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SO 폴로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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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SO Polonez'''
폴란드의 자동차 회사인 FSO가 1978년부터 2002년까지 만든 중형 해치백이다.
FSO는 1951년에 폴란드 정부가 바르샤바(Warszawa)에 설립한 승용차 브랜드로, 소련제 가즈(GAZ) M20 기반으로 만든 바르샤바를 시작으로 자동차 생산을 시작했다. 또한 1965년부터는 피아트 차종을 폴란드 현지에서 라이선스 생산하기로 하고, 바르샤바의 대안으로 도입한 피아트 125p를 도입했다.[1] 그러다가 1970년대 초중반에 FSO에서는 피아트 125p를 기반으로 새 차체를 얹은 신차 프로젝트인 "Type 137"을 구상하기 시작했는데, 1967년부터 라이선스 생산을 하고 있던 125p가 노후화되고 있었고, 그렇다고 FSO가 여러가지 이유로 완전신차를 낼 수 있었던 사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FSO에서는 나름 야심찬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예전처럼 기존 차를 그대로 가져다가 찍어내는 게 아니라 FSO만의 고유모델로 계획됨은 물론 피아트에서 개발한 안전실험차(ESV) 3종 중 하나를 베이스로 개발하기로 하는 등 안전에도 크게 신경을 썼다. 때문에 동유럽에서 생산된 차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미국의 안전규정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어 안전실험차를 기반으로 한 꽤 견고한 차체를 가지고 있었다.[2]
1974년에 FSO는 피아트의 안전실험차 중 하나를 베이스로 폴로네즈의 개발에 들어갔는데, 조르제토 주지아로와 FSO 내부 디자이너인 Zbigniew Watson, 그리고 발터 드 실바가 같이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다. 1975년에는 Centro Stile Fiat(해석하면 "피아트 스타일 센터")에서 125PN이란 이름이 붙은 프로토타입 3대(5도어 해치백, 3도어 해치백과 3도어 쿠페 1대씩)가 만들어진 뒤 FSO로 전달되었다. 디자인이 어느 정도 확정이 되자 1977년 11월과 1978년 4월 사이에 소량을 사전생산했으며, 1978년 5월에 폴란드에서 처음으로 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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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아로의 영향인지 현대 포니와 유사한 면모가 보인다.)
1978년 5월에 공개된 폴로네즈는 1300과 1500, 2000 랠리의 모습으로 공개되었다. 데뷔 당시에는 접히는 리어시트를 갖춘 5도어 해치백만 제공되었으며, 트림은 1300으로 BB와 BA가, 1500으로는 AC와 AA가 준비되었으며, 라인업 전반이 4단 수동변속기와의 조합만 가능했다. 엔진의 경우, 폴로네즈 1300과 1500에 얹힌 엔진이 기존의 피아트 125p에서 사용하던 엔진을 개량한 정도인 반면, 2000 랠리는 피아트에서 가져온 2리터 DOHC 엔진을 얹고 있었다.
수출은 주로 중국, 영국, 이집트, 프랑스, 유고슬라비아, 덴마크, 네덜란드, 핀란드,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이집트, 스페인, 포르투갈, 뉴질랜드, 칠레, 콜롬비아 등의 국가로 이루어졌으며 내수용에 비해 수출용의 장비가 잘 갖추어져 있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수출판은 내수시장용과 다른 휠캡이 장착되었고, 일부 모델은 헤드램프에 와이퍼가 장착되었으며, 핀란드 시장용으로 1995cc DOHC 피아트 엔진이 장착된 FSO 폴스키(Polski. 폴로네즈의 수출명 중 하나) 2000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한 이집트에서는 조립생산이 이루어졌으며 최소 2008년까지 인기 차종으로 등극해있었다. 칠레와 콜롬비아에서는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에 수출되어 경찰차와 택시로도 쓰였으며, 뉴질랜드에서는 폴로네즈 해치백 150대가 1980년대 말에 수출되었다.
1979년에는 피아트로부터 가져온 1995cc DOHC 115마력 트윈캠 엔진과 5단 변속기를 얹은 폴로네즈 2000이 출시되었는데, 2리터 엔진 덕분에 정지-100km/h까지의 제로백은 12초, 최고시속은 175km/h까지 나왔으며 고위 간부들이 주 고객들이였다. 1980년에는 폴로네즈 2000 랠리가 몬테카를로 랠리(Monte Carlo Rally)에 데뷔하기도 했다.
폴로네즈가 모터스포츠, 즉 자동차 경기에 참가하기 시작한 것은 이로부터 2년 전인 1978년부터였는데, 1979년 1월 1일에 '딱 한번' 그룹 4 랠리 규정을 맞춘 버전이 만들어졌다. 1980년 당시에는 발터 울프 레이싱(Walter Wolf Racing)이 스폰서로 나섰을 때는 진청색 배경에 빨간 줄무늬를 입고 등장했으며, 복제품 1대가 캐나다로 수출되었다고 전해진다. 1980년 4월에는,발터 울프 대신 FSO가 직접 그룹 II 랠리에 스폰서로 출전하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흰색 배경에 빨간 줄무늬를 곳곳에 두른 뒤 Maciej Stawowiak와 Ryszard Żyszkowski가 포르투갈에서 열린 WRC 랠리에 이 차를 타고 출전했다. 1984년 4월 1일에는 그룹 B 규정에 맞춘 버전도 등장했지만, 1990년에 FSO 스포츠가 자동차 경기에서 철수를 해버렸고 경주용 차들도 해체되어 레플리카만 현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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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FSO 폴로네즈 쿠페.)
