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번호

 




1. 개요
2. 등번호의 의미
3. 축구
3.1. 포지션별 등번호의 역사
3.2. 기타
3.3. 리그별 등번호 규정
4. 야구
7. 등번호 관련 이것저것
8. 등번호 관련 선수 일람
8.1. 팀별 등번호 일람
8.2. 선수별 등번호 일람


1. 개요


배번(背番)
운동선수가 같은 팀 동료와 구분을 위해 다는 번호. 역사적으로는 메이저리그 야구의 뉴욕 양키스가 처음으로 1929년부터 등번호를 달기 시작해 이후 다른 종목으로 확산되었다. 다만 실험적인 의미로 1928년 8월 25일, 아스날 FC VS 웬즈데이(現 셰필드 웬즈데이)와 첼시 FC VS 스완시 타운의 경기에서 아스날 FC첼시 FC가 최초로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나온 적은 있다.
영어로는 유니폼 넘버(uniform number) 또는 저지 넘버(jersey number)라고 한다. 후자가 조금 더 많이 쓰인다. '백넘버'는 재플리시인 バックナンバー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 영어 back number는 '과월호', '구닥다리' 등을 의미한다. 흥미롭게도 バックナンバー는 저지 넘버뿐 아니라 실제 영어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2. 등번호의 의미


기본적으로 등번호는 선수 분류를 위해 저지에 새겨넣는 만큼, 심판이 선수를 지목할때도(ex:반칙 발생시) 번호를 말하거나 숫자 수신호를 쓴다. 여러 선수가 엉키기 쉬운 종목일수록 등짝의 번호를 크게 새기는 데, 이 상황에서 선수를 찾기 쉬우라고 등짝에 번호를 크게 키우는 것이다.
일부 스포츠에서는 기록의 편의를 위해 등번호와 포지션을 연결시킨 것이 이어지고(축구,야구,농구등이 해당), 프로스포츠가 활성화되면서 등번호가 선수의 상징이 되면서 등번호만 보고도 그 선수의 포지션이나 플레이스타일등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단체 구기종목에서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이는 이후 영구결번이나 등번호 계승 등의 방식으로 이어진다.

3. 축구



보편적으로 선수들에게 포지션별로 등번호를 붙이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였다. 이후 점점 자유도가 높아지면서 언젠가부터는 선수들이 직접 자신들의 등번호에 의미를 부여하고 선택하게 되었다.
일부 국가는 정식 국제대회 참가가 아닌 A매치 데이 소집 경기의 경우 등번호를 포지션별로 그냥 준다. 또한 1978년 월드컵 이후 A매치 배번 규정이 추가되어, '''1번은 무조건 골키퍼만 달게 되어있다.'''[1] 월드컵 본선 경기일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1번부터 23번까지의 번호로 정한다.

3.1. 포지션별 등번호의 역사


'''번호'''
'''포지션'''
'''1'''
골키퍼
'''2'''
라이트백
'''3'''
레프트백
'''4, 5, 6'''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7'''
라이트윙
'''8'''
중앙 미드필더
'''9'''
스트라이커
'''10'''
공격형 미드필더
'''11'''
레프트윙
'''12~23'''
백업 선수
세계 축구의 판도를 결정짓는 대회인 월드컵에 등번호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50년 월드컵이었다. 그 이전에는 등번호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챔피언스 리그도 없었던 당시 월드컵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을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당시의 등번호는 WW포메이션이라고 불리는 포메이션, 즉 당시 최고의 대표팀이었던 헝가리 대표팀도 주로 쓰던 '''2-3-2-3'''포메이션을 기반으로 아래쪽에서 위로, 또 오른쪽에서 왼쪽 순서로 배정되었다.
[image]
일단 필드 최후방에 배치된 골키퍼는 1번을 배정받았다. 당시 센터백의 역할을 하던 '풀백'들은 두 명 뿐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라이트 풀백은 2번을 배정받았으며 레프트 풀백은 3번을 배정받았다. 2-'''3'''-2-3의 '''3'''을 차지하는 '하프백', 그러니까 현대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하는 역할을 하던 선수들은 2,3번의 다음 번호인 4, 5, 6번을 받았다.
[image]
나중에는 이 하프백들이 풀백의 위치로 내려와서 센터백이 된다.
[image]
4, 5, 6번 중 한명은 랜덤하게 하프백 자리에 남아 수비형 미드필더가 되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국가대표팀 스쿼드를 살펴보면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의 등번호는 딱히 고정되어 있지 않았고, 4, 5, 6번 중 랜덤하게 하나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레프트 풀백과 라이트 풀백은 좌우로 밀려나 우리가 아는 현대의 사이드백이 되었다. 팀의 공격진이라고 할 수 있는 2-3-'''2-3'''의 '''2-3'''부분은 오른쪽부터 아웃사이드 라이트, 라이트 인사이드 포워드, 센터 포워드, 레프트 인사이드 포워드, 아웃사이드 레프트의 순서로 구성되었는데, 2-3-'''2'''-3의 '''2'''에 해당하는 인사이드 포워드는 하는 역할이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웠지만 이름에서 보이듯이 포메이션을 따질 때는 그냥 공격수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아웃사이드 라이트는 7번, 인사이드 포워드는 8번, 센터 포워드는 9번, 인사이드 포워드는 10번, 아웃사이드 레프트는 11번을 배정받아 그것이 클래식 등번호의 기본 형태가 되었다.
때문에 현대에도 10번을 공격형 미드필더가 달며, 7번은 오른발잡이 윙어[2], 9번은 센터 포워드, 11번은 왼발잡이 윙어, 8번은 중앙 미드필더, 4, 5, 6번은 수비수 혹은 수비형 미드필더, 3번은 레프트백, 2번은 라이트백이 다는 경향이 있다. 물론 현대 와서는 어느정도 희석되었으나 아직도 9, 10번이 갖는 의미는 여전하다. 이유는 A매치 규정상 선발 선수는 1~23번까지 밖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인데, 그래서 보통 주전임을 내세우기 위해 1~23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선호된다. 이게 더 고착화 되면 11번 이하의 번호만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12번부터는 원칙적으로 백업 멤버가 차는 등번호이기 때문이다. 12번을 주로 골키퍼가 다는 이유는 베스트 11 다음의 첫번째 번호라서다.

