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요 스르나

 

''' 다리요 스르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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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수상'''




'''개인 수상'''




'''베스트팀'''




''' 다리요 스르나의 기타 정보'''
'''FC 샤흐타르 도네츠크 영구결번'''
'''No.33'''

'''Футбольний клуб Шахта́р Доне́цьк'''
<colbgcolor=#f27022> '''이름'''
'''다리요 스르나
Darijo Srna'''
'''출생'''
1982년 5월 1일 (41세)
크로아티아 메트코비치
'''국적'''
크로아티아 [image]
'''신체'''
182cm / 75kg
'''직업'''
축구선수(라이트백, 미드필더 / 은퇴)
''' 소속 '''
<colbgcolor=#f27022> ''' 선수 '''
NK 고스크 가벨라 (미상 / 유스)
네레트바 메트코비치 (1997~1999 / 유스)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 (1999~2000 / 유스)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 (1999~2003)
'''FC 샤흐타르 도네츠크 (2003~2018)'''
칼리아리 칼초 (2018~2019)
''' 지도자 '''
FC 샤흐타르 도네츠크 (2019~ / 수석코치)
'''국가대표'''
'''134경기'''[1] 22골(크로아티아 / 2002~2016)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선수 경력
3.1. 클럽 경력
3.2. 국가대표 경력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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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크로아티아의 전 축구선수. 그의 이름은 크로아티아 축구계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영향력을 지닌다. 다보르 슈케르 이후로 크로아티아 최고의 축구 영웅으로 불리는 그는 전성기 시절 베드란 촐루카와 지금의 루카 모드리치, 이반 라키티치, 마리오 만주키치 같은 빅 리그의 상위 클럽에 있는 선수들보다도 크로아티아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2]
실력과 인기에 비해 클럽 경력은 다소 떨어진다. 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에서 성공을 맛보았고 FIFA 월드컵에도 출전해 이름을 알렸지만 빅리그로 진출하기에 충분한 실력을 가지고도 클럽을 떠나기 싫다고 해서 이적을 거부했다. 그래도 말년에 세리에 A로 진출했다.

2. 플레이 스타일


가장 큰 장점은 킥력. 선수의 이름값이 다소 떨어져서 모르는 사람이 많긴 해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널리 퍼져 있다. 185cm라는 큰 키에서 나오는 강력하고 정밀한 프리킥은 그의 클래스를 증명하는 보증 수표이다. 걸린 듯, 안 걸린 듯 미묘한 회전이 걸려 날아오는 그의 특별한 프리킥은 회전의 낙차가 크지는 않지만 오히려 떨어질 때는 변동 폭이 큰 편이라 막기 힘들다. 게다가 어느 방향, 어느 방법으로든지 능숙하게 킥을 찰 수 있는 능력도 있어서 직접 프리킥뿐만 아니라 원거리에서 정밀한 롱 패스와 크로스로 세트 플레이 상황에서 동료 선수들의 득점을 이끌어내는 능력도 톱 클래스이다. 축구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킥력을 자랑한다는 베컴이나 데쿠 같은 선수들에 비해서도 절대로 뒤지지 않는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주 포지션은 윙백/풀백, 측면 미드필더이지만 수비형 미드필더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도 소화 가능한 전천후 자원이기도 하다.

3. 선수 경력



3.1. 클럽 경력


2003년부터 뛰었던 샤흐타르에서 성장하던 스르나는 기량을 만개하기 시작하면서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기 시작한다. FC 디나모 키예프가 지배하던 우크라이나 리그에서 샤흐타르의 전성기를 이끌며 샤흐타르의 2009-10, 2010-11 시즌 연속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더욱 엄청난 기록을 세우며 클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과를 이끌어낸 선수로 등극하는데, 바로 우크라이나의 어떤 클럽도 일궈내지 못했던 2008-09 시즌 UEFA 컵[3] 우승이다. 결승에서 샤흐타르는 SV 베르더 브레멘을 2:1로 꺾고 감격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면서, 이는 클럽 역사상 위대한 가장 위대한 순간이 되었다.
그리고 2010-11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AS 로마아스날 FC에게 패배를 안기며 8강에 등극하는 위업을 달성한다. 비록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완패를 당하긴 했지만 스르나는 8강까지만 경기를 뛰었음에도 그 시즌의 챔피언스 리그 베스트 11에 당당히 올라가며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최근 2016-17 시즌에서는 FC 바르셀로나와의 링크가 조금씩 뜨고 있는데, 아무래도 세르지 로베르토의 부족한 경험을 채워줄 베테랑 선수를 바르셀로나가 찾았고 그 베테랑 풀백 중 한명인 스르나를 노리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하지만 잔류 기사가 떴고, 이적은 무산되었다.
2017년 9월 23일, '''도핑 테스트 양성 반응 사실이 밝혀졌다.''' 본인은 의도적인 일이 아니라고 법적인 절차를 밟는다고 밝혔으며, 축구 선수생활을 중단하고 명예를 회복하고 복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약쟁이 칭호는 면할 수 없게 되었고 샤흐타르의 레전드로 인정받던 평가 역시 흠집이 가게 되었다.
2018/19 시즌을 앞두고 이탈리아 세리에 A 칼리아리 칼초와 1+1 계약을 맺었다.
15년 간 정들었던 샤흐타르를 떠나게 되자 구단에서는 '''스르나의 등번호 33번을 구단 역사상 최초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2019년 6월 20년 간의 선수 생활을 뒤로 하고 은퇴를 선언하였다.

3.2. 국가대표 경력


2002년부터 2016년까지 14년 동안 134경기에 출전해 22골을 기록했으며, 현재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출장 기록 보유자이다.[4]
유로 2004 최종 명단에 포함되며 생애 첫 국가대표 메이저 대회에 참가하였다. 크로아티아는 프랑스, 잉글랜드와 같은 조를 배정받고 2무 1패로 탈락했다.
2006 독일 월드컵에 출전, 조별리그 일본전에서 페널티킥을 찼으나 가와구치 요시카쓰 골키퍼의 선방에 막혀 실축하고 말았다. 그 다음 호주와의 경기에서 전반 2분 만에 나온 프리킥을 성공시키며 선제골을 넣었다. 크로아티아는 비록 아쉽게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스르나의 활약은 빛났다.
유로 2008에서는 조별리그에서 독일을 상대로 선제골을 넣어 2:1 승리를 이끄는 등 준수한 활약으로 팀의 조 1위 8강 진출에 기여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는 터키와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며 탈락했다.
유로 2012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8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크로아티아를 이끌었다. 하지만 크로아티아는 개막전 오심 논란과 함께 아쉬운 경기력을 보이며 1승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유로 2016 조별리그 터키와의 경기에 출전했고, 팀은 승리했으나 아버지가 별세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크로아티아 축구협회에서 (한국 시간) 2016년 8월 9일 스르나의 국가대표 은퇴를 발표했다. #

4. 기타


  • 메트코비치 지역의 명문 전기 기술 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

[1]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자.[2] 현재는 자국을 월드컵 결승까지 올린 루카 모드리치의 위상 또한 상당히 높아졌다.[3] 이 시즌을 끝으로 차기 시즌부터 UEFA 유로파 리그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또한 샤흐타르는 UEFA 컵 마지막 우승 트로피를 가져가게 되었다.[4] 루카 모드리치가 곧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