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제9대 총리
''בנימין נתניהו'' '''

'''이름'''
베냐민 네타냐후[1]
בנימין נתניהו|Benjamin Netanyahu
'''출생'''
1949년 10월 21일 (75세)
이스라엘 텔아비브
'''국적'''
[image] 이스라엘
'''종교'''
유대교
'''링크'''

'''이스라엘 제9대 총리'''
'''임기'''
1996년 6월 18일 ~ 1999년 7월 6일
'''전임'''
시몬 페레스
'''후임'''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제9대2기 총리'''
'''임기'''
2009년 3월 31일 ~ '''현직'''
'''전임'''
에후드 올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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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80cm
'''학력'''
챌트넘 고등학교[17] (졸업)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건축학 / B.S.)
MIT 슬론경영대학원 (경영학 / M.S.)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 / Ph.D.)[18]
'''정당'''
'''리쿠드''']]
'''의원 선수'''
10
'''지역구'''
비례대표(전국구)
'''가족'''
父: 벤조인 네타냐후 (1910년-2012년)
母: 틸라 시갈 (1912년-2000년)
兄: 요나단 요니 네타냐후
弟: 이도 네타냐후
배우자
미리암 바이츠만 (1972년 결혼, 1978년 이혼)
플르리 케이츠 (1981년 결혼, 1984년 이혼)
사라 네타냐후 (1991년 결혼)
슬하 2남 1녀
노아 로즈 네타냐후 (딸)
애브너 네타냐후 (아들)
야이리 네타냐후 (아들)
[image] '''이스라엘군 복무'''
'''국가'''
[image] 이스라엘
'''복무'''
이스라엘 방위군 육군
1967년 - 1973년[19]
'''최종 계급'''
대위
'''소속'''
사예렛 마트칼(대테러부대)
'''참전'''
소모전
제4차 중동전쟁

1. 개요
2. 생애
2.1. 초기
2.2. 1차 집권(1990년대 후반)
2.3. 2차 집권(2009년 이후)

[clearfix]

1. 개요


이스라엘의 정치인. 11선 의회 의원(리쿠드당, 비례대표, 12~23대)이며, 현직 총리(2번째)이다. 총리 외에도 국방장관, 외교장관, 보건장관을 겸직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총리 역대 최장 임기'''[2]를 지내고 있다.
그의 형 요나탄 네타냐후는 이스라엘군 정예부대인 사예레트 마트칼 중령으로 1976년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에 납치된 이스라엘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침투한 그 유명한 '엔테베 작전'을 지휘하다가 전사했다. 이스라엘 특공대 장교로 복무한 영향인지 네타냐후 총리도 '''초강경한 노선'''을 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이스라엘 정계가 하나같이 강경파다 보니 네타냐후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총리들도 똑같이 강경 노선을 고집한다.

가족으로는 첫 부인에게서 낳은 딸과 현 부인 사라 네타냐후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을 포함해 2남 1녀가 있다. 최근에는 딸이 결혼하여 외손자가 있다.

2. 생애



2.1. 초기


[image]
아슈케나짐 유대인으로,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인 1949년 텔아비브에서 태어났다. 바르샤바 출신의 대학 교수인 벤치욘 네타냐후(Bencijjon Netanjahu, בנציון נתניהו)[3]을 따라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이후 6년간 군복무[4]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1980년대 후반 이스라엘 정계에 들어오기 전까지 대부분 미국에서 활동하였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하버드 대학교에서 공부하였고,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 근무하였다.[5] 1982년에는 워싱턴의 주미 대사관에서 근무하였고, 1984년 ~ 1988년 주 UN 대사를 지냈다. 1988년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이츠하크 샤미르 정권에서 각료로 재직하였다.

2.2. 1차 집권(1990년대 후반)


그 후 리쿠드당의 영수가 되어서 1996년 총선 출구조사에서 근소한 차이로 낙선할 걸로 보이지만[6] 실제 선거에서 노동당의 시몬 페레스를 이기고 13대 총리가 되었고[7][8], 이 당시 아라파트와 많은 갈등을 빚었다. 그러나 이후로 부패혐의에다가 이스라엘의 경제도 침체국면에 접어들며 지지율이 떨어졌고 1999년 총선과 총리 선거에서 대패하며 정계에서 떠나는 듯 했다.

