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태

 


'''阿志泰'''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대중 매체에서
2.1.1. 작중 행적과 최후
2.1.2. 캐릭터성
2.1.3. 인간 관계 및 주변 사람들의 평가
2.1.4. 기타


1. 개요


태봉 궁예신하. 서원경 사람.
본래 아첨하기 좋아하고 간사하고 악독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궁예가 평소 남에게 참소(讒訴)하는 짓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는 궁예에게 마음을 얻기 위해 같은 고을 사람인 입전(笠全), 신방(辛方), 관서(寬舒) 등 세 사람을 반역 혐의로 참소하였으나 해당 관청에서 수년 동안 판결이 나지 않자 913년 시중 왕건이 수사 끝에 흑백을 가려 아지태의 자백을 받아냈고 그를 처벌한 후에[1] 사건을 마무리지었다는 기록만이 전한다. 왕건의 인기와 입지만 끌어올려준 사건이었다.

2. 대중 매체에서



2.1. 태조 왕건


원로 배우 김인태가 열연했다. 궁예 역의 김영철, 왕건 역의 최수종과 연기 대결을 펼쳤다.
궁예와 태봉을 멸망의 길로 인도한 불씨. 그러나 궁예는 아지태를 만나기 전에도 이미 작중 인물이 모두가 폭군이라 평한 시황제의 정책을 우호적으로 평하는 등 타락의 조짐이 많이 있었고 아지태의 감언이설을 무분별하게 수용했으며[2] 주변 인물 모두가 아지태를 멀리하라고 간언했음에도 이를 듣지 않고 아지태를 신임해 곁에 두었다. 물론 아지태가 궁예 타락의 1차적인 책임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궁예가 타락을 자초한 측면도 결코 적지 않은 셈.
드라마에서는 적지 않은 공부를 한 인재인데다 시류를 읽는 눈도 갖춘 인물이나[3] 역사이름을 남길 것에 집착하며 자기 이상밖에 모르는 사악한 인물로서 그려지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부족한 역사 기록에 보이는 인물들의 이름을 최대한 끌어다 쓰다 보니 아지태가 일시적으로나마 조정의 권세를 장악한 거물급 인사로 묘사되었다. 실제 역사에서 아지태한테 참소를 당했던 입전, 신방도 조연으로 꾸준히 등장한다.[4] 아지태한테 참소를 당한 또다른 피해자인 관서는 드라마에 끼지 못해서 출세하지 못했다.

