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차 자주포

 


'''"찾아라, 공격하라, 파괴하라!"'''(공식 구호)

'''"쏘고 튀자!"'''(비공식 구호)

- 미국 육군 대전차 자주포 부대

"결국, 정규 탱크들은 이런저런 지원차량이 없으면 제 역할을 못했던 걸까요? 이 점이 좀 이상하긴 합니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 탱크가 적 탱크를 잡을 수 있을거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 밀리터리 Q&A, 히스토리 채널.

영어(영국): Self Propelled Anti-tank gun, Gun Carrier[1]
영어(미국): Tank destroyer[2], Gun Motor Carriage[3]
독일어: Panzerjäger[4]
1. 개요
2. 실전
3. 형태
4. 대전차 자주포 일람
5. 관련 문서


1. 개요


대전차전을 상정하고 제작된 자주포의 일종. Tank destroyer의 하위 분류 중 하나로 분류된다.

2. 실전


2차 대전 이전까지는 기갑운용 경험이 없던 미군은 독일이 전격전을 도입해 전차들이 몰려다니며 싸운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전차나 보병과 함께 다니며 대전차 화력을 보충할 대전차 자주포의 개념을 생각해냈다. 적이 방어선을 뚫기 위해 전차로 집중 공격을 가하면 아군도 이에 맞춰 재빨리 대전차병기를 집중 투입해서 방어를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전차를 투입해서 방어를 하는 게 맞지만 전차는 비싸니까 방어 후 역습에 쓰도록 아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떄문에 값이 싼 대전차포를 사용하기로 했는데, 기존의 대전차포는 너무 느리니까 궤도를 달아 자주식 대전차포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즉 대전차포가 기동성을 살려 재빨리 매복한 후 몰려오는 독일 전차들을 방어하고 측면으로 우회해서 격파한다는 발상이었다.
따라서 미군의 대전차자주포는 장갑은 최대한 가볍게 두르고 높이를 낮춘 차체에, 시계를 확보하고 매복이나 적 전차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오픈탑 회전 포탑을 얹었다. 대전차전에서 장갑방어력을 지극히 경시하여 미군 대전차 자주포의 최대장갑두께는 견인식 대전차포 포방패보다 약간 나은 30mm에 불과했으며, 시계를 최대한 확보하려고 오픈탑 포탑을 달아놓은 바람에 적 야포와 박격포, 수류탄 및 보병의 육박 공격에 매우 취약해졌다. 또 적 전차와 싸우는 게 목적이란 이유로 포탑 뒤에 대공기관총은 달아도 차체 동축기총이 없는 것도 보병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물론 회전포탑을 채용한 것 자체는 실수가 아니라서 독일군의 구축전차와는 달리 전차와의 접근전이 벌어져도 빠른 포탑 회전속도를 살려서 먼저 적 전차를 조준하고 사격할 수 있으므로 매복에서는 유리했다. 문제는 미군의 경우에는 매복해서 적을 잡아야 하는 전투보다는 공격하면서 적을 추적해야 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방어전이라도 전선에 뚫린 구멍을 급히 메꾸려고 달려나가다 보면 적 전차와 정면에서 맞닥뜨려야 한다. 애초에 미군이 생각한 전투는 실전에서는 잘 벌어지지 않았고, 보병 입장에서는 대전차 자주포가 그냥 전차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전차 취급을 받아 공세 역할을 강요받기도 했으며, 이 때문에 대전차전에서건 대보병전에서건 안습 수준의 전투력을 보였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바로 빈약한 방어력보다 '''빈약한 화력'''이었다. 물론 M4 셔먼이 출현할 당시에 우월한 화력이었던 3인치 전차포를 장착하고 있었지만 이 주포는 잘만 맞추면 티거도 격파할 수 있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잘' 맞춰야 하는 안습한 포였다. 그것도 모자라서 나중엔 셔먼들이 이걸 들고 오는 바람에 장갑도 얇은 주제에 화력 우세마저 상실한 것. 따라서 방어력도 약하고 그렇게 빠르지도 않은 녀석이 공격력까지 빈약하니 수요는 뚝 떨어지고, 일선 지휘관들이 서슴없이 실패작이라고 할 정도로 평가가 박했다. 결국 M10은 대전차 자주포가 아니라 그냥 평사되는 자주포로 쓰이게 된다. 이 전과는 레슬리 맥네어에게 대전차 자주포는 몹쓸 물건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전차까지 불벼락을 뒤집어쓰게 된다.
하지만, 이는 90mm 대전차포를 장착한 M36 잭슨이 등장하면서 일거에 뒤바뀌고 만다. 당장 레슬리 멕네어의 뻘짓으로 인해 개발 중인 M26 퍼싱의 공백을 매울 전차가 없는 상황에서 M36잭슨의 등장으로 정면에서 티거와 판터를 격파가 가능한 유일한 장비가 생긴 것. 물론 종이장갑과 오픈식 회전포탑은 여전했지만, 전선에서의 요구가 쇄도해서 기존의 M10 울버린의 포탑을 교체해서 보내는 것도 모자랐기 때문에 셔먼 전차의 포탑을 잭슨의 포탑으로 교체한 임시방편 물건까지 등장했다. 그리고 전선에 도착한 잭슨은 현지 공병대의 도움을 받아 얇은 포탑 뚜껑까지 장착하여 사실상 전차 대용으로 사용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5]
이와는 반대로 장기간의 개발끝에 신형 현가장치를 장착해서 최대 88Km/h까지 안정적으로 낼 수 있는 M18 헬캣의 경우에는 여전히 빈약한 3인치를 개조한 76mm 포를 장착했지만 그래도 화력이 부족했고, 장갑은 더 얇아져서 대전차 소총에도 뚫리는 안습한 방어력 탓에 몇몇 노련한 전차병 외에는 대전차임무보다는 지원포격이나 정찰용으로 사용된다. 한마디로 전선에서는 화력만 충분하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메꿔서 사용한다는 이야기며 이는 독일군의 마르더만 봐도 충분하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데도 대전차 자주포를 미군이 채택한 이유는 2차대전 초기 대전차포(Hard Target)와 대보병포(Soft Target)를 분리하여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 상식이였고, 미군도 이를 따랐을 뿐이다. 이와 비슷하게 독일도 주포를 분류하여 3호는 대전차포를 4호와 돌격포는 대보병포를 장착했다. 다만 독일은 전차나 돌격포 등에 달아서 방어력을 경시하지 않았으며, 실전에서의 '''검증시기'''가 빨랐다는 것이다. 독일은 2차대전 초기 프랑스 침공, 바르바로사 작전, 북아프리카 전역을 거치면서 이 교리가 유용하지 않음을 검증할 수 있었고, 전쟁 중반 8,8cm와 장포신 7,5cm를 이용해 해결할 수 있었다.

