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시/행정
1. 舊 당진현 지역
1.1. '''당진1동'''
관할 법정동은 수청동·읍내동이다. 동 주민센터는 읍내동에 있다. 인구는 '''24,406명'''.[A]
당진시청, 당진경찰서, 당진공영버스터미널, 당진시네마, CGV 당진이 있다. 당진시청은 원래 읍내동에 있었으나 2011년에 수청동으로 이전했다. 동 주민센터는 경찰서가 이전하기 전에 쓰던 건물인데, 리모델링은 커녕 색상도 거의 그대로라서 70~80년대 지방 경찰서 특유의 우중충한 포스를 드러내고 있다(...).
읍내동에서는 대우건설의 당진 푸르지오가 위치해 있다.
1.2. '''당진2동'''
관할 법정동은 구룡동·대덕동·사기소동·용연동·채운동·행정동이다. 동 주민센터는 舊 당진읍사무소를 쓰고 있으며 채운동에 있다. 인구는 '''21,178명'''.[A]
당진시교육지원청, 당진소방서, 당진시장이 있다. 채운동에서도 당진1동과 인접한 지역에는 탑동초등학교, 당진중학교, 당진고등학교, 당진정보고등학교의 4학교가 밀집해 있다. 서해안고속도로와 당진영덕고속도로가 만나는 당진JC가 있으며 서산시 운산면과 접한다. 군부대가 있다.
1.3. '''당진3동'''
관할 법정동은 시곡동·우두동·원당동이다. 동 주민센터는 원당동에 있다. 인구는 '''18,384명'''.[A]
우두동에 우두택지지구를 조성하고 있다. 롯데마트 당진점도 이곳에 있다. 당진3동에 속한 아파트 단지는 청구아파트, 현대아파트, 우민아파트 등의 외곽에 위치한 아파트와 터미널 주변의 주공1단지, 3단지, 부경1,2차 아파트, 그리고 롯데마트 근처에 비교적 최근에 입주한 한라비발디아파트와 이안아파트가 위치한다.
송산면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는 동사무소는 민간 건물을 임대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 외에 주요 시설로는 당진에 1개 뿐인 종합병원이 송악읍과의 경계에 위치해있다.
학교로는 원당초, 중학교가 소재해있다.
1.4. '''고대면'''
면소재지는 용두리이다. 인구는 '''5,498명'''.[A] 당진종합운동장이 있다. 시의 이름과 같은 당진포리라는 마을이 있다.
1.5. '''석문면'''
면소재지는 통정리이다. 인구는 '''9,701명'''.[A]
서해안에서 유일하게 일출과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왜목마을이 있다. 삼화리에 KBS 당진송신소가 있어서 한민족방송 제1방송(972㎑)를 송신한다. 1979년에 준공되었으며,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후 생전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다.
석문방조제가 위치한다. 6km미터 정도의 긴 직선도로가 위치해 과거 쌍용자동차의 경우 이곳에서 테스트를 한 적도 있다고. 다만 왕복 2차선이다. 도비도에는 농어촌휴양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도비도 선착장에서 난지도를 갈 수 있으며 난지도해수욕장이 있다. 당연히 서울 난지도공원과는 이름만 같다. 대호만 건너편으로는 서산시 대산읍과 접한다.
2. 舊 면천군 지역
2.1. '''송악읍'''
읍소재지는 기지시리이다. 2010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는 '''30,259명'''.[A][1]
서해안고속도로 당진IC와 송악IC가 있으며 서해대교를 통해 평택시 포승읍과 연결된다.
자세한 것은 송악읍 문서 참고.
