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피부
1. 개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2011년 영화. 제 64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
2. 예고편
3. 시놉시스
- 출처: 네이버 영화
4. 등장인물
- 안토니오 반데라스 - 로버트 박사 역
- 엘레나 아나야 - 베라 역
- 마리사 파레데스 - 마릴리아 역
- 블랑카 수아레스 - 놀마 역
- 바바라 레니 - 크리스티나 역
- 페르난도 카요 - 메디코 역
- 로베르토 알라모 - 제카 역
- 에두아르드 페르난데즈 - 풀헨시오 역
5. 줄거리
5.1. 반전 요소
로베르트와 베라가 처음으로 동침한 날 밤 두 사람이 각각 꾸는 꿈에서 둘의 과거가 밝혀진다.
'''로베르트의 과거:'''
마릴리아의 아들 체카[1] 는 과거 로베르트의 아내 갈과 바람이 나서 야반도주했는데, 그 와중 교통사고를 당한다. 체카는 도망치고 로베르트에게 구조된 갈은 전신에 화상을 입은 끔찍한 몰골이 된다. 로베르트는 갈이 입을 충격을 염려해 거울 하나 없는 어두운 방에 살게 하는데, 어느날 갈과 로베르트의 딸 노르마가 밖에서 부르는 노랫소리에 딸을 보려고 창가로 다가간 갈은 유리창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투신 자살한다. 갈은 하필 노르마의 코앞에 떨어져 죽었고, 노르마는 정신적 충격을 받아 지적 장애가 생긴다.
'''베라의 과거:'''
한편, 베라는 본래 '비센테'라는 이름의 남자[* 배우는 얀 코르넷. 영화에선 27세로 나오지만 실제로 배우의 나이는 34세다.]로 어머니의 양장점에서 일하고 있다. 양장점 여직원 크리스티나를 짝사랑하지만 크리스티나는 레즈비언이라 비센테의 구애를 항상 거절한다. 문제의 그 날도 비센테는 크리스티나에게 드레스를 보여주며 추파를 던지지만 거절 당하고, 그 드레스를 챙겨넣은 채 결혼식장에 놀러 간다.
비센테는 결혼식장 하객으로 온 로베르트의 딸 노르마와 연회장 밖으로 나가 거닌다. 옷이 갑갑하다는 노르마의 말에 정원 구석에서 섹스를 시도한다. 비센테가 관계를 시도하려는 순간 파티장에서 갈이 자살했을 때 자기가 부르던 노래(즉 자신이 어머니를 자살하게 만든 노래)가 들리자 노르마는 섹스를 거부한다. 그럼에도 비센테는 계속 섹스를 하려고 하고 이에 노르마는 비센테의 손을 물어뜯는다. 당황한 비센테는 노르마를 때려 기절시킨뒤 도망간다.
하여튼 노르마는 모친의 자살 이후 사회공포증이 있었고 나아가는 중이었는데 그 사건 이후 남성에 대한 공포증이 더욱 강화되어 결국 자살한다. 로베르트는 노르마를 죽게 만든 비센테를 찾아서 강제로 성전환 수술을 한 뒤 '베라'라고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6년에 걸쳐 전신 성형을 하여 죽은 갈과 똑같은 모습으로 만든다. 혹자는 로베르트가 베라를 갈과 같은 모습으로 성형하는 실수를 해서 베라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로베르트의 태도는 절대 사랑이라고는 할 수 없고 아끼는 "물건"을 '''탐미'''하는 것에 가깝다.
'''꿈에서 깨어나서 현재:'''
베라도 로베르트를 사랑하는 것처럼 굴고 로베르트도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자 여전히 베라를 믿지 못하는 마릴리아는 불편해 한다. 어느날 로베르트의 동료 풀헨시오(비센테=베라에게 성전환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가 신문의 실종자 수배 란에서 비센테의 사진을 보고 로베르트를 찾아와 자신을 속였다며 비난한다. 그러자 베라가 들어와 자신은 원해서 여자가 된 것이라며 로베르트의 편을 들고, 풀헨시오는 돌아간다. 그날 밤, 로베르트와 베라가 섹스를 하려 하는데 베라는 체카에게 강간 당해서 아직도 쓰리다며 윤활제를 가지고 오겠다며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로베르트의 서재에서 권총을 들고 올라와 로베르트를 쏴 죽인다. 총소리를 듣고 올라온 마릴리아도 쏴 죽이고, 6년 전 크리스티나에게 권했던 그 드레스를 입고 저택에서 탈출한다. 도착한 곳은 어머니와 크리스티나가 사는 양장점. 크리스티나는 그 드레스 때문에 베라가 비센테라는 것을 믿게 된다. 베라와 크리스티나가 울고 있는데 어머니가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베라가 자신이 비센테라고 어머니에게 말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엔딩이 칼로 자른 듯이 확 잘리는 느낌이 들 수 있는데, 도중에 비센테와 크리스티나의 대사를 기억한다면 꽤나 다른 뉘앙스로 다가올 것이다. [2]
5.2. 원작과 차이점
- 원작 소설은 프랑스 소설이기 때문에 인물들 이름도 당연히 프랑스식이다(뱅상, 리샤르). 스페인에서 스페인 감독이 영화화하면서 이름들이 스페인식으로 개명된다(비센테, 로베르트).