1980년부터는 1300과 1500 양쪽으로 3도어 버전이 300대 가량 생산되었고, 1982년에 '폴로네즈 1500 쿠페'라는 이름으로 3도어 라인이 다시 나온 적이 있다. 이것 역시 단 50대만 생산된 희귀차종이였고, FSO 사상 치초로 전자 점화장치와, 예열한 공기를 흡기 매니폴드에 집어넣는 방식의 연료 절약장치가 설치되었다는 의의도 가지고 있다. 이 둘은 B필러(기둥)의 형상과 스포일러의 유무, 앞모습 정도로 차이가 꽤 미미한데, 깔끔한 앞모습에 스포일러가 달려 있고 두꺼운 B필러가 달려 있는 쪽이 폴로네즈 쿠페이다.
1981년에는 도어가드와 크롬 몰딩, 안개등, 리어 와이퍼, 화물칸 덮개, 안개등, 타코미터를 빼고 대신 비닐로 시트와 칸막이를 마감한 경제형 버전과 1.5리터 80마력 엔진에 5단 변속기, 리어 스포일러와 플라스틱으로 된 에어 인테이크(공기 흡입구),라디오를 조합한 최상급 라인업인 폴로네즈 1500 X 트림이 추가되었다. 그 중 1500 X는 폴란드 내수용으로서 주로 미국 달러로 거래되었다.
1983년에 피아트와 FSO 사이에 맺은 피아트 상표 사용권의 만료가 코앞에 다가왔으나, FSO는 제정상의 문제로 이를 연장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기때문에 결국 피아트와의 계약은 만료되었다. 때문에 기존에 생산하던 피아트 125p는 FSO 상표를 달고 폴로네즈와 10년 가까이를 더 뛰어야했으며 기술적인 개선도 양쪽 모두에 적용되는 경우에만 이루어질 정도로 꽤 미미해졌다. 이때 FSO는 기존의 125p를 자사 엠블럼을 달고 생산하는 동시에 폴로네즈와 125p의 트림명을 싹 뜯어고쳤다.[3]
한편, FSO에서는 폴로네즈 2.0D 터보라는 터보디젤 버전도 100대 정도 생산했다. 이는 이탈리아 VM Motori에서 만든 HR 488 엔진을 얹고 최고출력 83마력, 정지~100km/h까지의 제로백은 20.0초, 최고시속 146km/h를 기록했으며 연비는 약 9.4~14.1km/l을 기록했다. 1983년식은 소소한 변화가 몇 가지 더 있었는데, 기존의 크롬도금된 휠캡을 검은색으로 바꾸고 스포일러와 에어 인테이크가 기본 장착되었으며, 크롬으로 된 외장 백미러가 플라스틱으로 대체되었다. 동독 수출용 폴로네즈는 기존의 4점식 원형 헤드렘프 대신에 사각형 헤드램프를 장착했는데 이는 1978~79년식 피아트 125p의 그것과 같은 해드램프로, 처음에는 1.5 X 트림에만 장착했다가 나중에는 C 트림에 장착되었고, 1983년 이후에 나온 트럭 버전과 후기에 나온 수출형에도 이 헤드램프가 사용되었다.여담으로 이때부터는 수출명이 폴로네즈, 프리마(Prima), 크루자도(Cruzado)의 3개 이름으로 구성되었다.
1984년에는 3도어 기반의 폴로네즈 2000 터보 랠리가 등장했지만 경기 호몰로게이션을 받아내지는 못했다. 이 터보 랠리는 쿠페 버전을 기반으로 쿠페와는 다른 형상의 프론트 이미지를 달고 있었고, 1995cc 피아트 엔진과 터보를 장착했으며, 몇몇 버전들은 5도어 바디를 쓰거나 슈퍼차저를 장착하기도 했다. 1985년에는 폴로네즈 5도어 중에서 쿠페 버전의 프론트 이미지를 이식한 개체가 기존의 프론트 이미지(은색 페인트로 액센트가 주어짐)와 병행해서 제작되었다. 그 외에는 수출명에 알리제(Alize)가 추가되는 정도였다.
1986년에는 폴로네즈 1.5 터보의 대량생산이 이루어졌고, 'Iron Rain' 광고로 잘 알려진 랠리카 버전도 존재했다. 한편 1986년식 폴로네즈는 플라스틱 칸막이가 장착되었던 C필러에 창문이 뚫리면서 개방감이 더해졌으며, 수출명에 미스트랄(Mistral)이 추가되었다. 라인업에는 1598cc 86마력 직렬 4기통 엔진이 장착된 1.6 LE가 추가되었는데, 최고시속 155km/h를 기록했으며, 해외에는 미스트랄 1600이란 이름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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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는 디자인 변화가 더 있었는데, 이번에는 해치게이트에 붙어 있던 스포일러가 해치게이트의 일부로 통합되었으며 트림명의 변화도 있었다. 1988년에는 그룹 A 규정에 맞춰 폴로네즈 1500 터보 랠리카에 188마력짜리 1481cc 엔진을 얹었고, 제로백이 8,5 초에다가 최고시속이 220km/h에 달했다. 또한 폴로네즈의 픽업트럭 버전도 이때 추가되었으며, 대부분은 1983년식의 프론트 이미지를 달고 나왔고 헤드램프 형상은 사각형과 원형 모두 적용되었으며 엔진은 1.5리터와 1.6리터가 적용되었으며 모두 전자점화식 시스템을 장착했다.
1989년에 현대화 작업이 일부 있었으며 1992년부터는 기본 라인이 '폴로네즈 트럭 ST'라는 이름 하에 생산되고, 2개 추가 라인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라인업의 가지를 늘려갔으며, 저렴한 가격(승용판도 해당)과 신뢰성, 많은 화물 적재량(경우에 따라서는 1톤까지)으로 꾸준히 인기를 유지했다. 1989년에는 외관상의 변화가 또 있었는데, 이번에는 범퍼까지 닿는 해치게이트와 수직으로 된 방향지시등이 적용된 '곡선화된' 디자인의 후미등, 수직으로 장착된 리어 워셔와 측면 리플렉터를 달고 나왔다.
