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플린트
1. 인물
Larry Flynt
(Larry Claxton Flynt Jr.)
1942.11.01 ~ 2021.02.10
미국의 언론인으로 미국 성인 산업에서 역사적인 업적을 이뤄낸 인물 중 하나. 미국의 전설적인 하드코어 포르노잡지 허슬러의 창간자이며, 수많은 성인 잡지와 비디오를 발행했으며, 그것 보다도 아래에서 설명할 사건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1.1. 사건 이전의 삶
래리 플린트는 스트립 바와 포르노 잡지 허슬러 등으로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허슬러는 '미국인의 성생활을 그대로 보여드립니다'라는 표어 아래 당시 기준으로는 하드코어한 정사신을 그대로 노출하였으며, 허슬러에 기고되는 풍자글들도 극단적으로 직설적이라 등장인물들의 인격을 사정없이 뭉개고 모욕하였다.
때문에 당시의 보수적인 미국 법조계와 경찰에 의해 무수히 체포되고 풀려나기를 반복했으며, 성을 너무 노골적으로 상품화한다고 종교인과 기타 등등으로부터 비판을 받자[1] 플린트는 격분한다. 그 이후 허슬러는 미국의 복음전도사이자 기독교 원리주의자의 리더 격인 제리 폴웰(Jerry Falwell, 1933-2007)[2] 목사가 자신을 거론하며 비판한 것을 계기로 그를 표적으로 삼아 잡지에서 무수히 까기 시작한다. 플린트는 이러한 활동중 살해위협까지 받게 되었는데, 결국은 총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참고로 이것은 허슬러의 흑인남과 백인녀 관계 묘사에 격분한 백인 우월주의자의 소행으로 위의 사건과는 무관하다. 아무튼 이쯤되면 그만할만도 한데, 그 뒤로도 병상에 누워있기는커녕 이전보다 더욱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누가 봐도 삼류 야동 제작자에 불과한 인물처럼 보이나, 플린트는 '''단 하나의 사건으로 유명세에 오르게된다.'''
1.2. 허슬러 VS 폴웰 사건
그리고 잡지에서 기독교까, 종교까 짓을 마구 벌이다가, 더 나아가서는 폴웰 목사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게이 파티에서 애널 섹스를 하는 삽화라든지 '대법원장과 폴웰 목사 간의 XXX' 등등을 다루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1983년에는 기어코 '''폴웰 목사가 화장실에서 문란한 어머니와 근친상간을 했다는 패드립적인 내용의 패러디 광고를 실었다!''' 광고 제목은 '제리 폴웰이 첫경험에 대해 말하다(Jerry Falwell Talks About His First Time)'로, 그 당시에 있었던 캄파리 광고의 패러디다. 캄파리는 술 브랜드로, 당시 유명한 여성 모델이나 배우를 광고 모델로 하여 인터뷰 형식으로 캄파리를 처음 마신 경험에 대한 1페이지짜리 광고를 여러 잡지에 냈는데, 플린트는 이것을 폴웰 목사로 바꾸고 인터뷰에 온갖 섹드립을 넣은 것으로 바꾼 것이다. 물론 그 광고 아래 '패러디니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십시오'라고 써놓긴 했다. 눈에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작게.
폴웰 목사와 기자 사이의 인터뷰 형식인 이 광고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당연히 미국 사회는 난리가 났고, 더 이상 참지 못한 폴웰 목사는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벌였다. 이 사건이 그 유명한 '''"허슬러 대 폴웰 사건(1988)"'''(''Hustler Magazine v. Falwell'')이다. 연방대법원까지 간 이 재판에서 래리 플린트는 이 문제를 미국 수정헌법 제1조를 들어서 공인에 대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의 문제로 확대시킨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당시 미국의 사회 분위기는 종종 풍자나 정당한 비판을 당한 공인들이 명예훼손이나 정신적피해 운운하며 법정으로 상대를 끌고가 승소, 배상을 받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여기서 언론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점점더 일반의 관심을 받아가던 이 재판에서 플린트가 유죄판결을 받게되면, 이후 언론의 공인에 대한 풍자와 비판은 물건너 갈 수 있다고 판단한 미국 언론사들은 '''플린트를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7]
그리고 마침내 대법원이 내놓은 판결은... '''원고 패소, 즉 래리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을 내린 사람은 당시 대법원장이었던 윌리엄 렌퀴스트. 유명한 보수주의자라, 판결 전에는 누구나 폴웰의 승소를 예견했었다. 그러나 렌퀴스트는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림으로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대통령을 포함해 자신을 대법원장에 임명했던 권력층을 경악케 했다.
렌퀴스트의 판결문 요지는 다음과 같다 : 미국 시민의 특권 중 하나는 공적인 인물이나 정책을 비판할 권리이다. 이런 비판은 그 대상에 대한 증오나 악의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허용돼야 한다. 비판의 동기를 문제삼아 불이익을 준다면 공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며[8] , 격분해서 한 말일지라도 그 또한 ‘생각의 교환’이고 진실을 찾아가는데 기여한다. 표현의 영역에서 ‘극악무도함’은 너무 주관적인 잣대이며, 무엇보다 이 패러디 광고는 사실이 아님을 미리 밝히기도 했다.
