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몬

 

1. 개요
2. 특징
3. 일반적인 제원과 무장
4. 실전에서의 활약
5. 쇠퇴
6. 갈레아(Galea)와 드로몬드(Dromond)
7. 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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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mon'''(그리스어:δρόμων)
동로마 제국이 사용한 갤리 타입의 군선.

1. 개요


5세기부터 12세기까지 동로마 제국이 사용한 군선으로서 동로마의 주력함. 드로몬은 그리스어로 달리다는 뜻을 지닌 '드로모스'에서 유래하였으며, '주자'(走者-runner)라는 뜻에 가깝다.[1] 중세 함선 발달에 큰 영향을 준 배이다.

2. 특징


목재선이라 현재 남아 있는 드로몬이 없으므로 특징에 관해 100% 확실하게는 말할 수는 없으나, 동로마 제국의 주력함인 만큼 사료로 남아 있는 서적 등의 기술이나 그림 등은 적지 않아서 이를 통해 드로몬의 특징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드로몬은 고대 로마의 군선 중 소형 배인 Liburna(Liburnian이라고도 한다)에서 발전된 함선이다. 얼핏 보기에는 고대 로마의 군선과 비슷해 보일 수도 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확연히 다른 특징이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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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트리레메(삼단군선)[2]
동로마 제국의 드로몬
보통 게임 같은 매체에서 드로몬이 등장하면 그리스의 불을 사용한 것으로 특히 유명하지만 해양사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드로몬은 그보다 더 중요한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다. 중세부터 대항해시대까지 지중해 세계의 군선은 드로몬을 기준으로 하여 발달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종범인 라틴 세일의 채용'''. 라틴 세일(삼각돛)은 고대 로마 시절인 기원전 1세기쯤부터 알려졌으나 어선이나 연락선 같은 작은 배에 주로 사용되었고 본격적인 군선으로 사용된 것은 드로몬이 처음이다. 물론 순풍이 불 때는 횡범인 스퀘어 세일(사각돛)이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지만, 역풍이 불 때 사각돛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이에 반해 종범(fore-and-aft rig)은 역풍이 불어도 어느 정도 속도를 낼 수 있어 지중해처럼 풍향이 자주 바뀌는 곳에서는 훨씬 더 유용하다. 따라서 드로몬 이후 등장하는 지중해의 군선은 대항해시대가 되기 전까지는 종범을 주력으로 채용하게 된다.[3] 이렇게 라틴 세일은 여러 모로 유용한 점이 많지만 조작이 스퀘어 세일보다 훨씬 복잡하여[4] 항해 기술에 대한 이해가 더 많이 필요했으므로 고대 로마 시절보다 항해 기술이 더 발달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드로몬이 처음부터 라틴 세일을 채용한 것은 아니었고 스퀘어 세일을 장착한 것도 있었으나, 프로코피우스의 저술에 따르면 벨리사리우스가 원정을 떠난 6세기부터는 라틴 세일을 장착한 것이 확실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후 모든 드로몬은 라틴 세일을 주된 돛으로 채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 특징은 선체 건조 방식이 장부맞춤식[5]에서 뼈대식 구조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예전보다 더 발달된 공법으로 이로 인해 과거의 배보다 더 튼튼하고 더 유연한 선체를 지니게 된다. 향후 일반적인 서양식 범선은 뼈대식 구조 방식을 기본으로 갖추게 된다. 이 변화 역시 한번에 바뀐 것이 아니라 고대 로마 말기에서 부터 점진적으로 바뀌어 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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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의 뼈대식 건조방식)
세 번째 특징은 충각의 위치가 홀수선 아래에서 위로 올라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은데 가장 유력하게는 구조상의 문제라는 점이나,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혹은 그리스의 불을 사용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충각전술이 고대 그리스-로마 시절보다 중요성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이전까지 사용하던 이단군선이나 삼단군선의 경우에는 노와 노 사이에 갑판이 없는 경우도 있었으나, 드로몬은 완전한 갑판을 깔아 복층 구조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참고로 복수의 마스트는 삼단군선도 채용한 경우가 있었으므로 이는 드로몬만의 특징은 아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드로몬은 중세 초기에 알려진 최신 항해 선박 기술을 적용해 만든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배였다는 점이다.'''