3.2. 기타


그 외 특이한 경우는 다음과 같다.
펠레의 등번호는 10번으로 유명하다. 펠레는 1958년 월드컵 개최 당시 17세의 유망주 소년일 뿐이었는데, 때문에 그가 대회 득점왕을 차지하고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 주축 공격수가 될 것이라고는 거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발렌티노 마촐라를 닮은 플레이로 인해 유럽에서도 유명했던 주제 아우타피니도 있었고 여러모로 펠레가 낄 자리는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시의 통념상 10번은 다른 선수에게 주어지는 것이 타당해 보였는데, 당시의 '''브라질 축구협회에서 등번호 등록을 쌩뚱맞게 하는 바람에''' 팀의 주전 골키퍼 지우마르는 이례적으로 '''3번'''을 달고 뛰었고(다른 팀 다 멀쩡한 와중에 브라질만 골키퍼가 3번을 달았다.다행히도 후보 골키퍼였던 카스티유는 정상적으로 1번을 받았다.), 8번이나 10번을 받아야 했을 팀의 플레이메이커 지지는 6번을 받고(지지는 전 대회인 1954년 월드컵에서 8번을 달았었다), 라이트 윙이 아닌 레프트 윙어 마리우 자갈루가 7번을 받고 반대로 라이트 윙인 가린샤가 11번을 받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이 터졌다. 당시에는 페렌츠 푸스카스 같은 스타선수나 달 수 있었던, 중심 인사이드 포워드에게 돌아가야 할 10번의 영광이 뜬금없게도 당시 브라질 대표팀의 유망주 스트라이커에 불과했던 '''펠레'''에게 주어진 것이다. 펠레로서는 굉장히 우연한 기회에 받게 된 10번이었는데, 이 10번 셔츠를 입고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10대 선수가 되는 바람에 이후에도 그 번호를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에이스에게 4번을 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 대표팀의 4번은 공격수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한 때 맨유에서는 오언 하그리브스덕분에 사실상 4번이 영구결번 취급받은 적도 있다.
또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레알 마드리드 CF7번 계보가 유명하다. 맨유의 조지 베스트 - 브라이언 롭슨 - 에릭 칸토나 - 데이비드 베컴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로 이어지는 7번의 상징성은 엄청나다.[3] [4] 하다하다 맨유 7번에 대한 항목이 나무위키에 있을 정도. 하지만 베컴 이전까지는 상술한 것처럼 일부 구단에서나 7번에 의미가 있었지 세계적으로는 별로 인지도가 없었는데, 베컴이 이 번호를 달고 월드컵에 나오게 되자 에이스가 7번을 선택하는 게 일반화 되었다. 7이 행운의 숫자이기도 하니 선호될 법도 하다. 레알의 경우 레몽 코파 - 아만시오 - 후아니토 -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 라울 곤잘레스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마리아노 디아스로 이어지는 계보가 유명하다.
한편 아스날 FC의 9번에는 마가 끼었다. 팀의 간판 공격수인 티에리 앙리(14번)와 데니스 베르캄프(10번)[5]가 9번을 달지 않은 탓에 9번을 단 스트라이커들에게 기회가 적었고, 벵거볼로 인해 스트라이커의 비중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9번 자리에 항상 클래식 스트라이커를 박으려 하는데, 문제는 클래식 스트라이커의 경우 벵거볼에서 비중이 낮기 때문에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렵다. 다만 2018~2019년부터는 현 9번이 잘해주면서 지금은 어느 정도 깨졌다.
