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T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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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군이 사용한 근접신관. 주로 대구경 대공포[1] 탄환으로 썼다. 2차 대전 기간 중 해군용으론 3, 5, 6인치, 육군용으로는 90mm, 120mm(대공용)와 105mm, 155mm(대지상 공중 폭발용) 등이 개발되었다. 이 중 해군용 6인치는 양용포로의 사용을 염두에 두고 3연장 포탑을 개발했으나, 실제로 대공 사격에 쓰기는 어렵다는 평가를 받아 주로 대함/대지 공격용으로 사용되었고 따라서 생산된 6인치 VT 신관의 양도 많지 않다. 대함/대지 공격시엔 노출된 적의 인원과 비장갑 시설을 파편으로 파괴하는 것보다 함선의 철제 장갑과 구조물, 단단한 지상의 벙커 등 시설물에 직격탄을 꽂아 넣어 파괴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은 2차 대전 종전 후에 2연장 6인치 포탑을 장비한 우스터급 경순양함이 배치되고 나서였으나, 얼마 안가 대공 미사일의 시대가 열리는 바람에 조기 퇴역한다.
1939년에 방공망을 강화하려던 영국에서 개발되었으며, 에드워드 S 샤이어와 F.H. 톰슨에 의하여 고안되었다고 한다.
작동원리는 주변으로 전파를 방사하다가 전파가 되돌아오면 작동한다. 전파가 되돌아 왔다는 것은 주변에 무언가 물체에 부딪혀 반사되어 되돌아왔다는 뜻이며, 즉 주변에 무언가 물체가 있다는 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원시적인 레이더라고 보면 된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신관 껍데기 자체가 일종의 안테나 역할을 하는 매우 단순한 구조다. 문제는 그 당시에 그리도 비쌌던 '''첨단 부품인 진공관'''을 포탄 하나하나에 다 집어넣었다는 점. 21세기로 치면 포탄 한발 한발에 값비싼 군사용 CPU를 넣은 것과 같다. 현대의 미군은 지금도 비슷하게 첨단 부품이 잔뜩 들어가는 물건을 만들어 쓰고 있다.
VT라는 명칭은 Variable Time, 가변 시한 신관의 줄임말[2] 으로, Ian Hogg의 저서 『British and American Artillery of World War Two』에 의해 탄약국의 V섹션에서 개발한 코드네임 T의 신관이라고 잘못 알려졌다.[3]
앞써 언급한데로 처음에는 영국에서 개발되어 1940년에 기구를 목표로 한 발사시험에 성공하였으나 이는 일반 포에서 실험한게 아닌 일종의 대공로켓[4] 에서 실험한 것이였다. 당시 영국은 VT탄을 일반 대공포에 넣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진공관이 포탄의 원심력과 발사시의 충격[5] 에 견디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영국은 미국과의 과학 기술 협력 임무(티저드 계획)에서 미국한테 VT신관 설계도가 공개되자 미국은 이를 영국과 함께 개량하고 생산하기로 한다.
개발에 맨해튼 계획에 필적하는 자금이 투입되었고, 개발이 완료된 이후에도 생산단가는 매우 비쌌다. 1942년도 기준으로 한발당 가격이 732달러로 당시 자동차 한 대값. 현재 가치로는 9347.54달러다. 그러나 이후 대량생산에 들어가면서 1945년도 기준으로는 18달러, 현재 가치로 약 221.13달러까지 내려갔다. 여담으로 2차대전기 미혼+자녀 없는 미군 이병의 수당을 제외한 순수 월급이 54 달러 가량이였다. 즉 초창기에는 이병 연봉보다 비쌌다.
원래는 적이 불발탄을 노획해서 카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해상전이나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만 사용되었으나, 이후 일본과 독일 모두 이것을 실용화할만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 된 이후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나치 독일은 1930년대 부터 VT신관 비스무리한 물건들을 만들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나 항공기 엔진음향이나 라디오, 정전기라든지 30가지가 넘는 시도 끝에 포기했었고 1939년에 영국과 미국의 물건과 비스무리 한 물건은 만들수 있었지만 하필이면 영국에게 설계도가 노출된 것[6] 과 단가가 장난 아니라는것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후에 새로운 탄을 만들어서 폭격기 요격에 써먹을려 했지만 그때가 1944년. 폭격에 생산시설과 자금이 박살나고 있었던 나치독일이 패망을 향해 가고 있던 시기라 별 소용없는 짓이였다. 일본 제국 역시 공돌이들을 갈아넣어서 어떻게든 비슷한 걸 만들긴 했지만, 막상 만들고 보니 답이 안 나오는 가격 탓에 생산 같은 건 무리리고 판단해서 보류했다. '''그야말로 미군만이 가능한 미군 전통(...)의 돈지랄 중 하나.'''
