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포 베르토네

 

1. 개요
2. 상세
2.1. 역사
2.2. 디자인한 차종
2.3. 생산한 차종
3. 참고 자료


1. 개요


이탈리아에 존속했던 자동차 디자인 전문업체.

2. 상세



2.1. 역사


1912년에 마차/수레 공방[1] 출신인 지오반니 베르토네(Giovanni Bertone)가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설립하였다. 또한 자동차 경주에 참여해 온 아들 누치오 베르토네(Nuccio Bertone)가 1952년부터 디자이너로서 활약하면서[2] 베르토네는 더더욱 번성했다. 또한 알파 로메오 줄리에타 스프린트를 출시, 생산한 1954년[3]을 기점으로 토리노의 그룰리아스코(Grugliasco)에 대량생산 대행을 위한 자체 생산시설도 갖추었다.
덕분에 베르토네에서는 1960년대부터 각종 특별차와 컨셉트카를 포함해 약 3만 대 규모를 생산, 제작하기도 했으며, 디자인 업무도 번성하여 1950년대에 누치오와 초창기부터 일하던 프랑코 스카글리오네(Franco Scaglione)를 비롯해 마르첼로 간디니, 조르제토 주지아로 같은 차기 디자이너들도 양성, 배출하여 1970~1980년대 이탈리아의 자동차 산업이 번성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4] 생산외주도 활발하게 맡아 누치오가 사망한 1997년에는 7만 대 생산능력을 갖추면서 피아트 푼토, 오펠 아스트라 컨버터블의 생산계약을 통해 2만 1천 대의 차를 생산하기도 했고, 제너럴 모터스에서도 지분을 인수하려고 했을 정도였다.[5]
누치오가 사망한 후에는 배우자 릴리 베르토네(Lilli Bertone)와 두 딸[6]이 회사를 이어받았고, 100주년을 맞는 2012년까지 회사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경영을 이어 갔다. 하지만 경영진들 간의 내부갈등이 생겨 회사 경영에 차질을 빚었으며,[8][9] 나아가 2007년을 기점으로 한 디자인 전문업체의 몰락, 그리고 2008년의 경제 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2014년에 최종 도산하여 문을 닫았다.#

2.2. 디자인한 차종


  • 아놀트-MG
  • 아바스 1500 비포스토(Biposto)
  • 알파 로메오 B.A.T. 시리즈
  • 알파 로메오 줄리에타 스프린트[C]
  • 아놀트-브리스톨[C]
  • NSU 슈포르트 프린츠[C]
  • 마쓰다 루체 1세대[B]
  • 람보르기니 미우라[A]
  • 피아트 850 스파이더[B]
  • 피아트 디노 쿠페[B]
  • 알파 로메오 몬트리올[A]
  • 람보르기니 에스파다[A]
  • 람보르기니 쿤타치[A]
  • 피아트 X1/9와 아우토비앙키 A112 런어바웃 컨셉트[A]
  • 란치아 스트라토스[A]
  • 인노첸티 미니 1974년식
  • 피아트 131 아바스
  • 시트로엥 BX
  • 오펠 카데트 6세대 컨버터블
  • 볼보 780
  • 스코다 파보릿
  • 시트로엥 XM
  • 시트로엥 ZX
  • 시트로엥 잔티아
  • 대우 에스페로
  • 대우 차세대트럭
  • 삼성 야무진[10]
  • 치제타 V16T[A]
  • 람보르기니 디아블로[A]
  • 오펠 아스트라 1세대 컨버터블 / 2세대 컨버터블과 쿠페
  • 알파 로메오 GT
  • 치루이 A1
  • 리쉬 G5(Riich G5)[11]
  • 알파 로메오 판디온 컨셉트
  • 베르토네 누치오 컨셉트[12]

2.3. 생산한 차종


  • NSU 슈포르트 프린츠
  • 피아트 850 스파이더
  • 피아트 X1/9
  • 볼보 780
  • 베르토네 프리클라임버
  • 피아트 푼토 카브리올레[13]
  • 오펠 아스트라 1세대 컨버터블 / 2세대 쿠페와 컨버터블
  • BMW C1[!]
  • 미니 쿠퍼 GP[!]

