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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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선수였으며 이곳에서 은퇴식도 했지만, 선수 복귀 후 수원 FC의 플레잉코치[4] . 대한민국의 수비형 미드필더/오른쪽 수비수이며 JTBC3 FOX Sports 해설위원이기도 했다.'''우리는 너를 믿는다'''
빅버드 선수 소개 멘트
2. 경력
2.1. 울산 현대, 광주 상무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2002년에 울산 현대에서 데뷔하였지만, 1경기 출장에 그치게 되었고, 한 시즌만에 광주 상무에 입대했다. 선수진이 얇았던 상무에서는 33경기 2골을 기록했다. 상무에서 이강조 감독의 지시를 받고 수비수를 처음 봤다고 한다. 3-5-2시스템의 오른쪽 윙백. 그전까진 공격수였다고.., 전역 직후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했다.
2.2. 수원 삼성 블루윙즈 1기
수원 입단 후 초기에는 주로 오른쪽 풀백으로 출장하였는데 공격적인 능력은 괜찮았으나 그놈의 '''돌아오지 않는 윙백''' 본능 때문에 이전까지 수원의 오른쪽 풀백이었던 이기형, 또는 2002 월드컵 국가대표 출신 최성용과 비교되며 신나게 까였다. 2006년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었으나 한 경기도 뛰지 못했고 2007시즌 송종국에 밀려 벤치만 달구며 그대로 잊혀지나 싶었으나, 그의 활동량과 신체조건을 눈여겨 본 차범근 감독은 그 해 후반기 조원희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위치를 바꾸어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2008년 김남일이 떠나고 김진우가 은퇴하면서 대체자가 필요한 수원의 중원을 꿰차는데 성공했고, 팀의 4번째 우승의 주역이 되며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이때는 김정우가 대표팀 붙박이 주전이 되기 전이라서 한창 떠오르는 기성용의 파트너로 조원희를 주목하는 팬들도 꽤 있었다.
2.3. 위건 애슬레틱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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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AS 모나코로의 이적설이 돌기도 했으나 위건 애슬레틱으로의 이적을 확정지었다. 시즌 전 친선 경기에서 골대를 맞추는 슈팅 등 좋은 조짐을 보였으나 처음 조원희를 영입한 스티브 브루스 감독이 선덜랜드로 떠나버리고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감독이 부임하는 부침속에 팀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부상도 당하는 등 좋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자 2010년 수원으로 1년간 임대를 오게 되었고, 수원에서 주장 자리까지 맡으며 활약하였다. 시간이 많이 지나 은퇴한 조원희는 이때 계속 도전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온 것을 인생 최대의 실수로 꼽았다.관련 기사 조원희를 플랜에서 제외했다고 알려져 있는 마르티네스 감독과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고, 경기에 기용해주겠다는 말도 들었으나 스스로 힘에 부쳐 떠났던게 너무 아쉽다고.
또한 이 시기에 인종차별도 많이 겪은것으로 보인다. 동료들이 조원희 옆을 지나갈때 눈을 찡그리고 다니는건 기본이었다고 슛포러브 인종차별 유튜브 캠페인에 나와서 밝힌 바 있다.
2.4.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기
2010시즌 종료 후 수원이 비슷한 스타일의 이용래를 영입하여 조원희에게 완전 이적을 제안하지 않았고, 수원은 울산 현대의 오장은과 조원희의 맞트레이드 이적을 시도, 팀간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조원희가 울산으로서의 이적을 거부했고 국내 잔류보다 해외 리그로의 재진출을 희망하였기에 결국 아시아 쿼터제를 이용해서 중국 슈퍼 리그 소속의 광저우 헝다로 이적하게 된다.
2.5. 광저우 헝다
원래는 위건과의 계약이 6개월 남은 상황이었으나 위건과 광저우의 협상에 의해 조원희의 계약은 조기종료되었고 광저우 헝다는 자유계약으로 조원희를 영입하게 된다. 폭발적인 투자를 시작한 광저우 헝다에서 이장수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팀의 우승에 공헌했다.
