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축구인)

 

<color=#373a3c> '''아디의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2007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이근호
FW
까보레
MF
따바레즈
MF
이관우
MF
김기동
MF
김두현
DF
'''아디'''
DF
마토
DF
황재원
DF
장학영
GK
김병지

'''2008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이근호
FW
에두
MF
김형범
MF
조원희
MF
기성용
MF
이청용
DF
'''아디'''
DF
마토
DF
박동혁
DF
최효진
GK
이운재

'''2010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김은중
FW
데얀
MF
몰리나
MF
윤빛가람
MF
구자철
MF
에닝요
DF
홍정호
DF
'''아디'''
DF
사샤
DF
최효진
GK
김용대

'''201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이동국
FW
데얀
MF
몰리나
MF
하대성
MF
황진성
MF
이근호
DF
'''아디'''
DF
정인환
DF
곽태휘
DF
김창수
GK
김용대

'''2013 K리그 클래식 베스트 일레븐 '''
FW
김신욱
FW
데얀
MF
고무열
MF
이명주
MF
하대성
MF
레오나르도
DF
'''아디'''
DF
김치곤
DF
김원일
DF
이용
GK
김승규


''' 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
''' 이름 '''
'''아지우송 두스산투스'''
'''Adilson dos Santos'''
'''출생'''
1976년 5월 12일 (48세)
브라질 아라카주
'''국적'''
[image] 브라질
'''포지션'''
왼쪽 풀백, 센터백,
측면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
183cm, 81kg
'''프로 입단'''
1998년 아푸카라나 아틀레치쿠 클럽
'''소속팀'''
아푸카라나 아틀레치쿠 클럽 (1997)
파라나 클럽 (1997~1998)
츠르베나 즈베즈다 (1998~1999)
레알 베티스 (2000)
세비야 FC (2000)
다롄 스더 (2000) (임대)
다롄 스더 (2001~2005)
'''FC 서울''' '''(2006~2013)'''
'''지도자'''
'''FC 서울''' '''(2014~2019)''' (코치)
'''별명'''
이지스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기타

[clearfix]

1. 개요


브라질 태생의 前 축구선수. K리그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통산 305경기를 서울에서 뛰었다.

2. 선수 경력


브라질 파라나에서 성장해 프로에 데뷔했으며, 세르비아 리그의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거쳐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레알 베티스세비야 FC에서도 몸담았으나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2000년 중국 슈퍼리그 다롄 스더로 임대되었다. 이후 다롄 스더로 완전 이적하여 활약하다가 2006년 이장수 감독의 눈에 들어 FC 서울로 이적하게 되었다.
[image]
'''이제 다신 볼 수 없는 그의 화려한 현역 시절'''
이후 FC 서울 수비진의 중심으로 종횡무진 활약했다. 서울 팬들은 이장수가 남긴 최고의 작품으로 아디를 꼽는다. 이장수 감독은 훗날 잡지 인터뷰에서 아디를 중국으로 데려갈 기회가 있었지만 팀을 떠나는 마당에 선수까지 빼가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 아디를 잔류시켰다고 밝혔다.
K리그에서 뛰는 동안 우승 2회, 준우승 1회를 경험했다. 그밖에 2007, 2009, 2012년 리그 최소 실점에 크게 기여했으며 2007, 2008, 2010, 2012, 2013년 총 5번에 걸쳐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010 시즌 10월 9일 경남전에서 김병지와 공중볼을 다투다가 광대뼈가 함몰되는 부상을 입고 장기간 결장했다. 이때만 해도 시즌중 복귀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느나, 서울이 리그 상위를 지키며 사실상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하자 컨디션을 끌어올려 12월 1일 챔피언 결정전에 복귀했다. 많은 이들이 부상 후유증과 50일 넘는 공백으로 인한 실전 감각 상실을 우려했으나 다행히 큰 실수는 없었으며, 후반 근육경련으로 교체되었다. 12월 5일 홈에서 열린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 코너킥 상황에서 높이 뛰어올라 헤딩슛으로 결승골을 넣으며 FC서울에 4번째 우승을 선사했다.
가족 때문에 2010 시즌 종료 후 브라질로 돌아갈 것이란 루머가 있었으나 재계약에 성공했다. 가족들도 한국말을 익히며 잘 지낸다고. 팬들은 서울의 전설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그가 은퇴식까지 치르며 명예롭게 떠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2011 시즌에는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에도 여전한 실력을 과시하며 리그 전경기에 출장했고, 2012 시즌에도 여전한 모습으로 팀의 우승과 베스트 11 선정이라는 2마리 토끼를 잡았다.
현역 마지막 시즌인 2013년에도 리그 33경기, FA컵 1경기 AFC 챔피언스리그 11경기, 총 45경기에 출장해 4골 2도움이라는 골넣는 수비수로서의 엄청난 스탯을 쌓았다.
특히 2013년 8월 3일 홈에서 열린 슈퍼매치에서는 헤딩 선제골로 승리를 이끌었다.
FC서울에서의 총 기록은 305경기 20골 12도움 (리그, FA컵, ACL 모두 포함)

