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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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두산 베어스, 한화 이글스 소속의 투수.
두산 베어스 중간계투의 핵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별명은 '''재우'''스, 야식 [1] , 고글 리, '''투수택''', '''돡용택, 혹은 짭용택, 이젠 칰용택'''[2]
최고 149km/h까지 나오는 강속구에, 안정된 제구력, 경기 운영능력을 보유했다. 포크볼을 주무기로 쓰고 있으며, 그 외에도 커브, 싱커,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등 많은 구질을 보유하고 있어 맞춰잡는데 능하고, 잘 무너지지 않았던 투수.
2016년 역사적인 이승엽의 한·일 개인통산 600호 홈런과 3800루타의 '''허용투수'''가 되었다.
2. 선수 경력
2.1. 두산 베어스 시절
2.1.1. 입단, 그리고 프로에서의 활약
그의 신인 시절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8년에 '''내야수로''' OB 베어스에 2차 11순위 지명을 받은 후,[3] 탐라대학교(현 제주국제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1999년 경기 도중 왼 발목이 부러지는 중상으로 대학을 중퇴했으며, 이로 인해 두산 베어스에서는 그의 지명권을 포기했다. 이후 '''경기 기록원''' 겸 신고선수로 두산 베어스에 입단했고, 2001년에 정식 선수로 3,000만 원에 계약을 맺는다.
2003년부터 1군에 정착해서 25경기 3승 1홀드 평균자책점 4.30으로 가능성을 보여 주었고, 2004년에는 1군 33경기에 등판해 89⅓이닝 동안 방어율 4.43으로 셋업맨 역할을 톡톡히 해 주다가, 2005년 정성훈(사이드암 투수), 그 전 해에 터진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로 인하여 2004년 9승을 달성한 이재영(구속), 마무리 구자운(공소시효가 지나 무혐의 처리) 등등이 줄줄이 이탈해 적절하게 박살난 두산의 불펜진[4] 의 핵이 되며 홀드왕을 차지하며 포텐셜을 터트린다. 이 해에 올린 성적이 1군 76경기 '''99⅔이닝''' 7승 5패 1세이브 28홀드[5] 79K. 두산 불펜진을 혼자 떠받쳤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허나 병역비리 사건에 '''본인도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에(불구속)''',[6] 시즌 후 공익으로 입대한다.
소집 해제된 후 2008년에 복귀하여, 65경기 87⅓이닝 11승 3패 2세이브 17홀드 방어율 1.55로 다시 특급 활약을 보여주었다. 2009년 WBC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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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두산이 자랑하던 일명 '''KILL 라인'''(고창성, 임태훈, 이용찬, 이재우)의 일익을 담당하면서 핵심 불펜[7] 으로 자리하다, 2010 시즌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선발로 전환했다.
2.1.2. 2010년 팔꿈치 부상, 미뤄지는 복귀전
그러나 2008년과 2009년 2년간 '''184.1이닝'''을 먹는 혹사를 당하였고, 결국 2009년에는 후반기 들어 페이스가 급격히 처지며 방어율도 3.88로 올라가고 구위도 떨어졌으며, 부상으로 인해 KS에 출전 불가능 상태가 되는 등 이상 징후를 보이고 있었다. 비단 08~09뿐만 아니라 주전으로 도약한 2005년에도 이미 100이닝 가깝게 소화하며 혹사를 당했었고, 그런 상황에서 바로 군 복무를 위해 이탈하며 어느정도 회복을 했는데, 돌아오자마자 다시 사정없이 굴려졌으니...
4월 4일 6이닝을 던지고 선발승을 거두며 시즌을 순조롭게 시작하는듯 했으나, 결국 다음 경기에서 1이닝도 채 못채우고 팔꿈치 통증으로 강판당하게 된다. 그리고 팔꿈치 수술로 시즌 아웃. 2010년 성적은 2게임 1승 6⅔이닝.
2010년 8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조브 클리닉에서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고 2011년 후반기 복귀를 목표로 열심히 재활에 전념했다. 하지만 2011년 LA에서 수술받은 인대가 다시 끊어지면서 사실상 2011년 시즌 복귀는 물 건너갔다. 다시 조브 클리닉에다가 수술을 예약하려고 했지만 조브 클리닉에서 재수술을 '''거절'''하는 바람에 7월 15일 김진섭 정형외과에서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다시 받았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본인도 만족하고 있다는 듯. 관련기사 팔꿈치 인대 부상의 특성상 최소 1년의 재활 기간이 더 필요했고, 2012년 후반기쯤에야 복귀가 가능해졌다.
2.1.3. 2012년, 895일만의 복귀
2012년 9월 22일 SK와 시즌 18차전을 앞두고 임태훈과 함께 1군에 합류했다. 2군 등판에서 직구 구속이 147까지 나왔다고 한다. 팀이 5:1로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9회초 SK의 공격에 나와서 조인성을 삼진, 박재홍을 좌익수 플라이, 정근우를 땅볼처리하며 1이닝을 삼자범퇴로 막았다.