2.6. 우한 줘얼, 경남 FC, 오미야 아르디자
2013시즌 우한 줘얼으로 이적했다. 2014년 2월 26일 경남 FC로 1시즌 임대되었다. 임대된 조원희는 입단 당시 본인 연봉의 상당 부분을 삭감하며 구단의 부담을 덜어준 대신 시즌 중 해외 진출 요청 시 구단이 이를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경남은 후반기 조원희의 잔류를 원했지만 입단 당시 이뤄진 상호 약속을 존중하는 동시에 본인의 강한 해외 진출 열망을 고려해 계약 해지 요청에 합의했다. 여름 일본 J리그 오미야 아르디자에 입단했다. 2015년 2월 5일 K리그 챌린지 신생구단 서울 이랜드 FC에 입단했다.
2.7. 서울 이랜드 FC
시즌 초반에는 몸상태가 별로인듯 폼이 안좋아보였지만 이후 멋진 중거리슛을 성공시키는 등, 좋은 활약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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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강원과 경기에서 골찬스를 어이없게 날렸다. 사실 이날 경기는 조원희 뿐만 아니라 서울 이랜드 전원이 귀신에 씌인 듯 결정적인 상황에서 빗나가는 슈팅이 많았다. 아직 홈에서 첫승이 없기 때문에 부담이 큰 듯.
2.8. 수원 삼성 블루윙즈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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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시즌 수원 삼성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서울 이랜드 팬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필드에서 게임을 잘 조립해주는 조원희의 이탈이 다음 시즌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과, 뛰지 않고 걷는 모습, 공격 템포를 늦추고 공을 오래 점유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 조원희가 나가서 다행이라는 의견이 있다.
2016시즌 수원에서는 주로 풀백으로 뛰고있으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뛸 때가 훨씬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7월 31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 후반 50분 시즌 1호골이자 쐐기골을 터뜨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패싱력이 좋은 이종성과 함께 더블 볼란치로 출장하며 뛰어난 수비력으로 중원을 쓸어담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17년 6월 25일, 16라운드 강원전에서 환상적인 다이빙 헤딩골을 넣었는데.. 하필이면 '''자책골이었다.'''[5][6][7] 이후 17라운드 대구와 18라운드 울산과의 경기를 끝으로 출전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2018년에는 ACL과 월드컵이 있어서 로테이션이 매우 중요한 시즌이 되다 보니 경기에 출전 중이다. 게다가 주장인 김은선이 3라운드 포항 전 이후 6주 부상을 끊는 바람에 역할이 중요해 졌는데, ACL 2차전 가시와 전, 1라운드 전남 전에서는 눈이 썩는 백패스만 보여주다 4라운드 제주 전에서 각성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각성 이후, 2018 시즌 한정 인저리 프론이 된 김은선을 대신해 중앙 미들진 1옵션으로 출전 중이며, 나이를 잊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5월 16일 벌어진 ACL 16강 2차전 울산과의 경기에 맹활약하며, 수원을 7년만에 ACL 8강으로 올려 놓는데 매우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하반기에 들어서자 무섭게 폼이 수직하락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ACL 및 FA컵 탈락의 주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서정원 감독 또한 이런 조원희를 계속해서 믿고 미들로 기용하면서[8] 팬들의 큰 의구심을 안게 되었다.
결국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고, 현역 은퇴를 선언한 후 2019년 JTBC의 K리그 해설진으로 합류했다. 다른 팀에서 오퍼가 오긴 했었지만, 본인이 “내 몸엔 아직 푸른 피가 흐른다”고 말하며 수원 외의 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갈 생각이 없는지라 거절했다고 한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는 2019년 3월 31일에 그의 은퇴식을 했다.
