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리선

 

1. 개요
2. 역사와 실제 활용
3. 갤리선의 몰락
4. 관련 자료
5. 대중매체에서의 갤리선
5.1. 영화
5.2. 게임
5.3. 소설
6. 미니어쳐
7. 유명한 갤리선


1. 개요


'''Galley'''
고대에서 중세에 걸쳐 지중해의 지배자였던 범선의 한 종류다. 그리스로마에서 주로 사용했지만, 이집트페르시아에서도 유사한 배들을 사용했고 그 배들도 갤리라고 부른다.
노를 주로 쓰고 돛을 보조로 쓴다라고 국내 사전에는 나와있지만 '''실은 그 반대이다.''' 노를 젓는다는 건 상상 이상의 중노동으로서, 제아무리 숙련된 노잡이라고 할지라도 노만으로 배를 움직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전투시 민첩한 기동을 위해 노에 집중하던 군함도 평상시에는 돛으로 다녔다. 더욱이 당시의 노 젓기법은 수많은 노잡이들이 전부 작은 노를 하나씩 붙잡고 젓는 '''센실레(alla sensile)'''[1] 방식이라 비숙련자가 손을 댔다간 노가 엉켜 대참사를 일으키기 쉬웠다.
때문에 당시 갤리선의 노잡이는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철저하게 자유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노예 노잡이들은 나라가 망할 것 같은 비상상황에서나 보이는 존재들이고, 이 경우 비숙련자들인 노예들의 사기라도 올려 노를 열심히 저을 수 있도록 해방을 약속해주었다.
이처럼 노잡이들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재산이나 병역이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던 고대 지중해의 아테네에서는 빈민층도 부유층과 대등한 정치적 권리를 가지는 민주주의가 정착할 수 있었다. 육군 중심 국가였다면 중장보병 정도는 되어야 병역에 기여했음을 인정받아 어느 정도의 정치적 권리를 가질 수 있었다. 즉, 값비싼 중장보병의 무기와 갑옷을 마련하고 유지할 수 있는 재산이 있어야만 참정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아테네는 해군도 중시되었고, 그만한 활약과 공적을 보였다. 그래서 무기와 갑옷을 마련할 돈이 없는 빈민층들도 해군의 노잡이로 기여하면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고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2. 역사와 실제 활용