그러나 2001년 총리 선거에서 샤론이 집권하면서 다시 운이 풀리기 시작했고, 2003년 총선에서 리쿠드당이 승리하자 외무장관으로 임명되어 정계복귀에 성공했다.
그러나 아리엘 샤론 총리가 온건파로 돌아서며 가자지구의 유대인 정착촌 철수 계획을 발표하자 네타냐후는 강경발언을 이어가며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이 때문에 샤론 총리와 심하게 다투어서 장관직을 사퇴해야 했다. 그리고 샤론이 리쿠드를 탈당하고 중도정당인 카디마당을 새로 창당했으며 이후 네타냐후는 잔류 리쿠드당을 이끌게 되었지만 잔류 리쿠드당은 2006년 총선에서 단 12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고, 득표율도 한 자릿수에 머무는 대패(8.9%)를 거두면서 자연히 네타냐후의 입지도 좁아졌다.

2.3. 2차 집권(2009년 이후)


그러나 카디마당과 노동당 간의 불협화음이 계속 이어지고, 하마스를 패퇴시키겠다며 가자지구 봉쇄정책을 시행했다가 국제사회 반응이 그리 좋지 않고, 2008년을 전후하여 불어닥친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하여 경기침체로 지지율이 떨어지는 기미를 보이자 가자지구 공습을 감행하지만 이스라엘 외부 반응이 좋지 않은 가운데, 네타냐후는 카디마가 무르다며 강경발언을 계속 이어갔고, 카디마당에게 실망한 우파에게 지지를 받았다. 결국 2009년 총선에서 카디마에게 근소하게 뒤쳤지만(카디마 22.5% 28석, 리쿠드 21.6% 27석) 전체적으로 우파가 우세한 터라 두 번째로 총리가 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그 이후에 팔레스타인을 힘들게 만드는 대 팔레스타인 강경대책을 내세워서 팔레스타인이 더 힘들어지고 이스라엘을 하루도 조용할 날없는 국가로 만들었다. 2011년에 경제불안과 취업난, 고물가, 급속한 부동산값 상승에 시달린 나머지 분노한 시민들을 중심으로 전쟁 신경쓰지 말고 민생대책 세우라며 대대적으로 시위가 일어나며 수습한다고 위기를 맞기도 했다. 2013년에 이스라엘 베이테누와 선거연합을 하고, 가자지구 공습을 감행했다가 본래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바람에 총선에서 패배했지만(43석->31석 23.3%) 좌파가 의회에서 의석을 많이 확보하지 못했고, 네타냐후는 중도파에게 손을 내밀어서 세번째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에 경제불안과 부동산값의 상승은 지속되었고 네타냐후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 가자지구 공습을 강행하다가 결과도 안 좋고 국제적으로 욕만 먹었다. 그런 가운데서 2014년 말에 팔레스타인 장관이 정착촌 건설에 항의하던 도중에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멱살을 잡히고 나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데다가 유대민족법 통과를 하겠다고 밝혀서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이 고조된 가운데서 중도파와의 연정을 깨고 의회해산을 감행하며 2015년 3월 17일에 총선이 치러지게 되었다.
선거 초반에 네타냐후가 이끄는 리쿠드당이 승리할 걸로 예측되었지만 선거 중반들어 경제문제가 쟁점이 되자, 네타냐후는 4번째 집권을 위해 미국방문을 추진하였고 2015년 3월 3일에는 미국상원에서 연설을 했는데 주 내용은 북한의 핵을 비교하며 [9] 이란의 핵개발에 대한 미국의 대처와 이에 따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연설 내용은 둘째치고,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의장 초청으로 이루어진 이 연설을 민주당백악관 동의 없이 공화당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인 탓에, 연설 당시 민주당은 불참했고 공화당만 참가했다. #
