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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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작중 행적
3. 평가
4. 기타
5. 어록


1. 개요


2000년 KBS 드라마 태조 왕건의 등장 인물로 연화[1]의 아버지이며 1935년생의 원로 배우 김성옥이 열연했다.[2][3]

2. 작중 행적


패서 지역인 신천의 부유한 호족 중 한 명으로 상인 출신인 만큼 중요한 무역항인 송악을 다스리는 왕씨 집안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송악 성주 왕륭의 아들 왕건과 자신의 딸 연화가 어렸을 때부터 혼인을 약속했다. 그러나 왕륭은 아들인 왕건이 황제가 될 운명이라 확신하고 있었고 연화에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국구[4]가 되기에는 강 장자의 그릇이 너무도 작아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을 것을 염려해 혼사를 차일피일 미뤘다. 그렇게 세월만 보내던 차에 황비감을 물색하던 종간이 연화가 귀인의 상임을 알아보고 적극 그녀를 추천했고 딸인 연화 본인은 물론 아내 백씨마저 왕씨 가문과의 약조를 생각하자 했으나 강 장자는 황실의 외척이 될 생각에 한 눈이 팔려 국혼을 택한다. 왕건이 집안의 재산을 털어 송악에 황궁을 건축하고 궁예와 연화가 혼례를 올리자 왕건에게 과거에 대해 함구해둘 것을 부탁할 정도.
황실의 외척으로 대접받게 되자 얼마간은 별 문제없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것도 잠시. 그릇과 소견이 좁은 모습을 계속 보여줬으며 연화가 태자들을 낳자 부귀영화가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연화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를 잇겠다며 양아들을 들였다가 연화와 궁예 모두에게 한 소리 듣게 된다. 거듭 무훈을 세우는 왕건을 시기하며 폄하하는 발언을 곧잘 해댓으며 아지태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궁예가 민생을 피폐하게 하자 신료들이 그를 염려하며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황명이면 무조건 따라야지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하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급기야는 궁예가 독화살을 맞고 생사를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병부령 복지겸을 찾아가서 다음 황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5] 아지태와 자주 만나며 태자를 황제 자리에 앉힌 후 자신이 섭정에 앉는 꿈을 꾸기에 이른다. 내원 종간과 내군장군 은부 휘하 내군의 감시의 눈이 곳곳에 번뜩이고 있는데다 궁예의 성미를 잘 아는 연화로부터 과욕을 부리지 말라는 당부를 여러 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이 많아서 나쁠게 뭐냐며 막 나가는 행보를 거듭하는데 그러던 중 궁예가 도인의 기 치료로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다. 이에 종간은 그간 있었던 모든 신료들의 불미스런 움직임들을 보고하면서 살생부를 올리는데 그 중에는 강 장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강 장자를 노망난 늙은이로 취급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는 했지만 만약 궁예가 죽을 경우 위험 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처단하려 했던 것.
이후 궁예는 독화살을 맞은 후유증으로 인해 수시로 통증을 느끼며 환각에 시달리는 병을 앓는다. 무리한 철원 천도와 북벌 준비로 민심은 최악으로 치닫고 아지태는 궁예로부터 많은 권한을 위임받음과 동시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처형을 당할 수 있다는 위협을 은연 중에 받게 된다. 이에 아지태는 왕건을 다음 황제로 포섭하려 했지만 왕건이 굳게 거절하자 차선책으로 강 장자를 역모에 끌어들인다. 아지태는 불시에 궁예를 시해하고 종간과 은부를 제거한 뒤 어린 태자를 보위에 앉힐 계획을 세웠고 강 장자는 자신이 섭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릴 망상에 젖는다. 그러나 아지태의 수하인 입전신방이 궁예의 관심법을 두려워한 나머지 계획을 종간에게 밀고했고 결국 두 사람을 제외하고 역모와 관련된 자들이 전부 하옥되기에 이른다. 궁예는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아지태를 죽이기를 망설였기 때문에 시중으로 임명한 왕건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사건을 심사하고 판결하라고 명했고 왕건은 핵심 인물인 아지태는 처형하되 역모에 가담한 다른 자들은 모두 살려보내는 관대한 평결을 내리며 강 장자 역시 3년간 근신하라는 처분을 받아 집에 돌아온다. 이 정도로 끝난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는 아내와 달리 그는 왕건의 평결에 불만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권력욕을 버리지 않으며 과욕을 부린 것에 대한 아내의 책망에도 "미친 황제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다"라고 적극적으로 합리화하며 큰소리를 친다.
도인의 영초탕을 마시고 3일 뒤에 깨어난 궁예는 병은 씻은 듯이 나았지만[6] 이번에는 아지태가 죽기 전 마지막 발악으로 남기고 간 말[7] 때문에 주위 사람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관련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캐묻던 궁예는 결국 아지태 사건을 다시 친국하기로 정하고 강 장자도 당시 잡혀갔던 다른 주모자들과 함께 하옥된다. 궁예는 그래도 장인이라고 하옥시키기 전 불러내서 자백하여 목숨을 건지라 말하지만 강 장자는 친국 현장에서 궁예가 관심법을 썼다고 했음에도 끝까지 억울하다고 잡아뗀다. 결국 옆에서 기전능달이 차례로 죽어나가고[8] 궁예가 다시 한 번 윽박지르자 그제서야 겁에 질려 자신도 역모에 가담했으며 태자들을 보위에 올리려 했음을 시인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종간과 왕건은 그가 황후의 아버지이자 황제의 장인이기에 함부로 처형했다가는 관료들과 백성들이 크게 동요할 것이라는 이유로[9] 그를 살리려 간해 보았으나 궁예는 뜻을 돌이키지 않았고 결국 강 장자는 법봉에 맞아 숨을 거둔다.[10] 이전까지는 궁예의 실정과 광기를 보면서도 줄곧 그를 걱정하던 연화도 아버지가 처형당한 뒤로는 내관이나 시녀들 앞에서 인간 백정이라거나 미치광이라거나 하는 폭언을 서슴지 않게 된다. 얼마 뒤 어머니 백씨도 상심 끝에 목을 매어 자결하자 부부 사이는 최악으로 치달았으며 결국 연화는 궁예에게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는 왕건에게 역성혁명을 권하게 되는데 이것이 궁예의 귀에 들어가 연화와 두 태자까지 처형당했다. 강 장자의 처형 이후에 갑자기 그리된 것은 아니었고 아지태가 죽기 전 발악으로 왕건과 연화의 옛 일을 들먹이자 시작된 의심으로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이 강 장자의 처형으로 급속화되었던 것이다.
궁예는 이후 연화와 태자들의 국문을 마무리지은 후 강 장자의 양아들을 방면했으며 이후 강 장자의 가문과 양아들이 어찌되었는지는 언급이 전혀 없지만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서는 강기주라는 인물을 비롯해 신천 강씨 집안의 세력가들이 등장하는데 이를 보아 신천 강씨가 완전히 몰락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11]