3. 지도자 경력


[image]
'''눈물의 은퇴식에서'''[1]
2014년 1월 28일 소속팀 FC 서울이 제안한 코치직을 수락하면서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었다.[2] 팬들은 아쉬워하면서도 그의 새 출발을 축복하고 레전드에게 합당한 예우를 한 구단을 칭찬하고 있다. 또한 한 시대를 풍미한 명선수가 코치로서 리그에 그대로 남아 후학을 지도한다는 점은 장기적으로 리그를 살찌우는 길이기도 한만큼 차후 행보를 주목할 가치가 있다.
17시즌 중에 감독 황선홍과의 불화때문에 나간다는 썰이 떠돌았는데 시즌 종료 후 트위터에서 팬들의 질문에 대답해주는 과정에서 AFC B급, A급 지도자 라이센스가 없이 C급 라이센스(KFA 3급 라이센스)로 코치를 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원칙적으로 프로팀 지도는 A급 라이센스(KFA 1급)를 소지해야 한다. C급 라이센스로는 초등학생 및 유소년 외에는 지도할 수 없다. K리그에서 100경기 출전한 선수 출신은 C급 강습회 청강만 하면 바로 B급 라이센스 취득자격이 주어지며 B급 취득후 2년 경력(상위5% 이내는 1년)을 쌓으면 A급 응시자격이 주어지는데 코치로 4년을 보낸 사람이 아직도 C급 이라는건....
결국 팀에서 자격증 따오라고 스카우터 겸해서 브라질로 보냈는데...
2020년 6월까지 아디가 브라질로 간 이후의 그의 소속이 불투명하다. 그러다 포르투갈 전지훈련이 펼쳐지던 2020년 1월, 부상으로 인해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못한 고요한의 인스타 글(삭제됨)과 구단 직원의 인스타에서 오래간만에 한국을 방문한 것이 확인됐다. 팬들은 아디가 브라질 외국인 선수를 물어온 것이 아닌가 하면서 기대했다. 얼마 안가서 아드리아노의 포르투갈 캠프 참여 사실이 밝혀졌다.
2020년 6월 10일, 사실 아디는 2019년에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난 것으로 밝혀졌다. # 기사에 따르면, 아디와의 계약은 2019년에 만료되었으며, 계약 만료 시점에서 아디의 지도자 자격증 취득이 여의치 않았고, 마냥 기다려줄 수 없는 상황에서 아디 본인도 현지에서 여러 가지 생각하는 것들이 있었다고 한다. 팬들의 반응은 아디와의 계약이 만료되었음을 발표하지 않아 팬들의 의문을 키운 것에 대해서는 서울 보드진의 잘못이 크다고 말하지만, 아디의 계약이 연장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아디가 계약이 진행된 5년동안 C급 라이선스에 머물었다는 점에서 아디와의 이별은 당연한 것이었다는 반응이었다.[3]
그런데 아디가 팀을 떠난 이유가 최용수 감독과의 불화일 수 있다는 추측이 돌고 있다. 아디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단 댓글[원문]에 따르면, 자신은 사실 팀에 계속 남는데 별 문제가 없었지만, 최용수 감독은 자신에겐 좋은 사람이 아니고, 좋은 지도자가 아니며, 자신이 신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으며 최용수 감독이 어떻게 서울에 남아있는지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물론 이 해석도 아디의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인해 정확하게 해석되진 않았기에, 이는 추측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디가 남긴 다른 댓글엔 가족들과 고민한 끝에 오랜 해외생활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최용수와의 불화만이 아디가 팀을 떠난 이유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4. 플레이 스타일


수준급 외국인 선수조차 뚫기 어려워하는 맨마킹과 K리그 최고 수준의 태클, 왕성한 활동량과 좋은 내구성, 브라질리언 특유의 뛰어난 스피드와 유연성을 살린 공격력, 측면 수비수, 중앙 수비수, 측면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가 모두 가능한 멀티 플레이 능력의 소유자로 공수겸장의 만능 외국인 선수이다.
선수단 태반이 부상으로 이탈했던 2007 시즌 멀티 플레이 능력을 살려 세뇰 귀네슈 감독의 전술폭을 넓혀줬으며, 2008년 준플레이오프에선 당시 물올랐던 울산의 측면 공격을 완벽히 분쇄하며 서울을 결승에 올려놓았다. 2010 시즌에는 보직을 옮겨 중앙 미드필더와 센터백으로 출전했으며 공수 양면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5. 기타