2차대전 중에는 주로 대공포탄에 많이 쓰였다. 미사일이 없던 2차대전 당시에는 먼 거리의 항공기를 공격하기 위해 대구경 대공포를 쏘아서 '대충 적 항공기 근처에서 터지도록' 시간을 세팅하여 발사했으므로 항공기가 비행코스를 바꾸면 속수무책이다. 측정하고 감 잡아서 신관 조작해 장전하고 쏘는 사이에 슬쩍 코스 바꾸면... 반면 VT신관은 세팅할 게 없으니 그냥 빨리 쏘기만 하면 됐다. 더 많은 사격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대부분 구축함급에도 주력함과 마찬가지로 주포탑 자동제어시스템을 갖추어 반응시간을 더 줄였다. 그러나 이 VT 신관은 이보다 더 정확하게, 대충 근방에 적 항공기가 있다면 '''알아서 터진 덕에''' 명중률이 훨씬 좋았다. 기존의 시한식 대공포탄에 비해서 대충 3배 정도의 명중률 향상을 보였던 모양이다. 다만 레이더와 FCS를 도입한 이후의 대공화기 명중률 상승이 약 100배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 당시의 초보적인 VT신관은 대공화력망 강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는 견해도 있다.
VT신관의 최초의 실전은 과달카날 전투 당시 문다 비행장을 포격하고 귀환하는 67기동부대가 사용 한 것이다. 과달카날 근방에 도착했을 때 4기의 99식 함상폭격기의 공격을 받았고 경순양함 헬레나의 대공사격에 1기가 격추되었다. 다만 생산량이 딸렸던 초기에는 전선에 투입되는 양이 적어 그리 많은 전과를 올리지는 못했던 모양. 일본군의 항공기들이 말 그대로 작살 나버린 필리핀 해 해전 당시도 미군의 전투기들이 무쌍을 찍어버린 탓에 정작 격추된 일본의 항공기 378기 중 대공포화에 격추된 수는 19기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군이 가장 경계하던 대공무기는 VT신관이 아닌 보포스 40mm 포. 실제로 미군이 운용한 대공무기 중 일본기를 가장 많이 격추한 것도 이거다.[7] 결국 VT신관이 본격적으로 그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전쟁 말기에 들어 일본군이 카미카제 특공대를 운용하기 시작한 이후부터가 되었다.
이 외에도 VT신관은 독일의 V1을 요격하는데도 유용하게 쓰였으며, 야포탄이나 항공폭탄에 적용하여 포탄이 땅에 닿기 전에 공중에서 터지도록 해서 도로나 시설물에 손상을 주지 않고 사람만 제거하는데도 쓰였다(이 경우에는 지면에 전파가 반사되어 포탄으로 돌아간다). 또한, 공중에서 터지는 VT신관의 출현은 포탄 한발로 사상할수 있는 인원을 더 높혀주었고, 일반적인 포탄의 경우처럼 포복해 버리면 파편들이 위로 지나가서 살상력이 떨어지는 문제를 공중에서 폭발해서 파편을 사방으로 내리는 방식으로 극복. 인마 살상력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후에 공중에서 폭발해서 플레쉐트를 뿌리는 포탄등의 모태가 되었다. 공중폭발(Airburst)의 개념이 이미 이 때부터 응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신관의 전과 중에는 6.25 전쟁 당시 아군 오폭도 있다. 바로 김영옥 미 육군 보병 소령과 그 부대를 "너무 북진해서 적인 줄 알았다."며 포격한 미 육군 포병대가 쏜 탄이다. 이 일로 김영옥 소령은 중상을 입고 한국전쟁 전선에서 잠시동안 빠지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진급에서 누락되었다.