3. 평가


그자는.. 신경 쓸 것 없어. 별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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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부가 아지태와 강장자의 밀담을 보고하자 종간이 보인 반응.

강 장자는 아니야.. 그 기회라는것이 오면 황제를 하야시키고 태자를 올리면서 강장자의 목숨을 거두어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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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태가 모반을 꾀하며 강장자에 대해 내린 평.

극 초반부에 연화가 황후로서 궁에 들어가는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부터 그의 인물됨이 부각되었는데 아내와 딸이 왕씨 가문과 정혼을 한 사실을 언급하며 국혼을 내켜하지 않는 와중에도 귀가 솔깃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경우는 그나마 왕륭이 약속을 차일피일 미룬 것이기에 도의상 강 장자 본인의 죄는 아니라 할 수 있으나 그래도 딸의 처지를 걱정하는 아내 백씨나 왕건의 집까지 가서 농성을 한 딸 연화에 비하면 그릇이 좁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었다.
왕륭은 강 장자를 장사치로 살아야 할 인물이라고 평한 적이 있었는데 그의 예상대로 권력을 갖게 되자 양아들을 들이거나 다른 관료들이 백성들의 어려움을 걱정할 때에 그것들은 그냥 소모품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궁예가 독화살을 맞고 사경을 헤맬 때 복지겸을 찾아가는 눈치없는 모습도 보였고 아지태와 역모를 도모하는 등 계속해서 어그로를 끌어댔다. 아내인 백씨는 궁예가 석총을 처형한 뒤에는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는 연화의 생각에 동의하고 왕건 덕분에 남편이 목숨을 부지했다며 반성하기도 했지만 강 장자는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인 적이 없다.
정치적 감각도 바닥을 기는 수준으로 왕건이 시중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시중 자리는 자신이 맡아야 한다고 대뜸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궁예가 북벌을 무리하게 추진하게 된 뒤로는 다들 광치나나 시중 자리를 맡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걸[12] 감안하면 정세를 읽는 눈은 물론 사리 판단도 얼마나 떨어지는지 알 수 있다.
왕륭뿐만 아니라 종간도 강 장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했는데, 그에 대한 보고를 듣고 망령난 늙은이가 권력의 단맛을 더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다, 가벼운 자다, 전혀 걱정할 바 아니다 등 그를 대놓고 얕보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딸인 연화는 물론 아내 백씨도 그가 죽게 되자 그의 잘못을 아는 모습을 보인다. 아지태에게는 그저 쓰다 버릴 장기말에 불과했으며 왕건도 그를 변호할 때 단순하고 어리석고 사악함이 적었다며 변호하기도 했다.
즉 난세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갈망 하나 때문에 본래부터 경박하고 옹졸한 성격이 무시무시한 궁예의 폭정 하에서도 어리석은 행보를 이어간 결과 역모로까지 치닫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는 정국 속에서 스스로가 절대 권력을 쥐고 있으면 안전하고 좋지 않겠냐는 것이다. 