2.8.1. 전설이 된 자책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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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영상
17시즌 K리그 16R 수원 VS 강원전에 3-2로 수원이 앞서는 상황에서 이러한 황당하면서 아름다운(?) 자책골이 터져나왔다. 이 당시 중계를 하던 방송사도 스코어를 실수로 4-2로 바꾸다 재빨리 3-3으로 바꾸었으며 이 골은 지금까지 회자되는 최고의 자책골 중 한 골로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골은 머리로 감아차서 그런지 아름답다는 말이 많고 네티즌들 사이에는 '''자책골 아니였으면 푸스카스 받았다''', '''조원희상 만들어야 된다''', ''''머리 감기'의 새로운 의미를 제시했다(…)''' 등 여러 드립이 탄생하면서 현재 조원희가 유명해진 대표적인 역할을 한 골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오프사이드도 아니였다.
참고로 당시 조원희는 교체로 나온지 얼마 안된 상황이였다. 서정원 감독이 조원희를 투입시키면서 ‘지켜라’고 했지만 승부의 균형을 지켜버렸다.
2.9. 은퇴 이후
은퇴 이후 슛포러브에 간간히 출연하다가, 유튜브 채널 이거해조 원희형을 개설,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코로나 19로 리그가 중단된 상태에서, 이승우를 훈련시켜주고 있다. 황의조 역시 훈련시켜줬었다고 한다. 슛포러브에서 훈련하는 모습이 나왔는데, 이승우와 자신의 선수 시절 처지가 비슷해서 공감이 많이 간다고 한다.
2020년 7월 9일 현재 현역 복귀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거론되는 구단은 수원 삼성관련 영상, 수원 FC가 거론되고 있다. 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에 따르면 최종환의 부상으로 라이트백 공백이 생긴 수원 FC가 월요일 김도균 감독의 연습경기 테스트 후 오케이를 했다고.
2.10. 현역 복귀: 수원 FC
2020년 7월 22일, 플레잉 코치[9] 신분으로 K리그2 소속인 수원FC에 현역 복귀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이적 과정과 소감을 밝혔다. 현역 선수로 복귀하면 유튜브 활동을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서도 고민한 듯한데, 수원 FC 구단 측에서 "우리 팀에 유능한 선수가 많아서 알리면 좋겠다. 또 우리 팀 경기와 K리그를 축구 팬들에게 홍보하는 차원에서도 좋은 컨텐츠를 만들어줄 수 있겠냐"며 오히려 선제의를 해줘서 이거해조 원희형 채널은 수원 FC 구단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당분간은 몸 만들기에 주력한다. 인터뷰에서 아들이 영국 가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고 밝혔다. 경기 투입을 위해 각종 영양제를 다시 먹고 다리의 피로를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운전도 삼간다는 모양이다. #
8월 1일 13R 안산 그리너스전에 선발 라이트백으로 출전했지만 아직 풀타임을 뛸 체력이 아닌 것으로 보여서 지친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전반 32분엔 무리한 태클로 경고를 받았으며, 결국 39분에 교체아웃되고 만다.
다음 경기인 부천FC와의 경기 2일전에 가벼운 차량 접촉 사고를 당하고 훈련에 참여하지 못하여 명단제외를 당한다. 24R까지 명단제외나 벤치를 달구고 있다가 25R 제주전 2대0으로 지고 있는 후반 76분에 이지훈 대신에 교체로 들어갔었다. 이지훈이 제주 정우재의 측면 침투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해 두번째 골을 허용하게되자 질책성 교체로 조원희가 들어가게된 것이다.
이후 별다른 활약 없이 평소에는 코치 역할을 하거나 관중석에서만 있다가 마침내 승격 확정으로 1부에 올라갔다.