2.1.1. 작중 행적과 최후


이 드라마에서는 위의 기록에 언급된 사건과 왕건과의 관계가 재해석되어 궁예에게 패도 정치를 추구하도록 부추겨 결과적으로 궁예를 타락하게 만든 조연급 악역으로 거듭났다. 배우는 전작인 왕과 비에서 효령대군 역할을 맡은 원로 배우 김인태#s-1. 아지태 등장 직전에 궁예는 미향의 사망, 신라 왕실에 대한 분노[5] 등으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는데, 그 아지태의 감언이설이 궁예의 약해진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궁예는 엇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무엇보다 크게 작용한 것은 '내가 바라던 불국정토는 이제 이루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무엇을 하면 좋단 말인가?' 라는 고민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바로 거기에 아지태가 '그럼 대동방국을 만드시면 됩니다' 라고 나타난 것. 이것은 나레이션이나 궁예 자신의 입을 통해 묘사된다.
44회 때 첫 등장. 전국 순행 중이었던 궁예가 청주 근처를 지나자 지역 호족들과 미리 마중나와 청주에 한 번 들려달라고 호소하면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본래 청주 방문 계획이 없었던 궁예는 그들의 간곡한 호소에 마음을 바꾸어 청주로 향했고, 아지태는 궁예를 상대로 열심히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 성공해[6] 궁예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다. 옆에 같이 있던 왕건은부도 "아지태 쟤 쓸만한데요? 보통 인물이 아닌 듯. ㅎㅎ"하며 감탄하는 분위기였다.
궁예의 신임을 얻게 된 아지태는 중앙에 진출하게 되었고 이 자로 인하여 이전까지는 백성들에게 지극히 선정을 베풀던 잘 나가던 궁예가 본격적으로 엇나가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까진 검소한 생활로 민심을 사로잡던 궁예에게 북벌, 즉 중원을 도모할 것을 부추기며 그의 마음에 들었다. 나아가 패서 호족들의 거점인 송악을 대신하여 철원으로 천도할 것을 권하고 그 대대적인 공사에 앞장선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사람들인 청주 사람들을 대규모로 동원했고 도중에 종간과 은부가 획책한 암살 시도에 휘말리기까지도 했으나(65회)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뚝심있게 작업을 완수한다. 다행히도(?) 아지태는 전치 보름 정도의 중상에 그쳤고 암살을 시도했던 자는 궁예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궁예는 이미 누구의 음모인지 대략 눈치는 채고 있던 상황이었고, 은부에게 "아지태를 잘 보살펴라. 문제가 생기면 경에게 책임을 묻겠다."라며 경고를 했고 아지태는 병상에 누운 채 은부를 향해 씩 웃었다. 이를 본 은부는 당연히 부들부들⋯.
이후에는 주요 관직에 청주 사람들을 대거 등용하도록 하여 권력을 굳혀 나간다. 아지태와 궁예가 대화를 나눌 때는 기존 패서 지역의 고구려계 신료들을 멀리하고 자신의 청주계를 가까이 할 것을 이야기 한다. 또한 궁예에게 화려한 모습을 갖추도록 종용해 철원 천도, 전쟁 등으로 국고를 탕진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자신의 정책으로 생긴 문제를 뻔히 알면서 궁예에게 이를 숨기는 간신의 면모도 적극 보인다.
궁예는 아지태에게 막강한 권력을 쥐어 주고 그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으나,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도 아지태의 권력 집중을 견제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지태는 궁예를 시험하고자, 궁예에게 어검(御劍)을 한 자루 내려달라고 부탁한다. 궁예는 순순히 어검을 내려주는가 싶더니 돌연 표정을 바꾸고 '''내 눈이 하나라고 세상도 하나로 보는 줄 아느냐며''' 이미 전권을 줬는데 더 큰 권력을 요구한다며 아지태를 꾸짖는다.
그리고는 최응에게 한비자 9편에 적힌 신하가 군주에게 저지르는 8가지 간사한 행동(八姦)에 대해 읊어보게 한다. 최응이 거침없이 8가지를 읊는데 아지태의 행실이 행실이다보니 전부 아지태를 까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한비자 10편에 적힌 군주가 조심해야 할 열가지 잘못(十過)을 읊게 한다. 이때 궁예는 자기 자신을 모르면서 남을 믿는 것은 군주가 절대로 금해야 할 행동이라고 강조한다. 최응의 영민함과 궁예의 카리스마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장면인데 아지태와 최응을 불러놓고 최응에게 한비자가 말한 군주가 금해야 할 10가지를 읊게 한다. 최응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비자의 고전을 줄줄 읊기 시작하는데 7번째까지 읊었을 때 궁예가 받아서 나머지 3가지를 읊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9번째라면서 앞의 내용을 강조한다. 궁예가 아직 총명함을 완전히 잃지 않았다는걸 깨달은 아지태는 청을 도로 물린다.
