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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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부산 아이파크 소속이며 포지션은 센터백이다.
2. 선수 경력
2.1. FC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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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2010년
서귀포초, 서귀포중, 제주상업고등학교,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신인 드래프트를 거쳐 FC 서울에 입단했다. 그러나 첫 시즌이었던 2010년, 당시 K리그에서 가장 화려한 스쿼드를 보유하고 있던 서울에서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10시즌 서울의 4백(현영민-아디[1] (박용호)-김진규-최효진)은 리그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특히 중앙수비진에는 아디, 김진규, 박용호라는 올스타급 선수 3명이 몰려있었다. 게다가 세뇰 귀네슈 감독 사임후 처음으로 K리그를 접한 넬루 빙가다 서울 감독은 부임 초기 베스트 11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가며 성적을 쌓고 리그를 파악하는데 주력했기에 새파란 신인인 김동우는 몇달간 벤치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 시즌 중반, 김진규의 부상과 박용호의 부진으로 중앙 수비진에 공석이 생겼고 마침내 23라운드 전남전에서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당시 빙가다 감독은 '''"FC 서울은 노장과 신예의 구분이 없다. 준비된 자에게 출전 기회가 주어지고 김동우는 충분히 준비 되었다."''' 라는 말로 젊은 선수를 격려했다. 하지만 감독의 바람과 달리 신인의 한계를 극복하진 못했다. 경기때마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고 그탓에 잔실수가 많았으며 큰 키에 비해 몸싸움이나 제공권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잘생긴 얼굴 덕분에 여성팬은 많이 생겼으나 남성 팬들에겐 나오기만 하면 불안하다고 욕을 먹었다. 그래도 갓 데뷔한 신인이라는 점, 팀내 No.4 센터백 정도였던 위치를 고려하면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빙가다 감독은 나름대로 기회를 주려 노력했고 컵대회 포함 10경기를 출전하며 데뷔 시즌을 마쳤다.
2.1.2. 2011년
서울에겐 다사다난 했던 2011시즌. 최용수 감독 지휘하에서 로테이션 멤버로 기용되었다. 여전히 경험 부족으로 불안한 모습을 노출하긴 했지만 시즌 말미에 가서는 그간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결 나아진 플레이를 선보여 내년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 자신의 큰 키를 어느정도 활용할 줄 알게되었다는 점이 주요했다. 슈퍼매치에서 어이없는 백패스를 선보이며 욕을 먹기도 했지만... 2011시즌 컵대회 포함 총 16경기 출전.
2.1.3. 2012년
2012시즌. 김진규, 아디, 고요한이 주전 자리를 꿰찬 상황에서 경남에서 이적한 센터백 김주영과 마지막 한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게 된다. 김주영이 팀에 적응중이던 초반에는 김동우가 자주 선발 출장했고 중반부터는 김주영이 선발로 자주 출장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을 벌였다. 출장 경기는 김동우 23경기. 김주영 33경기로 김주영이 앞섰지만 충분히 제몫을 하며 팀의 시즌 최소 실점에 기여했다. 장신으로 상대 공중볼을 원천 봉쇄하며 김진규의 부담을 많이 덜어줬다. 88년 동갑내기 김주영과의 중앙수비수 조합을 기대하는 팬들도 많았다.
2.1.4. 2013~2014년
12시즌 종료 후 경찰청에 입대. 13시즌은 2부 리그에서 보내게 되었다. 서울 팬들은 아쉬워하면서도 많이 성장해서 돌아오길 기원했다.
경찰청에서 리그 38경기를 뛰었고 4득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14년 9월 26일 전역했다.
2.1.5. 2015년
15시즌 김주영의 중국 이적과 김진규의 장기 부상으로 기회를 잡아 박용우, 이웅희와 함께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으나 부상으로 잠시 전열에서 이탈하면서 김남춘과 경쟁하게 되었다. FC 서울의 3백에서 중앙은 박용우, 오른쪽은 이웅희, 왼쪽에 김남춘과 김동우의 경쟁구도가 형성되었다.
2.1.6. 2016년
2016년에 이웅희가 상주 상무로 입대하면서 많은 기회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나, 정인환의 영입으로 내부 경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시즌 초에는 오스마르, 김원식과 함께 3백 주전 수비수로 낙점되어 활약했다.
3월 1일 ACL 2라운드 산프레체 히로시마와의 홈 경기에 선발출장해 전반 31분 코너킥 상황에서 신진호가 찬 공에 몸을 갖다대어 방향을 바꿨고 공은 김원식의 발 앞에 떨어져 골로 연결되었다.
