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도

 


1. 서울의 옛 하중도(河中島)
1.1. 역사
1.3. 난지도 사람들
1.5. 관련 문서
2. 인천의 옛 섬


1. 서울의 옛 하중도(河中島)



1.1.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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蘭芝島
상암동 영역 중 난지도 지역은 원래는 한성부 성저십리가 아닌 고양군 하도면 덕은리(지금의 고양시 덕양구 덕은동)의 일부였으나 1911년에 경성부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에 다시 고양군 소속이 되었다. 1949년서울특별시로 편입. 상암동 문서 참조.
이 곳은 유명한 신혼여행지로 이름을 날릴 만큼 풍경이 아름다운 섬이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시발 택시 타고 남산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인 신혼여행으로 인식되었다.[1] 섬의 이름도 난초()가 많이 자란다고 해서 난지도였다.
1978년 '''서울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되었다. 산업화 과정 동안 서울의 급속한 팽창과 더불어 15년간 9,200만 톤의 쓰레기(산업폐기물, 건설 폐자재, 생활 쓰레기 등)가 적재되어 '''90 미터 높이의 거대한 산 두 개로 변했다.'''[2]
난지도가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되기 전에는 서울시의 쓰레기 매립장은 구의동(현 테크노마트 부지. 링크), 장안동, 상계동에 있었다. 방배동, 압구정동에도 소규모 쓰레기 매립지가 있었다고 한다.

1.2. 쓰레기 매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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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적재량은 계속 늘어나서 하루에 '''트럭 3,000대 분량'''의 쓰레기가 버려졌고 마침내 기자 대 피라미드의 33배에 이르렀다. 이 때만 해도 한국은 세계에서 일일 쓰레기 배출량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였다. 게다가 당시에는 쓰레기 소각처리가 일반적이지 않아서 쓰레기 대부분이 직매립되었다.
이 쓰레기 매립장은 서울특별시 뿐만 아니라 인천, 부천, 광명, 안양, 구리 등 인근 도시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들도 매립되었고, 안양시, 시흥시, 광명시 등지는 안양 평촌에 있던 매립지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안산 시화매립지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성남시분당구에 위치한 자체 매립지를 이용했었다.
인류학자 중에는 후손들이 난지도를 발굴한 다음에 20세기 사람들은 라면만 먹고 살았을 것이라고 논문을 쓸 것이라는 농담을 하는 사람도 흔히 있다. 가장 흔하게 나오는 쓰레기가 '''라면 봉지'''라고.
1993년에 수용 한계량에 도달하여 폐쇄되었으며 서울의 쓰레기 매립지는 경기도 김포군 검단면(현 인천 서구)에 조성된 수도권 매립지로 이전하였다.[3] 다만 폐쇄된 뒤에도 단 한 차례 쓰레기를 매립한 적이 있었는데, 그 쓰레기는 바로 삼풍백화점의 잔해였다. 사실상 지금 난지도 안에 '''백화점 한 동이 통째로''' 들어있다고 보면 된다. 다른 매립지에 자리가 없어서 난지도 위에 덮을 수 밖에 없었다고. 삼풍백화점 잔해 정리 과정에서 '''사람의 유해'''가 나와 유족들의 공분을 자아낸 적도 있었다.

1.3. 난지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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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시점에서는 묻힌 사실이지만, 쓰레기 매립지가 된 난지도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전성기 때에는 거의 7백여 명이 거주했고 매립장 폐쇄가 된 1994년까지는 4백여 명이 거주했다. 이들은 쓰레기에서 쓸만한 자재를 골라 팔아서[4] 생계를 꾸렸다. 당시 그곳을 취재한 기사에 의하면, 사람들이 살던 가건물들은 당연히 무허가인 데다가 외부인 출입도 금지된 곳이라 경찰력도 미치지 않았고, 사람이 죽어도 쓰레기더미에 묻어버리면 그만이라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알 수 없는 곳이었다 한다. 그래서 당시 '''난지도에 산다'''고 하면 더러운 일을 하는 극빈층으로 분류됐기 때문에 이들 가정의 자녀들도 학교에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이 난지도 주민들은 쓰레기서 나오는 메테인 가스로 난방과 취사를 하기도 했다고.
난지도 현지 주민들도 그렇지만, 인근의 성산동, 망원동, 멀리는 강건너 가양동 주민들도 난지도 매립장 때문에 적지 않게 고통을 겪었다. 특히 난지도 소각장이 가동되는 시간대에는 반드시 창문을 꽁꽁 걸어잠가야 했는데, 여름철엔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1981년 유재순 기자가 난지도를 무대로 한 <난지도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논픽션을 내서 한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또한 80년대 중반에 정연희가 <난지도>라는 소설을, 이상락이 <난지도의 딸>이라는 소설을 써내기도 했다.