3. 일반적인 제원과 무장


이름에서 보듯이 당시로서는 빠르고 기동성이 좋은 배였다. 초기인 6세기 무렵의 드로몬은 1단노선인 리부르나에서 발전한 만큼 1단노열(모노레메)에 50개 정도의 노와 한개의 마스트만을 갖고 있었지만, 이후 이슬람 세력이 강성해짐에 따라 드로몬도 점차 대형화된다.
10세기쯤에 이르면 일반적인 드로몬의 경우 2단 노열에 108개에서 120개의 노를 갖추고 있었으며 120명에서 160명 정도의 승무원을 탑승할 수 있었다. 길이는 32 ~ 40m 정도이며 5.5m 정도의 폭을 지니고 있었고 보통 2개에서 3개의 마스트를 갖추고 있었다. 하단 갑판에 25명, 상단 갑판에 35명씩 양현에 각각 50명 이상의 노꾼이 있었고 상단 갑판의 노꾼은 접전시 해병의 역할을 하기도 했던것으로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요즘 알려진 드로몬은 바로 이 비레메 드로몬을 기준으로 한다. 대형 드로몬의 경우는 9세기 무렵부터 알려졌으며 3단 노열에 230개의 노와 70명의 해병을 태울 수 있었다.
드로몬의 무기로는 '''그리스의 불이라 불리는 일종의 화염방사기를 장착'''하고 있었으며 이외에 노포를 장착하고 있었고 선박 후미에는 궁수가 사격하기 좋게 나무탑이 세워져 있는 경우도 많았다. 여기에 더해 충각과 도선-접전을 벌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적함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 실전에서의 활약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7세기의 활약이다. 672년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칼리프인 무아위야 1세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기 위해 세 개의 대규모 함대를 파견한다. 이슬람 함대는 터키 북서부인 키지쿠스 지방에 정박해 동로마 제국의 해안선을 봉쇄하고 이슬람 육군의 상륙을 준비할 수 있는 기지를 만들었다.
677년 동로마 제국의 황제인 콘스탄티노스 4세는 이 같은 봉쇄를 뚫기 위해 금각만에서 드로몬 함대를 출격시켜, 마르마라 해에서 이슬람 함대와 맞부딪히게 되었다. 자세한 전투 과정은 전해지지 않지만 제국의 함대는 적어도 3~4배의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불의 활약으로 대승을 거두고, 이슬람 함대의 총사령관인 '야지드 이븐 샤가라'를 전사시킨다. 동로마 제국은 육지에서도 승리를 거두어 이슬람 군대를 후퇴시키는 데 성공한다. 완승을 거둔 제국은 이슬람 측으로부터 매년 50명의 노예와 50마리의 말과 3,000 노미스마타의 금을 받는 조건으로 평화협정을 맺는다.
이슬람과의 전쟁에서 재미를 본 콘스탄티누스 4세는 680년 남하하던 불가르인과 맞서기 위해 본인이 직접 드로몬 함대를 이끌고 흑해로 진출한다. 하지만, 육지에서 아스파루흐(Аспарух)에게 패해 불가리아 제1제국이 성립하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이후로도 바이킹, 러시아, 베네치아, 피사인들과의 전투에서도 드로몬은 주력함으로 활약한다. 또한 동로마 제국은 불가리아와 수차례 맞붙게 되는데, 대표적으로는 아켈로스 전투(Battle of Achelous-917)에서 다뉴브 강을 봉쇄하기도 했다. 다만 이 전투는 동로마 제국 육군의 참패로 끝난다.

5. 쇠퇴


그러나 13세기 초에 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면서 라틴 제국이 세워짐에 따라 동로마 제국이 분열되었고, 니케아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탈환하면서 동로마 제국을 재건하지만, 이미 힘을 잃은 제국은 유지비가 많이 드는 해군을 유지할 여력이 없었다. 1285년 황제인 안드로니코스 2세가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배 80척을 해체하면서 해군을 포기함으로써 드로몬도 사라졌다.
이때부터 동로마 제국은 제노바 공화국이나 베네치아 공화국의 군선을 이권을 주고 고용하는 방식으로 바꾸게 된다. 이후 안드로니코스 2세는 베네치아 공화국와의 두 차례 전쟁에서 지면서 1320년에 해군을 부활시키기 위해 20척을 만들려고 했으나 돈이 없어 포기하고 만다. 이후로도 동로마 제국은 어떻게든 해군을 부활시키려 노력했지만 1332년 후계자인 안드로니코스 3세가 간신히 작은 군선 10척을 만드는 게 한계였다. 하지만 아래 항목에서 설명하듯 드로몬은 지중해 각국의 군선으로 발전해 나가며 명맥을 이어가게 된다.