레알 마드리드 CF의 10번 역시 마가 끼었다. 해당 등번호는 팀 내 공격형 미드필더가 주로 다는데, 팀 컬러 상 공격형 미드필더의 입지가 낮은 탓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아스널과 마찬가지로 현 10번은 저주를 푼 걸 넘어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혀도 손색이 없을만큼 맹활약을 펼치며 2018년에는 발롱도르까지 수상했다.
9번이 스트라이커의 등번호라는 점에는 모두 인정하지만 10번과 11번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10번은 공격수의 번호임과 동시에 공격진 에이스를 나타내는 번호이기에, 공격형 미드필더가 다는 경우도 있다. 등번호 10번의 대표적인 선수는 FC 바르셀로나메시. 은퇴한 선수에서는 AS 로마의 레전드 토티유벤투스 FC의 레전드 델피에로를 들 수 있다. 11번의 경우 레프트 윙어의 번호라 보통 팀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 해당 포지션을 맡는다고 하지만, 간혹 11번을 단 공격수도 종종 존재한다. 독일 국대의 클로제첼시시절 드록바AC 밀란시절의 즐라탄이 대표적. 또한 애초에 윙어가 포워드로 전향하는 사례도 많다.
12번의 경우 일부 클럽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기도 하는데, 팀의 12번째 선수가 팬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마르코 판바스턴의 등번호여서 판바스턴을 존경하는 티에리 앙리가 국가대표 등번호로 달고 다녔다.
13번의 경우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에이스 넘버로 통하는데,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의 막스 몰록을 시작으로, 가장 대표적으로 1970년대에 게르트 뮐러가 대표팀에서 13번을 달고 뛰었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미하엘 발라크2014년 브라질 월드컵2018년 러시아 월드컵토마스 뮐러가 13번을 달고 뛰었다.
14번의 경우 선수와 감독으로써 축구계에 큰 족적을 남긴 요한 크루이프아약스시절 등번호이며 티에리 앙리 또한 커리어 내내 14번을 달았다. 서브 공격수나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주는 등번호.
일본의 경우 국대 간판 공격수가 18번을 선호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유는 애창곡 내지 장기를 뜻하는 일본어인 십팔번(十八番)에서 비롯되었다.
세컨드 골키퍼는 베스트 11 다음의 첫번째 번호인 12번을 주로 달지만 스페인 리그에서는 13번[6]을 프랑스 리그에서는 16번[7]을 다는 경우가 많다. 21, 23번은 주로 서드 골키퍼가 많이 달았으나 21번은 안드레아 피를로다비드 실바의 영향으로 23번은 데이비드 베컴의 영향으로 미드필더도 많이 달고 있다. 여담으로 베컴의 23번은 마이클 조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24번부터는 후보 선수들의 등번호이기 때문에 선호되는 번호는 아니지만, 본인의 취향에 따라 24 이상의 수를 등번호로 쓰는 경우도 있다. 또 자신의 출생 년도를 번호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AC 밀란에서 1980년80번을 사용했던 호나우지뉴가 있다.
축구계의 빅 리그 중 프리미어 리그세리에 A 선수들이 등번호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편이다. 타 리그의 경우 1군 등록 선수에게 25번 이하의 등번호를 부여하는 프리메라 리가처럼 등번호 선택에 제약을 두는 경우가 많지만 세리에 A의 경우 이와 같은 제한이 없다. 상술한 호나우지뉴의 예시 외에도 자신의 생년을 등번호로 삼는 세리에 A 선수들이 상당히 많으며, 등번호로 72번을 고집하는 요십 일리치치, 92번을 달고 있는 엘 샤라위, 45번을 달고 다녔던 마리오 발로텔리도 있다.
또한 분데스리가에서는 자신이 어릴 적부터 달아왔던 번호를 고수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데뷔부터 현재까지 25번을 달고 있는 토마스 뮐러나 27번을 달고 있는 데이비드 알라바 등이 있다.

