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진구역
1. 개요
라선특별시 산하의 구역. 나진항을 갖춘 항구도시이다.나진이라는 이름은 벌처럼 넓은 나루라는 뜻의 벌나루를 한자로 나진(羅津)으로 나타낸 것에서 유래되었다. 상세한 면적은 불명이지만 대략 500㎢ 정도로 추정된다.
과거 라진구역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2015년 11~12월경 조선중앙TV 및 대외선전사이트 '내나라' 등 다수의 북한 매체에서 '''라진지구'''로 밝혔다. 지금까지 북한 매체에서 라진구역을 언급한 바가 없으므로, 2012년 선봉지구 설치 당시에 동급으로 라진지구가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20년 11월 30일 로동신문이 라선시 큰물피해복구 보도에서 '''선봉구역'''을 언급하였으며, 12월 8일 로동신문에서 라선시 후창고급중학교 개건을 보도하면서 소재지를 '''라진구역'''으로 밝힘에 따라 라선시의 지구들이 타 도시들과 동일한 구역 체제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1월 22일 함경북도, 량강도, 라선시군민연합대회 보도에서도 박영길을 '''라진구역'''당위원회 책임비서로 소개하며 구역으로의 전환이 확인되었다.
2. 상세
현재 북한에 설치된 것으로 알려진 '지구'급 행정구역으로는 평안남도 득장지구(북창군에서 분리), 함경남도 금호지구(신포시에서 분리)와 라선특별시 산하의 선봉지구 및 본 지구가 있다. 라진지구와 선봉지구는 특별시 산하에 편제되어 있으므로 여타 직할시 및 특별시의 구역과 동급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구역이 아닌 지구라는 명칭을 쓴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 권한 등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추후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원래는 경흥군 신안면(新安面)이라는 한숨 나오는 최북단의 어촌이었지만, 만주국이 건설되고 소련군을 막을 최북단의 부동항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점점 스케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일본과 만주국을 잇는 최단거리에 위치한 탓에 종단항이 들어섰고, 일본인의 손에 이룩된 것이긴 하지만 나진은 '''한국 최초의 계획도시'''였다. 1934년 신안면이 나진읍으로 승격되었으며, '''읍으로 승격된 지 불과 2년 만'''인 1936년에 나진부(府, 오늘날의 시(市))로 승격되는 초고속 성장을 하였다.[2] 러시아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와 만주에 가깝기 때문에 교역에도 유리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서도 냉전 시기 동안 태평양으로 뻗을 수 있는 해군기지는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했기 때문에 점점 커지게 된었다.
나선지구에 송전탑을 짓고있으며, 중국이 전력을 직접 공급할 것으로 보인다.#
3. 역사
이는 라진이 가장 북단에 위치한 부동항이며, 앞바다에 위치한 2개의 섬이 천연 방파제 구실을 하고, 항 내부가 깊어서 대형 선박이 출입하기 쉽기 때문에 동만주의 외항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 이 점이 나진-선봉 일대가 경제특구로 지정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1993년까지는 함경북도에 소속되어 있었다. 광복 당시 명호역, 라진역, 웅라역 정도만 커버했던 작은 도시였던 나진시(당시 면적 137㎢)는 지금은 후창역부터 관곡역에 이르는 나름대로 넓이가 좀 되는 구역으로 성장했다. 본래는 구 부령군 관해면과 삼해면에 이르는 지역까지 커버했었지만 1993년 경제특구로 승격됨에 따라서 거의 시 면적의 절반을 청진시에 넘겨주면서 지금의 크기가 되었다.
청진시, 김책시와 함께 함경북도의 3대 항구 중 하나로 있다가 1993년에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지정됨에 따라 라진-선봉시로 개편되었다. 2001년에 라선직할시로 변경되었다. 그러다가 2004년 일반시로 격하됨에 따라서 다시 함경북도 소속으로 들어갔다가 2010년에 라선특별시로 승격되면서 라진구역이 부활된 것. 뭐 그렇다고 청진시에 넘겨주었던 구 라진시의 1/3 가량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의 라진구역의 크기는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는 않다.
이렇게 자유경제무역지대로 부상하면서 (비록 자유경제무역지대 자체는 북한의 완전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 라진구역과 선봉군에 사는 사람들은 북한에서 두 번째로 잘 사는 사람들이 되었다. '''남포특별시를 제치고!'''
4. 인근 행정구역
■ 함경북도 소속 ■ 라선특별시 소속
5. 교통편
6. 하위 행정구역
15동 2리로 이루어져 있다.
7. 행정 구역의 변화
광복 이전의 나진시 지도 (일본어) (링크짤림)
광복 당시 나진은 80개 동으로 이루어졌다.
기록 순서는 구 시/군 - 구 읍/면 - 현재의 읍/동/리/로동자구 순서.
- 구 나진시 지역
- 나진시
- 남산동
- 동명동
- 신안동
- 신해동
- 신흥동
- 안주동
- 안화동
- 역전동
- 유현동
- 지경동
- 창평동
- 청계동
- 나진시
- 구 경흥군 지역
- 풍해면
- 관곡동
- 송평동
- 무창리
- 후창리
- 풍해면
[1] 편의상 기재[2] 종단항 선정 과정에서 청진과 웅기(라진시 선봉군 일부지역) 등이 라진과 경합했고, 이 때문에 한반도 역사상 최초의 땅 투기 열풍이 불었다. 일제에 의해 이식된 자본주의와 양적 성장의 결과물이었다. 당연히 라진에다 땅을 사 놓은 사람들은 대박을 쳤고, 청진과 웅기에다 땅을 사 놓은 사람들은 쪽박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