6. 갈레아(Galea)와 드로몬드(Dromond)


9~10세기 이후의 드로몬은 제국 해군의 중핵을 담당하는 주력함이었으므로 드로몬 말고도 정찰이나 연락 용도의 소형 군선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갈레아이다. 갈레아는 그리스어로 작은 상어를 뜻하는 galeos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며, 이 갈레아에서 영단어 갤리가 유래하게 된다. 이후 15세기쯤부터 전 유럽에 갤리라는 단어는 노와 돛을 갖고 있는 배를 싸잡아 일컫는 말이 되고 한국어에서 말하는 갤리선도 여기서 유래한다. 갈레아는 기본적으로는 드로몬과 유사하지만 1단 노열에 60명 정도의 승조원이 탑승하는 좀 더 작은 배였고, 정찰 임무에 투입되거나 함대 주력의 측면에 위치해 기동성을 발휘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베네치아 갈레아스 같은 갈레아스(Galleass) 타입의 배는 바로 이 갈레아가 원형이며 심지어는 노조차도 없는 완전 범선인 갈레아스(Galeas)[6]조차도 여기서 이름을 따왔다.
드로몬드(Dromund라고도 하며 불어로는 Dromont라고 한다)는 서유럽에서 사용한 배로 이름부터 딱 드로몬에서 가져왔다. 별달리 설명할 것은 없고, 그냥 서유럽에서 드로몬을 카피해서 만든 배. 12세기에서 15세기까지 유럽 각국에서 사용되었고 범선이 발달함에 따라 사라져 갔다.

7. 매체에서의 등장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에서는 3편과 5편, 6편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고유 유닛으로 나온다. 4편은 카타프락토이만 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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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 워 시리즈에서는 중세를 다룬 미디블2: 토탈 워와 동서 로마 분열기인 토탈 워: 아틸라에 등장.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에서도 드로몬으로 출현. 그리스는 있지만 비잔티움 제국이 없어서인지 여기서는 유니크 유닛이 아니라 일반 유닛이다.

[1] 단봉낙타의 영어명인 'Dromedary'의 어원과 같다.[2] 고대 그리스살라미스 해전 시절부터 로마 공화정 시절 포에니 전쟁까지는 삼단군선이 주력으로 사용되었으나, 카이사르의 내전 이후는 로마가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해 이런 큰 군함이 상대할 만한 적이 없었고, 군선들의 상대는 주로 해적들이었으므로 이보다 더 작고 빠른 비레메(2단군선)와 비레메보다 더 작은 리부르나가 로마 해군의 주력이 된다. 어쨋든 유명도는 보기에 더 웅장한 삼단군선 쪽이 당연히 더 유명하다. 비레메와 트리레메는 크기를 제외하고 근본적인 기술적 차이는 별로 없으므로 여기서는 더 유명한 삼단군선과 비교한다.[3] 물론 대항해시대 이후에도 지벡처럼 라틴 세일만 사용하는 범선도 있었다.[4] 참고로 지브, 스테이세일, 톱세일, 톱갤런트 세일, 플랭커 등을 장비한 17세기 이후 순수 범선의 경우는 역풍에서도 횡범으로 항해할 수 있는 대신에 종범보다도 조작이 복잡해진다. 반면에 항해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고대 갤리선은 역풍이 불때는 그냥 스퀘어 세일을 내리고 노를 이용했으므로, 라틴세일보다 조작이 쉬웠다.[5] 간단히 말하자면 레고처럼 목재를 끼워 맞추는 방식.[6] 갤리선이 아니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발트 해북해에서 사용된 소형 범선. 케치와 아주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