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28
1. 개요
공포탄 사격 영상
독일(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의 C. G. 헤넬 사에서 개발한 기관단총. MP28/II 라고도 불린다.
2. 상세
최초의 블로우백 기관단총인 MP18을 베이스로 개발했다. 그리고 원래는 경찰용이었으나, 1935년 나치 독일의 재군비 선언으로 독일 국방군에 채용되었다.
기존 MP18에서 90° 방향의 급탄구 설치, 단발/자동 조정간 추가, 가늠자 변경, 장전 스프링 대형화 등 여러 부분들이 개량/변경되었다.
얼핏 보면 평범한 기관단총처럼 보이겠지만, 이 MP28의 존재가 독일 기관단총의 운명을 나누었고 크게 봐서 독일군 자체의 운명을 나누었다고도 할 수 있다. 기관단총이 필요한 전격전과 본격적인 독일군의 기관단총의 발달이 바로 MP28이기 때문이다. 1933년, 독일에서는 아돌프 히틀러의 정권 장악, 다음 해에 히틀러는 대통령을 겸임해 총통이 되었다. 한층 더 나아가 1935년에는 상술했듯 재군비를 선언해 징병제가 부활하며 여러 가지 병기의 개발이 가속화했다.[1]
사실 바이마르 공화국군에서는 수없이 행해지고 있던 연습으로, 전차의 기동력에는 보병의 수반이 필수로 보병의 화력 향상도 필수이라고 통감하고 있던 독일군은 기관단총의 채용을 결정했다. 그래서 1934년부터 MP28이 대량으로 독일군에 납입되었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파견된 독일군과 함께 MP28도 전장에 투입되어 그 유효성이 입증되었다. 기관단총의 유효성에 주목한 독일군은 한층 더 새로운 기관단총을 만들게 했는데, 이것이 MP38이었다. 그리고 1939년 9월 1일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그 뒤 MP38의 결점을 보완하여 탄생한 것이 전쟁 기간 동안 우수한 성능을 입증한 그 유명한 MP40이다.
이와는 별개로 독일의 적이었던 스페인 제2공화국 정부 또한 전쟁 발발 이전 이 총을 자국의 9×23mm 라르고 탄 구경에 맞추어 라이선스 생산했다. 공화파에서도 이 독일제 기관단총은 대호평이었는데, 당시 민병대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던 공화군은 프랑코 진영의 북아프리카 식민지병 출신 정예 부대와 야전에서 맞서는 걸 피하고 대부분 국가군 쪽으로 넘어간 정규군 상대로 지리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기관단총이 딱 활약하기 좋은 시가전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와중에 생기는 전장의 사건 사고도 피할 수 없어 스페인 내전 초반기만 하더라도 공화파의 중추를 담당했던 CNT 아나키스트 민병대의 가장 전설적인 지휘관이었던 부에나벤투라 두루티가 마드리드 공방전에서 작동 불량으로 오사된 아군의 MP28을 맞고 죽어버린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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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40의 등장 이후에도, 크릭스마리네 육상부대 등 후방 병력들의 무장으로도 애용되었다. 이 그림은 드래곤 모델의 박스아트로 유명한 로널드 볼스타드 화백이 그린 1942년의 디에프 상륙작전 당시 방어전을 펼치던 독일 해군 육전대를 재현한 것으로, 왼쪽의 일등상사가 MP28을 들고 있다.
3. 파생형
3.1. 란체스터 기관단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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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스털링 아머먼트 사에서 카피한 제품. 자세한 건 문서 참조.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4.1. 게임
의무병의 기관단총으로 등장.
Trencher라는 이름으로 등장.
Waffe 28이라는 이름으로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