궁예가 아지태 사건을 다시 조사하는 과정에서 감옥에 갇혔을 때 한 독백이나 유언이 그것을 잘 나타내 주며 연화도 강 장자가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아버님께서 얼마나 살고자 하셔서 그러셨을까' 하고 일견 그를 이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연화로부터 몇 번이고 과욕을 부리지 말라는 신신 당부를 받았고 왕건으로부터 관대한 판결을 받아 반성을 할 기회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스스로의 행적을 돌아보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끊임없이 분수에 맞지 않는 탐욕을 부렸다가 일가가 모조리 몰락하는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이런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아지태 같은 간신의 뜬 구름 잡는 헛소리에도 간단히 놀아났던 것인데 정작 아지태는 '혁명' 에 성공한 뒤 강 장자를 치울 계획도 미리 세워두고 있었다. 즉 아지태의 난이 성공했다 손 치더라도 아지태는 나라가 바뀌면 종간과 왕건 그리고 강장자를 가장 먼저 죽여야 할 사람중 하나로 뽑혔으니 어찌 되던 죽을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는 것. 또한 황제인 궁예를 사위로 삼았고 그 덕에 부귀영화를 누렸으면서도 그에게 감사하거나 타락해가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거나 존중하는 모습을 일절 보여주지도 않았다.
결국 아지태만큼 사악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략도 없고 탐욕에만 가득찬 속물이었다. 하지만 이미 자기 그릇에 걸맞지 않은 황실 외척이란 권세를 갖고 있었고 주변 인물들이 끊임없이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만족을 모르고 분에 넘치는 과욕을 부리더니 결국 이것이 그 자신은 물론 일가족 전체를 파멸로 이끌었다.
차라리 가만히만 있어도 황제의 장인이라는 엄청난 위치 때문에 궁예는 그를 의심했을 지언정 결코 함부로 죽일 수도 없었을 것이며 그 전에 궁예는 이미 강장자가 가만히 두어봐야 자신에게 아무런 정치적 위협도 되지 않는 그저 소인배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기에, 어쩌면 '''의심 자체를 안 했을 수도'''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급하게 과욕을 부려[13] 자연적으로 황제가 되는데 왜 급하게 억지로 올리려 했느냐는 궁예의 의심을 사 역모라는 최악의 죄에 연루되었고, 황제의 장인이라 해도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안타까울 따름.

4. 기타


역사와는 차이가 조금 있는데 태조 왕건 연화 사후 나레이션을 보면 궁예가 어느날 갑자기 황후를 보며 관심법을 운운하며 '''네가 다른 사내랑 간통을 하니 웬일이냐''' 라고 하였다 한다. 다만 견훤도 그러했듯 제작진을 궁예를 영웅으로 표현했기에 실록에서처럼 처참하게 광인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 대목을 뺴는 대신 연화가 죽음을 자처하는 대목으로 바꾼것이다.
드라마에서는 강 장자라고만 나오지만 소설판에서는 이름이 강우순으로 설정되어 있다. 한편 훗날 왕건의 의형제가 되어 고려의 명장으로 활약하는 유금필은 원래 강 장자 집안의 가병들을 이끌던 장수였는데, 어차피 강장자가 유금필을 크게 쓸 생각조차 없었고 왕건이 송악에 황궁을 지을 때 도우면서 그의 인품에 감명을 받아 의형제가 된다.

5. 어록


(제93화 중, 아지태와의 회합을 만류하는 강비에게)

"그저 조용히 두고만 보시오소서. 황후마마는 가만히만 계시면 되옵니다. 지금 폐하께서 어찌 되실지는 아무도 모르옵니다. 그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말이옵니다. 저 독사 같은 내원에게 죽거나 아니면 폐하에게 죽거나... 우리는 잘못하면 그렇게 죽사옵니다. 눈치 없는 이 늙은이도 그것을 아옵니다. 그래서 살아보고자 발버둥치는 것이옵니다, 황후마마."

(제103화 중, 아지태의 난에 연루되어 가택연금을 받은 뒤 자신의 부인에게)

"정책이 바뀌고, 권력의 향배가 바뀌면 언제 어떻게 죽을 지 모르는 것이 이 전국시대 벼슬아치들의 운명이오. 우리는 약자요. 장래를 좀 보장받으려고 뛰어다녔던 것이오. 그것이 무엇이 잘못 됐다는 말이오? 아지태의 말이 맞소이다. 미쳤소이다. 황제는 미쳤단 말이오. 그래서, 나도 살려고 뛰어다닌 것이야. '''미친 황제에게 물리지 않으려고 말이오.'''"

