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파운더

 




[image]
1. 개요
2. 제원
2.1. 관통력[1]
3. 개발
4. 특징
5. 장착된 차량
7. 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Ordnance QF 6-pounder (6-pounder) / 57mm M1. 오드넌스(Ordnance)는 화포, QF는 퀵-파이어링을 말하니 '6파운드 속사포'로 번역할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대전차포.

2. 제원


'''Ordnance Quick-Firing 6-pounder 7 cwt'''
'''57mm Gun M1'''
  • 중량 : 1,140kg
  • 운용요원 : 6명
  • 포탄 : 57×441mm. R
  • 구경 : 57mm
  • 포신길이 : 2.54m (Mk.II, III용으로 43구경장일 때, Mk IV, V와 M1은 50구경장으로 증대함)
  • 폐쇄기 : 수직 슬라이딩 블록
  • 상하각도 : -5° 에서 +15°
  • 좌우각도 : 90°
  • 유효사거리 : 1,510m
  • 최대사거리 : 4,600m

2.1. 관통력[2]


50구경장의 스펙이다.
  • 영국 포탄
포탄 종류
100m
500m
1000m
1500m
2000m
AP
135mm
112mm
89mm
70mm
55mm
AP*
-
81mm
-
-
-
APCBC
115mm
103mm
90mm
78mm
68mm
APCBC*
-
81mm
74mm
68mm
63mm
APDS
177mm
160mm
140mm
123mm
108mm
APDS*
-
131mm
117mm
103mm
-
APDS는 1944년 3월부터 생산
  • 미국 포탄
포탄 종류
100m
500m
1000m
1500m
2000m
AP
135mm
112mm
89mm
70mm
55mm
APCBC/HE[3]
110mm
98mm
85mm
73mm
64mm
  • 포탄의 입사각은 별도의 표시가 없으면 수직으로 입사한 것이며 탄종에 *표기가 된 경우 30도로 입사한 경우임.[4]

3. 개발


대전 초기에 영국군이 대전차포로 사용하던 2파운더는 여러 모로 대전차 임무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1942년에 북아프리카 전역에 최초로 등장하여 기존 2파운더의 대전차 임무를 빠르게 대체하였다. 미군도 이 포를 M1 대전차포(57mm Gun M1)로 이름지어 주력 대전차포로 사용하였다. 특이한 점은 포신의 길이가 짧은 Mk.II의 라이센스를 샀는데, 길이는 Mk.I과 같은 50구경장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이는 덩케르크 철수 작전 이후 영국이 장포신 6파운더를 생산할 설비가 부족하여 임시로 단포신을 제작한 것이었는데, 당연히 미국은 그런게 부족하지 않으니 그냥 장포신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후 아프리카 전선에서 대전차 능력의 중요성이 대두되어 영국도 장포신을 생산하게 된다.
전설적인 티거 에이스 미하일 비트만을 잡은 대전차포의 후보로 오르기도 한다. 17파운더와 함께 다구리를 쳐서 티거를 무력화. 3월부터 APDS가 보급되었기 때문에 충분히 티거를 관통할 수 있었다.
2파운더를 대체하기 위한 포인 만큼 왕립 울위치 조병창에서 빠른 속도로 개발되었는데, 19세기 말부터 해군에서 사용하던 57mm 구경을 채택하여 기존 생산 라인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포의 디자인은 40년에 완성되고 포가는 41년에 완성되었지만, 프랑스의 패전으로 인해 기존의 2파운더 포의 생산과 훈련/보급이 우선시되어 결국 전선에는 42년에 등장한다. 주된 생산지는 영국과 캐나다이다.