수출 시장에서는 프리마 II, 알리제, 미스트랄, 크루자도, 폴로네즈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며, 그해 1월에는 암스테르담 오토쇼에서 촉매장치가 장착된 최초의 폴로네즈가 공개되어 1500대가 생산되었고, 이탈리아의 FNM(Fratelli Negri Motori)에서 만든 1366cc 60마력 터보디젤 엔진과 5단 변속기가 장착된 폴로네즈 Piedra 1.3 터보디젤이 벨기에 시장에 출시되었다. 트럭 라인 역시, 승용판을 따라서 측면 리플렉터가 변경되었으며, 1992년에 LB와 DC가 라인업에 추가되는데, LB는 휠베이스를 늘린 장축 버전이고, DC는 시트를 2열로 나열한 소위 '더블캡' 버전이었다. 1990년에는 유럽 포드의 중형차인 포드 시에라(Sierra)에서 가져온 103마력 2.0i 엔진을 얹은 폴로네즈 2.0 SLE가 500대 생산되었고, 이는 최고시속 165km/h에다가 제로백 12.5초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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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91~1993년식 FSO 폴로네즈 카로. 1993년 모델부터는 보닛의 흡기구가 사라졌다.)
1993년에는 FSO에서 거의 20년간 생산해오던 피아트 125p가 단종되고, 125p의 단종과 함께 1295cc 엔진도 단종되었으며, 그해 6월부터 1994년까지 영국 수출이 잠시 중단되는 등, 나름 중요한 시기에 현대적인 앞모습을 이식하는 페이스리프트를 하면서 "폴로네즈 카로(Caro)"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4] 배기가스 시스템, 분리형 뒷좌석, 범퍼 디자인, 스티어링 휠, 알루미늄제 휠 림, 정면충돌에 대응하는 설계 개선의 내적 변경사항들도 있었으며, 선택 사양으로 알로이 휠과 Inter-Groclin[5] 사에서 만든 헤드레스트와 스포티한 시트, 도난 경보장치, 센트럴 도어 록, 앞좌석 전동 윈도우, 썬루프, 라디오, 스피커, 메탈릭 페인트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또한 "콤비(Combi)"라는 이름의 해치게이트 옵션도 존재했는데, 기존에 있던 1989~1991년식 폴로네즈나 폴로네즈 카로에 대응이 되어 왜건처럼 사용할 수 있는 특수한 디자인의 해치게이트였다.
1992년에는 폴로네즈의 라인업에 ABIMEX제 SPI16를 설치한 1.5 GLI와 1.6 GLI가 출시되었는데, 전자에는 촉매 컨버터가 장착되었지만 후자에는 장착하지 않았다. 트럭 라인도 1991년에 나온 폴로네즈 카로의 디자인을 수용했고, 폴로네즈 벨라(Bella)로 알려진 장의차도 라인업에 추가되었다. 트럭 사양은 엔진별 라인업은 1.6 GLE(1.6리터 전자식 분사), 1.6 GLi(SPI 장착), 1.9 GLD(시트로엥 1.9 디젤엔진)로 나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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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8월에는 승용차와 트럭 양쪽으로 마이너체인지가 이루어졌는데, 기존의 에어 인테이크(흡기구)가 윈드실드 밑으로 옮겨지면서 후드가 깔끔해졌고, 팔이 더 긴 뒷창문 와이퍼, 새로운 앞유리가 장착되었으며, 인테리어상으로도 원형 속도계와 타코미터가 적용되었고, 기존에 2개였던 냉난방 통풍구가 4개로 늘어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또한 그해 12월에는 로버로부터 1396cc 102마력 MPI 16벨브 K-시리즈 엔진을 가져다가 얹은 폴로네즈 1.4 GLI 16V MPI를 출시했으며, 최고 시속이 178km/h에다가 제로백도 11.9초를 기록했다. Orciari가 만든 전용 그릴과 스포일러, 페인트 도장이 된 전용 범퍼와 사이드 스커트 등으로 구성된 드레스업 세트도 이때부터 적용시킬 수 있게 되었다. 폴로네즈의 상용차 라인에는 폴로네즈 카고(Cargo)라는 상용차 라인이 하나 더 추가되는데, AutoForm Mysłowice이라는 회사에서 처음 생산했다가 FSO-ZTS Grójec에서도 이를 생산했다. [6]
1994년에는 네덜란드의 폴로네즈 수입상이 프리마(폴로네즈 수출명 중 하나) 1.4 GLI 16V MPI를 경주용 버전으로 개조해서 자동차 경기에 출전시키기로 하면서 'FSO 프리마 1.4 GLI 16V'를 만들었고, 최고출력 123마력에 최고시속은 205km/h였다. 1991년 6월에 중단했던 영국 수출도 이때 재게되었는데 5도어와 픽업트럭 버전의 2가지를 수출했고, 승용차 버전이 별다른 성과가 없던 반면에 픽업트럭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1996년에는, 1994년에 공개했던 폴로네즈 세단의 양산형인 폴로네즈 아투(Atu)를 공개했다. 폴로네즈 아투(처음에는 '그냥' FSO 아투 1.6 GLI)는 1995년 12월부터 1996년 1월 사이에 소규모 사전생산을 거친 후 그해 6월에 출시되었는데, 마침 동명의 보험회사가 '아투'라는 모델명에 클레임을 거는 바람에, FSO에서는 '아투'를 서브네임으로 격하시켜서 'FSO 폴로네즈 아투'로 개명하게 되었다. 아투는 위에서 살짝 언급한 1.6리터 버전(SLI 적용, 촉매장치는 옵션)과 1.4리터 버전(로버 MPI 엔진)의 2개 라인업이 있었으며, 아주 극소수의 1.9 디젤 버전도 사전생산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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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995년에 FSO를 인수한 대우그룹에서는 그동안 소위 '약골차'로 통하던 폴로네즈를 개선하던 FSO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1997년 4월에 새로운 마이너체인지 버전을 출시했다. 대우가 손을 본 폴로네즈 카로/아투 플러스(Plus)는 기본적으론 그릴 디자인과 후미등, 휠, 도장된 문 손잡이와 범퍼, 대시보드 변경과 같은 변화가 주어졌는데, 마침 새로운 페인트 도장도 선택할 수가 있었다. 한편, 그해 여름은 승용판 폴로네즈의 마지막 수출[8] 이 이루어졌는데 마지막 수출은 네덜란드가 종착이였으며[9] 당시 라인업은 프리마(폴로네즈 카로) 1.6 GLI와 1.4 GLI 16V, 셀리나(아투) 1.6 GLI가 준비되었다.