2.2. '''면천면'''
면소재지는 성상리이다. 인구는 '''3,584명'''.[A]
면천은 고대 사회로부터 당진의 중심 고을로 통했던 지역으로 백제 시대에는 혜군에 속했으며 통일신라 때인 제35대 경덕왕 때에는 혜성군으로 되었다가 고려 제8대 현종 9년(1018)에는 운주에 속했으며 그 뒤에 감무를 두었다. 제 25대 충렬왕 19년(1293)에 이 고을 출신인 卜奎(본관:면천)가 우리 나라에 쳐들어온 함단병(含丹兵)을 격퇴한 공(功)을 높이사 그의 출신지인 이 곳을 지면주사(知沔主事)의 고을로 승격시켰다. 조선시대 제 3 대 태종 13년(1413)에는 면천군으로 고쳐서 면천군이 죽림, 덕두 등 14개면을 관할하였다. 1439년(세종 21년) 11월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면천읍성이 쌓아졌으며 이 읍성은 조선후기까지 면천지역의 군사 및 행정중심지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1895년 홍주군의 신평, 합덕, 우강 등을 합쳐서 22개면을 관할하였다.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개혁 때에 면천군이 당진군에 편입되면서 마산면, 송암면의 12개 동리와 승선면의 5개동리, 당진군 남면 일부와 덕산군 외야면 일부가 병합하여 마산면, 송암면의 이름을 따서 마암면이라 하였으며 1917년 10월에 마암면을 면천면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舊 면천군의 중심지였던 만큼 면천읍성(도기념물91호), 영탑사금동삼존불상(보물409호)를 비롯해 문화유적이 풍부한 편이다.[2]
면의 북부에 시내 최고봉인 아미산이 자리잡고 있으며 근처에 당진영덕고속도로 면천IC가 있다. 국가무형문화유산 제86-2호(舊:중요무형문화재 제86-나호)로 지정된 면천 두견주가 있으며 서울 문배주, 경주 교동법주와 함께 국가지정 3대 민속주이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만찬주로 선정되었다. 고려개국공신 복지겸의 딸 영랑이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 전해져 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1968년 국내 최초로 꽈리고추가 재배된 지역이며 전국 꽈리고추 생산량 중 무려 52%를 차지하고 있다.
면천면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성상리에 면천초등학교와 면천중학교가 있다. 면천초등학교 안에는 약 1100년 되었다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3] 남쪽으로 예산군과 접한다.
면천면을 거꾸로 읽어도 면천면이다. 이것과 같은 케이스.
2.3. '''송산면'''
면소재지는 상거리이다. 인구는 '''11,914명'''.[A]
삼국시대에는 백제 혜성군이었고 조선 태조 13년에 면천군 창택면, 갑천면, 송산면의 3개면이었던 것을 1914년 4월 1일 송산면이라 칭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송악읍 바로 옆에 있으며 송산일반산업단지가 조성공사중이다.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현대하이스코, 동부제철, 동국제강 등을 유치해 철강산업단지 클러스터를 조성하였으며 그 결과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 2019년 1월 기준 12,095명이 거주한다.
2.4. '''순성면'''
면소재지는 봉소리이다. 인구는 '''5,122명'''.[A]
과거에는 당진읍내와 합덕읍내 중간에 위치한 덕분에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으나 삽교호 방조제 완공 이후 주요 교통축에서 밀려나면서 합덕읍과 더불어 쇠락하고 있는 면이다.
가볼 만한 곳으로 아미미술관이 있다. 성북리에 위치한 이곳은 시설 특성 상 예술인들이 자주 찾아오고 이를 통해 파생되는 문화활동들을 영유할 수 있는 곳인지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순성면에서 사람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 밀집 지역과 순성중학교의 거리가 꽤 된다.
이 곳의 중방리에 여산 송씨의 집성촌이 있다.
2.5. '''우강면'''
면소재지는 송산리이다. 인구는 '''5,177명'''.[A]
조선시대 범근내에서 유래된 면천군 범천면 지역으로 34개 동리의 일부였다.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로 군면통합에 따라 면천군의 이서면 13개 동리와 홍주군의 신남면 3개리와 비방면의 돈곶리 일부를 병합해 12개리로 개편하여 범천면이라 하여 당진군에 편입되었다. 1942년 10월 1일, 지방 행정구역 명칭 변경에 의하여 이곳에 있는 우평과 강문평야에서 한자씩 따서 우강면으로 개칭해 오늘날에 이른다.
2014년 이전까지는 면소재지가 창리에 있었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현 면소재지인 송산리와 옛 면소재지인 창리가 둘 다 합덕읍 읍내와 붙어있어 사실상 중심지 및 생활권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주소지는 우강면인데 합덕읍에 있는 학교로 통학하는 아이들이 많다. 송산리에 국내 최초 가톨릭 사제(신부)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태어난 솔뫼성지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거쳐간 장소 중 하나일 정도로 한국 가톨릭계에는 의미가 깊은 곳이다. 교황 방문과 아시아청년대회를 대비해 기념관과 콘서트장을 짓는 등 대대적으로 꾸며놓았으니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한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3. 舊 해미군 지역
이 두 면은 1914년에 서산군에 편입되었으며 1957년에 서산군에서 당진군으로 편입되었다. 각종 개발 사업이 활발한 당진이지만 이 지역들은 거기에서 매우 소외되어 있는 모습이다.