즉 ''''공무원과 공적 인물을 풍자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공인이 입는 정신적 피해보다 표현의 자유가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면 알겠지만 사실 래리가 거창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총대를 맸다기보다는, 그냥 성질 더러운 인간이 법정싸움에서 자기에게 유리할 방법을 찾다가 표현의 자유 문제로 확대시켰더니 얼떨결에 대표가 되고 이긴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의가 어떻든 간에 결국에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서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었다. 언론사상을 배우는 대학 수업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사건이다.
1.3. 그 이후
지금도 허슬러는 잘만 발간되고 있으며[9] , 정치적 입지가 점점 강해진 래리 플린트는 정치입문도 꿈꾸고 있고 실제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적도 있다. 당 강령 중 하나가 침대 위에서의 자유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 전체가 경제 위기가 왔을 때에는 포르노 영상물 제작자 조 프랜시스와 함께 '''포르노 사업에 대한 5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도 했다. 플린트의 왈, "사람들이 너무나 낙담해 성적으로 위축돼 있다. 이는 국가로서도 매우 건강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인들은 차 없이는 살 수 있지만 섹스 없이는 살 수 없다. 의회가 미국의 성적 욕구를 회복시켜야 할 때"라는 것이다. 2013년 10월에는 자신을 저격했던 테러범 사형에 반대한다고도 밝혔다.
폴웰 목사는 나중에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유죄판결은 받은 와중에 저 세상으로 갔다. 그 뒤를 이은 꼴인 팻 로버트슨 목사[10][11] 도 만만치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또 다른 반전이 있는데, 폴웰과 플린트는 이 사건이 있은지 한참후 아래에 서술된 영화가 개봉했을때 본 사건이 다시 회자되자 함께 래리 킹의 토크쇼에 초청을 받은 것을 계기로 사적으로 자주 만나게 되었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이가 좋아졌다고 한다. 어찌보면 이 사건에서 판결 다음으로 최대의 반전이다. 이 토크쇼 이후 폴웰이 플린트를 찾아와서 자신과 함께 대학생들 앞에서 공개토론을 여는 것이 어떻겠냐 하고 플린트가 응하면서 가치관이 정반대인 두 사람은 자주 붙어다니게 되었고 폴웰이 플린트네 집에 자주 놀러오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서로 교환하는 등 친분을 유지했다. 이후 폴웰이 죽고난 다음 플린트가 그에 대한 회한을 담은 글을 신문사에 기고했는데, 여전히 폴웰의 사상이나 도덕관에 공감하지는 못하겠고 폴웰이 무슨 의도로 자신과 친구가 되고자 한건진 여전히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대중도, 나 자신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의 궁극적인 결말은 바로 우리 두사람이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란 글을 통해 폴웰을 기렸다.
빌 클린턴이 인턴과 "부적절한 관계"를 저질렀다는 약점을 잡았을 때 반대세력들은 클린턴을 백악관에서 내칠수 있다고 100% 확신했다. 한편 이 사실을 주시하고 있던 래리 플린트는 "이런 무례한 놈들!" 이라고 분개했다. 해서 본인 자신이 몸담고 있는 "업계"의 정보통을 사용해서 공화당 지도부 부터 시작해서 빌 클린턴을 공격하던 모든 세력들의 성적인 스캔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공화당의 큼지막한 비리를 캐오는 사람한테 현상금으로 한화 1억원 정도를 걸었고 그 결과가 매우 놀라웠다는 소문도 있다.
아주 소문만은 아닐 수도 있는 것이, 유명한 워싱턴의 포주였던 마담 데보러 진 팰프리 사건 때도 마담께서 고객 "1만명"의 리스트를 공개하겠다고 하자 워싱턴의 높으신 분들 상당수가 잠도 못 잤다는 얘기도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하고도 사이가 좋지 않다. 트럼프 탄핵에 1천만 달러를 걸 정도다.
이 이후 로봇 치킨이나 사우스 파크같은 패러디물에서 실존인물들을 인격적으로 오체분시 하고 다닐수 있게 된 것도 다 이 때문이다. 호머 심슨은 그와 스티븐 호킹을 구분하지 못한다.
2. 사망
2021년 2월 10일.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3. (1)의 인물을 다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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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ople vs. Larry Flynt
1의 생애를 다룬 1996년작 영화.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아마데우스>로 유명한 밀로스 포먼이 연출했고, 우디 해럴슨, 코트니 러브가 주연이다. 에드워드 노턴도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1에 설명된 그대로라고 봐도 된다. 스트립바 주인이던 래리 플린트(우디 해럴슨 분)가 선정적인 광고부터 시작하여 허슬러를 창간, 폴웰 목사와의 법적 분쟁에서 승소하기까지의 내용.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수상, 골든 글로브 감독상, 각본상 수상, 아카데미 감독상, 각본상 노미네이트 등 비평적으로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래리 플린트 역을 맡은 우디 해럴슨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고, 특히 부인인 알시아 역을 맡은 코트니 러브는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실제로 러브의 연기는 매우 뛰어난 몰입감을 보여주는데, 굳이 이유를 들자면 알시아라는 역할이 '''마약중독자 스트립걸'''이라는, '''실제 코트니 러브의 삶과 크게 빗나가지 않은 배역'''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연출한 포먼도 러브의 연기를 칭찬하기도 했고, 그 때문인지 밀로스 포먼의 차기작인 <맨 온 더 문>(Man on the Moon, 1999)에 다시 출연하기도 했다.