영국 본토 항공전이 한창일 때, 영국에서 생산되는 VT신관이 독일로 노출될 뻔한 적이 있었다. 다름 아닌 VT신관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던 여성공이 나치즘 신봉자였고 영국에 잠복해 있었던 게슈타포 요원에게 접근해서 VT신관을 독일로 빼돌리려고 했었다. 그러나 금세 영국 경찰에게 발각되어 둘이 체포 당하게 되는데 사실 그 여성이 접근한 게슈타포 요원은 위장한 MI5 요원이였다고 한다.[8] 실제로 독일로 빼돌렸다 하더라도 영 좋지 못한 초기형이였던데다가 갈수록 열악해지는 생산능력 때문에, 열심히 총과 전차 만들어서 싸우기도 힘들던 독일이 비싼 VT신관을 양산해서 재미를 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이미 독일도 VT신관과 같은 종류의 신관을 39년 쯤에 개발을 완료한 상황이었다. 일선 장병들에게 쥐어줄 총과 전차, 화포, 전투기도 부족한 상황이라 스킵되었을 뿐.
현대에도 유사한 포탄이 사용되고 있으며 미사일에도 적용하는 근접신관이 이것의 발전형. 대공사격 뿐 아니라 포탄이 지면과의 거리를 측정해 공중에서 폭발하여 넓은 범위에 파편을 흩뿌리는 용도로도 애용되지만, '''그 거리를 오인시키는 전파교란기술'''도 존재한다. 한참 위에서 폭발해버릴 위험도 있다는 뜻. 대공포에서도 마찬가지라 K-21 보병전투차에도 채용된 3P 포탄은 포탑에서 레이더와 레이저로 목표까지의 거리를 측정해, 포탄이 발사되어 포신을 지나가는 와중에 폭발거리를 입력하는 시한신관 방식이다.
대공 미사일에도 널리 사용되지만 상술한 것처럼 전파는 교란당하기도 쉽고 대기현상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레이저를 사방으로 쏘아 반사광을 측정하는 센서도 개발되었다. 한국에서는 천마 지대공미사일에 처음 채용되었다.
전함소녀에서 래피를 개조하면 얻을 수 있다. 명중+5 대공+5 대공보정+80%로 매우 좋은 대공장비다.
워 썬더에서 함포가 장착된 미국 군함의 언락 포탄으로 등장하며, 다른 국가들도 전후 함선의 포탄으로 써볼 수 있다. 날아와도 피하면 그만인 타국의 시한신관과 달리 적당히 쏴도 적기가 우수수 떨어지는 절륜한 성능 탓에 미국 대형함이 뜨면 그 일대는 비행금지구역이 된다. 안 그래도 강력한 미국 해상군의 화룡점정인 포탄. M247 서전트 요크[9] 와 ADATS의 대공포에도 적용되어 있는데 유효타격범위 9m의 범위를 자랑한다. ADATS의 경우 기관포보다 미사일이 주무장이고 해당 티어의 다른 대공포들도 VT탄을 쓰는 경우가 있어서 조금 위상이 떨어지지만 M247은 나왔을 당시 유일하게 VT신관을 사용할 수 있는 대공포였다. 당연히 기존 자폭탄과는 차원이 다른 명중률과 위력을 보여준다.
1. 소개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군이 사용한 근접신관. 주로 대구경 대공포[1] 탄환으로 썼다. 2차 대전 기간 중 해군용으론 3, 5, 6인치, 육군용으로는 90mm, 120mm(대공용)와 105mm, 155mm(대지상 공중 폭발용) 등이 개발되었다. 이 중 해군용 6인치는 양용포로의 사용을 염두에 두고 3연장 포탑을 개발했으나, 실제로 대공 사격에 쓰기는 어렵다는 평가를 받아 주로 대함/대지 공격용으로 사용되었고 따라서 생산된 6인치 VT 신관의 양도 많지 않다. 대함/대지 공격시엔 노출된 적의 인원과 비장갑 시설을 파편으로 파괴하는 것보다 함선의 철제 장갑과 구조물, 단단한 지상의 벙커 등 시설물에 직격탄을 꽂아 넣어 파괴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은 2차 대전 종전 후에 2연장 6인치 포탑을 장비한 우스터급 경순양함이 배치되고 나서였으나, 얼마 안가 대공 미사일의 시대가 열리는 바람에 조기 퇴역한다.