그리고 1부 리그로 팀이 승격하자, 2021시즌 시작 전인 1월 7일에 선수 은퇴를 선언하면서, 수원 FC에 유소년 발전기금 2000만원을 기부하고 떠났다.#
3. 국가대표
연령별 국가대표 시절인 2002년 AFC U-19 챔피언십, 2003년 FIFA U-20 월드컵에서는 공격수로 뛰었다. 상무 입단 전까지 수비형 미드필더나 윙백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이후 아드보카트 감독 체제인 2005년 10월 12일 이란과의 A매치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일명 "쓰리쿠션슛", "뮤탈슛"으로 전반 59초 만에 득점에 성공, 국가대표 데뷔전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후 오범석, 차두리와의 경쟁에서 승리해 2006 독일 월드컵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본선에서는 송종국과 라이트백으로 전향한 이영표에 밀려 출전하지 못했다.
베어벡호에서는 초반 2경기 출전에 그치고 이후로는 오범석이 대표팀 주전으로 도약하면서 점차 자리에서 밀려나 선발되지 못했다.
그리고 허정무 감독 체제로 넘어오면서 조원희는 윙백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하여 초반 허정무호의 주전급 미드필더로 낙점받아 김정우, 기성용 등의 파트너와 호흡을 맞추며 남아공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꾸준하게 중용받았다. 그러나 2009년 하반기 이후 위건에서 꾸준하게 경기 출전을 하지 못해 경기력이 저하되면서 점차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월드컵 출전을 위해 다시 수원으로 복귀했지만, 남아공 월드컵 30인 예비 명단에만 선발되고 26인 예비 명단으로 걸러지는 과정에서 결국 탈락하고 말았다.
남아공 월드컵 이후로는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다.
4. 플레이 스타일
피지컬이 상당히 뛰어났다. 적당히 준수한 신장(177cm)에 꽤 근육이 많아 피지컬로 상대 미드진을 압박하고 활동량을 넓게 가져가 끈질기는 수비를 하는 타입으로 현역 때는 조투소라는 별명이 있었다. 이거해조 원희형 에서 본인피셜 풀 스프린트는 그저 그렇지만 10m 순속은 현재의 K리그 내 에서도 본인보다 나은 선수가 많지 않다고 자부할 정도로 피지컬로 빠르게 압박하여 공을 뺏고 속공을 진행하는 전형적인 정통 수비형 미드필더다.
단점이라면 수비형 미드필더 치곤 테크닉이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니었고 피지컬형 플레이를 구사하다 보니 수원 시절 강원 전 다이빙 자책골(헤딩감차) 같은 실수도 보였다.
5. 여담
- 은퇴 이후 축구가 늘었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본인의 유튜브 채널인 이거해조 원희형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다. 주된 컨텐츠는 1 vs 1 로 10번 중 조원희를 3번이상 뚫어내고 골을 넣으면 이기는 컨텐츠다. 초창기에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주 상대였지만, 대한민국의 레전드 수비수 이영표를 이후로 염기훈, 구자철 등 국가대표를 지냈던 선수들이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6/28 기준으로 아무도 조원희를 3번이상 뚫어내지 못했다.[10][11] 본인이 농담삼아 말했던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 선수 차범근과 박지성보다 자신이 더 위에 있다'는 '조차박'이라는 명언(?)의 신뢰도를 높여가고 있다.[12][13][14]
- 선수들을 훈련시킬 때 자꾸 무언갈 추가한다고 한다.
- 프로 데뷔 전까지 공격수였다고 한다. 2003년 청소년 대회 종료 뒤 상무에 들어가고 나서 상무의 이강조 감독이 3-5-2의 오른쪽 백을 보라고 해 처음 수비를 봤다고 한다. 원래 공을 잡아야 수비수를 제치는 스타일에서 살아남기 위해 뛰고 태클하다보니 지금의 스타일이 됐다고.. 위건에서 쉐도우 스트라이커 포지션을 제안받았으나 남아공 월드컵에 수비형 미드필더로 가기 위해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남아공 월드컵 엔트리에 드는건 실패했다.