4. 특징


크기와 중량이 인력 운용 대전차포의 한계에 가까워서, 대전 후기에 등장하는 막강한 나치 독일군 전차를 정면에서 격파할 수 있는 17파운더가 개발된 뒤에도 6파운더는 계속 사용하게 된다.[5] 또한 미군에서도 대전차포로 시대에 뒤쳐진 37mm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6파운더의 성능을 보고 즉시 라이센스 생산을 시작하여 57mm M1으로 제식 채용했다.
배치된 당시에는 나치 독일군의 모든 전차를 격파할 수 있었지만 6호 전차 티거와 같은 중전차를 쉽게 격파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절대 무리였다.[6] 그러나 판터와 중전차를 제외한 모든 중형전차를 상대로는 충분한 위력을 발휘하였고 이후 APDS 등의 신형탄이 보급되면서 티거같은 중전차들도 관통하여 충분히 격파해볼 수준의 위력을 가지게 되었다.
영국 APDS의 고질적인 약점인 탄도 불안정 때문에 500야드 이상에서는 분리철갑탄 사용시 명중률이 급감하는 결점이 있었다. 탄이 가벼운 만큼 17파운더보다 더 명중률 저하가 심했지만 17파운더의 최대 단점은 포구화염 및 연기로 인한 차탄 명중률 저하였으니 17파운더보다는 차탄발사가 용이하였을 것이다.
전차들은 APDS 생산시기 전부 75mm로 전환되어서 6파운더 APDS를 사용해보지 못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전쟁 후기에 6파운더를 장작한 처칠 크로커다일이 발견되어 전차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나마 전작인 2파운더가 장갑관통력만 생각한 나머지 철갑탄만 생산한 것과는 달리 급조한 결과 구경에 비해 위력이 수류탄 수준이지만 고폭탄을 제조하여 대보병 및 비장갑 차량 등에 대해서도 공격력을 가지게 된 점은 나름의 개선점.
처음부터 차량 장착을 생각하고 설계했기 때문에 견인식과 차량장착용에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5. 장착된 차량


일단은 주력 대전차포인만큼 다음 차량들에 탑재되었다.
6파운더 생산 초기에는 전차들에 단포신이 장착되었으나, 이후 장포신 생산이 원활하게 돌아가자 장포신을 장착하였다.
이 외에도 영국군은 트럭에 싣고 다니며 일종의 대전차 자주포로 운용하기도 했으며, 미군은 M3 하프트랙에 M1을 올려 대전차 자주포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다만 범용성 면에서 75mm보다 부족하여 영국은 파괴된 셔먼에서 떼어내거나 미국으로부터 75mm를 입수하여 전차에 장착하다 자체생산까지 하게 된다.
DH-98 모스키토 다목적 전폭기 중 일부는 7.7mm 기관총 2~4문과 함께 이 대포 1문을 장착해 해상 공격용으로 쓰였다.

6. 제2차 세계 대전


대전 후기에 이미 훨씬 우월한 성능의 대전차포들이 등장하고, 대전차포 자체가 사장되는 분위기인 만큼 전후에는 빠르게 모습을 감췄지만 전후 수에즈 분쟁과 같은 전장에 등장하기도 하였고, 중국과 남미의 일부 국가에선 해안포용으로 사용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6.1. 6.25 전쟁


[image]
한국군도 한국전쟁 당시 주력 대전차포로 이 포의 미국제 라이센스판인 M1 57mm를 대량 사용했다. 그러나 북한군의 T-34를 상대로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원인으로는 한국군 공식 전사에 의하면 위력부족, 백선엽 장군의 회고에 의하면 철갑탄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철갑탄을 사용했다는 회고록이 존재하며[7] 포병이 자기가 쏘는 탄종이 철갑탄인지 고폭탄인지 몰랐을 것 같지도 않고 고폭탄과 철갑탄을 분명히 구분하면서 고폭탄을 더 많이 받아왔다는 회고[8] 또한 존재하므로 철갑탄 자체가 없었다는건 의심스러운 이야기다. 다만 철갑탄만 있었어도 전차를 잡을 수 있었을텐데 라는 식의 회고도 존재하므로 일선 부대에 보급된 철갑탄이 부족했다는 의미라면 여전히 가능성은 남아 있다.
1950년 1월 1일, 주한미군사고문단에서 한국군과 경찰, 해군의 모든 장비들을 검열하면서 올린 보고서에 따르면 57mm 대전차포의 탄약 상태를 확인할 수가 있는데 탄종은 HE(고폭탄)과 APC-T(피모철갑탄), 그리고 Drill(더미탄)로 크게 3종류였다. 1950년 1월 1일 기준으로 한국군은 총 44,776발의 57mm 대전차포를 보유했고 이중 HE탄은 36,192발을, APC-T탄은 8,352발을, Drill탄은 232발을 보유하고 있었다. 전체 보유탄약의 80%가 전부 고폭탄이었던 셈이고 철갑탄은 전체 대전차포들에게 72발 씩만 보급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 철갑탄이 없었던건 아니나 탄약의 대부분이 고폭탄이었고 이는 당시 한국군이 대전차포를 대전차용이 아닌 보병지원용 경야포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9]
초기 전투에서 고폭탄을 적 전차에 사격하였으니 격파가 될 리가 없었을 것이다. 당시 대전차 전투 증언을 보면 탄약의 구분을 전혀 하지 않는걸로 봐서 탄약의 구분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당시 한국군에게 없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좋지 않은 결과가 난 이유가 실제 위력 부족인지 아니면 낮은 명중률과 낮은 훈련도가 겹쳐, 명중탄을 내지도 못했으면서 명중탄을 냈다고 착각하는 경우인지는 확실치는 않으나 후자의 경우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 및 미군에서 흔히 발생했으며, 이것을 위력 부족으로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 일단 위의 관통력 표에서 볼 수 있듯 포 자체의 관통력은 나쁘지 않은 물건이며 단순 수치상으로는 1000m 근처에서도 노려볼만한 성능이라 위력이 부족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미국 군사고문관이 직접 T-34에 조준사격을 했음에도 격파에 실패하는 것을 확인한 후 탈출한 기록이 있어 확신하기는 어렵다. 일단 T-34는 경사장갑이 적용되었으니 실제로는 수직장갑보다 관통하기가 더 어려운 것도 있고[10] 실전에서 정직하게 전면을 들이밀지는 않았을 테니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숙련도가 낮은 상태라 실전에서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국내에는 다부동 전투 전적 기념관에 1문이 전시되어 있다.#