1939년에 방공망을 강화하려던 영국에서 개발되었으며, 에드워드 S 샤이어와 F.H. 톰슨에 의하여 고안되었다고 한다.
작동원리는 주변으로 전파를 방사하다가 전파가 되돌아오면 작동한다. 전파가 되돌아 왔다는 것은 주변에 무언가 물체에 부딪혀 반사되어 되돌아왔다는 뜻이며, 즉 주변에 무언가 물체가 있다는 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원시적인 레이더라고 보면 된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신관 껍데기 자체가 일종의 안테나 역할을 하는 매우 단순한 구조다. 문제는 그 당시에 그리도 비쌌던 '''첨단 부품인 진공관'''을 포탄 하나하나에 다 집어넣었다는 점. 21세기로 치면 포탄 한발 한발에 값비싼 군사용 CPU를 넣은 것과 같다. 현대의 미군은 지금도 비슷하게 첨단 부품이 잔뜩 들어가는 물건을 만들어 쓰고 있다.
2. 상세
VT라는 명칭은 Variable Time, 가변 시한 신관의 줄임말[2] 으로, Ian Hogg의 저서 『British and American Artillery of World War Two』에 의해 탄약국의 V섹션에서 개발한 코드네임 T의 신관이라고 잘못 알려졌다.[3]
앞써 언급한데로 처음에는 영국에서 개발되어 1940년에 기구를 목표로 한 발사시험에 성공하였으나 이는 일반 포에서 실험한게 아닌 일종의 대공로켓[4] 에서 실험한 것이였다. 당시 영국은 VT탄을 일반 대공포에 넣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진공관이 포탄의 원심력과 발사시의 충격[5] 에 견디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영국은 미국과의 과학 기술 협력 임무(티저드 계획)에서 미국한테 VT신관 설계도가 공개되자 미국은 이를 영국과 함께 개량하고 생산하기로 한다.
개발에 맨해튼 계획에 필적하는 자금이 투입되었고, 개발이 완료된 이후에도 생산단가는 매우 비쌌다. 1942년도 기준으로 한발당 가격이 732달러로 당시 자동차 한 대값. 현재 가치로는 9347.54달러다. 그러나 이후 대량생산에 들어가면서 1945년도 기준으로는 18달러, 현재 가치로 약 221.13달러까지 내려갔다. 여담으로 2차대전기 미혼+자녀 없는 미군 이병의 수당을 제외한 순수 월급이 54 달러 가량이였다. 즉 초창기에는 이병 연봉보다 비쌌다.
원래는 적이 불발탄을 노획해서 카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해상전이나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만 사용되었으나, 이후 일본과 독일 모두 이것을 실용화할만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 된 이후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나치 독일은 1930년대 부터 VT신관 비스무리한 물건들을 만들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나 항공기 엔진음향이나 라디오, 정전기라든지 30가지가 넘는 시도 끝에 포기했었고 1939년에 영국과 미국의 물건과 비스무리 한 물건은 만들수 있었지만 하필이면 영국에게 설계도가 노출된 것[6] 과 단가가 장난 아니라는것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후에 새로운 탄을 만들어서 폭격기 요격에 써먹을려 했지만 그때가 1944년. 폭격에 생산시설과 자금이 박살나고 있었던 나치독일이 패망을 향해 가고 있던 시기라 별 소용없는 짓이였다. 일본 제국 역시 공돌이들을 갈아넣어서 어떻게든 비슷한 걸 만들긴 했지만, 막상 만들고 보니 답이 안 나오는 가격 탓에 생산 같은 건 무리리고 판단해서 보류했다. '''그야말로 미군만이 가능한 미군 전통(...)의 돈지랄 중 하나.'''