갤리선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지중해는 대양과 달리 바람이 불규칙하고 변덕스러웠기 때문에 상선이고 전투선이고 할 것 없이 노라는 보조 엔진을 사용할 수 있는 갤리선이 유리했고, 이쪽이 주력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투시에는 돛을 내리고 노만으로 조정하였다.
주로 3단('''트리에레스''')에서 5단 갤리선이 전투의 주력이었는데 여기서 '''몇 단이라는 것의 의미는 갑판의 수'''로서 3단은 3층의 복합갑판에 각각 노잡이와 노가 있다라는 식이다. '''즉 단수가 높을수록 노잡이가 더 많은 것이기 때문에 배의 크기와 기동성에서 유리했다.''' 당시 해전은 상대방의 옆구리를 노려 충각으로 들이받거나 나란히 접현하여 백병전을 벌이는 것이 주된 전술이었는데, 덩치도 좋고 기동성도 나은 고단 갤리선이 더 강했다.
페르시아 해군은 대부분 1단 갤리선이었기에 살라미스 해전 당시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연합군의 3단 갤리선을 이기지 못했고, 알렉산더 대왕 사망 이후 디아도코이 전쟁 무렵부터 출현한 5단 갤리선은 헬레니즘 제국 해군의 주력함이 되었다.
[image]
[image]
3단 갤리선의 노 배치 단면도.
5단 갤리선의 노 배치 단면도.
명칭은 '5단'이지만 당시 갤리선은 용골이 없다는 구조적 한계 때문에 3단 이상은 쌓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실제로는 3단 구조에 한 조의 노잡이가 5명으로 배치되어 5단선이라고 불렸다.
7단선, 10단선도 마찬가지로 실제로는 3단 구조였다.
3단 갤리선에는 없던, 노를 보호하는 돌출 구조물이 현측에 설치된 것도 중요한 개량점이다.
헬레니즘 제국들이 몰락한 후에 지중해의 지배자는 5단 갤리선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었던 페니키아인이 세운 국가, 즉 카르타고였다.
그러나 여기서 나타난 변수가 로마인이었다. 로마는 소형선 이상을 몰아본 적 없는 농경민족이었으나, 포에니 전쟁에서 신병기인 '''까마귀(코르부스)'''를 앞세워 카르타고를 격파하였다. 까마귀는 일종의 다리를 세워놓은 구조물로서 고정용 밧줄을 끊으면 상대방의 배에 내리꽂혀서 양쪽 배를 고정시켜버린다. 이렇게 되면 항해술을 발휘할 여지는 없고 잘 훈련된 로마 군단병들이 무제한으로 건너갈 수 있었기 때문에 용병과 뱃사람들로 이루어진 카르타고군보다 훨씬 유리하게 되는 것이었다.
포에니 전쟁 당시에 로마군의 5단층 갤리선은 많은 병력을 탑승시키기 위해서 카르타고 측 5단층 갤리선보다 좌우폭이 더 넓었다고 한다. 덕분에 배의 안정성이나 병력 탑승 공간 등에서 카르타고보다 유리했으나 그만큼 배의 무게가 늘어나서 속도가 줄어든 데다 배를 다루는 숙련도 등에서도 카르타고보다 떨어져서 선상백병전을 위해 가변식 도개교인 까마귀가 도입되었다.[2] 반면 카르타고 해군은 숙련된 군선 운영능력을 바탕으로 한 충각전술을 선호했다.[3]
그러나 까마귀를 장착할 경우 무게가 늘어나고 바람의 영향을 더 크게 받게 되어 결과적으로 배의 안전성이 매우 크게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고, 결국 코르부스는 얼마 안 가 사라진다. 그 대신 갑판 위에 작은 성채 같은 전투용 탑이 설치되어 접현전 시 적함의 갑판에 투창과 화살을 높은 위치에서 쏟아부을 수 있게 개량되었다.
이런 로마식 도선 전술이 먹히지 않았던 상대는 바로 켈트족. 갈리아 전기에는 로마와 켈트의 해상전에서 켈트 쪽의 배가 범선이라서 더 크고 높으면서 튼튼해 개전 초기에 켈트족이 선단을 요새처럼 사용해 높은 위치에서 아래로 원거리 무기들을 사용해 로마 해군에게 큰 타격을 입힌 기록이 나온다. 거기다가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해당 지역의 갈리아인들은 거친 바다에서의 항해 경험이 풍부했다. 그러나 당시 켈트족의 배에 이동수단이 돛밖에 없다는 점을 노려 돛을 무력화시키고, 접근전에 로마군이 더 강하다는 점을 활용해 최대한 접근전으로 끌고가 적의 배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는 전법을 사용해 로마군이 승리하게 된다. 마침 도망가던 갈리아 범선들도 바람이 멈춰서 전부 로마군에게 붙잡혔다고 한다.
[image]
아우구스투스가 세운 악티움 해전 기념비의 일부분
아래쪽의 큰 배는 5단선, 위쪽의 작은 배는 리부르니안을 묘사했다.
갑판 위에 작은 성채 같은 전투용 탑이 설치된 것이 로마 갤리선의 특징이었다.
포에니 전쟁 이후 지중해를 사실상 내해로 장악해버린 로마 제국은 해적만 퇴치하면 큰 문제는 없었기 때문에 결정적인 배의 발전이나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전면전이 없어졌으므로 점차 10단선, 5단선 등 '''퀸키어림'''들이 전부 퇴역하고 2단선인 '''리부르니안'''이 주력함으로 되었다. 리부르니안은 동로마 제국 시대에 더 개량되어 '''드로몬'''으로 발전한다.
한편 서로마 제국 붕괴 이후의 신흥 해양 세력인 베네치아제노바 같은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 역시 단수가 낮은 갤리선을 사용했다. 이런 도시국가들은 인구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노잡이들도 전투에 참가할 필요가 있었고, 그러려면 다단 갤리선은 불편했기 때문이다.
또한 근세에 들어 여럿이 하나의 큰 노를 젓는 '''스칼로치오(a scaloccio)'''방식이 보편화되면서 노잡이의 대우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 스칼로치오 방식은 노를 저을 때 제일 끝의 노를 직접적으로 부리는 노잡이만 숙련자면 충분했기 때문에(다른 노잡이들은 거드는 일만 한다) 예전처럼 숙련자가 많이 필요하지 않아 자연히 노예들을 노잡이로 부리게 되었고, 처우도 바닥을 치는 게 일반적이었다.[4][5]
여담으로 노예를 쓰는 갤리선은 배 전체에 악취가 진동했다고 한다. 수백명의 노예들이 씼지도 못하고, 땀과 오물에 절어 사슬에 묶여있기에 사람들은 갤리선이 지나가기만 해도 악취에 몸을 떨었고, 항구에서는 배가 도착하기 전에 냄새로 그 사실을 알 수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3. 갤리선의 몰락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약 1500년경을 기점으로 갤리선은 서서히 쇠퇴하게 된다.