3. 형태


  • 미국
기본적으로 대전차 자주포는 미국의 전술 차량으로, 등장 배경은 방어선을 향해서 공격해오는 밀집된 전차 무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위해서 값이 비싼 전차는 공격을 위해서 아껴두고, 상대적으로 값이 싼 대전차포를 자주화 시키는 것이였다.[6] 하지만 이 상황에 딱 들어맞는 전투는 2차대전 동안 딱 두 번 밖에 없었고[7], 완벽한 상황에서도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초기에는 대전차포에 바퀴만 달아준다는 발상으로 M3하프트랙에 75mm포를 장착하거나 닷지트럭에 37mm 대전차포를 장착한 M3GMC와 M6GMC를 만들었지만, 당연히 방어력은 견인식 대전차포와 다를바 없고 포탑도 없으니 성능이 좋지 못했고 37mm의 경우는 대전차포로서의 수명자체가 금방 끝나 버린다.
결국 이러한 초기형 대전차 자주포의 실패[8]로 37mm는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되고, 당시 영국에서 라이센스를 얻어와 생산중인 57mm 대전차포를 자주화 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다. 하지만 검토하던 중 57mm가 아닌 3인치 대공포를 선택하게 되고 이를 장착한 포탑없는 대전차 자주포를 설계, 시험하다가 셔먼의 차체를 공유하는 M10 울버린이 채택, 생산한다. 하지만 M10은 무겁고, 비싸고, 느리기까지해서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에 3인치 대공포를 사용하는 대전차 자주포의 개발은 계속 된다.
이렇게 대전차 자주포가 개발되고 발전하는 와중에 미군이 참전하게 되고, 자신들의 무기를 시험할 때가 다가오게 된다. 하지만 M6 GMC와 M3 GMC, 심지어 M10GMC 마저도 독일 전차부대에게 무참히 깨지게 되었다.(심지어 자신들이 대전차 자주포를 만든 배경인 방어전 상황이였고, 방어 자체는 성공했다.) 여기서 대전차 자주포를 포기하고 전차와의 역할 통합을 생각했다면 좋았겠지만[9], 대전차 자주포는 그대로 개발, 생산했으며, 아프리카에서 영국군이 견인식 대전차포를 매우 잘 써먹었다는 소식을 들은 레슬리 맥네어의 판단은 3인치 대공포의 견인화였다(...) 이때 등장한게 M5 견인식 Tank destroyer[10]인데, 6파운더와는 견인식이라는 점, 대전차자주포와는 같은 주포(심지어 헬캣은 경량형)라는 점이 겹치는 명백한 중복투자였다. 거기다 막상 M5 견인식 Tank destroyer가 대량으로 쓰이기 시작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6파운더는 압도적 관통력의 APDS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후 미국은 M10GMC의 단점을 해결한 싸고[11], 장갑을 줄여 가볍고, 경량화된 3인치 대공포인, 76 mm gun M1 대전차포를 관측이 용이한 천장없는 포탑에 장착한 M18 헬캣을 생산하게 된다. 하지만 전투에 투입되자 76mm는 대전차포임에도 불구하고 장포신 4호 전차 수준의 대전차화력밖에 낼 수 없었고,[12] 공격상황에서 약한 고폭탄은 낮은 방어력과 시너지를 일으켜 그 용도를 극도로 제한하게 되었으며, 대전차자주포가 적의 전차를 잡아내지 못 하는 사이 셔먼 부대가 큰 피해를 입게 된다.
그 뒤에 등장한 M36 잭슨은 미국이 원하던 대전차 자주포의 역할을 할 수 있게되며 M36은 병사들의 인기를 얻었지만, 전차보다 우수한 화력이였기에 전차 대용으로 굴려지기 일수였다. 하지만 얇은 장갑과 천장없는 포탑은 바뀌지 않아서 여전히 대전차자주포의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13] 결국 전차와 대전차 자주포를 분리 운용하느니 아군 전차에 대전차전이 가능한 포를 달아주는게 훨씬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점과 사용처가 수비적인 용도로 한정된다는 점으로 실패작 이라는 판단이 내려진다.
독일은 비슷한 병기를 대전차 자주포와 구축전차, 돌격포 등으로 나눠 불렀지만 미국의 경우 Gun Motor Carriage(GMC)와 Howitzer Motor Carriage(HMC)로 나뉜다. 각각 자동운반평사포(Gun)와 자동운반곡사포(Howitzer)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HMC는 현대의 SPH로, GMC는 현대의 SPG로 발전하였다. 즉, 미국에는 구축전차라는 개념이 없다.
  • 영국
영국군은 기본적으로 대전차전은 전차(순항전차, 보병전차)가 하고, 대보병전은 CS(Close Support)형 박격포 전차가 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전차포를 전차에 장착하는 것을 선호하여 대전차 자주포는 다양하게 사용하지 않았지만, 전쟁 중반의 17파운더가 너무 거대하여 전차에 장착하기 힘들어, 이를 Mk.1 아처, 아킬레스 등의 대전차 자주포에 장착하였다. 그래도 전차에 장착하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하여 셔먼 파이어플라이A30 챌린저를 만들게 된다.
  • 독일
독일의 것은 미군과 다르게 전술적으로 구상된 정규 차량보다는 구형 차량을 개량한 응급설계 장비거나, 또는 애초에 연대/사단용 자주포로 만들어진 것이 대전차전에도 사용 가능한 화력을 가지고 있어 대전차 임무에도 투입된 경우가 많다. 독일군의 경우 모든 대전차포 부대는 대전차병(Panzerjäger)부대로 개명되었으며, 그런 관계로 모든 독일군의 대전차 자주포 역시 차종 분류명칭은 대전차병(Panzerjäger)이다. Tank Hunter로 영역될 수 있다.
  • 소련
ZiS-30 등의 대전차 자주포를 한정적으로 사용하였지만, 소련은 이런 특화병기보다 다목적인 자행포를 더 좋아했다.

