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른 전쟁

 

'''Dornish Wars'''
1. 개요
2. 목록
2.2. 제2차 도른 전쟁 (37 AC)
2.3. 제3차 도른 전쟁 (61 AC)
2.4. 제4차 도른 전쟁 (83 AC)
2.6. 제6차 도른 전쟁
2.7. 결말
3. 여담


1. 개요


칠왕국 설립 이후 타르가르옌 가문웨스테로스 통일을 숙원으로 삼으면서 아에곤의 정복 당시의 4AC부터 평화적으로 합병된 187AC까지 벌어진 도른 공국과의 크고 작은 전쟁들을 일컫는 말이다.
일단 계기는 칠왕국이 도른을 정복하려 한것이 먼저지만, 도른 쪽에서 먼저 친 적도 많았다. 도른은 칠왕국의 침공을 막아내는데는 성공했으나 기본적으로 도른의 국력이 칠왕국보다 열세였기에 도른이 입은 피해도 막심했다.

2. 목록



2.1. 제1차 도른 전쟁 (4-13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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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도른 전쟁으로 아에곤의 정복에서 아에곤 1세가 도른을 정복하려 한 전쟁이다.

2.2. 제2차 도른 전쟁 (37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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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에니스 1세 치세에 독수리 왕이라고 일컬어지는 자가 붉은 산맥에 수천 명의 부하를 모으고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 초기 도른 변경백들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고 도른의 대공 데리아 마르텔은 겉으로는 이들을 비난했지만 이들이 도른을 약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치하여 그 세력은 거의 3만 명에 달하게 되었다.
독수리 왕은 병력을 둘로 나누어 스완 가문의 스톤헬름과 탈리 가문의 혼 힐을 포위했으나 포기하고 서쪽으로 진격했다. 하지만 이게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다.
이를 진압한 것은 오리스 바라테온과 샘 탈리 등의 도른 변경백들이었다. 이를 독수리 사냥이라 부르며, 이 때 독수리 왕을 지원했던 윌 가문의 가주 월터 윌이 오리스에게 잡혀 사지를 절단당한다. 독수리 왕은 알몸인 채로 묶여 굶어 죽는 최후를 맞이했다.

2.3. 제3차 도른 전쟁 (61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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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에하에리스 1세의 치세에 벌어졌다. 수천에서 수만명의 군대를 이끈 첫번째 독수리 왕에 비해 수백명에 불과했지만 기습과 은신에 능하여 신출귀몰하게 치고 빠졌다를 반복했고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특히 로가르 바라테온의 동생이었던 보리스 바라테온이 여기에 가담했다. 늙고 지친 로가르 바라테온이 이 자를 토벌하면서 사실상 죽을 생각으로 자에하에리스를 찾아갔는데 감동한 자에하에리스 왕이 직접 드래곤 버미소르에 타서 토벌을 지원했다
자에하에리스는 용을 타고 은신처들을 하나하나 불태웠다. 보리스 바라테온은 자에하에리스와의 일기토에서 죽었고 독수리 왕은 사로잡힌 뒤 로가르 바라테온에게 덤벼들었다가 도끼에 죽었다. 이 당시 전염병 때문에 떨어진 왕권을 회복했다고 한다.

2.4. 제4차 도른 전쟁 (83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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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개의 촛불 전쟁", "모리온 대공의 광기"이라고도 불린다.
모리온 마르텔 대공은 아버지의 친 칠왕국 정책이 물러터졌다고 생각하며 다시는 붉은 산맥 밑을 넘보지 못하게 해주겠다며 함대를 고용한 뒤 스톰랜드를 기습 침공해 점령하려고 했으나...
자에하에리스 1세는 첩자들을 통해 도른군의 기습 계획을 이미 알고 있었고 상륙하기도 전에 아들들인 아에몬, 바엘론과 함께 각각 용 버미소르, 카락세스, 바가르를 타고 도른 함대를 전부 불살라 버렸다.
칠왕국 측에서는 한 명의 병력 손실도 없이 하루만에 적들을 전멸시킨 유일한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2.5. 제5차 도른 전쟁 - 도른 정복 (157-161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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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일시적이지만 칠왕국이 도 없이 도른을 마침내 정복하는데 성공한 전쟁이다. 문서 참조.