  • FC 서울의 팬이 아니더라도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K리그 팬들은 아무도 없으며 팬층도 두텁다. 그래서 "팀이 FC 서울이라서 싫지만 아디는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샤다라빠 김근석성남 FC의 골수 팬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한 아디빠로 웹툰에서 몇 번이나 인증하기도 했다.
  • FC 서울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2009년 7월 벌이진 맨유와 경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날 아디는 중앙 수비로 나와 '패스의 줄기를 아주 끊어버리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는데[4] 서울이 당한 실점과 위기상황은 모두 아디가 실수한 상황에서 벌어졌다.
  • 외국인 선수지만 팀에 대한 애착은 누구보다 강해서 2006년 플레이오프에서 서울이 성남에게 패하여 결승 진출이 좌절되자 눈물을 흘렸다. 팬들이 이런 선수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 서울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팀들도 있었지만 서울만큼 마음 편하게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생활환경을 제공해주는 구단이 없다고 생각해 남았고 서울에서 은퇴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팀내 인기는 지난 2009년 판매된 일러스트 티셔츠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티셔츠가 제작된 것은 이청용, 기성용, 김치우, 아디 네 선수 뿐이었다.
  • 장수한 외국인 선수들이 으래 그렇듯이 한국 음식을 즐기며 한국 문화에도 능숙하다. 동료들과의 사이도 굉장히 좋은데 데얀은 몬테네그로와 한국이 월드컵에서 만나면 가장 고민할 사람, 브라질을 만나면 누구를 위해 삼바를 춰야할지 모를 사람은 아디라는 우스갯 소리를 하기도 했다. 다만 한국어는 코치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중국어는 꽤 하는데 아디는 이에 대해서 중국에서는 구단이 아무 것도 해 주는 게 없어서 진짜 살려고 중국어를 배웠고, 한국에서는 통역이 잘 해줘서 배우지 않았다고 한다.
  • 2012년 5월 6일, 르꼬끄스포르티브 직원을 사칭한 네티즌이 한 커뮤니티에서 인종차별 발언을 남겼다. 격분한 축구팬들이 재빨리 이 사건을 전파하고, 마침내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마침 사건 발생일이 공휴일이었기 때문에 사태 파악이 늦었던 르꼬끄측은 조사결과 자사 직원이 아닌 사칭이며, 법적 대응을 준비중이라고. 여담으로 저 커뮤니티는 가입제한이 1971년 이전 출생이라고.
  • 아디의 가족들도 한국 생활에 익숙해졌는데 자녀들은(아들 니콜라스, 딸 이사도라) 포르투갈어와 한국어가 모두 능숙해 중간에서 통역도 해주고 선수들과 친근하게 지낸다고 한다. 고명진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아디 아들 니콜라스가 혼자서 벨 누르며 수시로 찾아와서 얘기도 하고 밥도 얻어먹고 놀다 가곤 했다고.
  • 청춘 FC 가 FC 서울 올드스타와 경기할 때 잠깐 현역 복귀를 했었고 이 경기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본방이 방영될 때 네이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었다.
  • 2015년 팀에 합류해 2016년까지 서울의 쾌진격을 이끌고 있는 브라질 출신 공격수 아드리아노가 아디 덕분에 팀에 쉽게 정착할 수 있었고 심리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밝혀서[5] FC 서울의 팬들에게 역시 아디라며 찬양을 받았다.
  • 경기장에서 가장 높은 관람석 주변에서 분석을 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된다, 혹시 사진이나 싸인을 바라는 팬은 참고할것.
  • 팬들에게 싸인을 해줄때 한글로 아디라고 써준다.

[1] 가족들도 함께 했다. 왼쪽부터 아들 니콜라스, 딸 이사도라, 부인.[2] K리그에서 뛴 외국인 선수가 은퇴 후 바로 코치가 된 케이스로는 발레리 사리체프(신의손)에 이어 2번째다.[3] 만일 이 자격증 문제가 진짜라면 최용수라도 사이가 틀어질수밖에 없는데 최용수는 2015년 프로구단 감독 자격증 (A급)이 없으면 감독을 할수 없다는 연맹의 결정이 떨어지고 여름 휴식기 들어가자 바로 황선홍과 함께 독일로 따러 갈정도로 순식간에 일을 해놓는데 브라질로가서 2년가까이 안따고 있었다면 어떤 지도자도 빡치는게 이상하지 않다.[원문] For me not problem for help team fcseoul so this manager Choi I can’t not good people for me and not good coach he think God but is nothing I don’t believe how him stay in fcseoul?[4] 맨유의 마케다를 가지고 노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5] 사실 외국인 선수들 입장에서 타지에서 만난 고향 사람들은 정말로 반갑고 의지가 되는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일단 말이 잘 통한다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점 하나로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일례로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던 홍정호가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같은 리그에서 뛰었던 박주호, 구자철, 지동원, 김진수, 손흥민 등과 뭉쳐서 밥도 먹고 여기저기 놀러다니면서 스트레스도 해소했다고 하니 남의 나라 일은 아닌 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