법정에서 나오면서 총격을 받은 이후 플린트는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는데, 언어활동에도 큰 장애를 보인다. 이는 실제 사건을 잘 반영한 연기이다.
여담으로 법정 장면에서 검사가 "당신은 종교를 혐오(Aversion)합니까?"라고 묻자, 플린트가 처녀(A virgin)? 라고 되묻는 장면이 있다. 번역가가 가장 힘들어했던 대목이라고 한다.
래리 플린트 본인도 깜짝출연했다. 최초의 신시내티 지방법원에서 변호사 말을 씹고 어눌하게 25년형을 선고하는 대단히 완고해보이는 뚱뚱한 판사가 진짜 래리 플린트.
극중에서 플린트의 동생역으로 나온 배우는 실제로도 우디 해럴슨의 동생이기도 하다.
감독인 밀로스 포먼이 체코 사람이다보니 영화 중간 중간의 드보르자크, 스메타나 등 체코의 유명 클래식 작곡가들의 곡 중에서 할리우드 내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곡들이 삽입되었다.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의 폴로네이즈, 종교음악 '스타바트 마테르' 그리고 스메타나의 '달리보르'라든지. 영화에 삽입된 곡들은 체코의 지휘자 리보르 페세크(Libor Pešek)가 지휘하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한국에서는 이 영화가 개봉될 때 조선일보 독자란에 '허슬러가 88 서울 올림픽 당시 한국은 여자들이 백인에 환장한다든지 성을 감추고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으스대지만 실상은 포르노에 환장하고, 미국처럼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까대는 한심한 나라라고 한국을 엄청 비하했는데 왜 플린트를 찬양하는 영화를 개봉하느냐? ' 하면서 엄청 까댄 글을 실은 바 있다. 그러자, 다른 독자가 '여자들이 백인에 환장한다는 비아냥을 보인게 무조건 욕먹을 일이냐? 일부라고 해도 그런 게 있고 또한 한국 개신교계에 종교적으로 문제점이 있다'는 반론을 쓰기도 했다.
[1] 다만 허슬러의 선구자이자 미국 성인 잡지계의 선두주자인 플레이보이가 처음 발간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골수 보수 기독교계에서는 플레이보이를 가리켜 거의 사탄 취급을 했을 정도(...) 미국이 개방적이고 문란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복음주의 기독교 문화가 굉장히 강해서 보수적인 부분도 많다.[2] 버지니아 주에 위치한 리버티 대학교, 신학교의 설립자이다.[3] 폴웰의 고향이다[4] 화장실에 가축이 있을만큼 시골촌구석이라는 뜻[5] 폴웰의 어머니가 못생겼다는 거다.[6] 기독교 원리주의자인 폴웰의 입에서 기독교 원리주의를 시작한 침례교를 까는 부분이 포인트.[7] 여전히 대상이 공인이 아니면 명예훼손이다.[8] 이 부분이 이 판결의 핵심이다.[9] 다만, 판매부수는 하락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온라인으로 쉽게 야동을 접하는 시대가 왔으니 더 이상 포르노 잡지를 돈 주고 사서 보기에는 시기가 지나가도 한참 지났다. 물론, 이를 인지하고 온갖 야동도 장르별로 신나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사실 펜트하우스나 플레이보이 등은 포르노 온리가 아니고, 책에 실리는 각종 유명인 인터뷰, 소설, 각종 르포, 흥밋거리 저술등도 상당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보이는 심각한 적자로 매각설이 끊이지 않고 결국 누드를 싣는 것을 포기했다.[10] 이집트 출신으로 미국 이민와서 개신교 목사가 된 가브리엘 아사드는 제리 폴웰과 팻 로버트슨을 같은 목사로서 쓰레기급이라고 악평하면서 차라리 래리 플린트가 더 낫다. 비록 변태적이고 꼭 좋은 건 아니지만 목사로서 가진 이중적 모습과 타종교(역시 이슬람에 대하여 둘 다 매우 혐오적이었기에 이슬람인이었던 아사드로선 더 보기 안 좋았을 듯)에 대한 점으로 치자면 플린트가 선구적이라고 견줘 호평 한 바 있다. [11] 팻 로버트슨과 사이좋은 대통령이 바로 조지 워커 부시였다. 그래서 아랍권에서는 또라이 개독 목사의 사주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는 비아냥까지 있을 정도이다. 로버트슨은 우고 차베스가 사탄이라느니 비난하며 그를 암살하든지 미국이 남미에도 이라크 전쟁과 같은 전쟁을 일으키자는 말을 하여 비판을 많이 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