3.3. 리그별 등번호 규정


축구에서는 등번호에 제약을 두기도 하는데, 그 중에서 라리가가 독보적으로 심하다.
프리미어 리그세리에 A의 경우 등번호 선택이 자유로운 편이다.

3.3.1. 프리미어 리그



예시 : 2019-20 시즌 챔피언 리버풀 FC2020-21 시즌 스쿼드.
등번호 선택은 자유로운 편이나,[8] 주전 선수들의 경우 40번 이내의 번호를 지정해주는 경우가 많다. 프리미어 리그의 경우 리저브 팀과 등번호를 같이 쓰는데 그 이후 번호들은 리저브 팀 선수한테 지정해줘야 하기 때문이다.[9] 이 때문인지 1군으로 승격된 리저브 팀 출신 선수의 경우 66번,[10] 50번 같은 40번을 넘어가는 번호를 사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물론 야야 투레(42번), 마리오 발로텔리(45번)처럼 자기가 선호하는 40번을 넘어가는 번호를 선택한 선수들도 있다.
여담이지만 골키퍼임에도 불구하고 11번을 택하는 선수도 있다.[11]

3.3.2. 라리가



예시 : 2019-20 시즌 챔피언 레알 마드리드 CF의 스쿼드.
라리가는 다른 유럽 리그들과 달리 등번호에 대해 엄격한 통제를 하고 있다. 라리가에서 규정한 등번호 규정 중 주목해야 할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밑의 내용은 라리가가 매 시즌 시작 전에 각 팀에게 전달하는 필수 사항이다.
  • 1군 선수의 등번호는 1번부터 25번까지로 제한한다.
  • 1번, 13번은 골키퍼만 사용할 수 있다.
  • 각 팀은 최소 2명의 골키퍼를 반드시 등록해야 하며 추가로 한 명의 골키퍼를 더 등록할 경우 25번을 사용한다. 단, 2명의 골키퍼만 등록할 경우 25번은 필드 플레이어가 사용함을 허용한다.
  • 라리가에 등록하는 선수 명단 중, 구단의 하위 구단[12] 소속 선수를 등록할 경우 40번 이상의 번호는 사용하지 못하며 25번 이내의 번호를 선수에게 배정할 경우, 해당 선수는 1군에서만 출전할 수 있다.
언뜻 보면 별로 특별한 규정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타 리그랑 비교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과 비교를 해보자. 바이에른은 우선 1군 주전급 선수 중 25번 이상을 달고 있는 선수가 서너명 정도 되며,[13] 1번부터 25번까지 골키퍼가 달고 있는 번호는 1번 하나 뿐이다.[14] 또한 유스 선수들 중 16번, 20번과 같은 번호를 달고 1군과 2군을 자유로이 오가며 출전하는 선수들도 많다.[15] 바이에른을 라리가에 대입시키면 저 규정을 전부 어기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라리가에서는 25명 이상의 선수들을 영입할 수 없으며 골키퍼도 최소 2명 최대 3명으로 제한되므로 선수 부상에 대해서는 다른 리그보다 매우 각별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골키퍼의 경우에는 다른 리그에서는 일상인 4명 이상의 골키퍼 영입이 불가능하기에 구단들 입장에서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에 라리가라리가 2를 포함하여 스페인 왕립 축구 연맹에 등록되어 있는 32개의 프로 구단이 라리가 사무국에 공식적으로 규정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을 했고 사무국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현재의 선수 등록 규정을 변경하지는 않았지만 3개월 이상의 부상을 당한 선수가 있을 경우 예외로 선수를 추가로 등록할 수 있게 했다. 이 과정에서도 선수단 전체 수가 25명을 넘어서는 안되며 필드 선수도 23명을 넘을 수 없다. 쉽게 설명하면 부상 당한 선수를 빼고 다른 선수를 대체 등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수를 추가 등록 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정도 규정 변경도 라리가 팀들에게는 숨통이 트이는 소식이다.



3.3.3. 세리에 A



예시 : 2019-20 시즌 챔피언 유벤투스 FC의 스쿼드.
등번호 선택이 유럽 5대리그 중에서 가장 자유롭다. 프리미어 리그와 달리 리저브 팀과 등번호를 공유하지 않는 점도 있기에 주전들도 쉽게 80번, 99, 77, 72번, 91번, 44번 같은 40번이 넘어가는 번호를 달 정도다.

3.3.4. 리그 1



예시 : 2019-20 시즌 챔피언 파리 생제르맹 FC의 스쿼드.
여기도 라리가보다는 덜하지만 등번호 규정이 꽤나 엄격한 수준이다.
  • 1군 선수의 등번호는 1번부터 40번까지로 제한한다.
  • 1번, 16번, 30번은 골키퍼만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45번을 달던 마리오 발로텔리도 여기서는 9번을 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리저브 팀과 등번호를 공유하지 않는다.
또한 골키퍼도 최대 3명으로 제한되므로 선수 부상에 대해서는 라리가와 함께 다른 리그보다 매우 각별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다른 리그에서는 일상인 4명 이상의 골키퍼 영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구단들 입장에서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3.3.5. 분데스리가



예시 : 2019-20 시즌 챔피언 FC 바이에른 뮌헨의 스쿼드.
등번호는 1군에서만 뛰는 선수들의 경우 1번부터 40번까지로 제한되지만 골키퍼의 등번호를 리그 1처럼 심하게 제한하지는 않는다. 또한 리저브 팀과 등번호를 공유하지 않는다.
규정은 아니지만 분데스리가 출신 선수들은 주로 유스때 달았던 등번호를 계속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토마스 뮐러의 25번, 데이비드 알라바의 27번,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31번, 요주아 키미히의 32번[16]이 대표적인 예시다. 다른 리그의 경우에는 그라니트 자카의 34번,[17] 다비드 실바의 21번 등이 있다.