3. 참고 자료


  • 위키백과 영문판
  • 로드 앤 트랙 기사[14]
[1] 이탈리아어로 카로체리아(Carrozzeria), 영어로는 코치빌더(Coachbuilder)라고 부르며, 자동차 업종으로 전환하면서 카로체리아와 코치빌더는 자동차 디자인 전문업체들을 이르는 표현이 되었다.[2] 미국 사업가 스탠리 H. 아놀트(Stanley H. "Wacky" Arnolt)의 의뢰 하에 아버지 지오반니, 아들 누치오, 그리고 지오반니 미켈로티가 디자인한 아놀트-MG 쿠페를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3] 토리노 모터쇼 출품 후 수백 건의 수주가 들어와서 양산으로 이어졌고, 베르토네에서 11년간 총 4만 대를 생산했다.[4] 특히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베르토네에서 독립한 뒤 이탈디자인 쥬지아로를 차려 피아트, 란치아 등이 있던 자국 이탈리아를 넘어 독일, 영국, 일본같은 해외에서도 활동했으며 대한민국, 세르비아 같은 각종 개발도상국의 자동차산업에도 한 몫 기여했다.[5] 잭 스미스 당시 GM 회장은 약 5~30% 가량의 지분을 사려고 했지만, 누치오 베르토네의 반대로 지분 인수는 무산되었다.[6] 건축학과 출신의 첫째인 마리-장르(Marie-Jeanne)와 경영학과 출신의 둘째인 바바라(Barbara)가 각각 디자인 파트의 부사장, 그리고 생산 파트의 재무감독을 담당했고 각 배우자들도 회사 경영진으로 임명되었다.[7] F1 드라이버가 아니다.[8] 생산 파트만 해도 1976년부터 베르토네에서 근무하던 경영진 파올라 카카모(Paolo Caccamo)가 베르토네 가와의 갈등(BMW X3의 생산외주를 두고 바바라의 배우자가 감정적으로 반대의사를 표한 것이 결정적이었다)으로 2000년 말에 퇴사했고, 후임인 브루노 세나(Bruno Cena)[7]도 베르토네의 생산 파트를 바로잡았지만 새로운 생산외주 계약을 맺지 못한데다가 베르토네 가에서 권한 이상으로 부담을 지우려고 하자 2003년 말에 퇴사했다. 이후 릴리가 직접 생산 파트를 관할했으나 2005년에 오펠이 비용 및 품질을 이유로 계약을 종료하자 생산 파트의 가동불능으로 이어졌다. 또한 릴리가 생산 파트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점에 바바라 부부도 불만을 느끼고 2006년 3월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결국 몇 차례 매각 시도 끝에 생산 파트는 피아트 그룹이 인수,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전환했다.#[9] 디자인 파트도 상황은 비슷해서 디자인 수주가 급감하자 인력도 반토막났고, 수장이 여러 차레 바뀌는 혼란을 겪는 건 물론 2013년부터는 임금 체불까지 벌어질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졌다.[C] A B C 당시 베르토네에 있던 프랑코 스카글리오네(Franco Scaglione)가 디자인했다.[B] A B C 당시 베르토네에 있던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했다.[A] A B C D E F G H 당시 베르토네에 있던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했다.[10] 닛산 아틀라스 베이스지만 전면부만 디자인했다.[11] 치루이기차 산하 리쉬 브랜드의 중형 세단으로 2009~2013년 사이 생산.[12] 2012년에 그루포 베르토네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출품했다.[13] 생산대행만 담당했다.[!] A B 생산대행만 담당했다.[14] 베르토네의 흥망성쇠, 특히 말년과 당시 상황을 세세하게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