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난새

 

'''금난새
Nanse Gum'''
'''본명'''
금난새
'''본관'''
김녕 김씨
'''출생'''
1947년 9월 25일 (76세)
미군정 조선 경상남도 부산부
'''직업'''
지휘자
'''가족'''
아버지 금수현, 동생 금노상 外[1]
배우자 홍정희, 아들 금다다, 금드무니
'''학력'''
경희대학교 병설 경희중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 작곡과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학사
베를린국립음악대학 지휘과(사사:라벤슈타인)
계명대학교 명예철학박사
'''데뷔'''
1977년 제 5회 카라얀국제콩쿠르
'''링크'''

1. 개요
2. 상세
3. 경력
4. 수상
5. 논란
5.1. 서울예술고등학교 직무태만
6. 기타


1. 개요


대한민국지휘자이다.

2. 상세


아버지는 음악가인 금수현, 동생은 지휘자 금노상이다. '난새'는 '하늘을 나는 새'를 뜻하는 순우리말.[2] # 성이 김(金)씨인데 아버지 세대부터 성의 한자를 '금'으로 읽어서 사용하는 이름은 금난새이지만, 이전부터 주민등록증과 여권, 운전면허증 등의 신분증과 가족관계등록부상으로는 김난새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재산 상속 과정에서 상속신청서와 가족관계증명서상의 성명이 달라 상속이 불가능하다는 문제를 낳게 되었고, 결국 2018년 소송을 걸게 되었다. 1, 2심에서는 금난새 측이 패소했으나 대법원에서는 광복 직후부터 금수현-금난새 집안이 성의 한자 독음을 '금'으로 사용해 왔고, 이를 사회적으로 사용해 왔기 때문에 가족관계등록부의 성씨의 한자 독음을 '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금난새는 '''법적으로도 완전히 성씨의 한자 독음을 '금'으로 변경할 수 있게 되었다. '''관련 기사[3]
서울예술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였다. 청소년기부터 지휘자를 꿈꿔왔으나 당시 한국에서는 지휘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어 베를린 예술대학교 음악대학까지 무작정 가서 무일푼으로 어렵게 공부했다고 한다. 이후 한국인 최초로 1977년 카라얀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입상해 데뷔하였고, 귀국 후 KBS 교향악단의 지휘자를 맡아 최연소 지휘자란 기록을 남겼다.
1992년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지휘자를 맡았는데, 이에 대해 구설수가 많았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수원시립교향악단과 KBS 교향악단의 규모나 유명세는 차이가 매우 심했고 따라서 금난새가 압력을 받아 KBS교향악단에서 쫒겨난 게 아니냐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금난새는 본인의 의지였으며 수원시향의 문제점을 고쳐보고자 하는 생각에 옮긴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이후 1997년 한국 최초의 순수 민간 오케스트라인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현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4]를 창립, 활동하고 있다. 연주 장소의 선정이나 연주 내용에 있어서 개성 있는 일화가 많아 일반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편이다.
2019년 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으로 2013년부터 재직하던 중 교장직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업무 소홀 논란이 빚어지며, 2019년 8월 교장직에서 해임되었다.[5][6]

3. 경력


'''연도'''
'''경력'''
'''비고'''
2015년 9월 ~
한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감독

2015년 1월 ~
성남시립예술단 예술총감독, 상임지휘자

2013년 10월 ~ 2019년 8월
제8대 서울예술고등학교
해임[7]
2012년 7월
리움 아트센터 예술감독

2012년 4월
경남메세나협의회 홍보대사

2012년 3월
창원대학교 예술대학 음악과 석좌교수

2012년 2월
한국스카우트연맹 명예홍보대사

2011년 8월
청소년적십자 홍보대사

2011년 2월
제주도 홍보대사

2010년 3월
보건복지부 결핵홍보대사
인천시립예술단 예술감독, 상임지휘자

2008년 2월 ~ 2011년
S&T홀딩스 사외이사

2006년 9월 ~ 2010년
경기도립오케스트라 예술감독

2002년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홍보대사

2001년
청주시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1999년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교수

1998년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최고경영자 CED, 음악감독
대전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지휘자

