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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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레나다'''는 중앙아메리카 동 카리브해 소앤틸리스 제도(Lesser Antilles)에 속하는 작은 섬나라로, 수도는 세인트조지스(St. George's)이다. 국토면적 340㎢, 인구 약 10만 명의 미니 국가이다. 1인당 명목 GDP는 8,971$이다. 면적만 따진다면 강화군이나 몰타와 같은 크기이고, 인구 역시 나주시와 비슷하다.
포르투갈의 지원을 받은 콜롬버스가 콘셉시온이라고 명명했으나 하필이면 동료였던 포르투갈/스페인 항해사 및 선원들이 스페인의 도시이름이기도 한 그라나다라는 이름으로 고쳐불러 이 이름이 정착되었다. 이러한 까닭에 아직도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로 이 섬은 그라나다 섬으로 불리며, 후에 영국과 프랑스가 섬의 자치권을 두고 분쟁을 겪은 끝에 영국에 귀속되고, 영어식 발음인 그레나다가 공식명칭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 과정을 거쳤기에 공식 명칭을 옛 명칭이자 스페인어/포르투갈어 명칭인 그라나다로 잘못 기재하는 경우가 가끔 발생하기도 한다.
2. 언어
공용어는 영어이지만,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적도 있어서 프랑스어 크레올도 사용한다. 그레나다에서 쓰이는 프랑스어 크레올은 그레나다 크레올로 불린다. 게다가 영어 크레올인 그레나다 크레올 영어도 있다. 그 외에도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앞선 식민지 경합과정때문에 영연방에 가입되어 있고 프랑스어 크레올도 쓰이는 등 프랑스의 영향도 남아 있다.
3. 역사
18세기말에 영국과 프랑스는 그레나다를 두고 그레나다 해전을 치룬 적이 있었다.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후에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으며, 영국령 윈드워드 제도의 일부로 있다가 1974년 영연방 왕국으로 독립했다. 독립 이후에는 에릭 게일리(Eric Gairy) 총리의 강권 독재통치 아래에서 혼란을 겪다가 1979년 모리스 비숍[1] 이 쿠데타를 일으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부인 그레나다 인민 혁명 정부를 선포하여 신보석운동(New Jewel Movement)이 집권당이 되어 입헌군주국 하의 공산주의 정권이라는 기묘한 정부가 세워졌다. 이 기간 중에는 보유했던 군대는 인민혁명군이었다. 이후 쿠바군까지 끌어들이며 동구권 국가들과 친하게 지내는 등의 좌경적 행동을 보이다가 1983년 그레나다 침공으로 미군에게 점령당했다. 이후 임시정부를 거쳐 1984년 신국민당(New National Party)의 허버트 블라이즈(Herbert Blaize)가 새 총리로 당선되었고 이후 보수파 신국민당과 중도좌파 국가민주회의(National Democratic Congress)의 양당제가 이어지고 있다.
4. 정치
하원은 전체 16석 중 1석은 의장, 15석은 소선거구제를 선출한다. 임기는 5년이다. 권한은 영국 하원과 비슷하다. 의회 해산시 총독이 행사할 수 있게 한다.
상원은 10석은 총리에 따라 임명하고, 그 중 3석은 의장 선출 후 다시 협의해서 선출한다. 나머지 3석은 야당 대표에 따라 임명가진다.
5. 경제
바나나와 사탕수수 등 1차 작물 재배가 국가 경제의 핵심인 나라다. 또한 북한과 함께 수집가들을 상대로 하는 외화벌이용 기념우표 남발국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정치가 안정되어 있어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보다 경제상황이 좋다. 최근에는 1인당 gdp가 10000달러 선을 넘으면서 고속성장을 이루고 있다.
6. 스포츠
남자 육상 400m 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키라니 제임스가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은메달, 2015 베이징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7. 외교
7.1.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민국과는 외교관계가 있는 상태다. 참고로 그레나다 침공 당시 대한민국은 공식적으로 미국을 지지하기도 했다. 주 트리니다드토바고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그레나다를 겸임하고 있다.
7.2. 중국과의 관계
중국과는 냉전 당시에 수교했다. 하지만 수교 이전에 일부 중국인들이 그레나다에 이주한 적이 있었다. 그레나다에는 중국인 공동체가 일부 존재한다.
7.3. 러시아와의 관계
냉전 당시에 소련과 수교했다. 70년대말에 소련은 그레나다를 지원했다. 미국의 침공 이후에는 친미 국가가 되면서 소련과는 적대적으로 바뀌었다. 소련이 해체된 뒤에 그레나다는 새로 출범한 러시아와 수교했다.
7.4. 영국과의 관계
영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영연방에도 가입되어 있고 영어도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7.5. 프랑스와의 관계
프랑스는 영국의 지배 이전에 그레나다를 지배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의 영향으로 프랑스어 크레올이 쓰이고 있다. 그레나다에서 영국과의 그레나다 해전도 있었다.
7.6. 바베이도스와의 관계
[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여행경보[1] 참고로 이 양반의 둘째아들 이름이 블라디미르 레닌 비숍(1978~1994)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