8월에는 FSO 공장에서 대우 라노스를 처음 생산함과 동시에, 폴로네즈 시리즈에게 새 문손잡이와 Delphi(Multec XM) 1598cc 83마력 MPI 엔진을 장착했으며 최고시속은 155km/h를 기록했다. 트럭 버전 역시 승용판에서의 거의 모든 변화를 반영했는데, '상용차'라서 그런지 도어핸들과 범퍼, 그릴에 페인트 도장을 하지 않았고, 엔진 라인업은 1.6i와 1.9D가 준비되었다. 폴로네즈 카고의 경우, 이전처럼 Daewoo-FSO-ZTS Grójec과 AutoForm Mysłowice의 2개 업체에서 만들었는데, 단일한 라인업에(1.6 GLi) 양쪽 업체 모두 폴로네즈 플러스에서의 변화를 거의 가져왔고, 기존에 각 업체가 가지고 있던 차이점도 그대로 가져왔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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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는 트럭 버전에 뒷범퍼와 (차체 도색이 적용된)화물칸 밑을 감싸는 바디 패널을 장착했으며, 1999년에는 승용판 폴로네즈의 마지막 라인업 확장으로서 FSO가 3~4년간 벼르고 벼르던 '진짜' 폴로네즈 콤비(Kombi)[11] 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아투 기반의 콤비 플러스가 공개된 것은 1998년 5월로, 1999년 1월에 시험생산을 한 후 그해 4월에 판매가 시작되어 6월에 열린 Poznan Motor Show에서 공개되었는데, 엔진 라인업은 1.6 MPI 하나로 단일했고, 대우 누비라에서 가져온 스티어링 휠과 암레스트가 이식되었다.
2000년이 되었을 때, 폴로네즈는 새로운 로고 적용과 200대 한정으로 에어컨 설치, 그리고 여름 중 한달 동안 옵션으로 알로이 휠을 제공하는 정도로 마무리했으며, 2001년에도 별다른 소식 없이, 여름 특전으로 에어컨을 옵션으로 제공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2002년 1분기가 되자 FSO 폴로네즈의 마지막 승용차 버전이 FSO 공장 라인을 떠나면서 폴로네즈의 역사도 막을 내렸다. 한편, 2003년에 폴란드의 신생 회사인 Polska Fabryka Samochodow (PFS)가 폴로네즈의 상용차 라인을 'Poltruck'이란 이름으로 다시 부활시키려고 했지만, 결국은 실험차 289대만을 만드는 데 그치고 실패했다.
지금도 폴로네즈는 중유럽과 동유럽에서 꽤 흔한(특히 고향 폴란드에서) 차지만, 2004년에 폴란드가 EU에 가입하면서 많은 수가 현대적+무관세+고품질의 서유럽산 중고차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비슷한 차량인 현대 포니가 1990년대 들어서 한국에서 크게 버림받은 것과 비슷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FSO Polonez'''
1. 개요
폴란드의 자동차 회사인 FSO가 1978년부터 2002년까지 만든 중형 해치백이다.
2. 배경
FSO는 1951년에 폴란드 정부가 바르샤바(Warszawa)에 설립한 승용차 브랜드로, 소련제 가즈(GAZ) M20 기반으로 만든 바르샤바를 시작으로 자동차 생산을 시작했다. 또한 1965년부터는 피아트 차종을 폴란드 현지에서 라이선스 생산하기로 하고, 바르샤바의 대안으로 도입한 피아트 125p를 도입했다.[1] 그러다가 1970년대 초중반에 FSO에서는 피아트 125p를 기반으로 새 차체를 얹은 신차 프로젝트인 "Type 137"을 구상하기 시작했는데, 1967년부터 라이선스 생산을 하고 있던 125p가 노후화되고 있었고, 그렇다고 FSO가 여러가지 이유로 완전신차를 낼 수 있었던 사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FSO에서는 나름 야심찬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예전처럼 기존 차를 그대로 가져다가 찍어내는 게 아니라 FSO만의 고유모델로 계획됨은 물론 피아트에서 개발한 안전실험차(ESV) 3종 중 하나를 베이스로 개발하기로 하는 등 안전에도 크게 신경을 썼다. 때문에 동유럽에서 생산된 차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미국의 안전규정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어 안전실험차를 기반으로 한 꽤 견고한 차체를 가지고 있었다.[2]
1974년에 FSO는 피아트의 안전실험차 중 하나를 베이스로 폴로네즈의 개발에 들어갔는데, 조르제토 주지아로와 FSO 내부 디자이너인 Zbigniew Watson, 그리고 발터 드 실바가 같이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다. 1975년에는 Centro Stile Fiat(해석하면 "피아트 스타일 센터")에서 125PN이란 이름이 붙은 프로토타입 3대(5도어 해치백, 3도어 해치백과 3도어 쿠페 1대씩)가 만들어진 뒤 FSO로 전달되었다. 디자인이 어느 정도 확정이 되자 1977년 11월과 1978년 4월 사이에 소량을 사전생산했으며, 1978년 5월에 폴란드에서 처음으로 출시되었다.