3.1. '''대호지면'''
면소재지는 조금리이다. 인구는 '''2,434명'''.[A]
원래 정미현의 서쪽에 위치하여 서면(西面)이라 불리어 왔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호지면이라 하여 서산군(瑞山郡)에 편입되었다가,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456호에 의해서 대호지면이 정미면과 함께 당진군에 편입되었다. 남쪽으로 서산시 성연면과 접한다. 정미면보다도 더 낙후된 지역으로 면소재지조차도 매우 썰렁하기 그지없다. 정묘호란 때 청나라 군과 싸우다 전사한 남이흥 장군묘와 그를 배향한 충장사가 있다. 또한 4ㆍ4독립만세 운동의 발원지로 선영 603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며 독립운동가도 많이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3.2. '''정미면'''
면소재지는 천의리이다. 인구는 '''3,679명'''.[A]
원래 해미군 지역으로서 염솔부곡의 이름을 따서 염솔면이라 하여 22개 동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일도면의 17개 동리와 서면의 경치리 일부를 병합하여 해미현 고호인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에서 정미(貞美) 두글자를 따서 정미면(貞美面)이라 하여 서산군에 편입되었다.[4] 천의리, 매방리, 우산리, 하성리, 봉성리, 도산리, 대조리, 산성리, 덕삼리, 승산리, 수국리, 여미리, 사관리, 덕마리, 신시리, 모평리, 봉생리, 대운산리의 18개 리로 개편하여 관할하다가 1957년 11월 6일 법령 제456호에 의해서 당진군에 편입되었는데, 1973년 그 가운데서 여미리를 다시 서산시 운산면에 떼어주어 17개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이곳 역사가 증명하듯 이 지역 위치 자체가 서산시내와 당진시내의 사이에 있다. 그로인해 이 동네는 산업화가 진행되던 두 지역으로 인구가 유출되어 대호지보다 조금 많은 3,743명 남짓에 불과한다. 안국사지, 심팩메탈, 신성대학교가 위치한다.
4. 舊 홍주목 지역
4.1. '''합덕읍'''
읍소재지는 운산리이며, 아산시 선장면, 예산군 신암면, 고덕면과 접한다. 인구는 '''9,099명'''.[A]
당진시 남동쪽에 위치한 넓은 평야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우강면과 중심지를 공유하는 형태로 읍내가 형성되었다. 읍 이름의 연원이 된 합덕리도 있고 대합덕리도 있지만, 의외로 이 두 지역은 읍내 지역이 아니다. 1973년 약 2만 2천명의 인구수를 토대로 읍으로 승격되었지만 쇠퇴기를 지나 현재 약 9천 명이 살고있다.
본래 합덕읍은 당진 지역에서 예산군, 서산시, 천안시, 대전광역시, '''경기도''' 등의 외부지역으로 연결되는 유일한 길목이었던 탓에 당진군의 교통 중심지였다. 그래서 옛부터 많은 상인들이 거쳐가는 곳이었으며 평야지대서 생산된 쌀 덕분에 주머니가 두둑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로 인해 여러 제반 산업들이 발달하여 지역 내 상업 중심지로 성장하였으며 합덕읍 읍내가 우강면 창리, 송산리 일대까지 대폭 확장하게 된다. 당시 합덕읍의 성장세와 위세가 워낙 대단한 나머지 당진군청 자리까지 넘보기도 했었다고 한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중심지를 공유하는 합덕과 우강을 묶어서 따져보면 당진읍 인구보다 많으면 많았지 부족하지는 않았으니 괜한 말은 아닌 것.
그러나 1960년대~1990년대에 이루어진 경부ㆍ경인라인 중심의 경제 개발로 인해 당진과 합덕을 비롯한 충청 서부지역의 발전이 정체되면서 쇠락하기 시작했고, 결정타로 2000년대부터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당진군내의 주요 경제 중심축은 당진읍과 합덕읍에서 현대제철이 있는 송산면과 송악읍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국가산업단지, 당진항 등의 굵직한 사업들을 유치하게 된 송산면, 송악읍과는 달리 농업 외엔 특별한 산업이 없었던 당진의 대부분 지역들은 유동인구가 줄고 상주인구마저 줄어들면서 평범한 시골로 전락했다. 이는 합덕읍도 다르지 않았다.