1.4. 월드컵공원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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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대교가 건설 중인 사진이다.
오른쪽 끝에 있는 아파트는 성산시영아파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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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도공원 전경
매립지의 폐쇄 이후, 서울시는 해당 구역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기로 계획해 쓰레기 산을 덮고 공원 건설을 시작했고, 2020년까지 안정화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방벽은 오염 하수가 한강에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껍게 둘러쳤으며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 및 다른 혼합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는 인근의 월드컵 공원과 서울월드컵경기장 시설의 열에너지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월드컵 공원은 평화의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 난지한강공원(한강시민공원 난지지구)의 5가지 테마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이 중 본래의 쓰레기 매립부지에 해당하는 구역은 난지도 제1매립지에 들어선 노을공원과 제2매립지에 조성된 하늘공원이다.

또한 난지도 주변에는 디지털미디어시티가 조성되어 업무지구와 주요 언론 및 방송사의 핵심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그 외에, 난지도 개발을 대비하여 서울 지하철 11호선이 계획되었지만, 무산되었다.
이 난지도 에너지/침출수 재생처리장은 서울특별시가 아닌 경기도 고양시 땅에 지어놨다. 강변북로/자유로 문산방면을 타고 가다보면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고양시에서 때만 되면 시설 폐쇄 압박을 한다.

1.5. 관련 문서



2. 인천의 옛 섬


1970년부터 청라도, 율도 등 여러 섬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1980년에 매립되고 소멸되었는데, 토지 매립 이후로 하필이면 1번 항목에 있던 쓰레기매립지가 근처로 옮겨졌다. 의도적인 목적인지는 불분명.

3. 충청남도 당진시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난지도리에 있는 섬. 여기도 서울 난지도와 마찬가지로 蘭芝島라고 쓰지만, 난초와 지초는 자생하지 않는다. 물살이 세어 배가 다니기 어렵기 때문에 원래 難知島라고 했다가 蘭芝島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대난지도와 소난지도, 그밖의 몇개의 부속 도서로 구성되어 있다. 대호방조제에 위치한 도비도 선착장에서 배로 약 20분 들어가야 한다. 과거에는 인천광역시 연안부두에서 출발하여 육도·풍도를 거쳐 난지도까지 가는 배도 있었으나, 거리도 멀고 운임도 비싸 이용객이 거의 없었다. 결국 2012년 12월 10일부로 노선이 단축되어 육도·풍도까지만 운항하고 난지도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수도권 등지에서 해상레포츠나 낚시를 즐기러 관광객이 찾는 섬 중 하나이다.
[1]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는 '''온양온천'''과 '''도고온천'''이 수도권에서 제법 인기있는 신혼여행지였고 항공편이 발달한 1980년대부터 '''제주도''' 신혼여행이 흔해졌고. 신혼여행을 해외로 나가게 된 1989년 이후로 홍콩 괌 하와이 등이 인기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 유럽이나 미국지역으로 범위가 확대되었다.[2] 정확히는 해발 8미터의 저지대였는데 최고 높이 해발 98미터로 변모함.[3] 재밌는 사실은 이전 부지가 매립되고 없어진 난지도와 멀지 않은 곳이며, 서울의 난지도와 이름이 같다는 점이다. 아래 2번 항목 참조.[4] 쓰레기 분리수거가 없던 시절이다. 재생이 되는 폴리에틸렌 등의 열 가소성 플라스틱(속칭 물렁이)과 고철로 팔수 있는 철, 알루미늄 음료수 캔 등이 주 수입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