그러나 이러한 행보는 오랜 고물가와 경제 위기, 전쟁, 테러에 시달린 이스라엘인에게 별다른 호소력을 가지지 못했고 네타냐후 부인 사라의 비리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미국, 팔레스타인과의 관계 개선과 민생 대책, 평화주의 정책을 천명한 좌파정당연합 시오니스타연합의 지지율이 오르면서 재집권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 이 때문에 선거 유세 마지막날 재선되면 팔레스타인 국가의 건설을 막을 것이다라는 발언으로 보수층 결집을 시도했다. 그 호소가 약빨이 먹힌 모양인지 출구조사에서 극우정파(유대인가정당)에 투표할 유권자가 대거 리쿠드를 뽑는것으로 나타나서 시오니스트연합과 접전을 벌이는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최종 개표결과에서 보수,우파 성향의 유권자들이 대거 리쿠드를 뽑는 바람에 원내 1당 자리를 유지하고 불리한 판세였지만 오히려 이전보다 의석수를 늘렸다.(이전에는 이스라엘 베이테누와 합치면 31석이었는데 이번에는 합해서 35석) 물론 우파가 획득한 의석이 2013년 총선에 비해서 감소되었지만 그럼에도 예상외로 우파가 선전했다. 국내 안보에 대해서 높은 능력을 보이고 있고 국제 여론이 그리 좋지 않음에도 외교적으로 노력하며 평화주의자들을 반역자라고 매도하는 것을 네타냐후 본인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양성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그와 관련해서 이스라엘 국내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 본인은 강경파라서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을 멸망시키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무장단체들은 멸망하기는 커녕 강인하게 살아남고 있으며 하는 것마다 삽질만 연속하는지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래서 강경책만 쓰는 과거의 노선을 포기하고 회유책도 같이 쓰고는 있다. 하지만 이 양반도 극우 정치인이다보니 회유책은 잠깐이고 그저 강경책밖에 안 쓴다. 그러다보니 팔레스타인과 아랍권에서는 천하의 개쌍놈으로 증오받는다.
여하튼 종교 정당 및 보수주의자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연정구성에서 중도정당 한 곳 정도 끌어와서 4선에 성공했다. 한편 미국 백악관은 네탸냐후에게 축하 대신 독설로 축복해줬고(...), 네타냐후도 선거운동에서 재선하겠다고 똥 싼 걸 수습하려 2국가 논의는 철회 안 하기로 했다고 발언했다.
2015년 10월 20일에는 홀로코스트의 책임을 팔레스타인인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하여 또 논란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열린 세계시오니스트총회에서 그는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유럽에서 내쫓으려고만 했는데, 당시 팔레스타인의 무프티였던 아민 알 후세이니가 유대인들을 태워죽여야 한다고 선동했다고 주장하였다는 것.동영상
영국 가디언에서는 유럽에서 불고 있는 이슬람 혐오 정서에 편승하여 지지를 얻으려는 수작일 수도 있다고 비판했으며, 심지어 독일의 보수언론인 디 벨트(Die Welt)의 논설위원 알란 포세너(Alan Posener)는 이스라엘의 정치지도자가 홀로코스트에서 히틀러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대단히 충격적이라며 에둘러 비판했다. 팔레스타인 당국의 협상 대표인 사에브 에레카트는 “네타냐후가 팔레스타인인들을 너무 싫어해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2016년 1월 27일에는 테러엔 타협은 절대 없고 강경대응만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이스라엘의 탄압과 차별 때문에 테러가 계속 발생하는 것이며 원인제공을 한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응한 답변이 가관인데 반기문 총장의 발언은 테러를 조장한다며 유엔이야말로 오래 전부터 중립성과 도덕적 힘을 잃어버렸다는 역비난을 했다.[10]
3월에는 미국과 유럽에게 이란 핵협상을 반대하며 이란에 대한 제재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란 핵협상이 타결되자 역사적 실수, 나쁜 거래라고 비난하며 백악관 방문을 취소했다.
같은 해 5월에도 서방세계에서 번지고 있는 반이스라엘 감정과 반유대주의에 대하여 적반하장식의 비난을 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의 골칫거리인 재정 적자를[11] 해소하기 위해 세금을 올리고 공공 서비스를 축소하겠다고 밝혀 반발을 사고 있다. 무엇보다 네타냐후 본인과 부인 사라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여 이스라엘 내에서 심한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부인 사라가 관사 직원들한테 심한 갑질을 2번씩이나 하는 바람에 빡친 관사직원 2명이 그만두고 손해배상을 요구하여 물의를 일으켜서 곤혹을 겪기도 했다.[12]