7. 매체에서의 등장


월드 오브 탱크에서는 미국 전차 트리의 M8A1로 나오며 그럭저럭 쓸만한 주포다. 6파운더라는 이름 자체는 영국 전차 트리에서도 쓰이고 있으며, 미국 미디엄 5티어 M7의 경우 철갑탄과 고속철갑탄만이 사용 가능한 6파운더를 지니고 있다.
워 썬더에서는 전차 탑재형으로 등장. 영국제 포 답게 관통력은 우수하나, 작약이 없는 쇳덩어리라 내부 파괴력은 많이 부족하다. 미국의 프리미엄 T18E2 장갑차와 M4A5 램, 영국의 크루세이더 후기형, 처칠 초기형, 그리고 크롬웰 초기형[11] 등 여러 차량에 장착된다. 독일은 노획한 초기형 처칠에 등장, 소련은 랜드리스로 받아온 M3 하프트랙에 M1 대전차포를 탑재한다.[12]
배틀필드 5에서 나오는 연합군 고정형 대전차포가 바로 해당 문서의 6파운더이다.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미군 진영에서 대전차포 유닛으로 등장한다.

[1] Bird, Lorrin; Lingston, Robert (2001). World War II Ballistics: Armor and Gunnery. Albany, NY USA: Overmatch Press. pp. 60, 62. 및 Great Britain's Gun Penetration Tables 에서 가지고 옴[2] Bird, Lorrin; Lingston, Robert (2001). World War II Ballistics: Armor and Gunnery. Albany, NY USA: Overmatch Press. pp. 60, 62. 및 Great Britain's Gun Penetration Tables 에서 가지고 옴[3] Dunnite(Explosive D)라는 폭약이 34g 정도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Ordnance_QF_6-pounder#Ammunition[4] 여담으로 대한민국육군협회에서 출판한 '우리가 겪은 6.25 전쟁 1권' 121쪽에서는 어디 출처인지 457m에서 36mm의 관통력을 보인다는 잘못된 서술이 나온다. 반면 더 소형인 소련의 45mm는 500m에서 66mm의 관통력을 보인다고 서술되어 있다.[5] 17파운더는 차량이 없다면 운용이 불가능했다. 때문에 영국은 17파운더의 자주화에 힘을 썼다.[6] APCBC로 500m 이내에서 판터의 포방패와 티거의 차체 전면을 관통할 수 있었지만, 견인식으로 500m면 코앞이고 판터의 차체나 티거의 포탑에 맞으면 못 뚫으니 제한적이었다. 다만 대전차포는 전차의 궤도만 끊어도 충분히 활약한 것이다. 거기다 6파운더로 T-34를 막아내지 못한 국군에게 지뢰를 매설했는지 묻는 등 당시 대전차화기는 대전차포 단일로만 사용하는 개념이 아니었다.[7] 18연대 대전차포중대의 청주 남쪽 대전차전[8] 포병학교 57밀리 대전차포 소대의 초전 3일[9] 실제 전쟁 발발부터 종전까지 꾸준히 활약한 북한군의 ZiS-3 76mm 대전차포는 대전차 임무 외에도 보병 지원용 야포로 활용되었다. 대다수 국군 참전용사 증언에는 고지에 은엄폐한 ZiS-3가 상당히 까다로운 상대로 기억되고 있다.[10] 320m쯤 들어와야 관통이 가능하다.[11] 크롬웰I이 크롬웰V보다 BR이 높은 이유는 더 높은 관통력, 더 빠른 속도, 더 높은 장전속도 때문이다.[12] 물론 둘 다 프리미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