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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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1대 비오 7세

'''제252대 레오 12세'''

제253대 비오 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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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명'''
레오 12세 (Leo XII)
'''본명'''
안니발레 프란체스코 클레멘테 멜키오레 지롤라모 니콜라 세르마테이 델라 젠가
(Annibale Francesco Clemente Melchiore Girolamo Nicola Sermattei della Genga)
'''출생지'''
교황령 스폴레토
'''사망지'''
교황령 로마
'''생몰년도'''
1760년 8월 22일 ~ 1829년 2월 10일 (68세)
'''재위기간'''
1823년 9월 28일 ~ 1829년 2월 10일 (5년 137일)
'''장례미사'''
1846년 6월 6일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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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제252대 교황. 19세기에 즉위한 최초의 교황이기도 하다.[1] 본명은 안니발레 델라 젠가(Annibale della Genga). 재위 기간은 1823년 9월 28일부터 1829년 2월 10일까지 약 5년 5개월.
1760년 8월 22일 태어났으며, 수년 동안 독일권과 프랑스에서 교황 대사를 역임하였다. 1816년 추기경에 서임되었고, 시니갈리아(Sinigaglia) 주교로 임명되었으며, 1818년 스폴레토(Spoleto) 주교로 임명되었다. 1820년 추기경단 총대리로 재직했다.
19세기 초, 유럽나폴레옹 전쟁의 여파인 자유주의민족주의의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었다. 이런 '붐'을 타고 세속화와 탈신앙화가 점차 퍼져나가 교회의 활동이 어려움에 부딪쳤다. 신자의 감소와 정치적 압력으로 교구들이 해체되고, 수도회도 세속화되어 본래 취지를 잃어버렸다. 독일권의 유력 제후들은 다시 주교 서품권을 주장하기 시작하여 교황과 마찰을 빚었다.
이런 상태에서 레오 12세는 교회의 권위를 바로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1825년 성년(聖年)을 선포해 신앙심을 고취시키려고 노력하고, 세속화의 논리에 맞서기 위해 바티칸도서관을 확충하였다. 또 비오 7세 재임 중 소실된 성 바오로 성당을 복구하였다. 전임 비오 7세처럼 레오 12세도 유럽에서의 약세를 만회하려는 듯 세계 선교에 열의를 보였다. 1825년사제 파견을 요청하는 한국인 교우들의 편지를 접하고 2년 뒤인 1827년 9월 1일에 파리 외방전교회선교사조선에 파견할 것을 요청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레오 12세에 대해 이탈리아 쪽의 평가는 박한 편이었다. 하지만 세계 교회에서는 레오 12세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여, 개혁에 대한 열의 덕분에 19세기 가장 중요한 교황 중 한 명으로 꼽을 수 있다는 찬사를 얻었다.
[1] 전임 교황인 비오 7세는 1800년에 즉위해 18세기 즉위한 마지막 교황이었다.