콘스탄티노플로도스 섬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되면서 동지중해가 오스만 제국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오스만 제국이 동방의 물산을 전부 통제하자 유럽 세력 입장에서는 지중해 무역의 가치가 떨어졌으며, 게다가 이슬람 해적의 존재 때문에 상선이 위협받기까지 했다. 때문에 유럽 세력은 대항하기 힘든 이슬람 세력보다는 새로운 미지의 땅을 향해 나가는 길을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스페인,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같은 신흥 해상 강대국의 등장으로 이제 바다의 패권을 다투는 무대는 지중해에서 대서양쪽으로 옮겨갔다.
문제는 갤리선이 대서양 같은 대양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갤리선은 특성상 범선에 비해 선체가 길쭉하고 직선형인데, 이렇게 되면 구조적으로 먼 바다의 강한 파도에 취약해진다. 대서양의 풍향은 지중해보다는 훨씬 예측가능했으며, 따라서 항해 계획을 잘 짜면 노 없이 돛만으로도 얼마든지 항해가 가능했다. 게다가 갤리선은 다수의 노잡이가 필요하기 때문에 필요인원이 많고, 인원이 많으니까 상대적으로 배의 체급에 비해 적재량이 떨어지는데, 범선은 노잡이가 필요없으니 필요인원이 갤리선보다 적을 뿐만 아니라 갤리선에 비해 대형화가 쉬운 구조라[6] 적재량도 많고 경제성도 좋았다. 한편 갤리선은 노가 해수면에 닿아야하기 때문에 선체를 높이는 것도 한계가 있었으며,[7] 흘수[8]가 낮아 파도가 높은 먼 바다의 경우 파도가 칠 때마다 흔들림이 심하고 갤리선 안으로 바닷물이 들어와 침수할 위험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복합돛이 등장하면서 범선도 불규칙한 바람에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게 되면서 갤리선의 역풍에 대응에 쉽다는 장점이 무색해졌다.
대포의 발달도 갤리선의 몰락을 앞당겼다. 범선은 양 선측에 다량의 대포를 적재할 수 있었다. 자그마한 '''브릭 '''같은 범선도 20문 가까이 탑재할 수 있고, '''전열함''' 같은 본격적인 주력전함은 보통 80문, 많게는 100문이 넘게 대포를 탑재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 갤리선은 선측에 이미 노가 들어서 있기 때문에 대포를 적재하기 곤란했다. 판옥선이나 다른 범선처럼 여러 층의 갑판을 쌓고 대포 층과 노잡이 층을 분리하는 방법, 또는 '''베네치안 갤리어스'''처럼 갑판에 포탑을 증설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렇게 하자니 노 때문에 대포를 무조건 높은 층에만 배치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대포의 위치가 높으면 그 자체의 중량 때문에 무게중심 위치가 높아지고, 때문에 풍랑을 만나면 전복되기 쉬워진다. 게다가 대포를 좀 강한 걸 쓰다가는 대포 사격 반동과 파도가 합쳐져 배가 전복될 가능성이 커진다. 강한 대포일수록 대체적으로 무겁단 건 덤이다.[9] 덕분에 갤리선은 대포를 별로 탑재하지 못하는데, 가장 커다란 베네치안 갤리어스조차 14문 정도밖에 탑재하지 못했을 정도다.[10][11]
무풍지대에서는 갤리선이 좋을 것 같지만, 무풍지대는 유럽 인근 해역과 지중해에선 발생하지 않는다. 무풍지대는 적도 주변과 북위/남위 30도 인근에서 발생하는데 남유럽인 스페인조차 북위 40도(마드리드 기준)에 있고, 북위 30도는 모로코 남부까지 내려가야 한다. 그나마도 서아프리카에서는 무풍지대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멕시코 인근 해안인 사르가소 해의 무풍지대가 유명하지만, 무풍'지대'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현상은 특정 지역에서만 발생했기 때문에 그곳을 피해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따라서 애초에 그 지대로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으며, 무풍지대를 돌파하겠답시고 갤리선으로 사람이 노저어서 대서양을 건너는 무모한 생각은 그 당시에도 하지 않았다.
흔한 오해가 범선은 바람이 적당한 방향에서 불어주지 않으면 선회조차 못한다는 것인데 범선 운용에 기초 지식만 있으면 당연히 말도 안되는 소리다. 무풍지대만 아니라면 어느방향에서 바람이 불든 간단히 선회가능하다. 속도로는 산들바람만 불어도 브릭같은 중형범선은 갤리선보다 훨씬 빠른 8kn 이상의 고속력을(15세기 전후의 중세 기준) 낼 수 있으며[12] 비교적 강한 바람이 불면 갤리선으로는 꿈도 못꾸는 '''20kn 이상'''을 낼 수 있다.참고 다만, 이 같은 속도를 내기 위해선 톱 세일이나 갤런트 세일은 물론 로얄 세일, 스카이 세일 등 여러 종류의 을 장비해야 하므로 18세기 이후의 일이며, 그 이전에는 15kn 정도가 한계였다. 때문에 1600년대까지는 지중해에서 갤리선이 혼용되기도 했다. 특히 영국 등 대서양 연안 국가들보다 항해기술이 부족한 바르바리 해적들은 17세기까지 갤리선을 널리 사용했지만, 이들도 18세기 이후에는 대부분 범선으로 바꾸게 된다.
스페인은 연안 방어용도로 갤리를 운영했고 다른 나라도 해안 방어용도로 노를 쓰는 '''건보트'''를 운영한 적이 있지만, 연안방어에만 한정된 용도를 쓰느니 불편함을 감소하더라도 범선을 쓰는 게 나았고, 애초에 연안 방어의 주력은 해안포대였던 데다가 시대가 흐르면서 점점 원양에서 해전이 벌어졌기 때문에 그야말로 없는 것보단 나은 신세였다.
결과적으로 18세기에 이르면 전 지중해에서 현역으로 남아있던 갤리는 50척 정도에 불과했고, 그 절반은 지중해에서만 활동하던 베네치아 소속이었다. 심지어 18세기부터는 북아프리카의 바르바리 해적들조차 갤리선을 버리고 '''지벡'''을 사용했을 정도. 반면, 지형이 좁고 복잡하던 발트 해에서는 19세기까지도 사용되었는데 그나마도 본격적인 해전에 투입되기보다는 일종의 상륙함에 가까웠다.
현대에는 당연히 사라졌고, 아주 가끔 리인액터들이 직접 제작해서 갤리선으로 항해를 재현하는 정도로만 남아 있다. 레저, 스포츠 용으로 흔히 사용하는 카누카약 등은 갤리가 아닌 보트에 속한다.