2.6. 제6차 도른 전쟁


암군으로 유명한 아에곤 4세가 주전파의 입김을 받고 친 도른파였던 아들도 견제할 겸 또다시 도른 정벌을 계획했으나, 암군답게 본격적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처절하게 망했다.
첫번째 시도에서는 함대를 조직하여 선전포고없이 쳐들어가려 했지만 폭풍으로 박살났고, 두번째 시도에서는 연금술사 길드를 시켜 드래곤 모양의 와일드파이어 병기를 개발하여 쳐들어가려 했지만 가기도 전에 홀라당 타버렸고 킹스우드까지 산불로 번져 수백명이 죽었다고 한다. 이후 도른을 침공하겠다는 소리는 다시는 입에 꺼내지도 않았다고 한다.

2.7. 결말


도른의 칠왕국 편입은 훗날 다에론 1세와 같은 이름을 가진 다에론 2세가 결혼동맹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성공시켰으나, 두 차례의 원정으로 쌓인 도른에 대한 반감은 여전했고 통합된 칠왕국에서 새로운 갈등을 일으키는 한 요인이 되었다.

3. 여담


십자군 전쟁레콩키스타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 같다. 작가가 베트남 전쟁 징병에 양심적 거부를 한 전적도 있는 것을 보아 베트남 전쟁에서도 따온게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다. 용=폭격기로 대립하면 어느정도 말이 된다.
칠왕국에 중앙에서 지휘하는 상비군이 없는 이유가 정복에 실패한 원인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이에 반론으로 도른은 알안달루스 시절의 스페인, 레반트 등을 모티브로 했으며 특히 스페인은 근세 최강의 군대라 평가받는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 군대를 상대로 게릴라 전술을 통해 물리친 역사가 있다.[1]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고려한다면 중앙집권화된 상비군을 갖추고 다에론이 공격했더라도 승리를 거두는 시나리오는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른 의견으로, 어쩌면 칠왕국이 닥치고 섬멸전으로 갔으면 이겼을 수도 있다. 압도적인 물량을 바탕으로 한 주도면밀한 학살, 청야전술로 가는 섬멸전으로 나간다면 제아무리 게릴라전으로 저항한다 해도 결국엔 패배하게 된다.[2] 아에곤 1세 본인도 라에니스가 전사한 뒤 작전을 바꿔 일단 불태우며 파괴하고 보는 청야작전 및 섬멸전으로 나아갔으며 어느정도 효과를 보였다. 물론 이는 복속이라는 1차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니 의미를 잃어버린다는것이 문제. 그리고 애초에 섬멸을 목적으로 한 전쟁은 단순 복속을 위한 전쟁보다 난이도가 높다. 피정복민들의 저항이 그만큼 거세지기 때문. 앞서 말한 섬멸전 사례들도 섬멸시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입은 피해도 상당했다.[3]

[1] 물론 이때 프랑스는 영국, 러시아와 싸워야 했으며 반란이 일어난 스페인에 대규모의 병력을 투입할수 없었던것도 있다. 특히 애초부터 러시아 원정은 프랑스 내에서도 반대가 심했는데 나폴레옹이 강행하였고 그결과 참담한 실패로 끝나면서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이어진다.[2] 준가르가 좋은예인데 맨 처음에는 청나라가 복속만 시키려고 했지만 준가르는 끝까지 거부하고 게릴라전으로 큰 피해를 입히자 청나라도 복속을 포기하고 섬멸전으로 나가 결국엔 준가르 민족 자체가 멸족된다. 일본의 남한 대토벌 작전 역시 섬멸전에 게릴라전으로 저항하던 항일 의병이 당해내지 못하고 전부 몰락한다. 남미의 마푸체인들도 칠레아르헨티나와의 전쟁에서 게릴라전으로 저항했으나 결국엔 칠레, 아르헨티나의 압도적인 물량과 주도면밀한 섬멸전을 당해내지 못하고 몰락했다. 체첸 분쟁에서도 체첸인들이 러시아의 초토화 전술에 패배하고 복속된다. 다섯 왕의 전쟁 때 라니스터 가문에게 섬멸전을 당한 리버랜드도 초토화되어 저항력을 상실하고 칠왕국에 다시 복속된 상황.[3] 게다가 아에곤 시기는 정복전쟁이 아직 진행중이었던 때라 다른 지역들의 지배권을 완전히 확립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아에곤이 자기 아내이자 전략병기이기도 했던 라에니라와 메렉세스를 잃었음에도 섣불리 재침공을 하지 못한 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