5월 25일 ACL 16강 2차전 우라와 레즈전에 선발 출장하여 연장전까지 풀타임 활약을 펼쳤고 승부차기 6대6 상황에 마지막 키커로 나와 골을 성공시켜 서울을 8강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시즌 중반 이후론 무릎 부상이 터지면서 출전기회를 잡지못했다. 15시즌에도 테이핑하고 출전하는 등 오른쪽 무릎부상이 고질병이 되어가는 모양새라 팬들의 걱정이 많다.
2.1.7. 2017년
올해도 시즌 초에는 주전이었다. AFC예선에선 곽태휘와 오스마르를 센터백으로 세웠으나 처참하게 실패해 무너진데다 곽태휘가 부상으로 빠져 공백이 생겼다. 시즌을 앞두고 급히 영입한 김근환도 안좋은 모습을 보이자 김동우가 오스마르의 파트너 자리에 들어갔다. 4라운드 전북전부터 팀이 쓰리백을 사용하자 황현수를 중앙에 두고 좌우 스토퍼로 오스마르와 함께 출전중이다. 곽태휘의 노쇠화가 완연하고 백업인 정인환의 폼도 좋지 않아 유리한 위치이지만 부상이 변수. 내년이면 만 30이 되는 적지 않은 나이고 9월이면 이웅희가 돌아오기 때문에 부상 당하지 않는게 가장 중요했지만 결국 또 다쳤다.
2.1.7.1. 대구 FC 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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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신예 황현수에게 주전 자리를 뺏기며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가 여름 이적 시장에서 대구 FC로 임대 이적했다.
2.1.8. 2018년
2018년 FC 서울의 스페인 전지훈련 인스타그램 사진에 올라오면서 서울로 복귀한 듯 했고, 등번호였던 4번을 다시 달면서 복귀가 확정되었다. 황현수가 2018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 차출이 유력하기 때문에 백업 센터백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완전 이적 없이 그대로 복귀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황새가 경질된 이후에도 줄곧 결장하다가 8월 12일 상주와의 경기에서 2018시즌 첫 출전을 하였다.
시즌 첫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송진형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고
상주의 결정적 찬스를 두 번이나 막아내는 등의 활약을 하다 후반 70분 다리경련으로 교체아웃 되었다.
그 후 서울의 수비진의 엄청난 호러쇼는 김동우의 활약이 얼마나 엄청났는지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2.1.9.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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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4일 FC 서울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방출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팀을 떠날 것이 확정되었다.
2.2. 제주 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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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즌을 앞두고 고향팀인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다. 제주 데뷔전은 3라운드 서울 원정. 데뷔팀을 상대로 새 팀에서의 신고식을 치렀고 골망을 흔들었지만 무효가 되고 말았다.
2.3. 부산 아이파크
2020년 1월 7일, 부산 아이파크로 공식 이적하였다. 신인을 제외한 부산의 첫 오피셜이고, 부산의 가장 큰 취약점 중 하나인 중앙수비수인지라 지난 시즌의 수신야르-김명준 조합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 팬들의 기대를 모으는 영입이다.
시즌 초반에는 강민수-도스톤벡에 밀린 팀의 3순위 센터백. 그 후 10R을 기점으로 강민수와 같이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 중이다.
21라운드 강원전에서 호물로의 코너킥 크로스를 머리로 밀어넣으며 동점골을 기록했다. 20시즌 기록은 19경기 1골.
3. 우승
- FC서울 (2010 ~ 2018)
- K리그 1 : 2010 , 2012 , 2016
- FA컵 : 2015
4. 플레이 스타일
체격은 전형적인 파이터형인데 막상 수비 스타일은 아주 깔끔하다. 대신 파울이 적고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해서 차단하는데 장점을 보이고 실책성 플레이도 적다. 타고난 체격이 있어 경합이 아예 안되는 선수는 아니지만 터프함이 부족해서 수준급 타겟맨과 끈적끈적한 경합이 벌어지면 밀리는 일이 잦다. 김동우보다 조금 작은 체격의 김원균이 강력한 투쟁심과 집중력으로 퍼포먼스가 좋은 선수로 꼽히는 것과 정반대. 또 상당한 유리몸으로 무릎에 고질적인 부상을 달고 있어서 풀타임 출전이 힘들다.
그외 K리그 기준으론 발밑이 부드러워 수비지역에서 공격진영으로 한번에 크게 때려넣는 롱패스를 자주 보여준다. 16시즌 최용수식 쓰리백에선 오스마르와 교대로 오버래핑에 가담하며 상대 진영까지 올라가는 플레이를 자주 보여줬다. 커버 플레이와 스탠딩 태클 능력도 경험이 쌓이면서 어느정도 향상되었다.
5. 여담
박용호의 뒤를 이은 미남 센터백이라 서울 팬들은 김치곤, 박용호처럼 어디 가지 말고 서울에서 성장해주길 바랬으나, 안타깝게도 이런저런 문제로 한번도 붙박이 주전으로 뛰어보지는 못하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