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근정문
1. 개요
景福宮 勤政門
경복궁의 정전인 경복궁 근정전의 앞에 지어져 있는 정문으로, 보물 제812호이며, 고종이 1867년 경복궁을 새로 지은 이후 단 한번도 사라지지 않고 일제강점기를 버텨낸 문이다. 흥례문과 함께 금천을 사이에 두고 있다.
2. 상세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건물로 1867년(고종 4년) 중건되었으며 일곽의 행각과 함께 1985년 1월 8일 보물 제812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초기의 임금들은 여기에서 즉위식을 거행한 다음 근정전의 옥좌에 앉아 문무백관의 하례를 받았다.
3. 역사
1395년(태조 4)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함께 세워졌으나 임진왜란으로 경복궁과 함께 소실되었다가 1867년(고종 4)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어졌다.
고종때 새로 지어지며 위치 등은 지켰으나 상세한 일부 부분은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본래 행각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이는 부출입구[2] 가 문에 가까이 붙어 지어졌으며, 주변 행각도 단랑이었던 것을 복랑으로 새로 지었다.
일제강점기가 도래하며 조선총독부 청사가 정말 근정문 바로 앞까지 들어선다.[3] 근정문 앞에 있던 흥례문은 헐려 사라지고, 금천은 메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6년을 그 상태로 별다른 큰 훼손 없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경복궁의 몇 안되는 건물이다.
4. 기타
- 고려의 근정문, 즉 고려 법궁 정전의 정문은 회경문(會慶門)이다. 태조 ~ 현종 초까진 만월대의 정전이 천덕전이었기에 정전 정문도 천덕문(天德門)이었다. 하지만 현종이 만월대를 재건하며 정전을 새로 지어 천덕문은 밀려나고 회경문이 정전 정문이 되었다.
- 조선 왕들의 즉위식장으로도 쓰였다. 정전이 아닌 정전의 정문에서 거행한 이유는 대부분 선왕의 장례기간에 즉위식이 열리기 때문에, 슬픈 상황에서 즉위해야 했기 때문이다.# 2대 정종을 시작으로 4대 세종, 6대 단종, 7대 세조, 9대 성종, 11대 중종, 13대 명종, 14대 선조까지 임금 8명이 이 곳에서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