2차대전 중에는 주로 대공포탄에 많이 쓰였다. 미사일이 없던 2차대전 당시에는 먼 거리의 항공기를 공격하기 위해 대구경 대공포를 쏘아서 '대충 적 항공기 근처에서 터지도록' 시간을 세팅하여 발사했으므로 항공기가 비행코스를 바꾸면 속수무책이다. 측정하고 감 잡아서 신관 조작해 장전하고 쏘는 사이에 슬쩍 코스 바꾸면... 반면 VT신관은 세팅할 게 없으니 그냥 빨리 쏘기만 하면 됐다. 더 많은 사격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대부분 구축함급에도 주력함과 마찬가지로 주포탑 자동제어시스템을 갖추어 반응시간을 더 줄였다. 그러나 이 VT 신관은 이보다 더 정확하게, 대충 근방에 적 항공기가 있다면 '''알아서 터진 덕에''' 명중률이 훨씬 좋았다. 기존의 시한식 대공포탄에 비해서 대충 3배 정도의 명중률 향상을 보였던 모양이다. 다만 레이더와 FCS를 도입한 이후의 대공화기 명중률 상승이 약 100배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 당시의 초보적인 VT신관은 대공화력망 강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는 견해도 있다.
VT신관의 최초의 실전은 과달카날 전투 당시 문다 비행장을 포격하고 귀환하는 67기동부대가 사용 한 것이다. 과달카날 근방에 도착했을 때 4기의 99식 함상폭격기의 공격을 받았고 경순양함 헬레나의 대공사격에 1기가 격추되었다. 다만 생산량이 딸렸던 초기에는 전선에 투입되는 양이 적어 그리 많은 전과를 올리지는 못했던 모양. 일본군의 항공기들이 말 그대로 작살 나버린 필리핀 해 해전 당시도 미군의 전투기들이 무쌍을 찍어버린 탓에 정작 격추된 일본의 항공기 378기 중 대공포화에 격추된 수는 19기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군이 가장 경계하던 대공무기는 VT신관이 아닌 보포스 40mm 포. 실제로 미군이 운용한 대공무기 중 일본기를 가장 많이 격추한 것도 이거다.[7] 결국 VT신관이 본격적으로 그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전쟁 말기에 들어 일본군이 카미카제 특공대를 운용하기 시작한 이후부터가 되었다.
이 외에도 VT신관은 독일의 V1을 요격하는데도 유용하게 쓰였으며, 야포탄이나 항공폭탄에 적용하여 포탄이 땅에 닿기 전에 공중에서 터지도록 해서 도로나 시설물에 손상을 주지 않고 사람만 제거하는데도 쓰였다(이 경우에는 지면에 전파가 반사되어 포탄으로 돌아간다). 또한, 공중에서 터지는 VT신관의 출현은 포탄 한발로 사상할수 있는 인원을 더 높혀주었고, 일반적인 포탄의 경우처럼 포복해 버리면 파편들이 위로 지나가서 살상력이 떨어지는 문제를 공중에서 폭발해서 파편을 사방으로 내리는 방식으로 극복. 인마 살상력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후에 공중에서 폭발해서 플레쉐트를 뿌리는 포탄등의 모태가 되었다. 공중폭발(Airburst)의 개념이 이미 이 때부터 응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3. 여담
이 신관의 전과 중에는 6.25 전쟁 당시 아군 오폭도 있다. 바로 김영옥 미 육군 보병 소령과 그 부대를 "너무 북진해서 적인 줄 알았다."며 포격한 미 육군 포병대가 쏜 탄이다. 이 일로 김영옥 소령은 중상을 입고 한국전쟁 전선에서 잠시동안 빠지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진급에서 누락되었다.
영국 본토 항공전이 한창일 때, 영국에서 생산되는 VT신관이 독일로 노출될 뻔한 적이 있었다. 다름 아닌 VT신관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던 여성공이 나치즘 신봉자였고 영국에 잠복해 있었던 게슈타포 요원에게 접근해서 VT신관을 독일로 빼돌리려고 했었다. 그러나 금세 영국 경찰에게 발각되어 둘이 체포 당하게 되는데 사실 그 여성이 접근한 게슈타포 요원은 위장한 MI5 요원이였다고 한다.[8] 실제로 독일로 빼돌렸다 하더라도 영 좋지 못한 초기형이였던데다가 갈수록 열악해지는 생산능력 때문에, 열심히 총과 전차 만들어서 싸우기도 힘들던 독일이 비싼 VT신관을 양산해서 재미를 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이미 독일도 VT신관과 같은 종류의 신관을 39년 쯤에 개발을 완료한 상황이었다. 일선 장병들에게 쥐어줄 총과 전차, 화포, 전투기도 부족한 상황이라 스킵되었을 뿐.