하지만 선수 보호 차원에서 포스트 시즌 엔트리에는 제외됐다.
2.1.4. 2013 시즌
2013년 4월 7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2010년 4월 4일 선발승 이후 '''1,099일만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자신도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듯.
5월 7일 문학 SK전에 선발로 등판, 1이닝 4실점이란 좋지 못한 투구내용을 보이다가 '''또''' 팔꿈치 통증으로 강판당했다. 정밀 검사 결과 단순한 인대 염증이라고 했으며, 2군에서 선발 등판을 준비한다고 했다.
넥센 히어로즈와의 2013년 준 플레이오프에서 1경기 5⅔이닝 5피안타 3사사구 1실점(1자책) 평균자책점 1.59를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LG 트윈스와의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1경기 1⅔이닝 2피안타 3볼넷 1K 2실점(2자책) 평균자책점 10.80,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앞선 10월 28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3 한국시리즈 4차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85투구수 2피안타 3볼넷 8K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이 스코어 1:2로 승리하여 이날의 승리 투수가 됨과 동시에 이날의 MVP를 거머쥐었다.
이날 경기가 이재우의 2013년 한국시리즈 첫 경기이자 마지막 경기가 되었는데,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앞서다 내리 3연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이재우는 2013년 포스트시즌 16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12⅓이닝 9피안타 9사사구 9K 3실점(3자책) 평균자책점 2.19, 1승 1패를 기록했다.
2.1.5. 2014 시즌
4월 3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시즌 첫 경기를 가졌다. 5이닝 2피안타 5K 2실점(2자책)으로 호투했지만 볼넷을 6개나 허용하다보니 투구수 86개에 육박하여 팀이 스코어 2:4로 앞선 6회말에 윤명준으로 교체됐다.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고 마운드를 내려갔지만, 팀은 윤명준이 6회말에 2실점하며 동점을 허용한 것도 모자라 네 번째 투수 오현택마저 털리면서 스코어 4:6으로 역전패했다.
6월 5일 경기에서도 선발로 등판해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고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고 내려갔으나, 윤명준-이현승-정재훈이 각각 1실점을 보태며 승리를 날려버렸다.
이후 선발등판을 계속 하면서 좋지 않는 경기가 더 많았고 결국 6월 20일자로 2군으로 가게 되었다. 사실 팬들이 바라는건 5이닝 이내로 버텨주기라도 하는 것인데 요 근래 5이닝을 넘기기 조차 어려운 모습을 보였던지라... 대신 좌완 신예인 함덕주가 등록되었다.
2.1.6. 2015 시즌
승리 없이 2패에 6점대의 ERA를 기록. 포스트시즌에도 나가지 못했다.
시즌 후 구단으로부터 코치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하고 쌍방 합의 하에 방출되었다. 12월 2일, 한화 이글스에 영입되면서 선수 생활을 지속하게 되었다.
2.2. 한화 이글스 시절
2.2.1. 2016 시즌
두산에서 방출된 뒤 한화와 계약했다. 입단하면서 '''"원없이 던져보고 싶다."'''란 말을 남겼다고(...).
4월 2일 LG 트윈스전 에서 연장전에 나와 박용택을 볼넷으로 보내고 이병규에게 끝내기 3루타[8] 맞고 패전투수가 된다.
4월 22일 이후 등판을 못하다 5월 4일 오래간만에 출전해 1이닝을 던졌다.
그리고 5월 5일 어린이날 SK전에서 2번째 투수로 나와 3이닝 투구수 77개 9피안타(4피홈런) 9실점을 기록하며 벌투를 완성하였다!
6월 18일 넥센전을 마지막으로 2군행.
8월 21일 현재 퓨처스리그 성적은 52이닝 ERA 4.85이다.
9월 1일 확대엔트리로 1군에 복귀하였다.
9월 3일 넥센전에서 1이닝 17구 무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9월 4일 넥센전 '''선발로 예정되었다!!!'''[9] 1이닝 이하로 던지는 위장선발로 예상되었으나 2⅔이닝 43구 5피안타 2볼넷 3K 1실점으로 나름 호투했다. 이태양이 분식회계를 저지른 탓에 무실점에는 실패했고, 이후 역전당한 뒤 경기를 뒤집지 못해 이태양이 패전투수(3승 8패)가 되었다.
9월 14일 삼성전[10] 에 선발로 등판하여 정인욱과 맞붙었다. 2회초 최형우에게 홈런을 맞고 다음 타자 이승엽에게 백투백 홈런을 맞았는데, 이 홈런이 바로 '''이승엽의 한일통산 600호'''라서 '''허용투수'''가 되었다.
9월 22일 NC전 2⅓이닝 1실점으로 나름(?) 잘 던졌다. 팀이 중간에 역전했다가 재역전패하는 바람에 패전은 면했다.
이후 한 번도 등판하지 않았다. 김성근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듯.[11]
시즌 최종 성적은 25.1이닝 ERA 6실점.