몇 년 뒤, 궁예가 국명을 '태봉'으로 바꾸면서, 궁예는 인사 과정에서 아지태에게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해주며, 그 외 아지태가 부탁한대로 인사를 감행한다. 하지만 궁예가 무책임하게 아지태에게 권력을 준 것이 아니었는데, 실제 의도는 '''"막강한 권력을 달라고 하니 주겠다. 그런데도 북벌의 성과가 없다면, 다음에는 네 목숨을 바치라."'''였다. 궁예 또한 이 이전부터 아지태를 불신했었다는 대목. 독화살을 맞고 제정신이 아니라 할지라도 여전히 군주로서의 통찰력은 안 죽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본인 옆에서 아첨하기를 밥 먹듯이 하고 출세욕을 지나치게 밝히고 있었음을 모를리가 없다.''' 순군부에 권력을 몰아주면서도 한편으로 순군부의 군 이동 상황을 내군에 보고하게 하는 등, 종간과 은부로 하여금 아지태를 견제할 수 있게 만든다. 궁예의 이 의도를 알아챈 아지태도, 종간도 역시 폐하는 폐하라며 독백하였다. 물론 한쪽은 긴장하고 한쪽은 안도하는 반응. 아지태도 궁예가 황제로 있는 이상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뭔가 성과를 내야 함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미 태봉국의 국력으로는 무엇 하나 쥐어짜 낼 것도 없는 상황인지라, 마침내 청주 출신의 사람들을 규합하여 정변을 꾀하게 된다. 처음에는 왕건과 손을 잡으려 하지만 거절당하자 대신 강 장자를 끌어들인다. 물론 아지태는 쿠테타에 성공하면 강 장자 역시 토사구팽할 생각이었다. 한편 강장자 역시 황후의 부친이며 황제의 장인이라는 타이틀 이외에는 내세울 거 없는 인물이었다. 이렇게 서로간의 신뢰도 없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역모를 꾸미다가 '''결국 둘 다 쇠방망이에 맞아 신음과 비명을 내며 절명하는 것으로 비참하게 최후를 맞는다.'''
그러나 의형대의 일을 맡고 있던 입전과 신방이라는 사람들이 궁예의 관심법이 두려운 나머지[7] 종간에게 역모를 고변하면서 발각된 것으로 나온다. 실제 사료에서는 아지태가 입전과 신방을 참소하였는데 드라마에서는 반대로 진행되었다.
이전에 종간이 아지태를 여러 번 제거할려고 했던 적이 있는지라 처음에 궁예는 역모 고변을 믿지 않았고 사건 처리를 제 3자인 왕건에게 맡기고자 한다. 그러나 왕건을 만나러 가던 중 궁예는 수도에 굶어 죽은 시체가 즐비하며, 북벌 훈련장에는 어거지로 끌려온 노인들만 그 자리에 있고 젊은이들은 진작에 다 도망가고 없으며 오래 전부터 훈련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궁예는 왕건에게 북벌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모든 일을 왕건에게 맡긴다. 다만 아지태를 그냥 처단했다간 궁예가 삽질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되므로 아지태가 잘못된 북벌 정책을 시행했다는 것을 인정만 한다면 아지태의 목숨만은 살려주기로 결정한다.
죽기 직전에 왕건과 궁예를 이간질하는 발언으로 목숨을 구하려 하지만[8], 궁예는 왕건에게 사건을 처리하라며 법봉을 쓰라고 한다. 아무리 궁예가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북벌에 미쳐있다고 하지만, 이미 밖에서 북벌의 실상을 봤으니 아지태의 발언이 생거짓말이라고 판단 할 수 있던 것이었다. 거기다 '궁예 암살 미수 사건'은 '관심법'을 이용해 해결한 문제인데, 그것을 제대로 봤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 말그대로 궁예의 권위와 신성 불가침에 흠집을 내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아지태는 오랫동안 종간을 비롯하여 신료들이 숨겨온 왕건과 황후 강씨와의 정혼 사실을 폭로하였고, 궁예에게 바른 말을 하다 처형당한 법상종의 고승 석총이 왕건이 충주에 있을 적에 만났던 사실도 폭로하였다. 아지태는 왕건을 출세를 위해 자신의 정혼녀를 바친 파렴치한 사람이자, 다음에 올 미륵을 꿈꾸는 반역자로 몰아붙이려 한 것. 즉 살기 위해 왕건을 반역자로 무고한 셈. 그러나 왕건은 오히려 아지태가 무리한 북벌 과정에서 나타난 자신의 잘못만 인정한다면 낙향시키는 벌로만 끝내려 했다. 그렇지만 아지태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면 역사에 오명으로 남게 될 것이라며 거부했고, 죽음을 피하지 못할 바에야 혼자서는 죽지 않을 것이며, 황후도 함께 죽이고 태봉도 멸망시킬 것이라고 왕건을 협박했다. 당연히 궁예 앞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등 끝까지 발악을 하자 종간마저 궁예에게 아지태를 처형하라고 간청했고, 궁예는 결국 아지태를 처형할 것을 명령한다.그리고 자신의 죽음이 목전에 다가오자 결국 죽음을 각오하고 궁예를 향해 팩트폭력유언을 남긴다.

