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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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생대 에오세 후기에 지금은 인도-유라시아판의 지각변동으로 인해 사라진 원시 바다인 테티스 해에 서식했던 초기 고래의 일종. 속명은 그리스어로 창을 뜻하는 '도리(δόρυ, dóry)와 이빨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인 '오돈(ὀδών, odṓn)'을 합쳐 만든 '창 이빨'이라는 뜻으로, 이 생물의 뾰족한 이빨 모양에 착안해 붙여진 이름이다.[1]
2. 상세
미국의 고생물학자 로버트 W. 깁스(Robert W. Gibbes)가 1845년 도루돈이라는 이름으로 이 녀석의 존재를 학계에 처음 선보일 당시 모식종으로 동정된 세라투스종(''D. serratus'')의 모식표본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할리빌층(Harleyville Formation)에서 발견된 상악골 일부 및 이빨 화석 몇 점으로만 이루어져있었다. 다만 그는 이빨 형태에서 당시 제우글로돈(''Zeuglodon'')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곤 했던 바실로사우루스의 것과 상당한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점에 주목하였으며, 이후 모식표본이 확보된 장소를 다시 찾아 추가 발굴 작업을 진행한 결과 하악골과 미추골 몇 점을 발견한 뒤에는 이 녀석이 독자적인 속이 아니라 바실로사우루스의 어린 개체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기존에 부여한 학명을 철회한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848년에 고생물학자 장 루이 R. 애거시즈(Jean Louis R. Agassiz)의 분석 결과 다시금 바실로사우루스와는 구분되는 별개의 속으로 분류되긴 했지만, 이후로도 도루돈속은 여러 차례 바실로사우루스속의 동물이명으로 통합되었다가 복권되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모식종 또한 이 와중에 바실로사우루스속의 세라투스종(''B. serratus'')으로 재명명되거나 아예 브라키스폰딜룸종(''B. brachyspondylum'') 같은 다른 종의 동물이명으로 흡수되는 등의 부침을 겪었는데, 여기에는 지금까지 축적된 모식종의 화석 자료가 상당히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애시당초 화석 표본이 발굴된 사례 자체가 적은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중 미추골이나 두개골 일부 등은 아예 소실되어버렸고,[2] 현재 확인된 골격 부위에서 나타나는 해부학적 형질만으로는 바실로사우루스나 지고리자(''Zygorhiza'')처럼 비슷한 시기에 공존한 여타 원시 고래들과 구별지을만한 뚜렷한 특징을 뽑아내기가 어렵다고 평가되기 때문.
이처럼 모식종이 사실상 모식종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현 시점에서 알려진 도루돈에 관한 정보는 대부분 이집트의 비르켓카룬층(Birket Qarun Formation)에서 발굴된 아성체 화석 표본을 토대로 명명된 아트록스종(''D. atrox'')에 관한 연구 결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1906년 학계에 최초로 소개될 당시에는 프로제우글로돈(''Prozeuglodon'')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이후 한동안은 같은 지층에서 발굴된 바실로사우루스속의 이시스종(''B. isis'')의 어린 개체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시스종에서 떨어져나와 지금처럼 모식종과 함께 도루돈속의 유이한 구성원으로 재동정된 것은 1990년대 초엽의 일로[3] 아트록스종의 새끼 화석 표본 같은 자료가 지속적으로 추가된데 따른 것이며, 여기에 한때 별개의 종으로 여겨졌던 스트로메리종(''D. stromeri'') 등을 흡수하면서 현재는 전신골격 거의 대부분이 파악 가능할 정도가 되어 원시고래아목에 속한 여러 고생물 중에서도 골격 보존률이 매우 양호한 경우 중 하나로 손꼽힌다.