호재가 많은 송산면, 송악읍과는 달리 나날이 쇠락하고 있는 합덕읍을 활성화시키고자 시 차원에서 합덕읍 소소리와 합덕읍 석우리 일대에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기존 합덕전통시장에 한우특화거리, 하나로마트를 조성, 입주시켰으며 칙칙한 읍내 건물의 외경 미화 공사, 도로 설비 공사 등을 진행시켰다. 그 덕분인지 2010년대 중반부터는 운산리 일대에 산업단지 근로자들이 거주하는 원룸촌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뚜렷한 변화가 없었던 기존 읍내에도 새로운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비록 침체기에 빠져있다지만 합덕읍은 합덕버스터미널을 통해 여전히 당진시 남부권 교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18년 버스터미널이 재건축되면서 규모가 많이 작아진 대신 읍내에 부족했던 주차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추후 당진시 유일의 철도역인 서해선 복선전철 합덕역이 들어설 예정이다. 주요 교통축에서 소외받으면 마을이 쇠퇴하게 된다는 것을 직접 경험한 지역사회에서는 새로 건설되는 철도교통에 큰 기대를 하는 중이다.
합덕읍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후백제 시기에 지어졌다는 합덕제 (충청남도 기념물 제70호), 소들평야 일대의 농업, 민속문화를 소개, 체험하는 합덕수리민속박물관, 합덕읍 일대의 가톨릭 중심지였던 합덕성당(충청남도 기념물 제145호) 등이 있다.
4.2. '''신평면'''
면소재지는 금천리이다. 인구는 '''15,814명'''.[A][5]
백제시대에는 사평현, 신라시대에는 신평현에 속하였으며 고려 현종 1018년에는 홍주목에 속하였다. 1623년 조선 인조시에 신평현이라 칭하였다가 한진해가 개통되어 지리적 변화에 따라 현제를 폐지하고 홍주군(현재 홍성)에 속하였으며 1895년 고종시에 면천군에 편입되었고 서기 1914년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으로 당진군에 편입되어 현재까지 신평면으로 칭한다.
1979년 삽교천을 막아 건설된 삽교천방조제[6] 와 삽교호, 평택·당진항이 있다. 아울러 아산만을 횡단하는 서해대교[7] 사이에 위치한 행담도와 평택·당진항 서부두의 행정구역도 신평면 매산리에 속한다. 그래서 육지가 아닌 물을 건너 당진으로 오는 모든 차량들은 무조건 신평면을 지나가게 되며, 때문에 서울 쪽에서 합덕버스터미널로 오고가는 모든 버스들이 삽교천시외버스터미널과 신평버스터미널에 정차한다.
송악읍처럼 별다른 산업단지가 있지는 않지만, 수도권과의 원활한 교통망 덕택에 신평면은 면임에도 불구하고 가파르게 성장 중이다. 특히 신평버스터미널이 있는 거산리의 성장이 두드러져서 아파트단지가 여럿 들어서고 2015년 롯데리아가 들어오는 등 상권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는 송악면 산업단지의 배후 주거단지 역할을 함과 동시에 세한대학교 당진캠퍼스의 배후상권으로 지목되어 성장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런 여러가지 버프를 받은 신평면의 인구는 합덕읍의 인구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읍 승격 요건인 20,000명에는 아직 미달하는지라 읍으로 승격이 되지 않고 있다.
[A] A B C D E F G H I J K L M N 2020년 12월 주민등록인구[1] 당진시에 있는 읍면동 단위 행정구역중 가장 인구가 많다. 두 번째는 당진 1동.[2] 국가지정 2, 도지정 7, 향토유적 1[3] 지금은 면천읍성 복원 계획 등의 이유로 초등학교가 면천중학교 아래로 이전. 은행나무 두 그루는 원래 충청남도 기념물이었다가 천연기념물로 승격 지정.[4] 사실 '해미' 역시 정해현에서 '정' 대신 '해'를 따와 만들어진 이름이다.[5] 당진시의 '면' 단위 행정구역 중 가장 인구가 많다.[6] 아산시 인주면과 연결되며, 준공식은 1979년 10월 26일에 열렸고 이 행사는 10.26 사건으로 인해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마지막 공식 행사'''가 되었다.[7] 평택시 포승읍과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