현대에도 유사한 포탄이 사용되고 있으며 미사일에도 적용하는 근접신관이 이것의 발전형. 대공사격 뿐 아니라 포탄이 지면과의 거리를 측정해 공중에서 폭발하여 넓은 범위에 파편을 흩뿌리는 용도로도 애용되지만, '''그 거리를 오인시키는 전파교란기술'''도 존재한다. 한참 위에서 폭발해버릴 위험도 있다는 뜻. 대공포에서도 마찬가지라 K-21 보병전투차에도 채용된 3P 포탄은 포탑에서 레이더와 레이저로 목표까지의 거리를 측정해, 포탄이 발사되어 포신을 지나가는 와중에 폭발거리를 입력하는 시한신관 방식이다.
대공 미사일에도 널리 사용되지만 상술한 것처럼 전파는 교란당하기도 쉽고 대기현상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레이저를 사방으로 쏘아 반사광을 측정하는 센서도 개발되었다. 한국에서는 천마 지대공미사일에 처음 채용되었다.
4. 미디어에 등장
전함소녀에서 래피를 개조하면 얻을 수 있다. 명중+5 대공+5 대공보정+80%로 매우 좋은 대공장비다.
워 썬더에서 함포가 장착된 미국 군함의 언락 포탄으로 등장하며, 다른 국가들도 전후 함선의 포탄으로 써볼 수 있다. 날아와도 피하면 그만인 타국의 시한신관과 달리 적당히 쏴도 적기가 우수수 떨어지는 절륜한 성능 탓에 미국 대형함이 뜨면 그 일대는 비행금지구역이 된다. 안 그래도 강력한 미국 해상군의 화룡점정인 포탄. M247 서전트 요크[9] 와 ADATS의 대공포에도 적용되어 있는데 유효타격범위 9m의 범위를 자랑한다. ADATS의 경우 기관포보다 미사일이 주무장이고 해당 티어의 다른 대공포들도 VT탄을 쓰는 경우가 있어서 조금 위상이 떨어지지만 M247은 나왔을 당시 유일하게 VT신관을 사용할 수 있는 대공포였다. 당연히 기존 자폭탄과는 차원이 다른 명중률과 위력을 보여준다.
[1] 기관총이 아니라 커다란 포[2] 『U.S. Navy Bureau of Ordnance in World War II』; Lt.Cmdr. Buford Rowland, Lt. William B. Boyd p. 279[3] navweaps.com-《Proximity Fuze - What does "VT" Mean?》; Tony DiGiulian[4] 7인치 무회전 대공 로켓이란 물건인데 영국해군에서 잠시 쓰였다. 효과도 없고 신뢰성이 영 좋치 않은지라 41년에 보포스 함포로 대체된다.[5] 장약이 순간연소되면서 엄청난 압력이 발생하고 그 압력으로 포탄을 날려보낸다. 점차적으로 가속되는 로켓과는 달리 발포순간 엄청난 압력이 발사체에 가해진다.[6] 오슬로 보고서 사건으로 한스 페르디난드 메이어라는 독일 수학자의 의해 독일 군사기밀이 대거 누출되는 사건이 있었다. 위에 판단도 이 보고서로 인한 판단.[7] 다른 기록에 따르면 20mm 오리콘 기관포가 숫자로는 가장 많다는 말이 있다.[8] 자신의 위장신분을 지키기 위해 자신도 같이 체포되는 연기는 이 MI5 요원이 처음 제안한 것이라고 하며, 훗날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모티브가 된다. 이 MI5요원의 이름은 에릭 로버츠로 일명 '잭 킹'이라고 불렀던 사람이다. 게슈타포로 위장해 영국내의 나치 협조자나 스파이를 잡아내는 일을 했으며 1940년대부터 1942년까지 수백명의 나치 동조자를 적발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나치 동조자들은 저마다 VT신관 뿐만아니라 영국의 제트기계획이나 수륙양용 전차계획 등 각종 군사기밀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9] 최종연구탄 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