과거 많은 고생물학자들이 이 녀석을 바실로사우루스의 일종 또는 어린 개체라고 여겼던 것이 나름 이유가 있었다 싶을 정도로 바실로사우루스와 유사한 점이 많이 발견되는데, 당장 두개골부터 살펴보면 현생 고래류에 비해 윗턱뼈가 압축된 정도가 덜한 편이고 코뼈도 비교적 주둥이 가까이 붙어있어서 멜론 기관[4] 이 자리잡을 공간이 없었으리라 추정된다는 점과 위쪽을 향해 나 있는 콧구멍의 존재가 확인된다는 점이 비슷하다. 또한 주둥이에 돋아난 40여 개의 이빨도 전상악골과 전하악골에 나있는 이빨들의 경우 뾰족한 원뿔형인 반면, 그 뒤에 늘어선 삼각형 이빨들은 가장자리에 뾰족뾰족한 치상돌기가 돋아나 날카로운 형태였다는 공통점이 나타난다. 이 외에도 현생 물개 같은 기각류와 마찬가지로 팔꿈치 관절의 존재가 확인되는 앞다리를 가졌고, 뒷다리가 단순히 크기만 작아진 것이 아니라 아예 골반뼈가 척추와 연결되어있지 않아서 움직임 자체가 매우 제한적이었으리라 추정된다는 것도 바실로사우루스와 닮아있는 부분이다.[5]
사지보다는 주로 꼬리의 상하 운동에 의해 발생한 추진력을 이용해 헤엄쳤을 것으로 보이는 이 녀석의 수영 속도를 학자들이 분석해봤더니 대충 시속 40km 정도 되었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는데, 이를 이 녀석의 이빨 형태와 몸집 등의 정보와 함께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주로 작은 물고기나 두족류, 조개 같은 연체동물을 먹고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성체의 몸길이 추정치가 고작 5m 정도로 비교적 작은 편이었기 때문에 갓 태어난 새끼나 아성체의 경우 당시 바다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던 바실로사우루스나 거대한 상어인 카르카로클레스속(''Carcharocles'')[6] 의 소콜로비종(''C. sokolovi'') 등에게는 좋은 먹잇감 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어느 새끼 도루돈의 두개골 화석 표본에서 바실로사우루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빨 자국이 남아있는 상태로 발견된 사례가 보고된 적도 있었을 정도.
국내에서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전신 골격 표본이 전시되어있어 관람이 가능하다.
3. 등장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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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의 유명한 다큐멘터리 공룡대탐험의 후속작으로 2001년에 방영된 6부작 다큐멘터리인 고대 야생 동물 대탐험의 2부 '바다의 사냥꾼(Whale Killer)'에서 등장한 여러 고생물 중에 하나다. 암컷 바실로사우루스 같은 위협적인 천적의 공격을 피해 야트막한 석호 지대에서 새끼들을 공동양육하는 습성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작중 주인공 포지션으로 출연한 암컷 바실로사우루스가 근처에 나타나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며 몇몇 성체 도루돈들이 합동으로 바실로사우루스에게 몸싸움을 걸어 쫓아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임신한 상태에서 이미 여러 차례 사냥에 실패한 탓에 충분한 영양 공급이 절실한 상황에 처해있었던 암컷 바실로사우루스는 결국 도루돈들의 저지를 뚫고 석호 안으로 난입하는데 성공하게 되고, 이후 도망갈 곳이 마땅찮아진 새끼 여러 마리가 좋은 단백질 공급원 신세로 전락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출연 종료.
그 뒤 BBC에서 2003년에 방영한 3부작 다큐멘터리 Sea Monsters의 두번째 에피소드에서 지구 역사상 네번째로 위험한 바다로 소개된 3600만년 전 에오세 후기 무렵의 바다에 관한 에피소드에서도 출연했다. 다만 비중은 전작에 비하면 거의 배경급에 가까운 수준으로, 지금의 이집트 카이로 지역에 해당하는 맹그로브 지대의 얕은 바다에서 나이젤 마빈이 스노클 장비를 착용하고 아르시노이테리움과 함께 수영을 즐기고 있을 때 그 주위에서 헤엄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전부다.
2009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Morphed: When Whales Had Legs'에서는 전체적인 생김새나 무리를 짓는 습성 등이 돌고래를 연상시키는 원시 고래라고 언급되며, 비록 몸길이 5m 정도로 작은 덩치여서 훨씬 거대한 포식자인 바실로사우루스에게 종종 잡아먹히기도 했지만 이후 발생한 환경 변화에 의해 바실로사우루스가 멸종한 뒤로도 한동안 명맥을 이어나가는데 성공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7] 다만 작중 나레이션은 마치 도루돈이 바실로사우루스를 제치고 현생 고래류의 조상이 된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도루돈이 바실로사우루스보다 대략 100만 년 정도 더 늦게까지 살아남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양쪽 다 현생 고래류와 같은 조상을 공유하는 친척뻘일 뿐이지 직접적인 조상은 아니다. 게다가 굳이 계통분류학적으로 따지자면 최근에는 바실로사우루스가 도루돈보다 더 현생 고래류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것으로 분류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추세라 사실상 고증오류라고 봐도 무방할 듯.