1992년
수원시립예술단 상임지휘자

1981년
KBS 교향악단 전임지휘자

1980년
국립교향악단 전임지휘자


4. 수상


'''수상 연도'''
'''수상'''
'''비고'''
2011년
가장 문학적인 상 음악부문

2011년
제 30회 세종문화상 예술부문

2010년
제 13회 효령상 문화부문

2009년
한국최고경영자회의 문화경영 문화인부문 대상

1999년
제 15회 평론가협회 음악대상

1995년
옥관문화훈장

1977년
제 5회 카라얀국제콩쿠르 4위

1965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주최 콩쿨 작곡부문 입상


5. 논란



5.1. 서울예술고등학교 직무태만


그가 2013년서울예술고등학교장직을 맡게 되었을 때, 계약 내용 중에서 1년에 3일만 출석을 해도 된다는 내용을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본인이 직접 언급을 해 기사[8]와 함께 논란이 되었었다. 그리고 실제로 학교에서 금 '''전''' 교장이 출근을 하는 날보다 출근을 안 하는 날이 월등히 많았다. 이마저도 학교 오케스트라와 관련돼서 출근한 것.
그 후에 학교에서 교장직을 하며 가끔씩 실기에 우수한 학생들을 데리고 개인적인 연주에 데리고 다니며 보수를 주기는 하면서 연주를 시켰다.[9][10]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학생들이 잘 모이지 않아서, 연주를 하겠다고 하는 학생들로 인원을 겨우겨우 맞추긴 했지만, 외부에 서울예고 학생들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큰 금난새가 학생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교장직을 이어가던 중 2018년 재계약 후에 2019년 6월 17일에 '''"지휘자 금난새, 서울예고 교장 업무 소홀"'''이라는 기사와 함께 다시한번 논란이 빚어졌다.[11]
그리고 마침내 2019년 8월 16일 기사[12]와 함께 금 '''전''' 교장의 해임소식이 알려졌다.
그러나 그 다음날인 8월 17일에는 8월 21일에 있을 서울예술고등학교의 수요채플 시간에 금난새 '''전''' 교장의 퇴임예배 를 한다는 소식과 함께, 금 '''전''' 교장은 명예교장으로서 서울예술고등학교에 남아 교장이 되기 전부터 해왔던 지휘를 계속 이어간다는 소식이 퍼졌다. -

6. 기타


  • 그가 지휘하는 것을 보면 아주 파워풀한 지휘 가 눈에 띈다.
  • 송창식의 서울예고 동창으로, 그가 가난해서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고 회상했다.
  • 세간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부드러운 이미지와는 다르게, 오케스트라에게는 꽤나 권위적인 면이 있다고 알려졌다. 수원시향에서 상임지휘자로 재직 당시 이런 문제로 단원들과의 불화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교장으로 재직했지만 현재는 해임된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도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으면 연주 연습에서 학생들을 꽤나 몰아붙이는 선생으로 유명하다고.


[1] 형제가 5명이다.[2] 본인의 말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공식 등록된 최초의 순우리말 이름이라고 했으나 JTBC 한名회에서 조사해 본 결과를 보면 최초는 '최참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관련 글 행정망전산화 및 호적전산화 이전에는 전국적 등록 상황을 파악할 길이 없으니 본인 주장은 신빙성이 낮으며 전산화가 완료된 현 시점의 JTBC 조사 결과가 맞다고 봐야 한다.[3] 1심과 2심에서는 이걸 함부로 허용해줬다가는 본관 제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된 자기 성씨의 한자 독음을 임의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취지에서 패소 판결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광복 직후부터 금수현-금난새 집안이 성의 한자 독음을 '금'으로 사용해왔다는 점을 고려하여 금난새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4] #[5] 뉴스 기사에 따르면 4년동안 근무일의 40%에 가까운 396일을 학교가 아닌 성남시립예술단으로 출근하였다고 전해진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예고에서 2014년부터 2018년 사이에 열린 학업성적관리위원회 49회, 입학전형관리위원회 28회, 교육과정위원회 7회 등 위원회 총 86회에서 금난새 전 교장이 참여한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이 위원회를 총괄하는 위원장은 금 전 교장이었다. 금 전 교장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있었던 교무위원회 88회 가운데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8회만 참석했다.[6] 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344676[7] http://m.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337903[8]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508151413100310[9] 항상 자신을 보수를 준다고 강조하며 말하지만 정작 줘야하는 보수의 절반도 안 되었다는 것이 '''현실'''.[10]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학교의 '''음악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심각한 압박을 주었다. ~애초에 고등학생인 만큼, 대입이 코앞이며, 내신에 실기까지 바쁜 학생들이, 학기 중 학교 수업을 빠져가며 연주를 하려는 학생들이 거의 없다보니 , 금난새는 진행시키고 싶고, 학생들을 모으는 것은 음악과 선생님들에게 맡기니(...).[11] https://www.yna.co.kr/view/AKR20190617147700004?input=1179m[12] 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344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