이러다보니 청렴한 편이 아닌데 6월에는 사기 혐의로 파리에서 기소된 프랑스 사업가 아르노 맹랑에게서 17만 유로의 자금을 받았다고 본인 스스로 시인하면서 이스라엘 내에서 뇌물수수 물의를 일으켰다.
덤으로 아들도 질세라 온갖 논란을 만들어냈다. 아들인 야이르 네타냐후는 총리 관저에서 키우는 개를 데리고 2017년 여름에 예루살렘 공원으로 산책가서 개똥을 놔두고 갔다가 한 시민에게 똥 치우라는 말에 박큐 내밀어서 이게 사진까지 찍혀 엄청 욕먹었다. 진보활동을 하며 반정부적인 글을 쓰며 이스라엘 정부와 갈등을 빚어온 몰라드라는 언론인이 "무직에 공직도 없는 야이르는 그저 애비가 총리라고 총리 관저에서 호의호식하고 산다. 게다가 피땀어린 국민들 세금으로 놀구먹으며 24시간 중무장한 경찰 보호받으며 사는 잘난 황태자님이시다."이라고 야이르를 까버렸다.
헌데, 야이르 네탸냐후는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옴리 샤론(아리엘 샤론 전 총리의 아들)은?그놈도 나랑 똑같았고 그놈은 불법 모금으로 징역살이나 하던 놈인데? 라고 SNS으로 올려 물타기를 해버렸다. 옴리 샤론도 질세라 SNS으로 개똥 치우는 것도 못하는 주제에 왜 나를 끌고 넘어지냐?라고 맞서며 서로 엄청 욕을 해대는 일이 있었다. 예루살렘 포스트 지는 '''현역,전 총리의 아들들의 개싸움'''이라고 둘 다 디스했다.
7월에는 군부와 의견차이로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선배인 에후드 바라크 전 총리는 네타냐후 정부가 파시즘을 표방한다며 네타냐후 총리의 사임을 요구했다. 모사드와 신베트 등 정보기관 전직 수장들과 유명 군 인사들, 최측근이던 타미르 파르도 전 모사드 국장까지 네타냐후한테 맞서고 있어 정치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러다보니 네타냐후 정부에서 일한 군사·보안 인사 17명 중 13명이 갈리는 등 비판적인 인사를 싫어하여 일방적으로 숙청하는 양상이다. 특히 측근 아비그도르 리에베르만을 국방장관에 임명한 것 때문에 반대파들로부터 심한 비난과 반발을 샀다.[13]
11월에는 이스라엘 경찰과 검찰이 뇌물 및 불법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하겠다고 하여 곤혹을 치르고 있다. 이스라엘 검찰은 네타냐후 총리의 최측근이었던 아리 하로 전 비서실장이 비리를 저질렀고 네타냐후 가족들이 이스라엘 재벌 기업들로부터 뇌물과 편의를 제공받았다며 네타냐후 총리를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네타냐후 총리는 혐의를 부정하며 적대세력이 자신을 모함하고 거짓말을 한다며 반발한다.
12월에는 이스라엘 검찰로부터 조사를 받아 국내에서의 입지가 떨어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번에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가능성을 내비쳤다.# 또, 언론재벌과 유착·뒷거래 의혹이 불거졌다.# 특히 측근들이 방산비리 혐의로 체포되었다.#
개인적으로 열혈 대처리스트이기도 한데, 그래서 이스라엘 내에서도 노조와 관계가 극히 안 좋으며 파업에 대해서도 강경대처로 일관하고 있었으며 이스라엘 내의 주요 재벌들과 친한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2010년경을 전후하여 이스라엘 경제가 지표상으로 회복되기 시작한 이래로 임대료가 폭등하자 중산층들에게도 욕을 무진장 퍼먹으며 2011년에 대규모 시위를 겪은 이후로는 재벌해체를 단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면서 어느정도 노선전환을 했기는 했는데 재벌해체를 단행하지 않으면 지지를 상실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단행한것이다.[14] 이스라엘 내에서도 주요 신문사와 방송사들에게 엄청나게 욕을 듣었는데 네타냐후와 친한 미국 부자인 애덜슨이 친네타냐후의 성향의 이스라엘 하욤 지를 창간하면서 무료로 보급했기 때문이며 이 때문에 주요 신문사들의 돈줄이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덕택에 기자들이 대거 실업자로 전락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이러니,극우 언론들도 팔레스타인이니 하마스 이상으로 이스라엘의 적이 바로 총리라고 대차게 까버릴 정도가 되었다. 거기에다가 이스랑레 하욤지가 막가파 언론이라는 평을 듣기때문에 이스라엘 내는 물론이고 이스라엘 외에서도 욕을 크게 먹는 언론이기도 하다.