아지태 : 그래, 역시 오늘 여기서 살아나가기는 어려운 것 같구나⋯ 오냐! 그렇다면 바른 말 한 마디 하마⋯'''이 미치광이 황제야! 너는 미쳤다.''' 그래, 이제 바른 말을 하마. 내가 모종의 사건을 꾀했다. 왜냐? 네 놈이 미쳤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았다면은 나는 북으로 갈 수 있었고 너와 함께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도 있었다! 불쌍하구나 황제여, 이제 넌 이미 미쳤다. 제국을 끌어나갈 힘도 없다. '''결국은 왕건에게 다 내주게 될 것이다. 이 미련하고 불쌍한 황제여⋯'''

왕건 : 뭣들 하느냐! 속히 법을 시행하라!!

아지태 : '''으하하하! 왕건아! 안 되었구나! 네 속을 다 끄집어내서 참으로 미안하게 되었구나. 으하하하!'''

이렇게 결국 살아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 아지태는 갑자기 큰 소리로 웃더니 마지막으로 '바른 말'을 하겠다며 욕설과 폭언을 하여 궁예의 심기를 끝까지 후벼파놓는다. 게다가 큰 소리로 왕건을 비웃기까지 하니,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트롤링을 제대로 하고 간 셈이다. 결국 분노한 궁예는 바로 왕건에게 지시를 내리고, 왕건은 바로 아지태를 처형하라는 명을 내리면서 이 말들은 유언이 되고 말았다. 그간 왕건을 경계하던 종간마저 아지태가 왕건과 이 나라의 미래까지 저승길 동무로 삼으려 든다며 오히려 왕건을 변호했다. 결국 그의 유언대로 궁예는 왕건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아지태는 자신이 돌아선 원인과 태봉 막장화의 원인을 전부 궁예의 탓으로 돌리며 발악했지만 '''정작 궁예가 그렇게 된 원인을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아지태 본인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간신배이자 만악의 근원이지만 아지태의 말도 일리가 있는 부분도 당연히 있었다.''' 궁예가 관심법을 쓰면서 공포정치를 한 것도, 너무나 유명한 "지금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말이야." 라는 대사를 탄생시키면서 조회 도중에 기침을 한 신하를 철퇴로 참혹하게 쳐죽인 것도, 군 사열 도중에 한 장군이 말에서 실수로 떨어져 당시 열병식에 참석한 대부분의 조정 대신들의 부인들이 웃자, 웃은 조정 대신들의 부인들을 앞의 신하와 마찬가지로 모조리 철퇴로 참혹하게 쳐죽이고 그것도 모자라서 그들의 목을 베어 효수시키고, 자신의 폭정으로 인해 극도로 분노한 떠도는 일부 백성들이 자신에게 돌들을 던져 돌들을 머리에 맞고 피를 흘리자 이미 달아나 체포에 실패한 그들 대신 해당 사건이 일어난 고을의 무고한 백성들이 그들과 한통속이라 함부로 단정해 아지태 본인[9]을 포함한 왕건과 다른 신료들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건이 일어난 고을의 무고한 백성들을 모두 불태워죽이는 참혹한 만행을 벌이는 등의 수많은 학살들과 가혹행위들은 아지태와 상관없는 궁예 본인이 '''정신나간 미치광이 학살자'''가 되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니 아지태의 이 말이 반드시 틀렸다고만은 할 수가 없는 일이였다. 한 마디로 '''정신나간 미치광이 황제'''와 '''추악하고 교활한 몽상가 간신'''이 서로 만나 각자 자신들의 '''미치광이 짓들'''로 이런 비극적인 사태가 생긴 것이었다.

아지태 : '''으하하하! 자, 어서 오너라! 이 미치광이 황제야! 너의 세상은 이제 끝났다!'''

궁예 : 이런 간악한 놈! 네 놈은 아지태가 아니냐?

