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FC

 




[image]
'''광저우 FC'''
'''Guangzhou FC'''
'''정식 명칭'''
广州足球俱乐部
'''애칭'''
화남 호랑이 (华南虎)
'''소속리그'''
중국 슈퍼 리그
'''창단년도'''
1954년
'''연고지'''
광둥 성 광저우
'''홈 경기장'''
톈허 스타디움 (58,500석)
'''구단 형태'''
기업구단
'''모기업'''
헝다 그룹 (부동산 및 건설)-60%
알리바바 그룹 (전자상거래)-40%
'''구단주'''
쉬자인 (许家印)[1]
'''단장'''
가오한 (高寒)
'''감독'''
파비오 칸나바로
'''주장'''
정즈
'''라이벌'''
광저우 푸리, 베이징 궈안
'''홈페이지'''

'''우승 기록 '''
'''중국 슈퍼 리그 (1부)'''
(8회)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2019
'''중국 갑급 리그 (2부)'''
(5회)
1956, 1958, 1981, 2007, 2010
'''FA컵'''
(2회)
2012, 2016
'''중국 슈퍼컵'''
(4회)
2012, 2016, 2017, 2018
'''AFC 챔피언스리그'''
(2회)
2013, 2015
'''헝다그룹 산하 스포츠단'''
'''광저우 FC'''
(축구)
광둥 헝다
(배구)
1. 개요
2. 역사
2.1. 초창기
2.2. 갑A리그 시절
2.3. 암흑기
2.4. 중국 슈퍼리그
2.5. 헝다 그룹 인수 이후 - 왕조의 시작
2.6. 외국인 선수 귀화의 선봉장
2.7. 신구장 건설 프로젝트
4. 선수
4.1. 명단
4.2. 유명 선수
5. 라이벌
6. 둘러보기


1. 개요


[image]
2015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2010년대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유이하게 2번 달성한 아시아의 강자 중 하나'''
중국 슈퍼 리그에 소속된 클럽. 중화인민공화국 광둥 성 광저우시를 연고로 하는 축구클럽이다. 광동어로는 궝짜우 항따이라고 읽는다. 황사머니의 선봉장[2]으로, K리그의 명문 클럽들이나 알 이티하드에 이어서 새로운 아시아 깡패로 떠오른 신흥강호이자 2010년대 아시아 최고의 클럽[3]으로 우뚝 섰다.

2. 역사


광저우 FC의 전신은 1954년 6월에 창단된 중국 최초의 프로 축구팀인 중난체육원 경기지도과 축구팀(中南体院竞技指导科足球队)의 백팀(白队), 약칭 중난바이두이(中南白队) 축구단이다.
1993년 1월에 타이양선 그룹이 팀을 인수하면서 팀 이름을 '광저우 타이양선(广州太阳神)'으로 변경했고,2006년에 광저우 이야오 그룹이 팀의 스폰서를 맡으면서 팀 이름도 '광저우 이야오(广州医药)'로 변경되었다. 2008년 광저우 이야오는 중국 슈퍼 리그로 승격했으며 2009년에 슈퍼리그 9위를 차지했지만, 승부조작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2010년 2월 23일에 청두 셰페이롄과 함께 갑급 리그(2부 리그)로 강등되고 만다.
2010년 3월 1일에 헝다 부동산 그룹이 팀의 스폰서를 맡으면서 팀 이름을 '광저우 헝다(广州恒大)'로 변경했다. 헝다 그룹은 2010년 3월 25일에 바로 전 시즌 구단 수뇌부와의 불화[4]베이징 궈안에서 경질당한 대한민국의 이장수 감독을 영입, 2010년 10월 30일에 갑급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로써 광저우 헝다는 다시 슈퍼리그로 승격되었다.
2021년, 구단 명칭이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에서 '광저우 FC'로 변경되었다.