4. 관련 자료


[image]
[image]
고대 이집트의 갤리.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 시대의 트리에레스. 그리스 해군에서 1987년에 복원한 갤리선 올림피아스 호의 사진을 복사 붙여넣기해서 만든 사진이다.
[image]
[image]
영화 벤허 초중반의 해전에 등장하는 로마 해군의 갤리선.
16세기의 갤리선 모형.

5. 대중매체에서의 갤리선



5.1. 영화


  • 300: 제국의 부활: 살라미스 해전이 배경인 만큼 당연히 등장하나, 영화 특성상 고증은 그다지 맞지 않는 편으로 대부분 전투가 충각돌진 > 백병전 패턴으로 진행된다. 즉 그냥 육상전이고, 무대를 배 위로 바꾸었을 뿐이다. 실제 당시 해상전에서는 닥치고 돌격 후 백병전이 아니라 투창이나 화살 등 다양한 원거리 무기가 사용되었다.
  • 벤허: 전차전 장면과 더불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마케도니아의 해적과 해상전 씬에 등장한다.

5.2. 게임


  • 에이지 시리즈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청동기시대로 진입하면서 기존의 정찰선을 갤리선으로 업그레이드[13]하여 사용할 수 있다.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군함의 기본형태로 등장하는데 시대가 시대여서 말이 좋아 갤리선이지 사실상 범선[14] 형태이다.
    •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 그리스의 기본 화살선으로 등장하며 포세이돈을 섬기면 갤리선 영웅 아르고 호를 뽑을 수 있다.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 캐러밸을 대체하여 오스만의 다목적 선박으로 등장.[15]
    • 엠파이어 어스: 화공선으로 등장하는데 산업시대 이후 원자시대-1차세계대전에 접어들면서 사라지게 된다.
  • 대항해시대 시리즈
    • 대항해시대 온라인: 기본적으로 선박의 장단점만을 보면, 실제 고증에 충실하게 구현되어 있다. 범선에 비해 바람의 영향을 덜받으며, 빠른 가속이 가능하지만 내파가 낮아 대양 항해에 좋지 못하며 최고 속력도 낮다. 하지만 선박 강화로 배의 스펙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위에서 언급한 단점들을 대부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양 항해용 하이엔드급 선박에도 최상위급 갤리가 꾸준히 포함된다. 앞서 말한 '낮은 최고 속력'은 갤리선의 경우 급가속 스킬을 달지 못하는 것으로 구현했는데, 시간이 지나 스킬 계승으로 급가속을 달거나 아예 급가속을 달 수 있는 갤리선이 등장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갤리선 최고 강점은 범선에 비해 매우 빠른 가속력으로, 범선도 이에 대응하여 갤리선급의 가속을 보여주는 증기선이 등장하였으나 증기선은 별도의 석탄 연료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갤리선이 여전히 강점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대항온에서는 태평양과 대서양 같은 대양에도 갤리선이 떠다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5.3. 소설