아지태 : '''너의 세상은 끝이 났다! 이 불쌍한 황제야! 하하하! 나와 함께 지옥으로 가자꾸나! 하하하하!'''[10]

하지만 궁예는 결국 석총과 아지태의 유언에 계속 얽매이고 그들의 망령까지 보는 등 점점 더 심신이 망가져가면서 왕건을 의심하게 되고 결국 장인인 강 장자와 황후 그리고 두 아들들까지 의심하여 차례로 처형하였다. 사실 강 장자는 권력욕에다 아지태의 뻐꾸기가 더해지자 넘어가 스스로 명줄을 재촉하기는 했다. 강 장자가 아지태와 어울린다는 말을 들은 황후나, 강 장자 자신이 권력욕을 드러내는 걸 지켜 본 부인조차 그러다가 정말 큰일난다고 만류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밀어 붙이다가 결국 변을 당한 것으로 이것이 연쇄 작용을 일으켜 강 장자의 부인마저 식음전폐를 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자 황후마저 완전히 궁예를 저버리게 되고 결국 셋째 아들인 '순백'을 낳고 나서 기존의 두 아들들과 함께 궁예에게 처형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게다가 죽기 전에 죄를 인정하면 살려주겠다고 하는 왕건에게도 이런 저주를 퍼부은 적이 있다.

'''나는 안 죽어⋯! 만약에 내가 죽는다면 그냥은 안 죽어⋯! 당신과 함께 죽을 것이야. 아니, 당신은 물론이고 황제도 함께 갈 것이야. 또 있어. 황후도 죽게 될 것이고, 어린 두 태자도 죽을 것이고, 태봉이란 이 나라 전체를 짊어지고 불속으로 들어갈 것이야!!'''

결과적으로 그의 저주는 거의 사실이 되었다. 궁예 일가는 갓난아기였던 막내아들을 뺀 모두가 몰살당했고 태봉까지 결국 멸망했으니 무서울만치 들어맞은 셈. 물론 왕건은 죽지 않았고[11] 아지태가 물고 늘어진 과거 및 궁예의 광기로 인해 강비 일가를 연관한 일련의 사건이 벌어져 결국 왕건은 의형제인 궁예와의 의리 대신 역성혁명을 선택하게 되어 고려의 황제가 된다.
결국 살아서도 죽어서도 궁예는 물론 태봉까지 모두 망친 간신 역할을 제대로 톡톡히 한 셈이다. 게다가 마지막까지 계획이 틀어진 것에 대해 절하거나 분노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죽기 직전에도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끔찍한 저주의 말들과 비웃음을 선사하고 갔다. 물론 작중 정황상 처형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시청자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이런 자에게는 오히려 살아서 왕건이 즉위하는 것을 보도록 하는 것이 더 확실한 처벌이었을 것이다.