3. 출시 및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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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아로의 영향인지 현대 포니와 유사한 면모가 보인다.)
1978년 5월에 공개된 폴로네즈는 1300과 1500, 2000 랠리의 모습으로 공개되었다. 데뷔 당시에는 접히는 리어시트를 갖춘 5도어 해치백만 제공되었으며, 트림은 1300으로 BB와 BA가, 1500으로는 AC와 AA가 준비되었으며, 라인업 전반이 4단 수동변속기와의 조합만 가능했다. 엔진의 경우, 폴로네즈 1300과 1500에 얹힌 엔진이 기존의 피아트 125p에서 사용하던 엔진을 개량한 정도인 반면, 2000 랠리는 피아트에서 가져온 2리터 DOHC 엔진을 얹고 있었다.
수출은 주로 중국, 영국, 이집트, 프랑스, 유고슬라비아, 덴마크, 네덜란드, 핀란드,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이집트, 스페인, 포르투갈, 뉴질랜드, 칠레, 콜롬비아 등의 국가로 이루어졌으며 내수용에 비해 수출용의 장비가 잘 갖추어져 있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수출판은 내수시장용과 다른 휠캡이 장착되었고, 일부 모델은 헤드램프에 와이퍼가 장착되었으며, 핀란드 시장용으로 1995cc DOHC 피아트 엔진이 장착된 FSO 폴스키(Polski. 폴로네즈의 수출명 중 하나) 2000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한 이집트에서는 조립생산이 이루어졌으며 최소 2008년까지 인기 차종으로 등극해있었다. 칠레와 콜롬비아에서는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에 수출되어 경찰차와 택시로도 쓰였으며, 뉴질랜드에서는 폴로네즈 해치백 150대가 1980년대 말에 수출되었다.
1979년에는 피아트로부터 가져온 1995cc DOHC 115마력 트윈캠 엔진과 5단 변속기를 얹은 폴로네즈 2000이 출시되었는데, 2리터 엔진 덕분에 정지-100km/h까지의 제로백은 12초, 최고시속은 175km/h까지 나왔으며 고위 간부들이 주 고객들이였다. 1980년에는 폴로네즈 2000 랠리가 몬테카를로 랠리(Monte Carlo Rally)에 데뷔하기도 했다.
폴로네즈가 모터스포츠, 즉 자동차 경기에 참가하기 시작한 것은 이로부터 2년 전인 1978년부터였는데, 1979년 1월 1일에 '딱 한번' 그룹 4 랠리 규정을 맞춘 버전이 만들어졌다. 1980년 당시에는 발터 울프 레이싱(Walter Wolf Racing)이 스폰서로 나섰을 때는 진청색 배경에 빨간 줄무늬를 입고 등장했으며, 복제품 1대가 캐나다로 수출되었다고 전해진다. 1980년 4월에는,발터 울프 대신 FSO가 직접 그룹 II 랠리에 스폰서로 출전하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흰색 배경에 빨간 줄무늬를 곳곳에 두른 뒤 Maciej Stawowiak와 Ryszard Żyszkowski가 포르투갈에서 열린 WRC 랠리에 이 차를 타고 출전했다. 1984년 4월 1일에는 그룹 B 규정에 맞춘 버전도 등장했지만, 1990년에 FSO 스포츠가 자동차 경기에서 철수를 해버렸고 경주용 차들도 해체되어 레플리카만 현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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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FSO 폴로네즈 쿠페.)
1980년부터는 1300과 1500 양쪽으로 3도어 버전이 300대 가량 생산되었고, 1982년에 '폴로네즈 1500 쿠페'라는 이름으로 3도어 라인이 다시 나온 적이 있다. 이것 역시 단 50대만 생산된 희귀차종이였고, FSO 사상 치초로 전자 점화장치와, 예열한 공기를 흡기 매니폴드에 집어넣는 방식의 연료 절약장치가 설치되었다는 의의도 가지고 있다. 이 둘은 B필러(기둥)의 형상과 스포일러의 유무, 앞모습 정도로 차이가 꽤 미미한데, 깔끔한 앞모습에 스포일러가 달려 있고 두꺼운 B필러가 달려 있는 쪽이 폴로네즈 쿠페이다.
1981년에는 도어가드와 크롬 몰딩, 안개등, 리어 와이퍼, 화물칸 덮개, 안개등, 타코미터를 빼고 대신 비닐로 시트와 칸막이를 마감한 경제형 버전과 1.5리터 80마력 엔진에 5단 변속기, 리어 스포일러와 플라스틱으로 된 에어 인테이크(공기 흡입구),라디오를 조합한 최상급 라인업인 폴로네즈 1500 X 트림이 추가되었다. 그 중 1500 X는 폴란드 내수용으로서 주로 미국 달러로 거래되었다.
