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축구)

 

'''김형일 관련 틀'''

'''김형일의 역임 직책'''

'''포항 스틸러스 역대 주장'''
황재원
(2009~2010)

'''김형일'''
(2010~2011)


신형민
(2012)



'''김형일의 수상 이력'''

'''2009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이동국
FW
데닐손
MF
최태욱
MF
기성용
MF
김정우
MF
에닝요
DF
김상식
DF
'''김형일'''
DF
황재원
DF
최효진
GK
신화용

'''2013 K리그 챌린지 베스트 일레븐 '''
FW
이근호
FW
알렉스
MF
염기훈
MF
이호
MF
최진수
MF
김영후
DF
최철순
DF
'''김형일'''
DF
이재성
DF
오범석
GK
김호준




'''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
''' 이름 '''
'''김형일'''
'''金亨鎰 / Kim Hyung-Il'''
'''출생'''
1984년 4월 27일 (40세)
인천광역시
'''국적'''
[image] 대한민국
'''포지션'''
센터백
'''신체 조건'''
187cm, 84kg
'''학력'''
부평동중학교 - 부평고등학교 - 경희대학교
'''소속팀'''
대전 시티즌 (2007~2008)
'''포항 스틸러스 (2008~2014)'''
상주 상무 피닉스 (2012~2013.11, 군 복무)
전북 현대 모터스 (2015~2016)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2017.1~2017.6)
부천 FC 1995 (2017.6~2017.12)
로얄 타이 네이비 FC (2018.6~2018.12 )
'''국가대표'''
2경기 (2009~2010)
'''SNS'''
[[https://instagram.com/gladiator_khi?igshid=pf70i2bxqa5m
[image]]]
'''종교'''
개신교
1. 소개
2. 선수 경력
3. 은퇴 이후
3.1. 해설위원
4. 우승
5. 국가대표
6. 플레이 스타일
7. 여담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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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이다. 포지션은 센터백이었으며, 글래디에이터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2. 선수 경력



2.1. 대전 시티즌


[image]
2007년 대전 시티즌에서 데뷔해 주전으로 뛰면서 그 해 팀을 처음으로 6강 플레이오프에 올려놓는 활약으로 신인왕 후보에 올랐으나 공격수 프리미엄으로 몰표를 받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하태균에 밀려 수상하진 못했다.[1]
당시 6강 PO 진출을 결정짓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전 승리 이후 웃통을 까고 대전 시티즌 깃발을 흔들며 경기장을 도는 김형일 선수의 당시 모습은 모든 대전 시티즌 팬들의 기억 속에 훈훈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2.2. 포항 스틸러스


[image]
그러나 다음 해인 2008년 포항 스틸러스의 권집과 트레이드[2]되어 둥지를 옮겼고 이후 포항 스틸러스의 4백 라인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009년 강원 FC와의 홈 경기에서 강원 FC의 동점골에 연결되는 페널티 킥을 내주고 물병을 발로 차는 해프닝이 있었다. 의도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물병은 김영후 선수 쪽으로 날아갔고, 풍문에 따르면 김형일과 관중이 서로 욕설을 주고받았다고 하는데, 이후 데닐손의 역전골로 포항 스틸러스가 경기에서 승리하며 분위기가 격화, 강원 FC의 아저씨 팬들이 그라운드 난입해 포항 스틸러스의 선수단 출입구를 봉쇄했다(...). 10여 분의 시간이 지난 후 나온 김형일은 90도 사죄, 아저씨 팬들은 박수를 치며 다음부터 잘하라는 훈훈한 마무리를...
2009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골을 성공시킨 후 그 당시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된 아버지께 눈물을 흘리며 올리는 세레머니는 감동적.
그래서인지 다른 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황재원 이적 후 거의 모든 팬들이 한 목소리로 차기 주장으로 밀었을 만큼 지지를 받았고 결국 2010 시즌 중반에 황재원에게서 주장 완장을 넘겨받았다.
[image]
2011년 11월 28일 팀 동료 김재성과 함께 상주 상무의 합격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2012 시즌 포항 스틸러스의 전력누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리고 2012 시즌 김형일이 빠진 포항 스틸러스의 수비진은 정말 헬게이트가 열렸다(...).''' 하지만 2013 시즌 포항 수비진은 굉장히 안정적이라 고액 연봉자인 김형일이 제대하자마자 팔려갈 거라는 불길한 이야기도 나왔었다. 안 그래도 포항 스틸러스의 재정이 썩 좋지 않은 상황이라... 어찌됐든 군 복무를 마치고 2013년 11월 13일자로 팀에 복귀했다.
결국 그 불길함이 현실이 되어(...) 2013 시즌 종료 이후 상하이 뤼디 선화로 이적하는 듯 했으나... 상하이 뤼디 선화 쪽에서 영입을 중단하여 포항 스틸러스로 복귀하였다. 계약기간도 군 입대로 인해 자동 연장되어 2016년까지이기 때문에 포항 스틸러스 입장에서도 적어도 1년은 걱정 없는 상황. 2014 시즌은 14경기에 출장하였다.