2017년 8월엔 안 그래도 입지가 위태위태한 마당에 버지니아 샬럿빌 극우단체 폭력시위에 관해서 도널드 트럼프양비론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여 또 다시 비판받고 있다. 이게 문제가 된 이유는 다른 인종차별단체도 아니고 하필 네오 나치가 연관된 사태에서 보인 반응이 이 모양이기 때문. 네오 나치를 비난하던 독일의 반응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2018년 5월 이스라엘을 방문한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런데 환영 만찬 때 올라온 메뉴가 큰 구설수에 올랐다. 당시 만찬 메뉴 중 디저트는 이스라엘의 스타 셰프로 알려진 세게브 모셰가 준비하였다. 그런데, 이 디저트는 남자 구두 모양의 철제 조각품 식기에 담긴 초콜릿이라는,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메뉴였다. 일본과 이스라엘 외교당국 모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나, 이에 대한 공식적인 해명이 없어서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2018년도 들어서 더욱 노골적으로 서방 극우세력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 2018년 7월 헝가리 오르반 빅토르 총리와 만나서 회담을 했는데 회담에서 "헝가리의 유대인들은 진정하게 안전하다"와 같은 발언을 해서 비판받고 있다. 오르반 빅토르의 우익 정권이 유대계 헝가리인인 조지 소로스에 대한 음모론을 신봉하면서 반유대주의적인 발언과 정치 광고등으로 논란을 일으켰는데도 말이다! 또한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몇 안되는 세계 지도자이기도 하다.[15]
물론 그렇다고 네타냐후도 서양의 극우세력들을 전부 다 편 들어 주는 것도 아니다. 물론 트럼프에게 이란핵합의 복귀를 선동한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도 싫어하지만, 현재 프렉시트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홀로코스트 부정론 등 나치 옹호 발언 논란 으로 물의를 많은 프랑스 극우 국민전선 (RN) 과는 홀로코스트 부정론 논란이나 이스라엘의 적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을 옹호하는 친-헤즈볼라 행보 등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 극우이자 현재 부총리를 맡고 있는 마테오 살비니도 현재 2차대전 때 아돌프 히틀러를 도와줬던 이탈리아의 전범 베니토 무솔리니를 찬양하는 발언을 많이 해서 살비니를 극도로 싫어하며, 독일의 극우이자 친나치 행보를 보이는 AfD는 테러 조직으로 취급한다.
2018년 11월 아비그도르 리버만 국방장관이 하마스와의 휴전에 항의하여 사임하자 네타냐후 총리는 스스로 국방장관을 겸직했다.#
12월에 연정 해산 선언하였고, 2019년 4월에 조기 총선을 가진다. 이는 이스라엘 고등법원이 토라 연구자들의 군면제를 허가하는 법률을 위헌으로 판결한 이래 집권 연정은 신규 입법을 추진해 왔지만 연정에 참여한 세속주의 정당과 초정통파 정당 사이의 다툼으로 실패했다. 세속주의 정당은 토라 연구자의 의무복무를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초정통파가 지지하는 ‘유대인의 집’ 등 종교적 시오니즘 정파는 반대로 징집 축소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중간 입장인 네타냐후 총리와 리쿠드당이 양측의 조율에 실패하면서 조기 총선이 확정됐다고 한다.# 총선 국면 중에 검찰이 뇌물수수와 배임 및 사기 등 부패혐의로 기소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경제 상황, 부패 문제로 한동안 지지율이 고전치 못하다가 총선 일주일 앞두고 골란고원 등 다시 안보 이슈가 강조되자 지지율에서 앞서기 시작했다.# 리쿠드당이 이른바 'SNS 부대' 운영을 통한 부정 선거운동 의혹에 휩싸였다.#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이 핑계를 대고 중도정당연합 '블루와화이트'(Blue and White)의 베니 간츠 대표에게 연립정부 구성권을 부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총선 승리시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합병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과거 이스라엘 지도자들도 현명하지 못한 정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라는 점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총선 결과는 리쿠드당과 중도정당연합 '블루와화이트'(Blue and White)의 의석수가 1석 차이로 리쿠드당이 제1당이 되었다. 