2.1.2. 캐릭터성


인물 자체는 인간적인 면모나 연민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간신배이자 비하 캐릭터이지만, 아지태 자체에는 여러모로 특이한 점이 있었다.
그때나 그 이후에나 한국 사극에서 간신 캐릭터라고 하면 반개혁적 기득권층이거나 탐욕스런 매국노, 또는 만능의 율법 비밀 결사를 통한 암살과 모략으로 역사를 좌지우지 하는 양판소식 흑막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태조 왕건의 아지태라는 캐릭터는 다른 방향으로 사악한 간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궁예가 양길 밑에 있을 때 포섭한 수하들인 은부, 환선길, 이흔암, 복지겸이나 궁예의 독자 세력화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명주파 김순식, 배현경, 홍유, 김락, 김언이나 건국 과정에서 궁예에게 근거지를 바치고 기득권을 인정받은 패서 호족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신진 세력이었다. 또한 단순한 재물이나 권력이 아닌, '북벌'과 '대제국'이라는 이상에 미쳐서 간신이 되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간신배 캐릭터들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먼 훗날 정도전에서 등장한 '괴물'과 비슷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또한 북벌과 대제국을 운운 하는 인물이 정작 드라마 상에서 가장 추악한 인물 중 하나 인 것도 특이한 점으로 뽑을 수 있다. 이환경 작가가 이후에 맡은 제국의 아침, 연개소문 등은 환빠스런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정작 태조 왕건에서는 그런 대제국에 집착하는 아지태가 빌런으로 등장하였다.
작중 왕건은 그를 무능하다 여기지는 않았지만 궁예 면전에서 몽상가이자 기회주의자인 간악한 인물이라고 비난한 적이 있는데, 아지태의 행적은 왕건의 비난과 딱 들어맞는다.
아지태와 함께 지냈던 동문인 박유도 그를 이상과 현실을 전혀 타협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엄청난 국력 소모를 요구하는 철원 천도와 북벌 계획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으며, 궁예는 이를 추진력이 있다고 좋게 보았으나, 실상은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상누각일 뿐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만 추구할 뿐, 장기적으로 계획을 진행 할 수 있는가, 장기적으로 실용성이 있는가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철원 천도 때 황궁만 크게 지었을뿐 철원 주민들은 모조리 내팽개쳤으며 결국 철원은 국가의 수도임에도 수많은 주민들이 굶어 죽어나가는 생지옥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야심차게 밀어붙인 북벌 계획도 마진국의 역량과 장기적인 보급 계획, 지역 인프라 등 전쟁 수행 능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대규모 육군과 수군으로 중원을 점령하고, 점령지를 수탈하여 보급한다는 식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궁예의 북벌에 힘을 보태주는 것처럼 보이나 '''그의 행동 원리의 중심은 언제나 자신'''이었고 궁예는 한 때 후세에 위인으로 기록되는 '''자신의 꿈'''을 이뤄 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잠시 몸을 의탁했을 뿐이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욕은 군주가 다 먹을 테니 자신의 이름에는 오점이 남지 않는다는 것. 그 때문에 주인을 갈아타는 배신을 저지를 때조차 오히려 당당하며 궁예가 암살 미수 사건 이후 사경을 헤맬 때에는 왕건을 찾아와 그에게 보위에 오르라고 부추기는 모습도 보인다. 게다가 왕건조차 힘이 다하면 거리낌없이 버릴 것이라는 말을 왕건 본인의 면전에서 대놓고 한다. 참으로 웃기는 것은 간사한 모략을 꾸민다면 속내를 함부로 드러내면 안된다는 것이 상식인데 그러한 기초 상식을 망각하고 자신의 패를 적에게 모두 보여주는 실책을 저지른다. 간사하다고 해서 똑똑한 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종간은 속을 잘 드러내는 아지태보다 속을 전혀 알 수 없는 왕건을 더욱 경계해야 한다고 평한 적도 있다.
당연히 바보가 아닌 왕건은 이런 터무니없는 제안을 매번 거절했고 결국 완전히 적으로 갈라서게 된다. 이후 궁예의 장인인 강 장자와 손을 잡고 궁예의 아들들을 보위에 올리려는 역모를 꾸민다. 늘상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싶어함을 피력하며 자신은 단순히 권력과 재물을 추구하는 자들과 다르다고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그 자신이 공명심과 권력욕에 불타는 간신, 간웅에 불과했다. 왕건이 그를 '''간웅'''일 뿐이라며 혹평하자, 오히려 몹시도 유쾌한 표정으로 '''"그거 좋지, 간웅 좋지,"'''라며 흡족하기도 한다. 간웅도 어쨌든 영웅이라고 하면서.[12]

2.1.3. 인간 관계 및 주변 사람들의 평가


아지태: 이곳 내원은 폐하와 이 제국의 정신적인 모든 것을 관장한다고 들었사옵니다.

종간: 그렇소이다. 아 학사도 많은 공부를 거쳐 세상의 존경을 받는다 들었소이다만.

아지태: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저 천자문 정도 뗀 것을 가지고 별 말씀을 다 하시옵니다.

종간: 겸손이란 모르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오이다?

궁예: 내원. 손님에게 그 무슨, 그리 말씀을 하시오.

아지태: 소인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모양이옵니다.

종간: 네, 이 사악한 자야! 여기가 어디라고, 간교한 세 치 혓바닥으로 폐하의 안목을 흐리게 하느냐! 대동방국이라니! 그 말은 일찍이 폐하께서 이 나라를 출범시킬 때부터 해 온 말씀이니라. 간교함으로 눈을 흐리게 하고 귀를 막고 요설로서 이루지 못할 꿈을 현실처럼 속이고 있으니 능지처참을 할 놈이 아닌가!