4. 대전차 자주포 일람



5. 관련 문서



[1] 자주포의 의미가 더 강함.[2] 대전차 자주포만이 아니라 대전차 차량 전반을 뜻할 수 있는 단어. 단순히 대전차 자주포만을 의미하는 독일어 Panzerjäger나 그 직역 표현인 Tank Hunter보다도 훨씬 넓은 범주의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3] 대전차포 장착형.[4] 대전차 차량 전반이 아니라 단순히 대전차 자주포만을 의미하는 좁은 범주의 단어로, 영어식으로 직역하자면 Tank Hunter가 된다.[5] 한국전쟁 때는 우리나라의 경우 셔먼 같이 부조종수가 기관총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했다.[6] 이 교리가 와전되어 퍼지게 되면서 미국의 전차들은 대전차전을 상정하지 않았다는 유언비어가 퍼지게 되었다. 미국의 오판은 T20이 완성되면 셔먼을 대체하기로 되어 있어서, 76mm를 셔먼에 장착할 생각을 안 한 것과 90mm 채용 보류이지, 대전차전을 상정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7] 미국이 전쟁에 참여한 기간이 늦어 독일이 공격보다는 방어전을 주로 하였기 때문이였다.[8] 랜드리스로 사용한 영국의 평가[9] 물론 대전차자주포는 전차와 완전히 역할이 겹치지 않으니 전차만 생산이 가능해 지려면 바주카 같이 다른 대체 대전차 수단이 발전해야 한다.[10] Tank destroyer를 견인화한 것이기 때문에 미군의 명칭은 대전차포가 아니라 Tank destroyer였다. 출처: 유튜브 chieftain's hatch - Tank destroyer의 역사 편[11] 헬캣이 투입전에 성공작이며, 야심작으로 불린 이유가 이것이다. 전차보다 싼 대전차병기를 가지는게 최초 목적이니 대전차자주포의 등장 이유와 가장 근접한 샘이다.[12] 당연하지만 특수병기가 다목적병기와 동일 성능을 낸다면 아무리 개별 가격이 싸다 해도, 거시적으로 보면 한정된 용도 때문에 비싼 물건이 된다.[13] 이때 어차피 전차 대용으로 쓸거면 전면 기관총이라도 달아달라는 요구가 있었다고 하며, 이는 파생형인 M36B1에서 이루어졌으나, 생산댓수가 적어서 6.25 전쟁에서 실현되었다.[14] 영어로 무반동포는 recoilless "gun(직사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