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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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善佑
1915년 6월 8일 ~ 1987년 6월 1일[1]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자는 우보(祐補)이며, 호는 오산(午山)이다.[1] 본관은 광산 김씨[2]다.
1915년 충청북도 보은군 내북면에서 김시중(金時中)의 아들이자 김용직(金容直)의 손자로 태어났다. 보은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중앙여객자동차회사 사장을 지냈다.
8.15 광복 이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보은군 부지부장, 대동청년단 중앙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청년당 후보로 충청북도 보은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한국민당 최면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최면수 대신 자유당 공천을 받아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 중앙당 조사부 차장을 지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박기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유민주당에 입당하였다가 탈당하였다. 해당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충청북도 보은군-옥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육인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민중당, 신한당, 신민당에 몸담았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충청북도 보은군-옥천군-영동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육인수 후보와 친야 무소속 이용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7년 죽었다. 묘는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용암리에 있다.[3]
후손으로는 아들 김성순(金性淳), 김상순(金相淳), 김석순(金錫淳), 김재순(金載淳), 김일순(金一淳) 손자 김동재(金東宰), 김동익(金東益), 김동우(金東祐), 김동표(金東杓), 김대현(金大鉉) 증손자 김주환(金周煥), 김윤한(金侖煥), 김지환(金智煥)이 있다.[4]

[1] 안타깝게도 생일 1주일전에 생을 떠났다...[1] 다음은 출처 사진이다. [image][2] 양간공파-판군기감사공파 40세다. 동일 연령대의 광산 김씨 인물 중에서 항렬이 매우 낮다. '''45년 연하'''의 전 시장 김성제가 '''7대조''' 뻘이다.[3] 다음은 출처 사진이다. [image][4] 다음은 이하 출처 사진들이다. [image][image][image][image][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