  • 폴라리스 랩소디
    • 자유 호(롱 갤리어스)
    • 흑기사 호(롱 갤리어스)
    • 페가서스 호(롱 갤리어스)
    • 질풍 호(롱 갤리어스)
    • 바다사자 호(헤비 갤리어스)
    • 물수리 호(헤비 갤리어스)
    • 그랜드머더 호(터릿 갤리어스)
    • 그랜드파더 호(터릿 갤리어스)

6. 미니어쳐


[image]
프라모델로는 러시아 즈베즈다(모형 메이커)에서 시리즈를 내놓고 있다.
분명 인기는 많지만 그 빼곡한 노로 인해 제작 난이도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또한 그 때문에 가격이 범선 모델을 가볍게 돌파하기에 제대로 된 모형을 가지고 미니어쳐 게임 해전을 벌이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 대신 페이퍼 크래프트로 만든 게임은 존재한다. 다른 회사의 미니어쳐 군단과 같이 쓰는 공생적인 모델이다.
그리고 RC모델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 안에 사공들까지 움직인다.


7. 유명한 갤리선



[1] 흔히 '''센사일'''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탈리아어이기 때문에 정확한 발음은 센실레가 맞다.[2] 로마 5단층 갤리선에서 노잡이를 제외한 탑승 전투병력은 최대 120명이었다.[3] 카르타고의 경우는 노잡이를 제외한 5단층 갤리선 탑승 병력이 최대 60~80명 정도였다고 한다.[4] 당시 노잡이들의 옷은 단벌뿐이었고, 하루에 주는 식량은 하루 한 끼에 그 수준은 다이제 비스켓 한 봉지 정도의 열량. '''이거 하나로 하루를 중노동하며 버텨야 한다.'''[5]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녹스도 프랑스에서 갤리선 노예로 구른 적이 있었다.[6] 대책없이 현측을 직선으로, 길게 설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7] 선체가 너무 높으면 적재가 없을 때와 적재가 가득할 때 선박의 높이 차이가 커서 노를 다루기 힘들었다.[8] 배가 바닷 속에 잠겨있는 깊이를 의미하며, 만재 흘수선 이상으로 배가 잠겨있다면 과다적재로 배가 침몰할 위험이 커진다.[9] 이건 범선도 사정이 마찬가지라서 아랫층엔 무겁고 멀리 나가며 반동이 큰 '롱 건'을, 윗층엔 사거리가 짧지만 가볍고 반동이 적은 '카로네이드'를 배치하는 게 보편적이었다. 판옥선은 극단적으로 연근해 항해성능만을 중시한 덕에 흘수가 낮아(= 무게중심이 높다 = 대포와 무게중심 사이의 높이차가 작다.) 대포 반동 걱정이 덜했던 케이스로 그나마도 유럽 범선에 비하면 포문수가 적었다.[10] 대항해시대 같은 게임에서는 50문 이상 탑재하는 경우도 있는데 뻥이다.[11] 다만 판옥선과 같은 동양의 갤리선들은 작은 크기임에도 꽤 많은 포를 탑재하였다.[12] 사람이 노를 젓는 특성상 근세 기준 갤리선의 평균 속도는 3~4kn이며, 일시적으로는 5kn까지가 고작인데, 이 속도는 당대에도 터무니없이 느렸다.[13] 철기시대로 발전하면 다시 한 번 삼단 갤리선 (Trireme)으로 업그레이드 가능.[14] 실제로 최종 업글 형태인 갤리온이 돼서야 이름과 외형이 일치한다.[15] 타국의 캐러밸처럼 어업, 수송, 전투가 모두 가능하다. 물론 제해권 싸움에서 이놈만 가지고 싸울 생각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캐러밸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