- 모든 일의 발단이 되는 로베르트 딸의 강간살인 사건은 원작 소설에서는 빼도 박도 못하게 분명히 강간이고, 뱅상이라는 인물도 전과자에 인간쓰레기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비센테도 억울한 입장이 없지 않고 악당은커녕 평범한 사회초년생 청년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때문에 명확한 복수물이었던 원작 소설과는 영화의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원작이 인간쓰레기들끼리 뒤통수를 노리며 지지고 볶는 스릴러라면 영화는 완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인간들이[3] 파멸해가는 부조리극, 공포물에 가깝다.
- 로베르트에게 납치 당하기 전 비센테가 짝사랑했던 레즈비언 크리스티나, 로베르트의 아내 갈은 원작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원작은 뱅상이 로베르에게 마음을 허락하는 조교물(...)이다.
- 원작에서 여자가 된 뱅상은 자신을 조교하는 로베르를 "미갈(거미)"이라고 부르는데, 원작의 제목 "독거미"가 의미하는 것이 이것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원작은 "독거미" 로베르가 중심인물인 반면 영화는 "피부" 속에 "사는" 사람인 비센테=베라가 중심 인물이다.
6. 평가
The Skin I Live In lacks Almodovar's famously charged romance, replaced with a wonderfully bizarre and unpredictable detour into arthouse ick.
'''<내가 사는 피부>는 알모도바르 감독 특유의 감정이 가득찬 로맨스적 요소는 없고, 대신 그 자리를 놀라울 정도로 기묘하고 예측할 수 없는 예술영화의 방향으로 가는 우회로로 채웠다.'''
- 로튼 토마토 총평
'''치명적인 농담'''
방금 고딕 호러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미친 과학자' 이야기를 조도로프스키가 연출했다고 상상해보자. 그런데 그 마저도 결말에 이르러 농담처럼 끝난다면. 그게 알모도바르의 [내가 사는 피부]다. 이토록 탐미적인 이미지와 상징들로 가득찬 푸짐한 농담을 스크린에서 본 게 너무 까마득해 즐겁고 당황스럽다. "아니 여보시오 의사양반!"의 알모도바르 버전을 목격하실 수 있음.- 허지웅 '''(★★★★)'''
'''이야기꾼 알모도바르의 실책'''
페드로 알모도바르. 그는 겹겹이 둘러싸인 인간의 욕망을 한 꺼풀씩 벗겨내는데 경이로울 정도의 재능을 가진 감독이다. 그런 그의 '악취미'를 지켜보는 건 언제나 흥미로운 경험이다. 인공피부이식을 통해 창조해낸 미녀 프랑켄슈타인 베라. 쾌락의 방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것 역시 마찬가지의 즐거움이다. 아쉬운 건 그의 이야기에 가득하게 들어찼던 활기찬 욕망의 변주가 사라졌다는 점. 다소 거칠어도, 이야기꾼으로서의 알모도바르가 보고싶다.- 이화정 '''(★★★☆)'''
'''난폭한 드라마의 재미와 그 극성(劇性)이 삼켜버린 것들.'''
- 이동진 '''(★★★)'''
'''병적으로 즐겁다. 아니, 병적인데 즐겁다'''
- 김도훈 '''(★★★☆)'''
'''알모도바르 내면의 아토피!'''
- 박평식 '''(★★★)'''
'''냉정하고 싶은 수다쟁이. 입이 간지럽고 몸이 쑤신다'''
- 이용철 '''(★★☆)'''
'''생체권력과 피그말리온에 대한 극한의 상상. 변태돋긔'''
- 황진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