(제108화 중, 처형당하기 직전 최후의 유언)

"이 난세에서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고 싶었사옵니다. 그것 뿐이옵니다, 폐하. 헤아려 주시오소서."[14]

[1] 강비의 이름은 기록이 없어서 드라마에서 편의상 연화라고 이름지었다.[2] 용의 눈물에서는 최영 장군 역으로 열연했는데 제1화에서 위화도 회군이 벌어지다 보니 금방 퇴장하기는 했지만 본작에서와는 정반대로 간지 폭풍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다.[3]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도 출연했는데 이 때는 권신 왕식렴의 휘하에서 서경 건설을 실질적으로 지휘한 시중 권직 역을 맡았다. 건설에 동원된 인부들이 굶주림과 과로로 인해 쓰러짐에도 휴식을 주기는 커녕 되려 도구쯤으로 취급하고 굴리는 등 인간성이 결여된 모습을 보이는데 비참한 최후를 맞게된 것 또한 비슷한 부분.[4] 왕 혹은 황제의 장인.[5] 복지겸은 보위 이야기가 나오자 기겁하는 반응을 보인다.[6] 도인의 경우 암살자로 오해한 궁예에 의해 참형을 당한다.[7] 왕건과 연화가 과거에 혼인을 약속한 사이였으며 강 장자가 목숨을 걸고 어린 태자들을 보위에 올리고자 했는데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라는 말이었는데 궁예는 두 태자가 친자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아지태도 그런 의도로 말하였다. 연화가 임신을 한 것은 황후가 되고 몇 년 뒤 궁예가 순행을 하던 중이었으니 태자들은 궁예의 자식이 맞다. 강 장자는 섭정을 하며 권력을 쥐려고 하기 위함인데 궁예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의심할만한 사항이니 자업자득이다.[8] 궁예가 먼저 기전에게 강 장자가 역모를 꾸몄느냐고 묻자 기전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대답한다. 궁예는 그를 마군이라고 판정하면서 법봉으로 때려 죽여버리고 능달이 겁에 질려서 강 장자가 아지태와 함께 역모를 꾸민 것을 보았다고 말하며 살려달라고 빌지만 궁예는 이미 면죄받을 기회를 놓쳤다면서 역시 법봉으로 처단한다.[9] 작중 흐름을 보면 강 장자가 죽은 후 강 장자의 부인이 자살하고 이로 인해 강비와 궁예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강비와 두 태자들이 처형당하며 이후 산에 버려진 강비와 태자들의 시신을 형미대사가 거두어 장례를 치뤄주다 추포되어 처형당하는 연쇄 작용 끝에 결국 왕건의 역성혁명이 일어난다.[10] 궁예가 강 장자를 죽인 이유는 그동안 무너진 황실의 권위를 세우고 사람들에게 대권의 '대'자도 꺼내지 말라는 경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종간의 언급처럼 강 장자는 인물됨이 가벼운 소인배이지만 황제의 장인인만큼 그를 죽인다는 것은 상징성이 큰 행동이었다. 종간은 득보다는 실이 많은 행동이었다고 평가했으나 강 장자의 죽음 자체는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정도의 반응만 보였다. 이전에 살생부를 올렸을 때는 궁예의 병증이 심한 상태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였지만 아지태라는 끈이 떨어진 이후에는 별 위협이 되지 못한만큼 이런 평을 내린 것.[11] 신천 강씨가 완전히 몰락하지 않았던 것과 태조 왕건 작중에서 강 장자의 가족을 제외한 다른 신천 강씨 구성원들이 어떻게 되었다는 언급이 없었던 것을 보면 태조 왕건 작중에서 강 장자와 그 가족들만 화를 입었을 뿐 다른 신천 강씨 구성원들은 화를 입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12] 민생이 제대로 파탄나는 와중에 북벌의 성과조차 안 나올 것이 뻔한데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책임을 고스란히 혼자서 떠 맡아야 했으니 관리들 입장에서는 전혀 달가운 자리가 아니다. 왕건의 숙부 왕평달은 광치나 자리를 이어받았을 때 이를 불편해하면서 전임 광치나인 박지윤은 속으로 기뻐할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13] 왕건과 달리 궁예는 정실 황후가 딱 1명이였다. 슬하 태자는 무려 2명, 침착하게 납짝 엎드려 때만 기다렸더라면 무조건 다음 황제를 이어받을수 있었을 것이고 설령 왕건이 새 나라를 일으켰더라도 양가의 깊은 교류로 인한 인연과 연화와의 정 때문에 강장자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14] 이 대목 직전까지 경망스럽고 호들갑스럽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던 강 장자가 이 마지막 대사는 가벼운 기를 싹 거두고, 무겁고 진지하게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