2.1. 초창기


1954년 6월 창단되었다. 이때 중국은 막 전국리그가 출범했고, 광저우는 여기 참가하게 되었다.
1955년 리그에 참가해 8위를 기록했지만 강등당하고 1956년 2부리그에서 1위를 기록했지만 승격이 좌절되었다. 1957년 8위를 기록했고 1958년 2부리그 우승을 거두며 승격했다. 하지만 1960년 2년만에 열린 리그에서 17위로 겨우겨우 강등을 면했고 1961년 9위를 기록했으나 1962년 18위로 다시 곤두박질 치기 시작한다. 1963년 20등 꼴지를 기록하면서 다시 2부리그로 강등당했고 1964년 7위, 1965년 6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후 문화대혁명이 터지게 되고 홍위병에 의해 선수, 코치, 감독이 자본주의, 반동분자로 몰리면서 팀이 풍비박산나게 된다.
1976년 문화대혁명은 끝났지만 휴우증이 너무 컸고 1974년 리그도 참가 못하고 한동안 헤메다가 1980년 겨우 겨우 3리그로 복귀 하게된다. 1980년 3부리그 준우승을 차지해 2부리그로 승격되었으며 1981년 2부리그 우승을 차지해 20년만에 1부 리그 복귀를 하게된다. 그러나 1982년 15위를 기록해 강등을 당했고 1983년 2부리그 준우승을 차지했으나 승격하지 못해서 1년더 2부리그에 머물러야 했고 1984년 9위를 기록했으나 어찌어찌 1부리그로 승격되었다. 1985~1988년 4년 연속 7위를 기록하면서 힘겨운 강등 싸움을 하다가 1989년 8위 꼴찌로 강등을 당하게 된다. 1990년 2부리그에서 준우승을 해 다시 1부리그로 복귀해 1991년 4위를 기록하고 1992년 팀창단 처음으로 1부리그 준우승을 차지하게된다. 그러나 1993년다시 8위로 곤두박질 치게 된다.

2.2. 갑A리그 시절


갑 A리그 첫시즌에 참가해 1994년 2번째 준우승을 차지하며 기분좋게 출발했으나 1995년 5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1996년 7위 1997년 8위를 기록하면서 순위가 DTD를 찍게 되더니 1998년 14위로 다시 강등당하게 된다.

2.3. 암흑기


1999년 2부리그에서도 8위 2000년 10위를 기록하면서 하위권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1년 4위를 기록했으나 승격되지 못하고 2002년 11위로 다시 추락하게 된다. 2003년 3위를 기록하면서 승격을 노렸으나 승격이 안됐다.
2004년 슈퍼리그가 출범되었으나 광저우 입장에서 보면 강건너 불구경 이야기였고 2부리그에서 힘든 싸움을 하고 있었다. 2004년, 2005년 2부리그 연속 4위를 기록했고 2006년 3위를 기록했으나 승격되지 못했고 2007년 1부리그 우승을 하면서 9년동안 기나긴 2부리그 늪에서 빠져나와 1부리그에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2.4. 중국 슈퍼리그


2008년 1부리그에 합류해 7위라는 나쁘지 않는 성적을 기록했고 2009년 9위로 성적을 마감했으나 승부조작을 한게 들통나 7위 청두 셰페이롄과 함께 나란히 2부리그로 강등당했다. 그러나 2010년 헝다 부동산 개발에게 인수되어 오늘날 "광저우 헝다"로 바뀌게 되고 베이징 궈안에서 잘린 이장수 감독을 광저우 사령탑에 선임하는걸 시작해서 팀전력에 엄청난 투자를 하게 된다. 이러한 투자를 바탕으로 2010년 2부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2011년 4라운드까지는 조금 주춤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4라운드 이후 1위에 정착하게 되고 10라운드부터 연승가도를 달리게 되고 이후 2위 베이징 궈안과 승점15점 차이를 보이면서 리그 5경기를 남겨두고 우승을 차지하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2.5. 헝다 그룹 인수 이후 - 왕조의 시작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연도별 참조.
2016년 잭슨 마르티네스라리가에서 빼오는 것을 끝으로 황사머니를 시전하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 2018년 연초 겨울 이적시장에서도 유럽리그에서 특급선수[5]를 빼올 것으로 보도가 났지만 다 낭설 혹은 성사되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이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도는데, 자세한 이유는 김영권 문서 참조. 구단 관계자가 2020년부터는 순수한 국내선수들만으로 운영할 것을 계획중이라고 언플하고 있다. 사실 압도적이었던 구단 페이롤도 2016년부터는 상하이 상강이나 톈진 취안젠, 허베이 화샤에 밀리고 있으며, 확실히 지출을 자제하고 있다. 과연 돈으로 쌓은 막강전력인데, 돈이 없어지면 성적을 유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결국 2018년 전반기말에 리그 5위까지 전락했고, 돈을 안쓰면 성적이 안나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했다. 화들짝 놀라서 후반기에 파울리뉴를 다시 사오고, 탈리스카를 데려와서 선두경쟁에 나섰지만, 상하이 상강에게 우승을 내줘서 리그 7연패를 저지당하고 말았다. 여기서 교훈을 얻어서인지 2019년 겨울 이적시장에서는 돈을 아끼지 않고 영입하려 하고 있다.