노동당은 6석까지 완벽하게 줄여들었다. 과반 미달이므로 다른 보수정당의 연정을 통해 사실상의 5선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2019 4월 총선 이번 네타냐후의 총선 승리는 맹목적 민족주의, 유대인 쇼비니즘, 반 엘리트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Bibi the conjuror
또, 부인 사라 네타냐후의 국가돈으로 호화 식사를 하여 벌금형을 선고된 상태이다.#
2013년에 정계은퇴 하다가 에후드 바라크 전 총리의 정계 복귀 선언으로 네타냐후 총리를 막겠다며 신당 창당 발표한 상태이다.# 당 이름은 이스라엘 민주당이며, 메레츠, 녹색운동 함께 민주연합을 결성한 상태이다.
9월 총선 앞두고 친이란 세력을 미사일 등 공격하는 형식으로 안보문제를 다시 꺼내들었다.# 또,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도 얘기했다.#
9월 총선 출구조사에서 리쿠드당과 청백당의 접전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도연합정당 청백동맹이 제1당 오르면서 연임 가능성이 반반되고 있다. 의석수 합쳐도 61석에 못미쳐서 베니 간츠와 번갈아가며 총리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먼저 총리후보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연정 실패로 하였다.#
국방장관을 극우 나프탈리 베네트를 지명하였다.#
11월에 검찰로부터 기소되었다.# 면책특권을 요구한 상태이다.# 1월에 철회했다.#
결국은 12월 12일 0시부로 총리 지명 시간이 종료되어 2020년 3월 2일에 역사상 3번째 총선을 치르게 된다.
26일에 열린 당대표 선거에서도 72% 얻어 재신임을 받았다.#
2020년 1월 2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그리스, 키프로스 정상과 지중해의 해저 가스관 건설 사업에 서명 도중에 핵무기 보유했다는 말했다가 정정한 소동이 있다.#[16]
선거를 앞두고 구 연립정당들이 네타냐후를 지지하였다.#
2020년 2월 23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관련하여,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직접 2020년 2월 24일부로 한국인, 일본인을 포함하여 대한민국일본을 14일 이내에 방문한 모든 외국인을 입국 금지하고, 이스라엘 국민 역시 한국, 일본을 14일 이내에 방문하였다면 이스라엘 국내에서 14일 간 격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입국금지 결정을 한국, 일본 정부에 통보하였다고 한다. 기사
3월 열린 3차 재총선 결과로, 청백당과 3석 차이로 의석 차이를 벌리며 이번엔 승리했다. 하지만 여전히 베이테누 당의 도움 없이는 연정을 구성하기 힘든 상황. 거기에 더해 코로나19 확진자가 이스라엘에서도 증가하면서 거국내각 논의 중이다.# 재판도 미뤄졌다.# 이스라엘 대법원도 네타냐후가 새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베니 간츠와의 협상이 완료되어 5월 17일부로 거국 내각이 구성되었다.
5월 24일에 그의 부패 혐의에 대한 첫 재판을 가졌다.#
간츠 부총리와의 약속대로라면 마지막 임기가 될 자신의 5번째 내각 출범 이후 인기가 급전직하하고 있는데, 코로나19 감염병에 대한 대처 실패 및 실업률 급증(21.5%)으로 민심을 상실했다.# 점차 이스라엘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데, 자신을 지지하는 우파 성향 지지자들이 반정부 시위대를 폭행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또 한번 곤혹에 빠졌다.#
이런 와중에 청백당과 갈등이 다시 나오고 있다.# 이처럼 내부에서는 위기가 맞이했지만, 외교에서는 아랍 국가와의 정상화, 수교하면서 성과를 내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을 먼저 맞았다.#
결국 2021년 예산안이 부결되면서 4번째 총선을 치루게 된다.# 위기가 커지자 아랍계 주민들을 포섭에 나섰다.#
그런 와중 법원에 부정부패 혐의에 대하여 무죄를 주장했다.#