태조 왕건 46화, 아지태와 처음 대면한 종간의 평

그래서 당신을 간웅이라 하는 것이오. 머리는 있으나 나눌 가슴은 없고, 학문은 가지고 있으되 그 씀씀이가 모두 사악하니 어찌 목숨을 나눌 수가 있겠소이까.

찬탈을 권유하는 아지태에 대한 왕건의 평

이런 간악한 놈! 네놈은 아지태가 아니냐?

자신의 꿈에 갑자기 나타난 아지태에 대한 궁예의 반응

자네는 실성한 사람일세. 삐뚤어진 천재야! 자네의 그 망상이 결국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걸세.

61화 박유가 아지태에게.

아지태라는 사람은 학문의 깊이가 분명 큰 인물이옵니다. 허나 그의 사상은 대단히 고집스럽고 독선적이며 현실보다는 이상에 너무 치우쳐 있사옵니다. 그 사람의 이상은 너무도 커서, 이 삼한을 마치 작은 연못처럼 보고 있는것 같사옵니다.

그 사람의 재주는 뛰어났으나 때로는 과격하고 위험하여 스승께서는[13]

네 뜻을 펼치기 전에 네 목숨을 먼저 잃지 않을까 걱정되노라 하신 적이 있었사옵니다. 경계를 하시면서 앞뒤를 잘 살피셔야 할 것이옵니다. 그 사람의 속과 깊이를 아무도 알 수가 없으니까 말이옵니다.

태조왕건 59화 박유가 아지태에게 내린 평가.

생각할수록... 아지태를 만난 것은 비극이었어....

태조왕건 64화 종간

그 자는 기회주의자이옵니다! 위험한 지식인이고 몽상가이옵니다!

태조 왕건 100화 왕건의 충언[14]

말 그대로 최악이며 나아가 태봉국 전체의 공공의 적이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 비중 있는 조연들치고 이렇게까지 심하게 증오받는 인물은 드물다.
은부로부터 아지태에 대한 정보를 모으다가 이상이 너무 높아 현실과 타협할 줄 모른다는 말을 들은 종간은 간신이라 판단하고 처음 만난 자리(46화)에서 '네 이 사악한 자야!' 라고 호통을 쳤으며, 천도 얘기라든가 북벌 얘기를 계속해서 꺼내서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들다 보니 패서 호족들이나 다른 관리들 역시 그를 궁예를 홀리는 요상한 인물로 취급한다.
일찍이 아지태와 동문수학한 사이로 설정된 박유도 처음 조정에 출사한 직후부터 면전에서 대놓고 '''"앞으로 나의 행보는 자네의 횡포를 막는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고, 종간과의 대화에서 아지태를 못 쓸 인간이라고 대놓고 비판하였다. 박유의 언급을 보면 스승에게서조차도 아지태는 위험 인물로 취급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박유는 은부에게 아지태를 제거하고 궁예를 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서 왕건과 손을 잡으라고 권하기도 했다.
자신을 오랜 기간 괴롭히던 종간에게 전혀 악감정을 가지지 않으며, 임춘길 같은 소인배는 아예 0.001%도 관심을 주지 않을 정도로, 대인배에 성인 군자로 묘사되는 왕건마저도 아지태를 대놓고 혐오하였다. 공적[15]으로나, 사적[16]으로나, 도리[17]로서나, 아지태는 모든 면에서 왕건에게 증오받을 만한 행동을 많이 하였기 때문. 가령 87화에 아지태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 왕건은 대놓고 불편함을 드러냈으며, 88화에서 또다시 반역을 제의받자 대놓고 아지태를 비난했다. 그나마 같은 화에서 왕건의 참모인 태평이 예사 인물은 아니라고 평가하긴 하지만. 아지태의 반역 문제로 궁예와 대화할 때, 왕건은 대놓고 아지태를 사악한 인물이라고 비난하였다.
협력이나 그 비슷한 것이라도 했던 유일한 상대는 강 장자인데, 그마저도 제대로 된 협력 관계라기보단 적당히 이용해먹고 토사구팽할 상대에 지나지 않았다.

2.1.4. 기타


슈퍼스트링신암행어사에 등장하는 아지태는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아지태로부터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권력자의 마음에 든 것이나 궤변, 나라를 망친 주역이란 점 등 여러 모로 겹치는 바 있다.