2.6. 외국인 선수 귀화의 선봉장


2016년부터 "2020년을 시작으로 순수 국내선수만으로 팀을 꾸리겠다"는 언플을 했지만, 외인이 없으면 팀전력이 구멍나는 중국 클럽을 아는 축구팬들은 "과연 그렇게 될까" 혹은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는데, 이 팀은 기상천외한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즉, 자국에서 오래 뛰어 검증된 외국인 선수나 혹은 중국인 부모를 가진 해외 선수를 귀화시키는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엘케손은 2019년 이미 귀화하여 팀에 합류했고 굴라트도 마찬가지 절차를 밟을 예정. 귀화가 아직 덜 끝난 외국인 선수들은 일단 영입해 절차가 마무리 될 때까지 타팀에 임대보내는 방법을 썼다. 엘케손 굴라트는 주전급은 아니었지만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된 적이 있을 만큼 실력파(다만 경기에 한번도 나오지 않았기에 중국 국대로 귀화해 나올 수 있었다.)이기 때문에, 이들이 중국 국대로 나온다면 전력이 향상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이면 2020년에 " 국내 선수"만으로도 광저우가 전력 손실 없이 리그에 참가할 수 있을 듯.
광저우의 귀화 및 귀화 진행선수는 다음과 같다.
  • 아이커썬 (엘케손, 브라질) -5년체류
  • 페이난두오(페르난지뉴, 브라질) -5년체류
  • 루오구오푸(알로이시오, 브라질) -5년체류
  • 장광타이(브라우닝, 잉글랜드) - 혼혈
  • 가오라터(굴라트, 브라질) - 5년체류
  • 아란 (알란 카르발류, 브라질) - 5년체류 (2020년 베이징에 임대)

2.7. 신구장 건설 프로젝트


헝다 그룹은 2020년 4월부터 2년에 걸쳐 '''120억 위안'''을 들여 앞으로 구단의 홈구장이 될 세계 최대 규모의 축구전용구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디자인의 모티브는 연꽃이며, 수용인원은 무려 10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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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FC 챔피언스 리그


광저우 FC/AFC 챔피언스 리그 참조.

4. 선수



4.1. 명단




4.2. 유명 선수



5. 라이벌



6. 둘러보기



[1] 헝다 그룹 회장. 중국 최고 부자이다.#[2] 사실 유럽의 특급 선수들을 데려오기 시작한 중국 구단은 광저우가 아니라 상하이 선화이다. 2012년 첼시에서 아넬카드록바를 데려오면서 시전. 하지만 이 둘은 그다지 슈퍼리그에 족적을 남기지 못했고, 상하이 선화도 성적이 그닥이었다. 하지만 광저우 헝다는 내국인 선수들을 국대급으로 꾸린 다음, 유럽으로 갈만한 남미 선수(무리키, 다리오 콘카, 굴라트, 알란 카르발류 등등)들을 하이재킹하는 방법으로 가성비의 진용을 꾸려 강팀을 만들었다. 이에 반해 상하이 선화는 유럽에서 직접 데려오는 전략을 쓰다가 테베스같은 희대의 먹튀를 당하기도 했다. 광저우도 유럽파인 호비뉴잭슨 마르티네스와 같은 먹튀를 당하기는 했지만, 성적을 보면 상하이 선화보다는 훨씬 돈을 효율적으로 쓴 것. 하지만, 중국에서도 돈지랄한다는 비판이 있자, 2016년 이후부터는 "순수 국내파 선수만으로 꾸리겠다"는 언플을 하면서 지갑을 닫으며 황사머니 구단 이미지를 벗어나려고 했다. 이렇게 하다가 2018년 하반기 성적이 5위까지 급락하자, 결국 방침을 바꿔 파울리뉴탈리스카를 데려오면서 다시 돈을 써대기 시작했다.[3] 2011년부터 2017년까지 7년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 중국 슈퍼리그 7회 연속 우승.[4] 수뇌부가 불화를 일으켰다.[5] 심지어는 레알 마드리드가레스 베일카림 벤제마까지 영입대상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