- AS 모나코에 합류해 훈련하고 있었으나 프레디 아두가 잔류하면서 외국인 쿼터가 비지 않아 입단에 실패했고 급한 마음에 위건 애슬레틱으로 입단테스트를 보러 갔다고 한다. 연습경기 15분만에 합격점을 받아 합류했으나 인종차별과 음식 때문에 고생했다고 한다.
- 파브레가스를 좋아한다고 한다.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파브레가스와 유니폼을 교환하려했으나 실패했다고..
- 청담동에서 저스트풋볼아카데미를 운영중이며 즐겁게 아들과 훈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팬서비스가 좋다. 그리고 하이텐션 역시 자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 2020년 상반기에 황의조의 추천을 받고 리그가 조기종료되어 귀국한 이승우의 트레이닝을 도왔다. 이승우의 약점인 피지컬과 밸런스를 집중적으로 보강시켜주면서 팬들이 가진 오해를 이영표와의 콘텐츠 촬영으로 직접 나서서 풀기도 하는 등 좋은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시즌 개막 후 이승우가 소속팀에서 좀 더 좋아진 모습을 보여주자, 조원희를 찬양하는 팬들이 늘어났다.[15]
- 텐션 가득한 "가야돼 가야돼" 세레모니로 가야대학교 홍보대사 제안을 받은 바 있다.
[1] 프로필 상 키. 176인 석꾸보다 살짝 작다.[2] 수비형 미드필더[3] 라이트백[4] 선수 겸 코치다. 수원 FC에 측면 수비 자원과 2군 코치가 모두 없는데(측면 수비는 최종환의 부상이 컸다.) 조원희에게 그 둘을 모두 맡겼다.[5] 본인의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라고 한다.[6] 스코어 기록하는 사람도 착각했는지 일시적으로 수원의 득점으로 올라간다....[7] 이후 2020년 초 자신이 직접 댓글을 남겼고, 고정당했다[8] 부상 때문에 기용할 수 있는 미들 자원이 몇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 윤용호라든가.[9] 2군 코치와 1군 선수 역할을 같이 할 예정인데, 문제는 최종환의 부상과 박요한의 FC 안양 임대로 공백이 생긴 측면 수비와 기존 2군 코치가 없던 상황 상 양쪽 모두 비중이 크다 보니 맡은 일이 과해질 수 있다는 것. 거기에 후술할 유튜브까지 병행하면 워낙 바빠질 수 있어 구단 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다. 이전에 2군 전담 코치 없이도 운영을 잘 해왔던 수원이니만큼 조원희의 코치 업무를 어느 정도 분담해준다던지...[10] 다만 룰 자체가 공격수가 페널티 박스 밖에서는 슈팅을 못하거나 프로 골키퍼를 쓰는등 조원희에게 너무 유리한 룰을 적용시키고 반칙도 공식 경기에서 파울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해서 비판이 좀 있다.[11] 다만 지면 이 컨텐츠 안하기로 공약을 걸은지라 어쩔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12] 이 이야기와 더불어 '박지성이 조원희를 1:1에서 한 번도 뚫지 못했다'는 허풍을 슛포러브로부터 전해들은 박지성은 '그럼 걔가 맨유를 갔겠지!!'라는 일침 한방으로 응수했다고 이어서 차범근도 "조원희 같은 선수가 있으면 휘파람 불면서 돌파했다"며 조원희를 침몰시킨다.[13] 참고로 슛포러브 나왔을때 이렇게 까지 많은 사람이 관심있게 볼 줄 몰랐고 '지성이 형에게는 한번 혼나고 말지.' '차범근 감독님은 유튜브 안보시겠지.'라는 심정이었다고[14] 박지성 같은 경우에는 무릎 상태를 알기 때문에 본인도 차마 1:1 신청을 못하고 차범근은 감히 하자는 말도 못꺼내고 고개만 숙였다.[15] 이승우도 데뷔골을 터뜨린 후 가야돼 세레모니를 하여 감사의 표시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