네모바지 스폰지밥 시즌 3에서 원시시대 컨셉으로 나온 두번째 스페셜 에피소드인 쥬라기 스폰지밥에 고래 비슷하게 생긴 바다 생물이 잠깐 등장하는데, 일부 팬들 중에서는 이 동물이 도루돈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 듯 하다. 작중 역할은 스폰지밥이 쓰던 자명종과 비슷한 울음소리를 내서 스폰지밥의 조상격으로 설정된 캐릭터가 이 울음소리 때문에 굴러떨어진 바위에 맞아 일어나도록 만드는 것.
[1] 공교롭게도 중생대 백악기 후기에 나타나 무려 백악기 말의 대멸종을 견뎌내고 에오세 후기까지 생존했던 원시 경골어류의 일종인 엔코두스와 속명의 의미가 거의 판박이 수준이다. 엔코두스의 경우 그리스어로 작은 창 따위를 지칭하는 '엔코스(ἔγχος, enchos)'와 특정한 이빨이 달린 존재라는 뜻의 라틴어 접미사인 '-오두스(odus)'를 합쳐 만든 것이기 때문.[2] 공교롭게도 없어진 표본과 모식표본의 발견 장소가 1940년대 초엽 피노폴리스 댐(Pinopolis Dam)의 건설로 생겨난 몰트리 호(Lake Moultrie)에 수몰되어버리는 바람에 해당 지역에 대한 재조사 시도조차 불가능해졌다는 것이 안타까움을 더해주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모식종의 화석이 미국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와 조지아 주 등 북아메리카의 일부 지역에서만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미래가 그리 밝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3] 한때는 이들 외에도 이집트의 카스르엘사가층(Qasr el-Sagha Formation)에서 출토된 화석 표본을 근거로 명명된 오시리스종(''D. osiris'')과 지텔리종(''Z. zitteli'') 등 서너 종이 더 있었다. 하지만 1992년에 오시리스종이 사가케투스(''Saghacetus'')라는 별도의 속으로 독립해나가고 나머지 종들은 오시리스종의 동물이명으로 흡수되었고, 이에 따라 도루돈속에는 모식종과 아트록스종만 남게 된 것.[4] 이빨고래류의 이마 부분에 자리잡고 있는 일종의 기름주머니로, 내용물에서 멜론 냄새가 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정확한 용도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관련 연구가 진행 중에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물 속에서 반향정위를 할 때 고래가 쏘아보내는 음파를 증폭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알려져 있다.[5] 이처럼 외형상으로는 여러모로 비슷한 부분이 많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녀석이 바실로사우루스와 아과 수준에서 다르다고 보고 있다. 바실로사우루스의 경우 흉추 말단부와 요추, 근위천미골 부분이 좁다랗고 길쭉하게 뻗은 모양새를 하고 있고 윗턱에 돋아난 큰어금니 안쪽에 융기부가 없다는 점 등의 해부학적 특징을 공유하는 근연속 바실로테루스(''Basiloterus'') 등과 함께 바실로사우루스아과(Basilosaurinae)를 이루고 있는 반면, 이 녀석은 바실로사우루스과를 구성하는 원시 고래들 중 바실로사우루스아과에 소속되지 않은 녀석들을 아우르는 분류군인 도루돈아과의 대표격이기 때문이다.[6] 지구상에 등장한 가장 거대한 상어로 유명한 메갈로돈을 거느리고 있는 속이기도 한데, 일부 학자들의 경우 이를 오토두스(''Otodus'')라는 또 다른 속 산하의 아속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둘 중 어떤 속명을 사용하는지는 연구자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7] 작중 설명에 따르면 남극 대륙이 여타 대륙과 분리된 이후 점차 얼어붙기 시작하면서 전지구적인 해수의 온도 및 해수면 높이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는데, 얕은 바다에서 활동하기에 적합한 몸 구조로 진화했던 바실로사우루스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한 반면 도루돈의 경우 깊은 바다에서도 얼마든지 활동이 가능한 몸 구조를 하고 있었던 덕분에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