4. 야구


야구에서 최초로 등번호를 사용한 것은 1929년 뉴욕 양키스. 선수들 구별하기 편하라고 시작했다. 당시에 등번호는 그냥 타순으로 줬다. 베이브 루스가 3번, 루 게릭이 4번인 것은 그들이 그 번호를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그냥 타순이 3,4번이었기 때문.
이후에는 야구기록지 작성의 편의로 인해 포지션 별로 등번호를 부여하여
'''야구의 수비 포지션'''
'''1'''
투수(P)
'''2'''
포수
'''3'''
1루수(1B)
'''4'''
2루수(2B)
'''5'''
3루수(3B)
'''6'''
유격수(SS)
'''7'''
좌익수(LF)
'''8'''
중견수(CF)
'''9'''
우익수(RF)
로 1~9번까지 등번호가 포지션별로 부여되었다. 이를 지키는 대회가 바로 고시엔으로 1회전에서는 포지션 번호와 등번호가 거의 100% 들어맞는다. 2회전부터는 이런저런 이유로 포지션이 바뀌는데 등번호를 뜯을 수는 없으니까 어긋나는 경우가 생긴다.
일본의 경우는 야구에서 등번호를 세습하는 경향이 있는데, 위대한 선배의 기운이나 정신을 물려받는다는 뜻도 있고, 팀에서 에이스의 상징인 특정 번호를 받음으로서 그만큼 팀 내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있어서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장점이 있고, 팬들도 평소 안 보는 팀 선수라도 위의 축구처럼 일단 등번호를 보면 대충 팀내 위상이나 포지션을 짐작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등번호가 선수 개인의 상징이 아닌 팀의 것이고 팀에서 인정받는 선수가 팀에게서 등번호를 받는다는 점에서 팀 퍼스트 정신을 강조하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양키스 등의 팀에서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백넘버 위에 이름을 넣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일본은 등번호로 이를 실천하는 셈.
타자들의 세습번호는 다음과 같다.
  • 1번은 오 사다하루의 번호로 강타자를 상징하는 번호로 자리 잡았다. 원조인 교진에서는 단 6개뿐인 영구결번 중 하나. 또한 1번은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간판 타자에게 세습되는 번호인데, 이쪽의 원조는 미스터 스왈로즈 와카마츠 츠토무. 와카마츠 츠토무가 1번을 달고 전설적인 활약을 한 이후로 야쿠르트의 간판 타자에게 주어지는 번호로, 미스터 스왈로즈라는 별명과 한 셋트이다. 1번을 달면 동시에 미스터 스왈로즈라는 별명이 자동적으로 따라붙게 된다. 아오키 노리치카가 일본시절 1번 미스터 스왈로즈였으며, 2018년 현재 1번은 야마다 테츠토. 또한 위에 쓰인 고시엔 에이스 번호다 보니 투수들도 1번을 선호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투타를 가리지 않고 최고 인기 번호 중 하나.
  • 3번은 나가시마 시게오의 번호[18]로 1번과 마찬가지로 강타자들에게 주어지는 번호.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간판타자 번호로도 유명하다. 이쪽의 오리지널은 기요하라 가즈히로를 시작으로 기요하라 이후 팀내 간판타자에게 주어지는 번호가 되었으며 나카지마 히로유키가 일본시절 3번을 단 바 있다. 거포뿐만 아니라 뛰어난 교타자들도 이 번호를 달기도 한다. 카쿠나카 카츠야 같이.
  • 7번은 리드오프의 번호. 전설의 도루왕 후쿠모토 유타카가 사용한 이래 팀을 상징하는 리드오프들이 다는 번호이다. 한국에선 이종범, 김재박 이래 유격수들의 번호로 주로 인식되는 번호인데, 일본에선 수비 포지션보다는 넘버원 리드오프에게 주는 번호로 굳어져 있다.
  • 8번은 공수겸장에게 주어지는 번호. 야마모토 코지가 현역시절 8번이었으며[19], 원조 미스터 롯데 아리토 미치요 이후 한동안 준 영구결번 취급을 받다가 92년 이후 치바 롯데 마린즈의 세습번호가 되었다.
  • 9번은 강타자 유망주에게 주어지는 번호이다. 야나기타 유키, 타카야마 슌[20], 후쿠우라 카즈야 등이 이 번호를 단다.
  • 27번은 보통 포수에게 주어지는 번호이다. V9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주전 포수이던 모리 마사아키와 그의 제자이던 세이부 라이온즈 왕조의 안방마님 이토 츠토무, 오치아이 감독[21] 시절 주니치 드래곤즈의 부동의 주전포수 다니시게 모토노부 등이 27번을 달며 유행하게 되었다. 70년대의 오야 아키히코나 90년대의 후루타 아츠야 등을 거치며 아예 27번을 최고의 포수에게 물려주는 준영구결번으로 지정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도 있다.
투수들의 세습 번호는 다음과 같다.