1983년에 피아트와 FSO 사이에 맺은 피아트 상표 사용권의 만료가 코앞에 다가왔으나, FSO는 제정상의 문제로 이를 연장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기때문에 결국 피아트와의 계약은 만료되었다. 때문에 기존에 생산하던 피아트 125p는 FSO 상표를 달고 폴로네즈와 10년 가까이를 더 뛰어야했으며 기술적인 개선도 양쪽 모두에 적용되는 경우에만 이루어질 정도로 꽤 미미해졌다. 이때 FSO는 기존의 125p를 자사 엠블럼을 달고 생산하는 동시에 폴로네즈와 125p의 트림명을 싹 뜯어고쳤다.[3]
한편, FSO에서는 폴로네즈 2.0D 터보라는 터보디젤 버전도 100대 정도 생산했다. 이는 이탈리아 VM Motori에서 만든 HR 488 엔진을 얹고 최고출력 83마력, 정지~100km/h까지의 제로백은 20.0초, 최고시속 146km/h를 기록했으며 연비는 약 9.4~14.1km/l을 기록했다. 1983년식은 소소한 변화가 몇 가지 더 있었는데, 기존의 크롬도금된 휠캡을 검은색으로 바꾸고 스포일러와 에어 인테이크가 기본 장착되었으며, 크롬으로 된 외장 백미러가 플라스틱으로 대체되었다. 동독 수출용 폴로네즈는 기존의 4점식 원형 헤드렘프 대신에 사각형 헤드램프를 장착했는데 이는 1978~79년식 피아트 125p의 그것과 같은 해드램프로, 처음에는 1.5 X 트림에만 장착했다가 나중에는 C 트림에 장착되었고, 1983년 이후에 나온 트럭 버전과 후기에 나온 수출형에도 이 헤드램프가 사용되었다.여담으로 이때부터는 수출명이 폴로네즈, 프리마(Prima), 크루자도(Cruzado)의 3개 이름으로 구성되었다.
1984년에는 3도어 기반의 폴로네즈 2000 터보 랠리가 등장했지만 경기 호몰로게이션을 받아내지는 못했다. 이 터보 랠리는 쿠페 버전을 기반으로 쿠페와는 다른 형상의 프론트 이미지를 달고 있었고, 1995cc 피아트 엔진과 터보를 장착했으며, 몇몇 버전들은 5도어 바디를 쓰거나 슈퍼차저를 장착하기도 했다. 1985년에는 폴로네즈 5도어 중에서 쿠페 버전의 프론트 이미지를 이식한 개체가 기존의 프론트 이미지(은색 페인트로 액센트가 주어짐)와 병행해서 제작되었다. 그 외에는 수출명에 알리제(Alize)가 추가되는 정도였다.
1986년에는 폴로네즈 1.5 터보의 대량생산이 이루어졌고, 'Iron Rain' 광고로 잘 알려진 랠리카 버전도 존재했다. 한편 1986년식 폴로네즈는 플라스틱 칸막이가 장착되었던 C필러에 창문이 뚫리면서 개방감이 더해졌으며, 수출명에 미스트랄(Mistral)이 추가되었다. 라인업에는 1598cc 86마력 직렬 4기통 엔진이 장착된 1.6 LE가 추가되었는데, 최고시속 155km/h를 기록했으며, 해외에는 미스트랄 1600이란 이름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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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는 디자인 변화가 더 있었는데, 이번에는 해치게이트에 붙어 있던 스포일러가 해치게이트의 일부로 통합되었으며 트림명의 변화도 있었다. 1988년에는 그룹 A 규정에 맞춰 폴로네즈 1500 터보 랠리카에 188마력짜리 1481cc 엔진을 얹었고, 제로백이 8,5 초에다가 최고시속이 220km/h에 달했다. 또한 폴로네즈의 픽업트럭 버전도 이때 추가되었으며, 대부분은 1983년식의 프론트 이미지를 달고 나왔고 헤드램프 형상은 사각형과 원형 모두 적용되었으며 엔진은 1.5리터와 1.6리터가 적용되었으며 모두 전자점화식 시스템을 장착했다.
1989년에 현대화 작업이 일부 있었으며 1992년부터는 기본 라인이 '폴로네즈 트럭 ST'라는 이름 하에 생산되고, 2개 추가 라인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라인업의 가지를 늘려갔으며, 저렴한 가격(승용판도 해당)과 신뢰성, 많은 화물 적재량(경우에 따라서는 1톤까지)으로 꾸준히 인기를 유지했다. 1989년에는 외관상의 변화가 또 있었는데, 이번에는 범퍼까지 닿는 해치게이트와 수직으로 된 방향지시등이 적용된 '곡선화된' 디자인의 후미등, 수직으로 장착된 리어 워셔와 측면 리플렉터를 달고 나왔다.
수출 시장에서는 프리마 II, 알리제, 미스트랄, 크루자도, 폴로네즈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며, 그해 1월에는 암스테르담 오토쇼에서 촉매장치가 장착된 최초의 폴로네즈가 공개되어 1500대가 생산되었고, 이탈리아의 FNM(Fratelli Negri Motori)에서 만든 1366cc 60마력 터보디젤 엔진과 5단 변속기가 장착된 폴로네즈 Piedra 1.3 터보디젤이 벨기에 시장에 출시되었다. 트럭 라인 역시, 승용판을 따라서 측면 리플렉터가 변경되었으며, 1992년에 LB와 DC가 라인업에 추가되는데, LB는 휠베이스를 늘린 장축 버전이고, DC는 시트를 2열로 나열한 소위 '더블캡' 버전이었다. 1990년에는 유럽 포드의 중형차인 포드 시에라(Sierra)에서 가져온 103마력 2.0i 엔진을 얹은 폴로네즈 2.0 SLE가 500대 생산되었고, 이는 최고시속 165km/h에다가 제로백 12.5초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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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91~1993년식 FSO 폴로네즈 카로. 1993년 모델부터는 보닛의 흡기구가 사라졌다.)