[1] 성경 표기의 영향으로 "베냐민"과 "네타냐후"라는 표기로 굳어져 있으나 히브리어에서는 한국어의 "냐"에 해당하는 /nja/ → [ɲa\] 발음이 존재하지 않으며 자음과 반모음 y의 조합음이 /C.j/로 분절된다. 때문에 실제 원어 발음은 "빈야민 네탄야후"에 가깝다.[2] 그 전 기록은 다비드 벤구리온 총리의 4,875일.[3] 벤치욘 네타냐후의 본래 성씨는 폴란드어식인 '밀레이코프스키(Milejkowski, מיליקובסקי)'였으나, 이후 네타냐후로 성을 바꿨다. 네타냐후는 히브리어로 '주님께서 주신'이라는 뜻이다.[4] 형과 같은 부대인 사예레트 마트칼(Sayeret Matkal, סיירת מטכ״ל) 출신이다.[5] 이 때문에 영어를 프리토킹할 정도로 굉장히 잘한다.[6] 1996년부터 2001년까지는 국회의원 선거와 별개로 총리 직선제를 시행했지만 문제점이 발생하면서 2003년 이후로 폐지했다.[7] 이 시기는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 등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협상을 추진했던 이츠하크 라빈(1967년 6일전쟁 당시 총참모장) 총리가 극우 유태인에 의해 피살당한 직후였다.[8] 여담으로 이때 47세의 나이로 당선되어 이스라엘 역사상 최연소 총리였다.[9] 다만 유의할 점은 현재 국제사회가 기정사실로 다루는 이스라엘의 핵무장은 모두 적지 않은 수의 정황증거들(예: NPT 가입 거부, 디모나 원자로를 비롯한 핵시설 존재, 1986년 모르데카이 바누누의 관련 정보 폭로)에 따른 것들이다. 이스라엘은 공식적으로 핵무장을 인정하거나 핵보유국 지위를 선언 및 요구한 적이 없으며, 핵실험 역시 적어도 공개적인 기준으로는 실시한 바 없다. '확인도 부인도 거부한다'(NCND: Neither Confirm Nor Deny)는 핵모호성의 전형적 사례. 이스라엘이 핵무장 여부에 관해 밝히고 있는 공식적인 입장은 1960년대 미국 측에 보낸 외교전문에 포함된 "중동에서 핵무기를 '도입'(introduce)하는 첫 국가가 되지 않겠다"가 전부다. 이는 매우 중의적인 내용으로 핵무장을 정책적인 선택에서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가운데, 공개적인 활동 이외의 비밀 개발, 비축 등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10] 진짜 말도 안되는 자기합리화인데 반총장은 팔레스타인들의 테러도 비난해서 테러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특히 원인제공을 누가 하는지를 제대로 말해주었는데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11] 주요 원인은 군사비다. 미국의 지원 받는다 해도 무장단체들의 공격과 팔레스타인인들의 테러로 인해 국방비가 갈수록 늘어나기만 하니 뭐...[12] 사라 네타냐후 여사는 이스라엘 내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퍼스트 레이디로 악명높다. 게다가 이 갑질을 2015년과 2016년에 2번씩이나 했다. 참고로 사라는 3번째 부인이다.[13] 측근이라서 성향이야 네탸나후와 똑같은 극우지만 문제가 아비그도르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군사적 경험이 없는 장관이라서 그렇다. 그러다보니 최악의 낙하산 인사라고 비난받는다. 특히 아비그도르는 팔레스타인인들을 테러범으로 취급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임시 행정수도인 요르단 강 서안 지구 라말라와 이집트 아스완 댐에 폭탄을 투척해야 하며 팔레스타인 수감자를 모두 사해에 던져 익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악랄한 극우 정치인이다. 특히 이 양반은 국방장관 되자마자 그저 극단적인 정책만 하라고 군에 지시하니 상황만 더 악화시키고 있다. 팔레스타인 잡고자 일단 외교국인 이집트의 아스완 댐에 공격을 가하는 건 안 그래도 이슬람권에서 요르단과 더불어 유이한 외교국가 이집트를 40년만에 적군으로 돌리는 행위며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국교화 이후 최대한 서로 충돌을 피하는 터에 이런 짓을 하는 건 미국도 무마가 힘들다.무엇보다 아스완 댐 공격하면 이집트 피해도 엄청나니 이집트가 이전과 달리 죽어라 덤벼들테고 ...[14] 물론 이스라엘의 재벌 대기업들은 어차피 규모가 이스라엘에서만 크고 세계적으로보면 중소기업에 불과하기 때문에 재벌 해체해봤자 그게 그거다.[15] 사실 이것도 그렇고 버지니아 극우 폭력시위에서 침묵도 그렇고 네타냐후는 좌파성향 유대인들한테도 '''대-팔레스타인 잔혹행위에 대한 반대는 반유대주의로 마녀사냥하면서 정작 서양 극우세력의 반유대주의에는 침묵하고 오히려 극우세력 편들어준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왜냐하면 '''반유대주의자를 방치해서 유대인이 차별받으면 이스라엘을 편드는 유대인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종의 적대적 공생관계인 셈.[16] 실질적으로는 이스라엘은 핵무기 보유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