의 진앙이었다고 거의 확신하고 있다.
3. 대한민국의 인터넷 방송인 난닝구
문서 참조
[1] 두번째 사진은 이 사람이 다시 사고를 친 것. 2011년 12월 11일 친노가 주축인 시민통합당과 민주당의 (재)통합 결의를 위한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확인을 위한 지문날인에 '항의'하며 여성 당직자의 뺨을 때렸다. 이후에는 국민의당 창당 발기인으로 알려져있다.[2]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은 노무현의 대선 빚조차 민주당에 떠넘기고 딴살림을 차렸다. 민주당은 그 대선 빚때문에 정당보조금과 당사 비품이 압류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고... (정당보조금을 압류한 사람은 열린우리당 출신으로 국회의장을 했던 김원기의 친동생으로 대선홍보물 관련 비용이었다. #)[3] 그냥 팀킬이 아니라 여소야대를 여대야소로 바꾼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졌다. 정통민주당 항목 참조.[4] 이에 앞서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직전에도 한화갑을 중심으로 평화민주당이 창당되었으나, 이때도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하고 결국 한화갑마저 이탈하여 총선을 앞두고 국민행복당에 흡수되어 소멸된 바 있다.[5] 한화갑도 이 두 사람들과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를 지지했으나, 실제 입당까지는 하지 않았다.[6] 이후에도 한광옥은 박근혜 정부 말기 때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재직하였으며, 김경재는 한국자유총연맹 회장을 맡는 등 극우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7] 반대로 친노계의 중요인사 중의 한 명이었던 조경태는 파벌싸움에 밀려서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다만 조경태는 원래 보수 성향이 있었던 편.[8] 이 날은 200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의 선서가 있었다.[9] 이는 단순히 유시민이 TPO를 안지킨 건방짐이 문제가 아니라, 유시민이 보여줬던 반DJ(97년 지적한 대선분석 칼럼이 결정타), 영남 연고, 평민당이 아닌 쪽에서 영입한 정치인이라는 모습이 합쳐서 대표로 폭발한 것.[10] 여담으로 2020년 류호정 의원이 국회에 원피스를 입고 등원하는 비슷한 에피소드도 있었다.[11] 2007년 열린우리당 해체 시절 잔류민주당은 '동'프라이즈, 잔류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의 중립은 '중'프라이즈, 친노이지만 반서영석은 노하우 21로..분리되었다. '북'프라이즈는 없었다...[12] 이들 사이에서 문재인은 주로 '문국쌍'이라는 멸칭으로 불린다.[13]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의 압도적 반대(단 한명을 제외한 모든 국무위원들이 반대했다.)를 무시하고 최초로 서명한 법이다.[14] 지방선거에서 이런 문제점이 드러난다.[15] 심지어 박지원까지도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