  • 11번이 에이스 번호가 된 이유는 고시엔 에이스 번호인 1번이 프로에서는 타자들 번호로 주로 쓰이고 워낙 인기 번호다 보니 아쉬운 대로 11번을 다는 투수가 많아졌고 특히 무라야마 미노루의 전설적인 활약으로 11번도 투수 에이스 번호로 굳어졌다.[22] 이후 11번을 단 투수는 노모 히데오, 카와카미 켄신, 다르빗슈 유, 오오타니 쇼헤이 등. 특히 닛폰햄의 슈퍼 에이스였던 다르빗슈의 활약 이후 구단에서 오오타니에게 번호를 물려준 덕분에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투수 넘버원 에이스 번호로 굳어지는 모양새. 1과 11을 모두 달았는데 등번호 값을 못한 롯데의 오오미네 유타 같은 안타까운 케이스도 있는데, 고교 시절에는 역대급 포텐이었기에 처음에는 1번을 달았고, 몇 년 후 키요타 이쿠히로가 지명 순위가 낮다는 이유로 입단을 거부하자 그를 설득한답시고 1번을 키요타한테 주는 바람에 등번호를 바꿔야 했는데, 이때 바꾼 번호가 11번이다. 구단에서의 기대가 엄청 컸다는 것. 그러나 등번호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서 결국 2017년 시즌부터 30번으로 등번호를 교체한다.[23]
  • 19번의 경우 보통 18번이 팀 내 에이스가 이미 달고 있는 번호이다 보니 젊은 에이스들이 그 다음가는 선수라는 뜻으로 1이 더 많은 19번을 다는 경우가 많았고 아무래도 등번호 지급 기준이 완전 실력제는 아니고 연공서열이나 과거의 활약도 어느 정도 감안하다 보니 고령이라 기량이 떨어진 18번들보다 젊은 19번 투수들이 성적 자체는 더 좋은 경우도 왕왕 있었고, 그러니 19번도 에이스 넘버로서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케이스는 교진 시절 90년대의 에이스 구와타가 18번을 달고 있었기에 19번을 달고 활약한 젊은 시절의 우에하라 코지. 현재 착용자는 교진의 스가노 도모유키, 한신의 후지나미 신타로, 오릭스의 가네코 치히로 등. 18번보다는 젊은 선수들이 다는 편이며 이후 기존 18번이 은퇴하거나 기량이 떨어졌음을 인정하고 배번을 공식적으로 물려준다던지 하는 식으로 18번으로 갈아타는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젊은 에이스들의 번호. 물론 팀마다 다른게 치바 롯데 마린즈는 에이스 노릇을 한 시즌은 1년뿐인 카라카와 유키가 데뷔 첫해부터 쭉 19번이다.[24]
  • 20번은 주니치와 히로시마의 에이스 넘버. 포크볼의 신 스기시타 시게루 이래 주니치의 에이스들이 물려받는 번호로 선동열이 주니치 시절 20번을 달았다. 히로시마는 키타벳푸 마나부 이후 에이스들이 물려받는 번호이다. 20번 이외엔 찬밥 취급인 주니치와는 달리 히로시마에선 18번도 인기있는 번호.
  • 47번의 경우 좌완 에이스가 다는 번호다. 한국에서도 47번은 좌완 이상훈의 영향으로 좌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걸 생각하면 기묘한 우연이다. 47번이니 글래빈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지만 일본의 좌완 47번 계보의 원조는 쿠도 키미야스. 물론 글래빈과 동시대 선수인 만큼 글래빈의 영향도 좀 있고, 여튼 좌완 에이스들이 물려받는 번호.
이 외에도 수많은 세습번호가 있어, 거의 구단별, 포지션별로 하나씩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한국야구에서 선수들이 선호한다는 포지션 넘버도 사실 원조를 따져보면 일본에서 건너온 번호인 경우가 많다.
세습번호라고 부르기엔 애매하지만 42번은 외국인 에이스 번호 취급. 해당 번호가 재키 로빈슨의 영구결번이니 미국에서 달 수 없는 번호라 외인들이 선호하는 번호이고, 일본어 고로아와세로 42가 죽음을 의미하다 보니 일본인 선수들이 기피 하는 번호이다. 일본 선수들이 기피하고 외인들이 선호하는 번호이다 보니 자연스레 가장 잘하는 외인 에이스가 차지하는 번호가 되었다.
00을 제외한 0X번이나 세 자릿수 번호의 경우는 육성선수거나 불펜 포수 등의 스태프이다. 물론 아주 가끔 예외도 있지만[25] 거의 그렇다. 역대 00번을 등번호로 쓴 선수 중 가장 유명한 선수는 김경기 한 명 뿐이다. 프로 입단 당시 37번을 받았지만 마음을 비운다는 뜻으로 00번을 택했다. 다른 지역의 팬들에게는 무게감이 덜할 수 있어도 인천광역시에서는 00번이 차지하는 존재감이 상당하다. 다만 김경기가 SK 구단을 떠난 후 임석진,정혁진을 거쳐 현재는 채태인이 00번을 달고 있다. 00번은 보통 백업급 타자가 많이 쓴다. 물론 예외로 에릭 해커 같은 경우도 있다![26]
KBO리그에서는 0X번으로는 등록할 수 없다. KBO는 0X번(앞자리 0으로 시작하는 배번)은 사용할 수 없다고하며 에디슨 러셀의 05번 등록을 반려했다.기사 기본적으로 등번호는 0번부터 100번까지 등록할수 있는데. 00번이 가능한건 00번이 100번으로 인식되기때문.
포지션 번호로 대표되는 1~9번 착용을 금지한 구단이 있다. 바로 뉴욕 양키즈로 불운이나 귀신 들린 건 아니고, 죄다 역사상 굵직한 족적을 남긴 선수들이 붙였던 영구결번이라 사용을 못하게 된 것.