[1] 태조 왕건 작 중에서와는 달리 처형하지는 않았다고 한다.[2] 아지태의 철원 천도 제안만 해도 송악으로 천도한지 수 년밖에 되지 않았고 천도를 하면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생할 것이 뻔했음에도 궁예는 대의를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명분하에 강행한다.[3] 이미 궁예가 본격적으로 타락하기 이전부터 아지태는 왕건을 향해 "세상에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사람이 있고 그 나라를 길이길이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 궁예는 나라를 세운 사람이지만 오랫동안 유지할 사람은 못 된다. 나라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왕건 당신이다."고 하며 사람보는 눈이 있음을 보여주었다.[4] 특히 신방은 왕건이 즉위한 후에 장일, 장수장과 함께 복지겸 아래 내군장군으로 들어가 꾸준히 등장한다. 장일과 장수장이 전사한 뒤에도 계속 내군의 중진을 수행다가 공산 전투에서 후백제군의 야습을 받아 전사한다.[5] 부석사에서 경문왕의 초상화를 보고서 분노를 이기지 못해 그 초상화를 칼로 찍어버린 뒤 신라를 '멸도'(滅都, 멸망시켜 버려야 할 도읍지. 여기에는 신라는 더 이상 국가가 아닌 일개 도시에 불과하다는 비하의 뜻이 담겨있다.)라는 멸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실제로도 궁예는 신라를 '멸도'라고 부르며 적대시했다.[6] 청주에 신라 왕실과 대립하여 귀향한 당나라 유학파 출신 지식인들이 많다는 것을 강조해 한창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데 열중하던 궁예의 귀를 솔깃하게 했고, 이어 단순한 국가가 아닌 대제국 건설의 위업을 이룰 것을 주장해 궁예의 야망에 부채질을 했다.[7] 98화에서 열병식 때 궁예가 떨고 있는 입전을 보고 감춘 것이 있느냐고 물었고 오늘은 관심법을 쓰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궁예가 두렵기도 하고 또한 아지태의 역모가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차라리 내군에 고변하여 목숨이라도 보존한다는 선택을 한 것.[8] 북벌이 실패한 것은 왕건 때문이다. 궁예 암살 시도 건은 왕건 세력이 꾸민 짓이다, 자신을 믿으면 북벌을 이룰 수 있다 등.[9] 앞서 말했듯이 여기 아지태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에 집착하며 자기 이상밖에 모르는 사악한 인물''''이라고 평을 받는 인물이다. 그런 그마저 만류를 할 정도면 궁예가 보통 미친게 아님을 반증한다.[10] 107화에서 나온 대사이다.[11] 다만 이 당시의 왕건은 반역에 대한 의사가 전혀 없고 오로지 충심만 가진 인물이었는데, 향후의 여파로 인해 결국 자신의 생각을 바꿔야 했으니, 태봉의 충신으로서 자신을 버렸다고 한다면 아주 빗나간 것만은 아니다.[12] 이런 점에서 아지태는 궁예가 처음 몸을 의탁했던 기훤과도 일맥상통한다. 기훤이 세력의 상황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이, '영웅'이란 명성에만 집착해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양길과 싸우겠다고 뻗대다 민심을 잃고 자신의 목숨조차 잃고 자신의 세력은 궁예에게 넘어 갔듯이, 아지태도 태봉의 상황에 대해선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대제국을 이루어 자신의 이름이 영웅-위인으로서 후세에 남는데만 집착을 했고 그 결과 민심과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되었으며 자신은 역적으로 남게 되었다. 게다가 방향은 조금 다르지만, 기훤과 아지태 모두 철저한 악역으로 등장한다.[13] 중국에서 유학할 때 같은 스승에게 배웠다고 한다[14] 아지태가 반역을 하고 칼을 들이대었다고 절망한 궁예에 대해 왕건은 아지태가 위험한 인물이라고 충고를 한다.[15] 허황된 북벌 계획과 무리한 천도를 추진하여 나라를 망침.[16] 의형제인 궁예가 암군이 되는 원인 제공.[17] 왕건에게 여러번 반역을 제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