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동궁
1. 개요
桂洞宮.
한성부 북부(北部) 관광방(觀光坊) 계동(桂洞)에 있던 중 하나로 이름은 동 이름에서 따왔다. 현재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75[1] 이다. 사도세자의 서2남이자 연령군의 양손자 은신군의 제사를 받드는 종손인 완림군 이재원의[2] 집이며 이후 사손(嗣孫)들도 계속 이 곳에서 살았었다. 그래서 이 곳이 연령군 가문의 종가가 되었다.
1884년(고종 21년) 12월 5일, 갑신정변 이튿날에 고종이 잠시 이곳으로 피신했다. 고종은 처음에 경우궁으로 갔다가 겨울철 난방 시설이 변변치 못해 경우궁을 떠나 이 곳으로 다시 옮겼고, 이어 새로운 개화파 정부의 요인 명단을 여기서 발표하는 등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집주인 이재원도 이 때 영의정 벼슬을 받았다.
계동궁에는 완림군 이재원, 이기용(이재원의 아들), 이해청(의친왕의 7남으로 이기용의 양자)이 3대에 걸쳐 살았다. 계동궁은 1960년대 철거되었으며, 그 자리에 현재는 현대건설 사옥이 들어서 있다.
2. 역대 종주
1. 연령군 이훤(延齡君 李昍)
2. 낙천군 이온(洛川君 李縕)
[3]
3. 남연군 이구(南延君 李球)
[A]
4. 완림군 이재원(完林君 李載元)[4]
5. 이기용(李埼鎔)
[A][5]
이후의 계대는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