2.2.2. 2017 시즌
2군 8경기에 등판하여 1패 1세이브 1홀드 평균자책점 4.97을 기록하고, 5월 3일 함평에서 열린 KIA와의 2군 경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2군에서조차 등판하지 못했다.
나이도 37세로 적지 않은데다, 애초에 공을 던지는 게 기적인 상황. 결국 6월 8일자로 웨이버 공시됐다.
2.3. 은퇴 후
웨이버 공시 직후 2군 불펜코치로 선임되었다. 좌완투수 이충호에게 슬라이더를 가르치기도 했다고 한다.
2018년 육성군 투수코치로 선임되었다.
2018 시즌이 끝난 후 재계약하지 않고 하남시에 야구 아카데미를 오픈했다.#
3. 국가대표 경력
3.1. 2009 WBC
4. 기타
- 항상 고글을 쓰고 나오는 게 특징인데, 규정상으로는 위반이다. 2008년 당시 LG 트윈스 감독이였던 김재박 감독이 이를 한번 지적한 이후로는 적당히 눈치를 봐 가며 쓴다. 위반인 이유는 고글에 빛이 반사되어 타자의 시야를 방해할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 하지만 국제전이라면 몰라도 프로야구에서는 상대 감독이 항의하지 않는다면 그냥 넘어가는 것이 관례다. 마찬가지로 목걸이류의 악세사리, 투수의 글러브색깔(흰색포함 또는 4색이상 조합)도 상대팀이 항의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는게 관례. 더욱이 이재우는 야맹증이 있어 야간 경기에 고글을 써 왔고 몇 년간 어떤 감독도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결국 이재우는 고글을 지적받은 날, 고글벗고 안타맞고 강판되었다.[12] 이 이후로 고글 리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 박용택과 닮은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2012년 이전부터도 이야기가 종종 나오긴 했지만 아주 닮았다 정도까지는 아니였는데 2013시즌 들어 콧수염을 기르니 거의 도플갱어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 돡용택 이라는 별명을 획득. 여담으로 실제로 둘은 리틀야구단 시절부터 같이 야구를 했고, 휘문고 동기동창이기도 해서 매우 친하다고 한다. 엄밀히 따지면 이재우가 한 살 어리긴 하지만 빠른 80년생이라 79년생인 박용택과는 사실상 동갑. 여담으로 사회인 야구 이야기를 그리는 만화가인 유영태가 이재우의 사회인 야구 코치 취임 소식을 만화로 그리면서 올린 사진이 박용택. 대놓고 개그를 노렸다.
- 2년 후배인 심수창과 배우 조인성과도 초등학생 시절 리틀야구단에서 같이 야구를 한 사이이다. 묘하게도 2015-16 오프시즌에 이재우가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면서 옛 친구들과 조우하게 된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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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수와도 약간 닮았다.
- 부인이 前 프로배구 선수 이영주다. 동갑내기지만 이재우가 빠른 생일이라 이영주는 "오빠"라고 부른다고 한다. 4년간의 연애 끝에 공익으로 복무 중이던 2007년에 결혼해서 딸이 하나 있다.
- 피칭 전에 숨고르기 식으로 빙빙 도는 경향이 있다. 이재우의 선발 등판 경기를 보면 잘 드러난다.
5. 연도별 성적
[1] 2009년 WBC 일본 예선 1차전 콜드패로 인해 선수들 모두가 충격에 빠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야식을(...) 먹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2] 아래에 후술하겠지만 LG 트윈스의 박용택과 외모가 상당히 닮았다. 거기다가 두 사람은 고명초등학교와 휘문고등학교 동기이다.[3] 그가 정식으로 지명받은 선수라는 사실을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4] 불펜의 일원인 정재훈을 마무리로 돌릴 정도로 심각했다... 결과는 정재훈이 세이브왕을 차지해 성공으로 끝났지만.[5] 바로 다음 해 권오준이 깨기 전에는 한 시즌 최다 홀드였다.[6] 그나마 2005년 한국시리즈에는 엔트리에 들었지만, 3차전에서 양준혁에게 시리즈 전체를 결정지은 치명적인 3점 홈런을 맞고 강판당했다.[7] 2009년에는 선발으로도 출장했다.[8] 사실 안타로 끝날 공이었는데 송주호가 무리해서 다이빙하다 못 잡은 탓에 3루타로 둔갑했다.[9] 참고로 이재우의 선발등판은 두산소속이던 2015년 8월 23일 kt전(2이닝 5피안타(1피홈런) 2볼넷 2K 3실점) 후 379일 만이다.[10] 추석 연휴인지라 오후 2시에 시작한다.[11] 앞서 말했듯이 이재우는 공을 던지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12] 2008년 5월 28일. 그리고 LG는 필승계투를 무너뜨려 준 이와 같은 "감독님의 활약" 덕에 라이벌 두산전 5연패를 그날 끊을 수 있었다.[13] 심수창은 2015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롯데에서 한화로 이적하였고 이재우는 코치 전향이 아닌 현역 연장 의지로 두산에서 방출 후 한화에 입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