5. 미식축구


미식축구의 경우 NFL과 대학, 아마추어의 제한이 각각 다르며, 포지션별로 달 수 있는 등번호는 지정되어 있다. 공통적으로, 선수들이 매 스냅마다 뒤엉키는 미식축구 유니폼의 등번호는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도 크고 아름답게 박아놨다. 심판이나 경기장 상단에서 상황을 지휘하는 코치들이 선수를 빨리 식별하기 위해 등번호를 큼지막하게 박은 것
NFL은 1952년부터 유니폼 등번호 규정이 생겨나고 몇 번의 수정을 거쳐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NFL에서는 선수 등록 시 등번호와 함께 포지션도 등록하게 되어 있으며, 등번호도 그에 따라 다음과 같은 규칙을 통해 강제된다.
''''''
'''포지션'''
'''배정된 등번호'''
공격팀
쿼터백
1~19
러닝백
20~49
와이드 리시버
10~19, 80~89
타이트엔드
40~49, 80~89
공격라인맨
50~79
수비팀
수비라인맨
50~79, 90~99
라인배커
40~59, 90~99
코너백, 세이프티
20~49
스페셜팀
키커, 펀터
1~19
대학 및 아마추어의 경우에는
'''포지션'''
'''등번호'''
Backs
1–49
Snapper
50–59
Guard
60–69
Tackle
70–79
End
80–99
을 추천할 뿐 '''번호규정 강제가 되어있는 공격 라인맨만 제외하면 제한이 없다.''' NCAA 룰도 라인맨 전체 = 50~79번으로 완화된 상태다. 무조건 50번대는 센터고 60번대는 가드고 70번대는 태클인 것이 아니라는 것. 다만 쿼터백의 등번호는 불문율에 가깝게 되어있어서 웬만하면 1~19번 안의 번호를 단다.[27] 또한 공격팀과 수비팀이 갈리기 때문에 같은 등번호의 선수가 2명 있더라도 둘이 동시에 나오지만 않으면 상관이 없다.
현대 NFL에서는 포지션 파괴가 상당 부분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일부 포지션의 경우 다른 번호의 선수가 종종 번호 밖으로 벗어나긴 하지만 포지션 식별 문제 때문에 최대한 지켜지는 것이 등번호 규정.
포지션 별로 등번호가 정해져 있고, 또 그 안에서도 인기 있는 번호가 있다보니[28] 등번호만 보더라도 어느정도는 이 선수가 주전 혹은 촉망받는 선수라는걸 쉽게 알 수 있고, 뒤집어 말하면 보기 힘든 번호[29]의 선수가 출전할 경우 상대팀이 그 선수를 땜빵선수로 인식해서 집요하게 공략하는것도 하나의 작전으로 행해진다. 일단 이상한 번호 단 선수가 들어오면 그쪽으로 패스 던져본다는 애런 로저스와 8번 연속으로 번호 안좋은 코너백을 노렸던 페이튼 매닝의 일화

6. 농구


대부분 리그에서는 0과 00을 포함해 두 자리수 이내로 자유롭지만 국제 대회에서는 수신호와 착각할 수 있으므로 1~3번이 금지되고, 4번부터 착용이 가능하다. 마지막 번호는 15번.

7. 등번호 관련 이것저것


대개 구기 종목에서는 3자릿수의 등번호를 피하는 것이 불문율로 통하나 3자릿수의 등번호를 단 선수가 없었던 건 아니다. 과거 실업야구 시절 한국화장품 감독 겸 투수 김호중이 '''207번'''을 달았다.당시 기사[30] 또한 현대 일본야구의 경우[31], 선수단 규모도 커지고 불펜포수나 배팅볼투수처럼 선수라기보단 팀 보조원에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번호를 부여해 팀 선수단 목록을 보면 선수나 코치임에도 100번대나 200번대의 번호를 달고 있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대개 코치나 2군 선수들이 세자릿수 번호를 달고 있다. 한국에서는 2012년 삼성 라이온즈가 프로야구단 최초로 세자릿수 번호를 단 선수가 나왔다[32]. 또한 같은 해 10월 4일에는 삼성의 김영훈이 세자릿수 번호를 달고 1군 경기에 출장한 첫 선수가 되었다. 2021년 현재는 한국프로야구에서도 신고선수나 불펜포수, 2군 코칭스탭 등 세자릿수 등번호를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자연수(0, 00번 포함[33])로 등번호를 만드는 게 일반적이며 특이한 예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칠레 출신의 축구선수인 이반 사모라노가 달고 있는 '''1+8번'''. 자신이 뛰고 있던 인테르에 호나우두가 영입되어 오면서 원래 사모라노의 등번호인 9번을 구단에서 호나우두에게 주었는데, 그 번호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고. 등번호 9번은 축구계에선 스트라이커의 대표적인 등번호며, 그 자체로 팀의 주포라는 의미가 되기에 9번에 애착을 보인 것이다. 물론 공식적인 등번호는 어디까지나 18번이며 1과 8 사이에 임의로 + 표시를 넣은 것 뿐이다.
메이저리그NBA같은 미국 프로스포츠쪽에서는 원래 어떤 선수가 달고 있는 등번호를 다른 팀에서 이적한 선수가 원해서 번호를 양보해 줄 경우 양보받은 쪽에서 롤렉스 시계 등 고가의 선물로 보답하는 관습이 있다.[34]
별도로 매우 대단한 업적을 기리는 선수에게는 영구결번이라고 하여, 다른 사람이 달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8. 등번호 관련 선수 일람