1993년에는 FSO에서 거의 20년간 생산해오던 피아트 125p가 단종되고, 125p의 단종과 함께 1295cc 엔진도 단종되었으며, 그해 6월부터 1994년까지 영국 수출이 잠시 중단되는 등, 나름 중요한 시기에 현대적인 앞모습을 이식하는 페이스리프트를 하면서 "폴로네즈 카로(Caro)"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4] 배기가스 시스템, 분리형 뒷좌석, 범퍼 디자인, 스티어링 휠, 알루미늄제 휠 림, 정면충돌에 대응하는 설계 개선의 내적 변경사항들도 있었으며, 선택 사양으로 알로이 휠과 Inter-Groclin[5] 사에서 만든 헤드레스트와 스포티한 시트, 도난 경보장치, 센트럴 도어 록, 앞좌석 전동 윈도우, 썬루프, 라디오, 스피커, 메탈릭 페인트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또한 "콤비(Combi)"라는 이름의 해치게이트 옵션도 존재했는데, 기존에 있던 1989~1991년식 폴로네즈나 폴로네즈 카로에 대응이 되어 왜건처럼 사용할 수 있는 특수한 디자인의 해치게이트였다.
1992년에는 폴로네즈의 라인업에 ABIMEX제 SPI16를 설치한 1.5 GLI와 1.6 GLI가 출시되었는데, 전자에는 촉매 컨버터가 장착되었지만 후자에는 장착하지 않았다. 트럭 라인도 1991년에 나온 폴로네즈 카로의 디자인을 수용했고, 폴로네즈 벨라(Bella)로 알려진 장의차도 라인업에 추가되었다. 트럭 사양은 엔진별 라인업은 1.6 GLE(1.6리터 전자식 분사), 1.6 GLi(SPI 장착), 1.9 GLD(시트로엥 1.9 디젤엔진)로 나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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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8월에는 승용차와 트럭 양쪽으로 마이너체인지가 이루어졌는데, 기존의 에어 인테이크(흡기구)가 윈드실드 밑으로 옮겨지면서 후드가 깔끔해졌고, 팔이 더 긴 뒷창문 와이퍼, 새로운 앞유리가 장착되었으며, 인테리어상으로도 원형 속도계와 타코미터가 적용되었고, 기존에 2개였던 냉난방 통풍구가 4개로 늘어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또한 그해 12월에는 로버로부터 1396cc 102마력 MPI 16벨브 K-시리즈 엔진을 가져다가 얹은 폴로네즈 1.4 GLI 16V MPI를 출시했으며, 최고 시속이 178km/h에다가 제로백도 11.9초를 기록했다. Orciari가 만든 전용 그릴과 스포일러, 페인트 도장이 된 전용 범퍼와 사이드 스커트 등으로 구성된 드레스업 세트도 이때부터 적용시킬 수 있게 되었다. 폴로네즈의 상용차 라인에는 폴로네즈 카고(Cargo)라는 상용차 라인이 하나 더 추가되는데, AutoForm Mysłowice이라는 회사에서 처음 생산했다가 FSO-ZTS Grójec에서도 이를 생산했다. [6]
1994년에는 네덜란드의 폴로네즈 수입상이 프리마(폴로네즈 수출명 중 하나) 1.4 GLI 16V MPI를 경주용 버전으로 개조해서 자동차 경기에 출전시키기로 하면서 'FSO 프리마 1.4 GLI 16V'를 만들었고, 최고출력 123마력에 최고시속은 205km/h였다. 1991년 6월에 중단했던 영국 수출도 이때 재게되었는데 5도어와 픽업트럭 버전의 2가지를 수출했고, 승용차 버전이 별다른 성과가 없던 반면에 픽업트럭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1996년에는, 1994년에 공개했던 폴로네즈 세단의 양산형인 폴로네즈 아투(Atu)를 공개했다. 폴로네즈 아투(처음에는 '그냥' FSO 아투 1.6 GLI)는 1995년 12월부터 1996년 1월 사이에 소규모 사전생산을 거친 후 그해 6월에 출시되었는데, 마침 동명의 보험회사가 '아투'라는 모델명에 클레임을 거는 바람에, FSO에서는 '아투'를 서브네임으로 격하시켜서 'FSO 폴로네즈 아투'로 개명하게 되었다. 아투는 위에서 살짝 언급한 1.6리터 버전(SLI 적용, 촉매장치는 옵션)과 1.4리터 버전(로버 MPI 엔진)의 2개 라인업이 있었으며, 아주 극소수의 1.9 디젤 버전도 사전생산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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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995년에 FSO를 인수한 대우그룹에서는 그동안 소위 '약골차'로 통하던 폴로네즈를 개선하던 FSO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1997년 4월에 새로운 마이너체인지 버전을 출시했다. 대우가 손을 본 폴로네즈 카로/아투 플러스(Plus)는 기본적으론 그릴 디자인과 후미등, 휠, 도장된 문 손잡이와 범퍼, 대시보드 변경과 같은 변화가 주어졌는데, 마침 새로운 페인트 도장도 선택할 수가 있었다. 한편, 그해 여름은 승용판 폴로네즈의 마지막 수출[8] 이 이루어졌는데 마지막 수출은 네덜란드가 종착이였으며[9] 당시 라인업은 프리마(폴로네즈 카로) 1.6 GLI와 1.4 GLI 16V, 셀리나(아투) 1.6 GLI가 준비되었다.