2.3. 전북 현대 모터스


2015 시즌에는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윌킨슨김기희가 거뜬히 존재하는 이상, 쉽게 주전이 될 수는 없을 듯. 애초에 전 시즌에도 김광석, 김원일에게 밀리고 김준수 등과 로테 경쟁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나마 아직 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정인환이 입대로 빠지게 된다면 3수비수로 쓸만한 자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정인환이 허난 젠예로 이적하면서 전북으로 돌아온 조성환과 함께 3수비수 자원이 될 것이라 예상되었다.
일단 개막전과 2라운드 경기에서 김기희와 함께 연속 선발 출전했으며 폼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3] 김기희가 오른쪽 풀백을 겸업하고 윌킨슨이 부상으로 많이 출전하지 못하자 조성환과 짝을 이뤄 파이터-파이터 조합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끈끈한 대인마크와 노련함으로 좋은 궁합을 보여줬다.
2016 AFC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에서 헐크를 완벽하게 봉쇄하며 4강 진출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 와중에 상하이 상강 루원쥔(呂文君)의 쿵후축구에 머리를 걷어 채이는 아찔한 장면도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바로 일어나서 강력한 파이팅을 외쳤고, 관중들은 김형일 콜을 외치며 성원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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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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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4일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이적이 확정되었다. # 6개월짜리 단기 계약인데 이는 기존 주전 한국인 센터백이었던 김영권이 2016년 9월에 당한 부상으로 전반기에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대체 선수로 영입한 듯 하다. #
그러나 중국 슈퍼 리그의 외국인 선수 출전 규정이 바뀌어 영입 직후에 아시아 쿼터제가 없어졌고 이때문에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가 영입할 때와의 의도와는 달리 자리가 없어져 못나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정규 리그에서는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고 6개월 단기 계약이 종료된 후 귀국하게 되었다.

2.5. 부천 FC 1995


[image]
이후 강원 FC 이적이 유력 했으나, 2017년 6월 28일, '''모두의 예상을 깨고 부천 FC 1995 이적이 보도되었다.'''
전북 현대 모터스와 강원 FC의 FA 보상금 협상이 결렬되면서 FA 보상금이 발생하지 않는 2부리그 부천 FC 1995로 간 것이였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29일, 공식 발표가 나오며 부천 FC 1995 이적이 확정되었다. #
반년동안 김형일은 노련함을 앞세워 젊은 선수들 위주의 부천 선수단을 이끄는 역할을 잘 수행해내며 준수한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부천 FC 1995는 아쉽게도 플레이오프 진입에 실패했고, 2017 시즌을 끝으로 계약 만료로 반년만에 부천을 떠났다.

2.6. 로얄 타이 네이비 FC


부천 FC 1995 퇴단 이후 무적 선수로 지내다가, 2018 시즌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6개월 단기 계약을 맺고 태국 프리미어 리그의 팀인 로얄 타이 네이비 FC에 입단하였다.
반년간 활동하였고, 2019년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이후 자신의 SNS를 통해 은퇴를 선언했으며, 별도의 은퇴식 없이 조용히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였다.