8.1. 팀별 등번호 일람



8.2. 선수별 등번호 일람



[1] 물론 다른 등번호를 가진 골키퍼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골키퍼를 제외한 나머지 포지션을 가진 선수들은 A매치에서 절대 1번을 달 수 없다.[2]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오른쪽 윙어는 십중팔구가 오른발잡이였다.[3] 과거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이 맨유에서 뛰던 시절 팀 훈련 중에 7번이 박힌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진이 찍혀 맨유 팬들은 물론 언론까지 발칵 뒤집어졌던 해프닝이 있었다. BBC에서는 즉각 ''맨유 최고의 7번은 누구인가?''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했고, 조지 베스트가 1위를 차지했다.[4] 그나마 앞의 둘에겐 취소선은 좀 가혹할 수도 있는데 오웬은 출전시간 대비 골 수가 상당히 높은 슈퍼서브로서 상당히 활약한 편이고, 발렌시아는 하필 7번을 달았던 그 시즌이 폭망해서 그렇지 10년 가까이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맨유를 위해 헌신한 선수이다. 물론 뒤의 셋은......[5] 그나마 10번은 스트라이커의 등번호이기도 하기 때문에 베르캄프는 상대적으로 책임(?)이 적다. [6]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골키퍼의 등번호를 1번, 13번, 25번으로 규정하고 있다.[7] 프랑스 리그들은 골키퍼의 등번호를 1번, 16번, 30번으로 규정하고 있다.[8] 헤나투 산시스스완지 시티 AFC에서 뛰던 시절, 85번을 달거라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세리에 A보다는 엄격한 편이다.[9] 물론 2~30번대 번호를 단 리저브 팀 선수도 있다.[10] 심지어 이쪽은 주전에다가 챔스 우승의 주역이다! 기존에 있던 2번은 방출, 6번은 이적했음에도 딱히 바꿀 생각이 없어보인다. 그리고 몇달 후 새로운 6번소속팀에 들어온다.[11] 본래 1번은 유스 시절부터 울브스에서 뛰어온 원 클럽 맨 골키퍼 칼 이케메가 쓰는 번호였는데, 2017년 여름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피치를 떠나 1년간 치료를 받았고, 2018년 여름 완치에는 성공했으나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때문에 1번이 공번이 되었음에도 파트리시우는 이케메를 기리기 위해 1번을 받는 것을 포기하고 11번을 달기로 했다.[12] 유소년 팀[13] 27번 데이비드 알라바, 29번 킹슬리 코망 등이다.[14] 백업 골키퍼 알렉산더 뉘벨은 35번이다. 참고로 25번은 공격수 토마스 뮐러다.[15] 정우영(1999)도 이에 해당되었다.[16] 2020-21 시즌부터 기존에 있던 6번다른 팀으로 이적가면서 6번을 달게 되었다.[17] 분데스리가에서 프리미어 리그로 이적했다.[18] 현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영구결번이다.[19] 현재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영구결번이다.[20] 2015년 한신 타이거스 1라운드 지명자.[21] 주전 포수의 등번호는 모리의 27번 아니면 타부치 코이치의 22번을 달아야 한다는 지론 비슷한게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요코하마에서 8번, 오치아이 감독 취임 이전 주니치에서 7번을 달고 뛰던 다니시게가 오치아이 감독 부임 이후 27번을 달게 되었다.[22] 현재 한신 타이거스의 영구결번이다.[23] 참고로 롯데는 오미네의 뒤를 이어서 11번을 단 사사키 치하야도 대졸 최대어라는 기대치에도 불구하고 사이버투수화가 되면서 잔혹사가 이어지고 있다.[24] 참고로 롯데의 18번은 후타키 코타. 후타키는 17년에 1선발을 했지만 그때는 64번을 달고 있었고 정작 등번호 교체 후에는 4~6선발을 오가고 있다.[25] 이것은 일본도 비슷해서 00을 단 선수는 거의 백업이다. 토리타니 타카시가 롯데 이적 이후 00을 쓰지만 롯데에서는 다 늙어서 온 거라 백업으로만 출장중인 상황. 물론 조시 레이빈처럼 외국인 선수가 다는 케이스도 있지만 이 선수는 성적만 놓고보면 육성선수 수준(...)이었으니.[26] 에릭 해커의 00번은 넥센 시절 한정으로, 히어로즈의 00번은 2020시즌 잠깐 테일러 모터가 단 적 있었다. [27] 20번대 이후를 달았던 마지막 쿼터백으로 보스턴 칼리지의 덕 플루티가 있다. 22번을 달았다.[28] 와이드 리시버는 10번대, 라인배커는 52번이나 54번, 타이트엔드는 87번 등....[29] 예를 들어 40번대 코너백이나 라인배커[30] 하지만 그 해 등판한 9경기에서 전패하고 다시 두자릿수 등번호로 바꿨다고.[31]일본만 예로 들었냐면, 미국의 경우엔 일본이나 한국처럼 한 구단 내에 단순히 1, 2군이 나뉜게 아니라 한 구단 안에 메이저, 트리플A, 더블A등의 등급별로 별개의 팀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고, 한국의 경우엔 아직 일본야구만큼 선수단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32] 물론 그 전에도 세자릿수 번호를 단 선수들이 있었지만 대다수 군입대를 앞두고 임시로 단 것이었다. 세자릿수 번호를 달고 경기에 출장한 것은 삼성이 최초.[33] 프로야구, 농구에서만 달 수 있다.[34] 이 경우에는 양보를 부탁하는 선수가 롤렉스 시계 정도는 부담없이 선물해 줄 수 있는 고액연봉을 받는 스타선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애초에 스타선수가 아니면 함부로 부탁하기도 힘들고 그냥 비어있는 번호로 피하는 경우가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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