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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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前 KBO 리그의 투수이자 코치. 前 '''OB 베어스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던 초창기 프랜차이즈 투수.''' 현역 시절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덥수룩한 수염은 특유의 포스를 자랑했다. 현역 시절 등번호는 11번였다.
2. 선수 시절
중앙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공군과 롯데 자이언트(실업 팀)를 거쳐 1982년 한국프로야구 창설과 함께 OB 베어스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였다. 아마추어 시대였던 1978년에는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기도 한 에이스급 투수였으나, 한국프로야구 창설 당시에는 이미 우리나이로 30살의 노장[2] 이었기 때문에 프로야구 진출과 은퇴를 놓고 갈등하기도 했다고 한다.
1982년 OB의 원년 우승 멤버로 박철순, 박상열 등과 함께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다. 전성기는 1984년으로 이 해 방어율 2위(2.06), 다승 6위(14승), WHIP 5위(1.13)으로 박철순이 부상으로 빠진 팀의 에이스 역할을 완수했다. 1985년(11승 11패 ERA 2.78)과 1988년(10승 12패 ERA 3.75)에도 두자릿수 승수를 올렸으며 1980년대 말까지 베어스의 에이스급 투수로 활약했다.
젊을 때부터 볼은 빠르지만 제구력이 형편없는[3] 장단점이 뚜렷한 투수(아마 시절의 박찬호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였으나, 프로에 들어와서는 구속을 늦추고 제구력을 향상시키면서 기교파에 가깝게 변신, 당시 투수로는 드물게 38세까지 롱런할 수 있었다. 1991년 마지막 시즌에는 만 38세 5개월의 나이로 LG 트윈스를 상대로 완투승을 기록, 한화 이글스의 '회장님' 송진우가 2005년 기록을 깨기 전까지 국내파 선수 최고령 완투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통산 성적은 1286.2이닝을 던져 69승 89패 9세이브. ERA 3.43. 1980년대에 29세에 프로 데뷔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2.1. 연도별 주요 성적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3. 지도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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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1기 시절.
은퇴 이후에는 쌍방울 레이더스-한화 이글스-삼성 라이온즈 등을 거치면서 유능한 투수코치로서도 열심히 활약하였다. 사실 쌍방울에서는 코치일을 잘 하고 있었는데, 구단의 예산 삭감 때문에 잘렸다고 한다..... 그 후 한화에서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고[4] 스승인 김성근이 삼성의 2군 감독이 되자 그를 따라 삼성 2군 투수코치, 그 후 모교인 중앙고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중앙고등학교에서 감독을 맡았을 적에 함께했던 송주호도 삼성에서 방출된 후 계형철의 주선으로 SK 와이번스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하지만 실패하고 송주호는 현역으로 입대, 결국 한화에서 재회했다.)
3.1. SK 와이번스 코치 시절
김성근 감독이 2007년 SK 와이번스에 부임하면서 함께 입단하여 고향 팀의 2군 감독을 맡았다. 김성근 감독의 최측근 인맥으로 2010년 6월에 이만수 1군 수석코치와 자리를 맞교대하여 2개월간 1군 수석코치를 맡았다가 다시 자리를 바꾸며 2군 감독으로 복귀했다.
다만 2군 감독 시절 팀의 성적은 퓨처스리그에서 하위권에 맴도는 등 성적은 그닥 좋지 못했다. 이는 1군 감독이었던 김성근 감독 특성상 2군 유망주가 보이면 1군에 동행시켜 배팅볼 투수를 시키거나 포텐이 터지거나 하면 군 입대를 최대한 연기시키고 본인 재임 기간동안 최대한 기용하는 특성 때문. 또한 2군 자체도 김성근이 숱하게 간섭하다 보니 막상 2군 선수진을 가지고 경기를 꾸리기 힘들었던 것도 한 몫 했다.
2011년이 되면서 이만수 수석코치가 다시 2군 감독이 되면서 계형철 2군 감독은 재활코치가 되는 등 코칭 스태프에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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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늙으셨다.
결국 김성근 감독이 경질된 상황에서 김성근 감독의 최측근 인지라 구단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왔고, 결국 이홍범, 박상열, 김정준, 강성인, 홍남일 코치와 같이 SK구단을 떠났다.
3.2. LG 트윈스 코치 시절
2012 시즌 종료 이후 LG 트윈스가 영입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보직은 잔류책임코치.
LG 진주서 마무리훈련, 김민호-계형철 코치 영입 그러나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브레이크 도중, 2군 코치 개편 과정에서 LG 트윈스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았다. 다만 계형철 코치의 경우 평소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어, 이 문제 또한 해임 결정에 고려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3.3. 한화 이글스 코치 2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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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사단"의 일원이라 김성근 감독을 따라서 한화 이글스로 갈 가능성이 조금 있었고, 예상대로 팀을 옮겼다. 다만,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게 문제. 일단 한화 이글스에서는 고양 원더스의 메인 투수코치였던 박상열을 영입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11월 3일, 대대적인 코치 영입 과정 속에서 이홍범 코치와 함께 한화 이글스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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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에서의 보직은 당초 알려진 바와 달리 순회코치이다. 순회코치의 구체적은 역할은 이 기사를 참조.
김성근 사단의 상당수가 갈려 나가는 데에도 살아남았다.[5]
2017년부터 1군 투수보조코치를 역임하게 됐다.#
그러나 이런저런 내통을 겪은 끝에 팀을 떠나게 된 김성근 감독을 따라 2017년 5월 24일 부로 한화 이글스의 코치직에서 사퇴했다.
4. 기타
따님이 계형철 코치의 따님이라고는 아무리 살펴봐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미인이시다.
평소 '''철코치'''라는 호칭으로 불러 주기를 원한다. 아무래도 계코치는 어감이 그러니까.
오상민이 박명환야구TV에서 풀어낸 일화에 따르면, 계형철이 오상민 곁을 지나가며 "너 선발" 한 마디만 하고 지나갔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던 오상민은 스파이크도 안 신고 쉬고 있다가 경기 시작 전 전광판에 선발투수로 이름이 올려진 걸 뒤늦게 알고 부랴부랴 준비해서 승리를 거뒀다고 한다. 승리를 거두고 난뒤에 계형철 코치가 "너 선발" 또 그러길래 장난이겠거니 싶었는데 다음날 또 등판했다고...
[1] 1972학번[2] 실업야구 시절에는 체계적인 체력훈련, 재활 시스템이 없어서 e스포츠계처럼 20대 후반이면 노장 소리 듣고, 30이 넘으면 무조건 은퇴였다. 지금보다 선수 생명이 대략 10년 정도 짦았다고 보면 된다. 은퇴 이후에는 대부분 소속 기업의 사무직으로 일하고 극소수만 감독이나 고교/대학팀 지도자로 가곤 했다. 일례로 당시 실업야구 최고의 선수였던 김성근은 31살, 김응용은 32살에 은퇴하고 바로 소속팀 감독이 되었다.[3] 눈이 상당히 안 좋았다고 한다. 일설에는, 어느 경기에서 볼 데드 상황에서 캐쳐가 들어와 있지 않았는데 볼을 던져 심판이 맞았다고 한다.[4] 그러나 이 시기에 투수조장인 한용덕과의 불화가 있었다는 썰이 있다. 실제로 한용덕은 2014년 말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후 계형철 코치가 한화로 오자, 두산의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물론, 김성근 때문에 옮긴 게 더 크다.[5] 다만 이홍범, 박상열 코치는 대리운전 사건이 컸다는 것이 문제. 일본인 코치들은 김성근과의 야구관 차이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