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리투아니아 관계
1. 개요
리투아니아와 러시아의 관계. 리투아니아는 역사적인 이유로 반러감정이 심한 편이고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주변국과 협력하고 있다. 러시아와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와 소련의 공화국으로 강제 편입된 역사로 인해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
과거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폴란드와 동군 연합만 이루고 같이 연방을 이루기 전에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키예프 공국을 계승했다는 의식이 강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과거 키예프 공국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현지인들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후 모스크바 공국이 성장하여 루스 차르국이 되고 리투아니아 대공국 영토가 상당부분 상실되면서 리투아니아가 키예프 공국을 계승한다는 의식은 사라지고 리투아니아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고대 로마 제국과 가톨릭에서 찾게 되었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방 멸망 이후 러시아 제국 지배 시기에는 리투아니아어와 리투아니아 민족주의에 대한 탄압이 강해졌고, 이 과정에서 리투아니아인 사이에서는 가톨릭 민족주의가 강해졌다. 리투아니아어에 대해선 로마자로 된 리투아니아어 사용을 금지하고 키릴 문자로 된 리투아니아어 사용을 강제하기도 했다. 1차 대전 이후 리투아니아 제1공화국을 수립하며 20여년에 걸쳐 잠시 독립을 이루었지만 2차 대전 이후에는 소련 영토로 편입당했다.
2.2. 현대
독립 이후 친서방정책으로 러시아와 갈등이 있으며 2004년에 유럽 연합과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했다. 2008년에 남오세티야 전쟁에는 조지아를 지지하면서 러시아와 갈등이 있었고, 러시아와 경제적 교류는 활발하지만 그러면서도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반러감정은 강하다. 푸틴이 “발트 3국은 역사적 거스름돈”이라고 비하하자 가장 분노한 국가 중 하나였는데 이 발언은 14~15세기 리투아니아가 중세 키예프 공국의 영토 대부분을 타타르인으로부터 탈환했던 역사를 무시하는 처사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라트비아나 에스토니아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러시아와의 갈등이 적은 편이다. 이는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의 러시아인이 인구의 1/4 가까이를 차지하는 것과는 달리 러시아인 비율이 5% 안팎으로 적은데다가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가 러시아 본토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러시아령으로 편입된 지역이 있는 것과 달리 러시아 본토와도 직접적인 국경을 접하지 않고 본토 및 칼리닌그라드로 편입된 지역이 없어서 국경 분쟁의 소지도 없기 때문이다. [1] 러시아인들의 인구비율이 적다보니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는 1940년 이전에 자국 국적을 가진 주민과 그 후손들에게만 시민권을 자동부여하고 1940년대 이후에 이주해온 주민들은 귀화 과정을 거치게 했지만, 리투아니아는 독립 직후 러시아인들 대부분에게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주었기 때문에 러시아인들이 리투아니아인들과 리투아니아 당국에 대해 가지는 불만도 에스토니아나 라트비아의 러시아인들보다는 적어 러시아와의 갈등의 소지가 적은 것이다. 그러나 칼리닌그라드를 통해 러시아와 접하고 있고 쿠로니아 반도를 양분하여 갖고 있기에 러시아에 대한 경계감은 역시 강한 편이며, 역사적인 문제나 러시아어 교육 비중 축소와 관련해서 갈등이 있다.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 이후 러시아의 공세를 우려한 리투아니아 정부가 징병제 부활을 결정했다. 무작위 추첨제라는 것 같다.
세르게이 스크리팔 암살 미수 사건 당시에는 유럽 연합의 다른 회원국들과 연대하면서 러시아 외교관 추방 정책에 참여했고 이에 러시아도 보복했다.
2018년 6월 7일에 주리투아니아 러시아 대사인 알렉산드르 우달초프는 러시아는 리투아니아와 건설적인 대화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2018년에 리투아니아 정부는 러시아어로 된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러시아어)
2019년 11월 15일에 러시아는 리투아니아에 억류된 러시아 스파이 2명을 돌려받으면서 리투아니아 스파이 2명과 노르웨이 스파이 1명을 석방했다.#
리투아니아에는 러시아인들이 존재하는데, 일부 러시아인들중에는 푸틴 정권의 독재를 피하기 위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외에도 리투아니아로 이주하는 경우가 있다. 2021년초부터 러시아가 나발니를 체포하자 이에 반발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나발니의 측근인 볼코프가 리투아니아로 떠났다.#
3. 문화 교류
언어적인 면에선 리투아니아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소련과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러시아어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의해서 2번이나 국가가 멸망했고, 2번 지배당하고 2번을 독립했다는 역사적 관계로 인해 러시아어를 공식 언어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러시아와는 갈등이 존재하지만, 문화 교류가 일부 존재한다. 양국간에도 문화 교류가 있다보니 문화 축제도 진행되고 있다. 리투아니아에서도 러시아로 유학가는 경우가 있고, 러시아에서도 리투아니아로 유학가는 경우가 있다.
4. 경제 교류
현재 러시아에 대한 금수조치로 고통받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에 대해 큰 호감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아니지만 리투아니아 내에서 생산되는 유제품을 러시아에 수출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그러나 금수조치로 인해 이를 수출하지 못하게 되면서 오히려 경제적인 타격을 유럽 국가인 리투아니아가 받고 있는 셈이다. 사실 리투아니아 뿐만 아니라 북유럽의 여러 축산 농가들이 금수조치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작은 리투아니아가 그 피해 비중이 더 커보일 뿐이다.
5. 대사관
모스크바에 주 러시아 리투아니아 대사관, 빌뉴스에 주 리투아니아 러시아 대사관이 존재한다.
6. 관련 문서
- 러시아/외교
- 리투아니아/외교
- 러시아/역사
- 리투아니아/역사
- 러시아/경제
- 리투아니아/경제
- 러시아인 / 리투아니아인
- 러시아어 / 리투아니아어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북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동유럽 국가
[1] 스탈린이 칼리닌그라드를 소련 영토로 병합시켰을때 칼라닌그라드가 옛 발트족의 땅이었다는 이유때문에 리투아니아 소속으로 편입시키고자 했는데 리투아니아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안타나스 스니에치쿠스가 거절해서 무산되었다. 만약 군소리 없이 리투아니아 공화국 소속이 되었으면 리투아니아도 러시아인 문제로 골머리를 거하게 썩혔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