8월에는 FSO 공장에서 대우 라노스를 처음 생산함과 동시에, 폴로네즈 시리즈에게 새 문손잡이와 Delphi(Multec XM) 1598cc 83마력 MPI 엔진을 장착했으며 최고시속은 155km/h를 기록했다. 트럭 버전 역시 승용판에서의 거의 모든 변화를 반영했는데, '상용차'라서 그런지 도어핸들과 범퍼, 그릴에 페인트 도장을 하지 않았고, 엔진 라인업은 1.6i와 1.9D가 준비되었다. 폴로네즈 카고의 경우, 이전처럼 Daewoo-FSO-ZTS Grójec과 AutoForm Mysłowice의 2개 업체에서 만들었는데, 단일한 라인업에(1.6 GLi) 양쪽 업체 모두 폴로네즈 플러스에서의 변화를 거의 가져왔고, 기존에 각 업체가 가지고 있던 차이점도 그대로 가져왔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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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는 트럭 버전에 뒷범퍼와 (차체 도색이 적용된)화물칸 밑을 감싸는 바디 패널을 장착했으며, 1999년에는 승용판 폴로네즈의 마지막 라인업 확장으로서 FSO가 3~4년간 벼르고 벼르던 '진짜' 폴로네즈 콤비(Kombi)[11] 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아투 기반의 콤비 플러스가 공개된 것은 1998년 5월로, 1999년 1월에 시험생산을 한 후 그해 4월에 판매가 시작되어 6월에 열린 Poznan Motor Show에서 공개되었는데, 엔진 라인업은 1.6 MPI 하나로 단일했고, 대우 누비라에서 가져온 스티어링 휠과 암레스트가 이식되었다.
2000년이 되었을 때, 폴로네즈는 새로운 로고 적용과 200대 한정으로 에어컨 설치, 그리고 여름 중 한달 동안 옵션으로 알로이 휠을 제공하는 정도로 마무리했으며, 2001년에도 별다른 소식 없이, 여름 특전으로 에어컨을 옵션으로 제공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2002년 1분기가 되자 FSO 폴로네즈의 마지막 승용차 버전이 FSO 공장 라인을 떠나면서 폴로네즈의 역사도 막을 내렸다. 한편, 2003년에 폴란드의 신생 회사인 Polska Fabryka Samochodow (PFS)가 폴로네즈의 상용차 라인을 'Poltruck'이란 이름으로 다시 부활시키려고 했지만, 결국은 실험차 289대만을 만드는 데 그치고 실패했다.
지금도 폴로네즈는 중유럽과 동유럽에서 꽤 흔한(특히 고향 폴란드에서) 차지만, 2004년에 폴란드가 EU에 가입하면서 많은 수가 현대적+무관세+고품질의 서유럽산 중고차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비슷한 차량인 현대 포니가 1990년대 들어서 한국에서 크게 버림받은 것과 비슷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4. 여담
- 영국 탑기어에서 공산주의 시절 동유럽 차량을 다룰 때 픽업 버전이 잠시 등장했다. 1990년대에 출시된 파란색 2도어 픽업 모델로, 토요타 하이럭스 에피소드를 회상하며 크레인에 매달고 추락시킨다.
- 제레미 클락슨도 “세계 최악의 차“ DVD에서 폴로네즈 초기형을 몰면서 말썽이 심하다는 등으로 은근히 비난한 바가 있다.
[1] 한편, 소형차 시레나를 생산하던 FSM은 1973년에 피아트 126p를 대안으로 도입하기도 했다.[2] 이 때문에 출시된 지 16년이 지난 1994년에 실시한 충돌 테스트(50km/h로 40% 프론트 오프셋)를 별다른 무리 없이 통과해 서유럽 수출이 얼마 간 더 지속될 수 있었다.[3] -FSO 125p는 1.3 L, 1.3 ML, 1.3 ME, 1.5 C, 1.5 L, 1.5 ML, 1.5 MS, 1.5 ME, FSO 폴로네즈는1.3 C, 1.3 CE, 1.3 L, 1.3 LE, 1.5 C, 1.5 CE, 1.5 L, 1.5 LS, 1.5 LE, 1.5 X, 2000.[4] 참고로 라인업은 다음과 같았다; 폴로네즈 카로 1.5 GLE -80마력, 폴로네즈 카로 1.6 GLE -86마력, 폴로네즈 카로 2.0 GLE - 포드 시에라의 103마력 엔진과 변속기 조합(총 1000대 생산), 폴로네즈 카로 1.9 GLD -시트로엥제 67마력 1905cc 디젤엔진.[5] 폴란드의 시트 전문업체.[6] 전자에서 만든 카고 버전은 더 작은 화물칸과 뒷창문이 적용되었으며, 후자에 있었던 주름이 없었다.[7] 이때 해치백 버전의 1.9리터 디젤엔진이 단종되었다.[8] 폴로네즈의 수출길이 막힌 것은 주로 가면 갈수록 배기가스 규정이 강해졌기 때문이었다.[9] 당시 FSO의 모기업이었던 대우자동차에서는 포니 픽업이후 끊긴 국산 승용픽업 라인을 부활시켜 라보ᆞ다마스와 같이 자영업자를 타겟으로 판매할 계획을 세우고, 스타렉스 급의 RV차량인 루빌론과 함께 실험차로 3대를 국내에 반입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실정에 맞지않은 인테리어와 빈약한 파워트레인, 결정적으로 IMF사태로 대우그룹의 입지가 불안정해 무산되었다. 국내출시가 되었을 시 흔하지 않은 세그먼트가 되었을 듯...[10] 그 외에 다른 차이로는 전자에서 폴로네즈 아투 플러스의 후미등을 자겨다가 이식했고, 후자에서 폴로네즈 카로 플러스의 후미등을 가져다가 사용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11] 이 차가 나오기 전까지는 위에서 말한 해치게이트 옵션이 왜건 모델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