3. 은퇴 이후


자신의 SNS에 의하면 이호가 운영하는 고알레 컴퍼니에서 입사했으며, 고알레 유튜브 채널에도 출연하는 등 유튜버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헤드 코치 직함을 달고 축구를 좋아하는 아마추어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3.1. 해설위원


2021년부터 JTBC GOLF&SPORTS의 K리그 해설위원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4. 우승


  • 포항 스틸러스 (2008 ~ 2014)
    • K리그1 : 2013
    • FA컵 : 2008
    • K리그 리그컵 : 2009
    • AFC 챔피언스 리그 : 2009
  • 전북 현대 모터스 (2015 ~ 2016)
    • K리그1 : 2015
    • AFC 챔피언스 리그 : 2016

5. 국가대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대표로도 뽑혔는데 정작 경기는 뛰지 못했다. 아니, 그전에 허정무 감독 체제하에서는 뽑히기만 하고 정작 A매치 뛴게 손에 꼽을 정도다. 지못미
K리그 팬들과 포항 스틸러스 팬들은 김형일을 제발 국대 좀 쓰라고 하지만..... 현 국대 수비진의 실력도 좋은 편은 아니지만 김형일 역시 수비력이 국대 쌈싸먹을 정도로 뛰어나진 않다는 게 걸림돌이다. 특히 높이 위주의 수비에선 문제가 없지만 발이 너무 느려서 좌우돌파를 너무 쉽게 허용하는 게 문제.[4] 게다가 경기 중 잔실수도 많아지면서 갈수록 국대와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국대 승선을 위해선 수비의 안정성을 좀 더 높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2012년 2월 11일,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쿠웨이트 전에 대비한 최강희호 1기 소집 맴버에 발탁되었다.

6. 플레이 스타일


장신과 탄탄한 피지컬을 활용한 저돌적이고 터프한 플레이가 돋보이는 '''파이터형 센터백'''으로, 제공권 장악과 몸싸움에 능하다. 그러나 카드도 그만큼 많이 수집하는 편이며, 스피드도 느린 편이라 스루패스라든가 1:1마크에서 종종 뚫린다는 게 문제. 더욱이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거쳐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한 황재원과 같이 가끔 '''정줄놓는 미스'''를 범한다는게 너무 크다. 횡패스하다가 뺏긴다거나, 걷어내야 할 걸 어물쩍하다 위기를 자초한다거나 등등. 그리고 대부분 이러한 위기는 PK나 본인의 퇴장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즌 전체적인 안정감을 봤을 때 페널티 킥 허용이나 퇴장은 1년에 한 두 번 있는 일이라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 편. 다만 공중볼이 아닌 1:1 단순경합에서 뚫리는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7. 여담


  • 특유의 플레이로 인해 글래디에이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 2009년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김형일은 팀이 1:0으로 불안한 리드를 지키고 있던 후반 21분 김재성의 코너킥을 머리로 받아넣으며 2:0을 만드는 중요한 쐐기골을 만들어냈다. 골이 들어가자, 김형일은 땅위에 엎드려 가만히 흐느끼다가 양손 검지 손가락을 하늘 위로 올리는 세레모니를 하였는데, 바로 결승전 일주일전 세상을 달리한 아버지를 위한 세레모니였던 것이었다. 원래 포항 스틸러스 구단은 삼우제까지 지내다가 오라고 김형일을 배려했지만, 김형일은 발인 후 곧바로 팀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우승을 결정짓는 가장 귀중한 골을 넣음으로써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냈다.

8. 관련 문서


[1] K리그 신인왕은 해당 후보의 현재 실력이나 팀 기여도 보다는 팀 성적과 언론노출도를 더 따지는 타이틀이다. 07년의 경우 김형일이 하태균보다 훨씬 많은 경기에 출장했고 팀 기여도도 더 높았지만 상대적으로 눈에 덜띄는 수비수라서 5골 1도움을 기록한 공격수 하태균에게 밀려버렸다. 하태균은 이후 매년 부상에 시달리며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2] 이 트레이드를 기점으로 대전에는 김호의 아이들 2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듬해 김호 감독이 경질되면서 김호의 아이들 2기는 무산됐다. 거기다 권집은 이후 승부조작에 연루된 것이 발각되어 K리그에서는 더 이상 뛸 수 없다. 그래서 대전 시티즌 팬들만큼은 김호가 명장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못한다. 물론 그 이유가 이것 하나 때문만은 아닌데 자세한 것은 김호/비판 및 논란 참조.[3] 윌킨슨의 중국 이적 루머가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사실 윌킨슨이 그 동안 부상을 당하고 있었다.[4] 똑같이 발이 느린 황재원이 있을 때는 양 풀백들이 공격 가담을 적게 하면서 센터 위주로 공격했기에 큰 문제가 안됐지만 2011 시즌 이후 4백이 부실화하면서 같이 폼이 떨어졌다. 그나마 시즌 초반에는 김원일이 대신 오버래핑을 했기에 수비가 안정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